가인과 아벨(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 6장 악, 죄, 그리고 인간의 타락)

무지... | 20180408083409

가인과 아벨
          
역사상 최초의 살인은 인간의 타락 바로 뒤따라 일어났다. 사실은 형제 사이의 갈등은 부모로부터 연유한 정황 탓일 수 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다. 그 이야기는 인간이 재산, 재능, 사랑, 행운, 그리고 이 경우처럼 축복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성서는 아벨을 정의로운 사람으로 간주한다. 꾸란은 아벨을 형인 가인과 싸우지 않기 위해 무기 들기를 거부하는 평화의 사람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한 전승이 나온다. 아벨형 인간은 선하고 믿음직한 반면, 가인형 인간은 사납고 무신론적이며 폭력적이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은 근본적으로 가인과 아벨은 형제라고 가르친다. 게다가 그들 둘 다 잘못을 저질렀다. 선택받은 자인 아벨의 교만이 가인의 증오를 불러왔으며 가인의 증오 역시 죄악의 역사를 초래하였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은 가인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복귀의 과정을 촉진하려는 것이었다고 가르친다. 가인과 아벨은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함으로써 아담이 천사장에게 잘못 주관 받은 부모의 잘못을 복귀할 수 있었다. 이 복귀섭리가 성공했다면 살인은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았을 것이다.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가인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폭력을 사용할 수도 겸손하게 동생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아벨 역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선택 받은 자의 지위를 자랑할 수도 선택 받지 못한 형에게 연민을 갖고 그를 위로하며 기운을 북돋아 줄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가인과 아벨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쟁과 평화가 결정될 수 있다.
        
종교 경전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때가 되어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여호와께 예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을 드렸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가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가인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 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느냐?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 먹었다면, 죄가 제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 죄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 그러나 가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어 들에 데리고 나가서 달려들어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고 하시면서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땅이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네 손에서 받았다. 너는 저주를 받은 몸이니 이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네가 아무리 애써 땅을 갈아도 이 땅은 더 이상 소출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러자 가인이 여호와께 하소연하였다. “벌이 너무 무거워서 저로서는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아주 쫓아내시니, 저는 이제 하나님을 뵙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못하도록 하여 주마. 가인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일곱 곱절로 법을 내리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여호와께서는 누가 가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를 찍어 주셨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물러나와 에덴 동쪽 놋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창세기 4.3-16 (기독교)
         
그리고 아담의 두 아들 이야기를 드려주리니, 그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자 그들 중 한 사람의 것은 수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의 것은 수락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가, “내가 너를 살해하리라” 하니, 다른 하나가 “하나님은 신을 경외하는 자만 받아들이신다.” 고 하더라.
        
이어 “네가 나에 대항해 손을 뻗쳐 나를 죽인다해도, 나는 너에게 손을 뻗쳐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니, 나는 만물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다. 내가 믿건대, 너는 나에 대한 죄악과 네 자신의 죄악을 함께 지고 지옥의 거주자가 되리라. 이것이 악행자에 대한 응보이니라.” 결국 자기의 영혼이 그를 자극하여 그의 형제를 살해하니, 길 잃은 자의 무리에 들고 말았도다.
        
이때 하나님께서 한 마리의 까마귀를 보내어, 까마귀로 하여 어떻게 땅을 파고 처참한 그의 형제의 시체를 매장하는가를 보여 주시도다. 그가 말하였다. “오! 슬프도다. 내가 이 까마귀보다 못하구나. 내가 내 형제의 시체를 묻어야 하다니.” 그리고 그는 후회로 가득 차더라.     
꾸란 5.27-31 (이슬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런 제물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는 의인이라는 증언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두고 증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믿음을 매개로 해서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4 (기독교)
         
아담 해와가 자녀를 낳았을 때 그 첫째 열매는 뱀의 아들이었다. 해와가 두 사람과 관계했기에, 모두에게서 잉태를 하였고, 두 자녀를 낳았다. 두 아들 모두 각자 아버지를 본받아 태어났기에 그들의 영혼은 갈라졌다. 한 아이는 이쪽으로 다른 아이는 반대쪽으로, 성품 역시 반대였다. 가인 편에는 늘 악한 부류가 함께해, 그를 통해 악령, 악마, 무당들이 접근했다. 아벨 편에는 자비로운 이들이 많았으나 모두가 이로운 이들은 아니었다. 좋은 포도주와 나쁜 포도주가 섞여 있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셋이 나온 후에서야 비로소 온전한 인류가 나온 것이다. 셋은 모든 의인들의 첫째 조상이 되었다.
          
가인은 아벨을 적대하고 그를 죽였다. 이는 가인이 세상에 죽음을 가져다주는 사마엘 편의 천성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가인은 여자 문제로 아벨을 시기했다. 창세기 4장 8절에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다” 고 나와 있다. 여기서 ‘들’이란 여성을 상징한다. 본문에 따르면 가인이 자신의 제물이 열납 되지 않아 화가 났다고 하나 이것은 부차적인 이유였다.    
조하르 1.36b (유대교)
         
말씀 선집 
     
아담가정에서 비롯된 가인과 아벨의 투쟁 역사는 인류 역사를 몽땅 전쟁과 갈등의 역사로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작게는 인간 개개인의 몸과 마음의 갈등으로부터 크게는 국가와 국가가,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가 물본주의와 신본주의로 갈라져 대립 투쟁해 나왔습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20, 2005.09.12)
          
원래 인간은 하나님께만 주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사탄이 불륜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탄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랑은 통제력, 지배력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원리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것이 불륜의 사랑이더라도 사탄은 인간에 대하여 그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창조원리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의 본래의 주인이므로 결국 하나님과 사탄은 함께 인간에 대하여 그 소유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을 둘로 잘라서 하나님과 사탄이 나누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리적 관점에서 인간을 둘로 분립하기 위한 어떤 규칙을 정한 것입니다. 
        
즉, 내적 존재로서의 하나님과 외적 존재로서의 피조물이라는 입장에서 내 외의 관계와 주체 대상의 관계에 의해서 하나님은 그 분립의 규칙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과 해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를 통하여 분립하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사탄을 표시하는 표시체이고, 아벨은 죄없는 아담의 입장을 표시하는 표시체입니다. 차남을 하나님은 내적 입장에 세운 것입니다. 아벨은 악의 요소가 적은 쪽, 바꾸어 말하면 아담과 해와 사이에 맺어진 제2의 사랑을 표시하는 표시체인 것입니다. 아벨은 두 번째 사랑의 열매입니다. 가인은 첫 번째 사랑의 열매이며, 사탄을 표시하는 표시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차남인 아벨을, 해와와 천사장과의 관계보다도 해와와 아담과의 관계가 더 가까우므로 하나님 편에서 취한 셈입니다. 그런데 본래의 명령계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담,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천사장에게 이르는 것이 순서였으므로, 이 경우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벨에게로, 아벨로부터 가인에게로 이르는 순서로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위치요, 관계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먼저 이 공식을 복귀함으로써 잃어버린 원리를 되찾아 가는 것입니다. 타락행위에 의해 인류의 혈통은 교차되었습니다. 사탄의 피가 인류의 혈통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는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차남 아벨이 장남의 장자권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 두 형제를 내세워서 장남의 장자권을 복귀하는 섭리를 행하려 하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의 위치로 내려가야 하며, 아벨은 가인의 위치, 즉 장남의 위치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행위는 아담과 해와 때의 타락행위의 반복입니다. 즉, 복귀된 입장은커녕 다시 천사가 아담을 주관한 입장에 서고 만 것입니다. (55.109-110, 1972.04.01)
        
아담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 위치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중간 위치에 처해 있었던 타락인간을 하늘 편으로 분립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해서 타락인간 자신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워야만 했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비 원리적인 섭리를 하실 수 없으므로 선 악 두 성품의 모체가 된 아담을 선 성품적인 존재와 악 성품적인 존재로 둘로 갈라 세우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의 두 아들을 각각 선악의 표시체로 분립시킨 후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탄을 각각 대할 수 있는, 즉 한 주인 상대의 원리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제각기 제물을 바치게 하셨던 것이다.
          
가인과 아벨은 모두 해와의 불륜한 사랑의 열매인 것이다. 따라서 해와를 중심하고 맺어진 두 형의 불륜한 사랑의 행위들을 조건으로 가름하여 가인과 아벨을 각각 상이한 두 표시적 입장에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가인은 사랑의 첫 열매이므로 그 첫째 번 것이었던 천사장과의 사랑으로 인한 타락행동을 표징 하는 악의 표시체로서 사탄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고, 아벨은 사랑의 둘째 열매이므로 그 둘째 번 것이었던 아담과의 사랑으로 인한 타락행동을 표징 하는 선의 표시체로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던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의 세계를 사탄이 먼저 점유하였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앞서 사탄이 먼저 비 원리적인 입장에서 그 원리형의 세계를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이 맏이를 세워서 장자의 기업을 계승시키려고 하셨던 원리적인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사탄도 둘째 것보다도 맏것에 대한 미련이 더욱 컸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사탄은 그때 이미 피조세계를 점유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보다 미련이 컸던 장자 가인을 먼저 취하려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탄이 미련을 갖고 대하는 가인보다도 아벨을 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으니, 그 이유는 어디 있었던가? 아벨은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제물을 바쳤기 때문에(히 11:4)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셨다(창 4:4). 그리하여 아담가정이 세워야 할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비록 타락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조건만 성립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용납하신다는 것을 교시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던 것은 가인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가인은 사탄이 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졌으므로 하나님이 그 제물을 취하실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을 가인 자신이 세우지 않은 한, 하나님은 그것을 취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써 사탄의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편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그 자신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교시하신 것이다.
          
천사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던 아담을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타락성’ 이 생겼다. 그러므로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을 사랑하여서 하나님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취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천사장이 하나님에게 더 가까웠던 아담을 중보로 세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아담의 위치를 취하려다가 타락되었기 때문에, ‘자기 위치를 떠나는 타락성’이 생겼다. 그러므로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을 중보로 세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자기 위치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천사장은 자기를 주관해야 할 인간, 즉 해와와 아담을 역 주관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주관성을 전도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따라서 인간이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에게 순종 굴복하여 그의 주관을 받는 입장에 섬으로써 주관성의 법도를 바로 세워야 했던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선한 뜻을 하나님은 아담에게 전하고, 아담은 또 해와에게 전하고, 해와는 다시 천사장에게 전하여 선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천사장은 따먹어도 좋다는 불의의 뜻을 해와에게 전했고 또 해와는 그것을 아담에게 전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죄를 번식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그러므로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자기보다도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서있는 아벨의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여 아벨로부터 선의 뜻을 전해 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는 입장을 조성해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항상 좋은 지도자나 친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보다 하늘 편에 가까운 아벨형의 존재를 찾아 그와 하나 됨으로써 하늘 앞에 가까이 서고자 하는 천심에서 일어나는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온유겸손이 기독교 신앙의 강령이 된 것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아벨형의 인물을 만나 그를 통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게 하기 위함이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반드시 가인과 아벨의 두 형의 존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인형의 존재가 아벨형의 존재에게 순종굴복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 인류가 그에게 순종 굴복해야 할 아벨적인 존재로서 이 세상에 오셨던 분이었다. 따라서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는 것이다(요 14:6).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천사장이 인간을 타락케 하였던 타락성 본성을 반복하게 되어 아담가정이 세워야 했던 ‘실체기대’는 세워지지 않았다.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1.1-2)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린 후 아벨의 제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을 안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려 때려죽였지만 여기에는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리기 위해 준비할 때부터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니 순간적으로 아벨에 대한 미움이 생겨 그를 때린 것이 아니고, 그 일에 부딪치기 전부터 아벨이 미워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인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3.205, 1957.11.01)
         
여러분은 가인과 아벨이 다 같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을 때,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의 입장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하나님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가인에게 하늘의 입장을 대신했던 아벨을 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인의 제물을 취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적인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공평한 입장에서 그들을 대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3.205, 1957.11.01)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갈라서 드렸는데, 아벨의 제사를 받은 데 대해서 가인이 나도 하나님에게 소개해 달라고 하여 완전히 절대 신앙·절대 사랑·절대 복종하는 마음으로 하나 돼야만 들어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378.206-207, 2002.05.12)
         
하나님께서 아벨을 세우신 이유는 가인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을 가인에게 송두리째 주는 동시에, 자기의 사랑까지도 보태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래의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18.277, 1967.06.12)
         
아담가정에서 실체기대를 승리하기 위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 되어야 하는 섭리를 하실 때,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을 받게 되었는데, 이에 아벨이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니까 사탄이 참소하여 가인에게 혈기를 부리고 이성을 잃게 하여 동생 아벨을 살해하도록 역사했습니다.     
(374.12-13, 2002.04.04)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몸이 통일되고 조화되는 기준을 잃어버리고 갈등을 일으키면서 자기모순 속에 살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과 몸의 갈등과 투쟁은 가정·사회·국가·세계로 확대되어 내려왔습니다.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범죄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역사 이래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대결과 전쟁은 본질적으로 보다 악한 가인편과 보다 선한 아벨 편 간의 싸움이었습니다.   
(299.105, 1999.02.06)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한편은 바른손이고 한편은 왼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하나님인 동시에 네 하나님이시오,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입장에서 서로 서로 아벨 적인 존재를 찾아 모시며 가인 적인 입장을 피하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3.207-208, 1957.11.01)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통곡했겠습니까? 그것이 세계적으로 벌어질 텐데 어떻게 하느냐 이것입니다. 본래는 형님이 동생을 아버지 대신 사랑해야 하는데 이게 웬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406.26, 2003.03.02)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뿔사, 큰일 났구나! 그 일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도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원하는 것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끝 날에 형제, 형님과 동생이 싸우는 이 판국에서, 한 곳은 천국에 한 곳은 지옥 가는 데 있어서 형장에 나가 죽기를 바라는 하나님이 아니었고, 형장에 나가서 아들딸들이 사형 받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책임질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을 아신 하나님입니다.    
(295.63, 1998.08.17)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gmb/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