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평화의 중재 - 2. 평화의 실현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22장 평화)

철장왕 | 20190223102017

2. 평화의 실현
 
종교경전
그는 분열된 자들을 화합하게 하며, 그는 서로 우호적인 사람들을 격려한다. 그는 평화를 조성하는 자, 평화를 사랑하난 자, 평화를 열망하는 자, 평화를 일구는 말을 하는 자이다.
디가 니카야 13.75, 데빗자 숫타(불교)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복음 5.9 (기독교)
 
만일 믿는 자들 두 그룹이 싸운다면 그들을 화해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만일 그들 중 한쪽이 다른 쪽에 불의를 저지른다면 불의를 저지른 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응할 때까지 싸우라. 그리고 그들이 응하면 그 두 그룹을 정의롭게 화해시키고 공정하게 하라.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자를 사랑하시노라. 
꾸란 49.9 (이슬람)
 
무력의 짧은 몇 겁 동안 수많은 중생들에 대한 비폭력을 실천하며 그들은 사랑에 대하여 명상했도다.
큰 전쟁의 한가운데서 그들은 양평에 공평하게 남아 있었네. 큰 힘을 지닌 보디사뜨와들에게 갈등의 조정은 큰 즐거움이었네. 
유마경 8 (불교)
 
후자의 랍비 바루카는 종종 라페트의 시장에 갔다. 어느 날 선지자 엘리야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바루카가 엘리야에게 물었다. “이 자들 중에 앞으로 올 그 날을 볼 자가 있습니까?” 엘리야가 대답했다. “저기 두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바루카가 바로 그 두 명의 새로운 이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는 광대입니다. 우리는 슬픈 사람을 만나면 웃게 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 사이에 화해를 가져다줍니다.” 
탈무드, 타아니트 22a (유대교)
 
모든 왕들이 자리에 앉고 완전히 조용해졌을 때, 훌륭한 치아와 북소리처럼 깊은 목소리를 지닌 크리슈나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 바리타의 후손들이여, 영웅들에 대한 살육 없이 꾸루족과 판다와족 사이에 평화가 확립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 왔습니다. 오, 왕이여, 내가 할 수 있는 유익한 말은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오, 꾸루족이여, 덕과 이익 모두를 내팽개치고 도덕을 무시하며 탐욕에 사로잡혀 제 정신이 아닌, 듀로다나가 이끌고 있는 저 사악한 아들들은 이제 자신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에게 가장 몹쓸 짓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살육의 무시무시한 위험은 꾸루족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만일 그대들이 그것을 모른 체한다면 엄청난 살육을 낳을 것입니다. 오, 바라타의 후손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평화를 위해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오, 왕이여, 평화의 확립은 그대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대의 아들들이 의로운 판단을 하게 하십시오,그러면 나 또한 판다와족이 의를 저버리지 않게 할 것입니다.”¹⁰
마하바라타 우드요가 파르바 95 (힌두교)
 
말씀
하나님의 사랑 속에는 상극은 있을 수 없고, 다만 상화 상응만이 있다. 성경에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기록된 뜻도 이런 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뜻길, p.268)
 
하나님이 얼마나 참았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고, 입이 주먹만 하게 나오고…. 그럴 때 하나님은 얼마나 참았겠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도 참아야 됩니다. 천년만년을 참아가야 됩니다.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둘 다 좋을 때는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가 망할 때는 싸워서는 안 됩니다. 싸우더라도 내 편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싸워야지, 원수 되기 위해서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04.33-34, 1979.03.25)
 
세계적 차원에서도 역시 지역 ․ 인종 ․ 종교 ․ 문화 ․ 관습 ․ 언어 ․ 국적 등 하나의 평화세계를 위하여 뛰어 넘어야 할 도전의 과제가 산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우주 만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참사랑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볼 때 세계는 인종 ․ 언어 ․ 종교 ․ 이념적 차이를 넘어 하나로 보이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희생과 봉사의 노력을 기울일 때 세계의 가난과 기아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빈부의 격차와 역사상 이질적인 경험에서 오는 갈등과 증오의 감정은 비로소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까지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참사랑이라는 정의에서 우리는 관념, 갈등관계가 극복될 수 있는 확실한 방향성을 알게 됩니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이념적 모순도 참사랑의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의 만남의 자리를 찾습니다. 주고 또 주고, 그리고 준 것을 잊어버린 채 더 주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화합과 번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은 나라를 위하여, 나라는 세계를 위하여, 그리고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고 희생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는 참사랑의 윤리 전개에서 민족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영원한 평화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288.201-202, 1997.11.28)
 
레버런 문 같은 사람이 여기에 와서 흑백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흑백문제를 조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이 가르치는 것은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124.275-276, 1983.02.27)
 
흑인들은 이 미국에서 하늘의 탕감노정에 있어서, 아벨적 역사에 있어서 노예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나라를 창건한 것은 여러분 흑인들이지 백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백인이 아니라 흑인입니다. 먼저 흑인을 희생시켜 나오고, 그다음에는 인디언을 다 희생시켜 나오지 않았습니까? 싸우게 된다면 흑인들이 원수를 갚을 것이고, 유색 인종이 백인 인종과 싸우게 된다면 백인 여러분을 남겨 둘 것 같습니까?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레버런 문이 왜 여기에 왔겠습니까? 인디언은 사실 우리 사촌과 같습니다. 나라로 보면 사촌 간, 형제간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전부 다 죽겠으니 내가 와서 말려 주어야 합니다. 원수를 갚겠다고 온 것이 아니고, 구해 주고 화해시키러 왔습니다.
 
그런 일을 누가 하겠습니까? 백인이 하겠습니까, 흑인이 하겠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백인의 말도 안 듣고, 흑인의 말도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멸종당한 유색인종은 같은 황인종인 우리도 원수인 이 미국을 용서하는데 너희들도 용서해라’ 이러면 통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벨이 가는 길이 그랬습니다. 
(106.241, 1979.12.30)
 
페르시아만의 문제를 기독교의 책임자들이 못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전 세계의 기독교 중진들과 회회교 중지들을 만나 이것을 방어하기 위한 회합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 페르시아 만이야 죽겠으면 죽고, 원자탄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러나 세계 인류의 갈 길이 암담한 것을 문에 그걸 아는 내가 책임을 지고 돈을 써 가면서 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과 소련까지 잡아넣어서 이걸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공하고 대만의 제2인자들을 화해를 붙인 것이 누구냐? 나입니다. 유대교와 아랍권과 화해를 붙이 것이 내가 만든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211.183, 1990.12.30)
 
본인은 이제 85세의 노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숭고한 천명을 완수하여 이 지구성이 하나님의 참된 가정들로 넘쳐나는 그 날까지, 중동지역에서 총소리가 그치고 평화와 환희의 축포가 울려 퍼지는 그 날까지, 그리고 본인의 조국 한반도에서 들려오는 통일의 만세소리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울려 퍼지는 그 날까지 레버런 문은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뛸 것입니다.  
(443.191, 200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