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적 평화
평화는 평화로운 개인들로부터 우러나온다. 내적 평화에 이른 사람들은 타인에게 평화를 확산한다. 그들은 타인을 평화롭게 상대하는 내적 힘, 열정을 지닌다. 문선명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몸과 마음의 통일을 배양함으로써 우리는 타인과 풍부한 사랑을 주고받기에 적합한 그릇이 된다.
내적 평화의 배양은 외적 평화 창조의 출발점이 된다.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인 프로그램일지라도,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슴에 증오와 폭력을 가득 담고 있다면, 공정하고 합당한 평화를 도출 할 수 없다.
종교경전
깊은 연못은 맑고 고요해서 물결에 흐르지 않는 것처럼, 현명한 자는 진리를 듣고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진다.
법구경 82 (불교)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머물러 있는 물로 거울을 삼는다. 머물러 있는 것만이 다른 모든 사물의 머물러 있는 상태를 머물게 할 수 있다.
장자5 (도교)
강들이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만 대양이 넘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감각세계의 온갖 갈래들이 평화의 바다, 즉 지혜로운 자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바가바드기타2.70(힌두교)
너희 자신의 욕심에 대해 성전(聖戰)을 행하라. 그러면 너희 마음을 지혜가 차지하리라.
최상의 성전은 누군가가 다른 이를 거역하리라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라.
하디스(이슬람)
주는 모든 존재의 심장 속에 거하신다. 그는 자신의 마야의 바퀴 위에서 그들을 돌리고 계신다. 온 존재로써 그에게 귀의하라. 그의 은총으로 인해 그대는 궁극의 평안을 찾고 모든 변화를 여읜 상태에 이를 것이다.
바가바드기타 18.61-62(힌두교)
이 모든 것이 충만하고 저 모든 것도 충만하도다. 충만함에서 충만함이 나오도다.
충만함이 충만함으로부터 취해질 때 충만함은 그대로 남아 있도다.
오옴. 평화, 평화, 평화
이샤 우파니샤드 평화찬트(힌두교)
승려가 자신 내부의 평화를 찾지만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내적으로 고요하면 자신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아가 보일 것인가?
깊은 바다에는 파도가 없다. 오직 그곳은 고요하고 어떤 것도 파괴도지 않도다. 승려도 이와 같도다. 그에겐 어떤 욕망의 흔들림도, 자만과 욕망을 세울 어떤 찌꺼기도 없이 고요하다.
숫타 니파타 919-920(불교)
무엇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다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1-3(기독교)
그러므로 선한 자의 영적인 욕망은 다른 선한 이의 육신의 욕망과 대립될 수 있다. 마치 한 사람의 육신의 욕망이 다른 이의 영성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의 전쟁은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싸움과 유사하다. 동시에 두 선한 사람의 육신의 욕망이 서로 대립하는 형상은 악인이 또 다른 악인과 싸우는 모습과 비슷하다. 선이 악을 이기는 궁극적인 영광이 찾아올 때까지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15.5(기독교)
정신적인 폭력은 아무런 힘도 지니지 못하며, 다만 자신의 생각이 폭력적인 그 사람을 상하게 할 뿐이다. 그것은 정싡거 비폭력과 전혀 다르다. 정신적 비폭력은 세계가 아직 알지 못하는 힘을 지닌다.
모한다스 K.간디(힌두교)
선한 이들이 온전히 선하다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한 자들도 여전히 완성의 도상에 있기에, 그들 마음 한구석에서도 두 가지 다른 마음이 싸우고 있다. 이 반항하는 두 마음 때문에 선한 두 사람들이 서로 전쟁할 수 있다. 모두가 그렇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갈라디아서 5.17(기독교)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성전을 행하라. 그러면 너의 마음은 지혜로 충만하게 되리라. 최고의 지하드는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니라.
하디스(이슬람)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업신여긴 뒤에야 남이 그를 업신여기며,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훼손한 뒤에야 남이 그를 훼손하며, 나라는 반드시 자신이 공격한 뒤에야 남이 공격하는 것이다. 서경 ‘태갑(太甲)’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랄 수 있거니와 사람이 만든 재앙은 피하여 살 수 없다.”
맹자Ⅳ.A.8(유교)
말씀선집
몸 마음이 싸우는데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까? 몸 마음이 하나 안 된 거기에 행복이 어디 있고 평화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246.60, 1992.12.27)
세계에 대한 불평을 하기 전에, 세계에 대한 평화와 행복을 부르짖기 전에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평화의 기점을 이루고 있느냐, 평화의 중심의 기점이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평화의 중심의 기점이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140.17-18, 1986.02.01)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은 원수와 싸우는 격한 자리에서 자기의 분노와 혈기를 드러내어 원수와 겨루는 자리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원수의 칼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고요히 하늘을 그리워하며 참배하는 자리, 평화롭게 그 하늘의 품에 안기는 자리, 원수의 환경을 초월하는 자리에서 천국을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25.38-39, 1969.09.28)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일하는 곳입니까? 성전은 안식처라는 말과 통합니다. 그러면 쉬는 데는 무엇 가운데 쉬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안식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그러한 내심적 기준이 최고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지닌 곳을 심정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솟는 샘터와 마찬가지여서 퍼내고 퍼내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니까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91.78, 1977.01.30)
평화라는 것이 무엇이냐? 몸 마음이 하나 되고 가정이 평화로워야 국가적 평화, 세계적 평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조작한 사상을 가지고는 평화가 안 됩니다 본연적인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몸 마음이 하나 되고, 그 다음엔 부부가 하나 되고, 부자가 하나 된 가정적 기반이 평화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 우주까지 갖다 올려놓더라도 뿌리의 지시를 받아야 됩니다.
(305.203, 1998.07.14)
유엔이 지난 60년 동안을 바쳐 노력했지만 아직도 세계평화는 요원할 뿐입니다. 몸과 마음의 가인 아벨 관계도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21, 2005.09.12)
내속에서 영원히 계속할 이 전쟁을 어떻게 평화로 뒤집어 만드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세상이 평화세계가 되더라도 전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알기에 이 길을 나설 때 제일의 표어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였습니다.
(131.34, 198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