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언자는 반대와 박해를 감내해야
종교 경전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는 것을 보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예언자라고는 저 하나 남았는데 그들이 저마저 죽이려고 찾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9.14
“무슨 소리냐? 그런 말은 지껄이지도 마라”고 한다만 이 치욕이 너희를 떠날 성싶으냐? “야곱 가문이 저주를 받다니, 여호와께서 참을성이 없으시어 그런 일을 하신단 말이냐?” 하고 말한다만 너희가 올바로 살지 못했는데도 좋은 말씀을 내리시겠느냐?
너희는 내 백성을 원수같이 다루었다. 평화롭게 사는 백성을 덮치고 마음 놓고 지나가는 백성을 전쟁 포로인 양 옷을 벗겼다. 내 백성 중 부녀자를 보금자리에서 몰아내었다. 그 어린아들에게 패물을 달아주었더니 너희는 그것마저 빼앗아갔다. 어서 떠나가라.
여기는 너희 안식처가 아니다. 이미 더러워진 이 땅, 불쌍하게도 망할 수밖에 없다. “내 입에선 포도주와 소주가 나온다.” 신들려서 이런 흰소리나 하며 이 백성의 예언자들은 돌아다닌다.
미가 2.6-11 (유대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도벳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는 여호와의 집 마당에 돌아와 버티고 서서 온 백성에게 이렇게 선언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고집이 세어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 이제 이미 말하였던 온갖 재앙을 이 도읍과 여기 딸린 모든 성읍에 내리리라.”
당시 여호와의 성전 총감독은 임멜의 아들 바스훌 사제였는데, 예레미야가 전하는 이 말씀이 그의 귀에 들어갔다. 바스훌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차꼬를 채워 여호와의 성전 위쪽에 있는 베냐민 대문에 가두어두었다.
“여호와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수군거립니다. ‘저자야말로 사면초가다. 고발하자, 고발하자.’ 저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모두 제가 망하기를 바라 모의합니다. ‘걸어 넘어뜨리고 잡아 족치자. 앙갚음을 하자.’ 그러나 제 곁에는 힘센 장사처럼 여호와께서 계시기에 저를 박해하다가는 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부끄러움으로 머리도 들지 못하고 길이길이 잊지 못할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사람의 뱃속을 아시고 심장을 꿰뚫어 보시는 공정한 감시자여, 저들을 고소하는 이유를 밝히 말씀드렸사오니, 이제 이 백성에게 제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이 눈으로 그것을 보아야겠습니다.”
예레미야 19.14-15, 20.1-2, 20.7-12 (기독교)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히브리서 11.36-38 (기독교)
말씀 선집
예언자들은 전부 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뜻을 찾아 나가는, 아벨의 길을 가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예언가들입니다. 비정상적인 놀음을 하는 그런 예언가들이 전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나, 신약성경을 보나 예언가는 전부 다 비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손가락질 받고, 반대 받고, 핍박받고 그러는 것입니다.
(89.129, 1976.11.01)
정의의, 진리 체제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완전히 천운이 보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반대하게 되면 천운이 쳐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 같은 나라, 아무리 소련 같은 나라라도 내가 진짜 하나님을 중심삼고 상대돼 가지고 완전히 일체권 내에 들어갈 때에는, 여기에 반대 되면 소련을 쳐버리고 미국을 쳐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알았기 때문에 문총재는 대담한 것입니다.
(214.194, 1991.02.02)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역사 가운데서 예언자들이 주권 앞에 종이 되었습니다. 생사지권을 넘어서 공격당하고 얼마나 희생당해 왔습니까? 그러한 전체 희생의 열매로서 대표적으로 아벨적 왕자의 자리에 선 것이 재림주입니다. 참부모가 졸장부가 돼서는 안 됩니다.
몇 천 년, 몇 세기를 지나오면서 어려울 적마다 예언자들이 얼마나 목이 잘리고 피를 흘렸겠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 열매를 거두어야 할 선생님이 세상이 무서워서 할 말을 못 하겠습니까? 감옥을 여섯 번이나 갔다 왔습니다. 언제나 일선에 서는 것입니다.
(343.263, 2001.02.17)
아버지께서 원수의 세계를 대하던 심정을 느끼면서 슬픔의 자리를 저는 체험해 나왔습니다. 양지에서 살아 나오시지 못한 아버지의 슬픔을, 음지에서 역사하신 아버지의 사정을 저는 알았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런 생활 속에서 어느 한때 아버지를 반박하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자식이 될까봐 초조해하면서 나왔습니다. 또한 당신께서도 초조한 입장에서 그런 저를 찾아오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가 서러운 이상 더 서럽고, 제가 괴로운 이상 더 괴로운 자리에서 당신의 책임을 느끼면서 갈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몰리고 쫓기는 자리, 쇠고랑이 양손을 죄는 영어 살이, 노예의 신세, 종의 신세를 거치더라도 절망하거나 아버지께 낙심을 가져다 드리지 않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렇게 결의한 그 시간부터 오늘날까지 죽지 않고 아버지 앞에 남게 해주신 은사를 감사드립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세우시기 위해,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제가 가야 할 길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그 이상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자다가 눈을 떠도 죄인인 양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빌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멈추고 눈물로써 아버지께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사옵고, 피로한 몸을 가누지 못해 자리에 누울 적마다 당신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쌍한 분은 아버지입니다. 아무리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불쌍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30.270, 1970.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