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정부
정치의 주된 관심사는 시민복지이다. 세계의 경전은 통치자는 자기 자신의 필요에 앞서 국민의 요구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확언한다. 이것은 통치자의 명칭들에서 잘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그들의 통치자를 ‘목자’로 불렀고, 예수는 왕국의 통치자를 ‘종’으로 불렀으며, 중국 전통에서는 황제를 ‘백성의 어버이’로 보았다.
지도자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개인적 친절, 그들의 실수에 대한 관용, 사태에 대한 인식 부족, 무지, 배신 등도 확실한 신뢰성으로 배려해야 한다. 지도자는 고위직의 허례와 과시를 배제함으로써,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소박하게 살아감으로써 추종자들의 어려움과 함께함을 보여줄 수 있다. 경전들은 경기 침체기의 세금 감면,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 국민에의 주인의식 함양을 위한 권한 부여, 빈민 복지를 위한 준비 등을 위시한 자애로운 통치정책을 격려한다(제20장 ‘경제’의 참조).
자애로운 규칙을 추구하여 만들어진 정부의 교령은 거의 보편화되어 있다. 그래서 고대 군주제 시대에 기록된 교령들이 전승되어 오늘날에도 그것이 유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현대 민주주의에 관한 몇몇 문헌들이 소개된다. 현대에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를 창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의 극악무도함을 야기했다. 프랑스혁명이 그 사례다.
민주주의 배후의 자유선거와 대의정치의 활기찬 정신은 자유의 축복과 전체주의적 폭력 사이의 모든 차별을 만들 수 있다. 서양의 경험론적 기독교 가치에 세워진 민주주의는 물질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문선명 선생님에 따르면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의 민주주의에서도 여러 차원에서 결점이 드러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토대는 참사랑의 정신이라고 공표한다.
1. 봉사하는 지도력
종교경전
군왕의 행복은 백성들의 행복에 놓여 있다. 그의 복지는 그들의 복지에 놓여 있다.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하며, 백성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카우틸리야, 아르타 샤스트라 1.19 (힌두교)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주니 백성의 기쁨이 다함이 없다. 위로부터 아래에 낮추니 그 도가 크게 빛난다.
역경 42 (유교)
성인은 백성들 윗자리에 서고자 하면(다스리고자 하면), 반드시 말로써 그들 아래에 서고,
백성들 앞자리에 서고자 하면(이끌고자 하면), 반드시 몸으로써 그들 뒤에 둔다.
성인은 위에 자리하되 백성들은 무겁게 여기지 않고, 앞에 자리하되 백성들은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가 즐겁게 그를 추대하면서도 싫다고 하지 않는다.
도덕경 66 (도교)
큰 나라 다스리기를 마치 작은 생선 지지듯 해야 한다.
도덕경 60 (도교)
대다수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백성들에게 지우지 말라.
탈무드, 바바 바트라 60b (유대교)
자기 자신을 책망하기를 무겁게 하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기를 가볍게 한다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
논어 15.14 (유교)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한다면 남도 통달하게 한다.
논어 6.28 (유교)
통치자가 준행해야 할 지상의 의무는 백성을 수호하는 일이다. 자신의 지위에서 오는 권익을 탐닉하는 통치자는 그 의무에 속박될 뿐이다.
마누법전 7.144 (힌두교)
[최고 통치자이며 신의 지상 대리인인] 칼리프란 백성을 보살피는 목동과 같으니 그의 백성들에 관해 질문을 받게 되리라.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마태복음 20.25-28 (기독교)
하나님의 자비로 네가 그들에게 관대할 수 있었느니라. 만일 네가 냉혹하고 몰인정했다면 네 주변으로 흩어졌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용서를 빌어주고 사안을 그들과 협의하라.
꾸란 3.159
임란의 모세 자손이 말했다. “주여, 당신 생각에 당신의 중복 중 가장 훌륭한 자가 누구나이까?” 그가 대답을 듣기를 “권좌에 앉아 있을 때 용서를 하는 자이니라”였다.
바이하키 하디스 (이슬람)
보호란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는 것이다.
니카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말씀 선집
무한히 줄 수 있는 사람이 무한히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천만 사람에게 좋게 쓰이는 재료가 되자.
(뜻길, p.189)
남을 지배하고 싶은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이 지배당해 보아야 한다.
(뜻길, p.70)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원치 않는 곳에서 명령하는 지도자는 망한다.
(뜻길, p.69)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낮은 사람을 잘 수습해야 됩니다.
(34.250, 1970.09.13)
주권자는 백성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백성과 하나 되어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번영합니다.
(30.88, 1970.03.17)
우리는 남을 위하여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생활은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것은 물론, 천도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는 삶은 곧 하나님을 닮는 실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상속받아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사랑함은 우주의 기본질서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인격을 완성한 참사람․참부모․참스승․참주인이 됩니다. 이래야 평화를 이루는 주체가 됩니다. 남을 위하는 삶은 평화로 향하는 첫 관문이 됩니다.
(356.276, 2001.10.20)
자기를 중심삼은 사람은 아무리 대학을 나오고 학위를 갖고 있고 교수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책임자가 못 됩니다. 중심자가 못 됩니다. 그렇지만 다 갖추어 가지고 전체를 위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부 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선거할 때도 그렇습니다. 책임자를 정할 때는 개인주의자는 싫어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하는 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사회에 있어서 역사를 존속시키는 한 방법이요, 한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102.139-140, 1978.12.10)
처음 대하는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투입했나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실수해도 용서해 주는 천리를 거기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주체자로서 반갑게 대해 주고 반색하기를 바라야지 그러지도 않고 반색하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입니다.
(81.305, 1975.12.29)
만일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당장에 처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쁜 것이 있더라도 그 나쁜 것을 중심삼고 좋을 수 있는 조건을 찾아가면서, 좋은 것이 나쁜 것보다 작더라도 작은 것을 보고 나쁜 것을 보류해 가지고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72.313, 1974.07.14)
책임자는 알고도 속아 줘야 되고, 모르고도 본을 보여 줘야 됩니다.
(324.202, 2000.06.24)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사리(事理)가 밝아야 됩니다. 우둔하면 안 됩니다. 사리에 밝다는 것은 이치에 맞다는 말입니다. 전후좌우를 살필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둔해서는 안 됩니다. 상하, 전후, 좌우를 가릴 줄 알아야 됩니다. 다음에 그것을 포괄(包括)할 수 있는 것은 정입니다. 정의 보자기는 다 싸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싸고, 애기도 싸고 다 싸는 것입니다. 이론의 보자기는 일방적이지만 정의 보자기는 포괄적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팔십 난 할머니도 좋아하고 어린 애기도 그렇고, 사랑의 보자기로 싸면 전부 좋아하는 것입니다. 서로 움켜 가지고 깨지 않고 영원히 잠들어 쉬고 싶고 자고 싶은 곳이 사랑의 보자기 안입니다.
(81.328, 197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