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지도력
최고의 지도자는 덕성과 의로움의 모범이다. 한 사회의 정예 구성원인 정치인, 교수, 저명인사, 그리고 스포츠 영웅들이 정직, 성실과 도덕성의 본보기가 되어야 함을 자신의 의무로 인식할 때 그 사회는 축복받을 것이다. 그들이 역할 모델이 될 때 보통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본보기 모습을 따를 것이다. 우리는 모범적인 지도력을 세 측면으로 식별할 수 있다.
첫째, 지도력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지도자가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를 배려하고 가정을 다스리는 방식은 더 넓은 영역의 통치와 사회적 책임 분야에서 담당할 자신의 일에 대한 출발점이 된다.
둘째, 가슴과 마음을 자극하고 통치하는 것이 지도력이다. 중국에서는 공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법치주의자들의 관점에 반대하면서 모범적인 지도력의 이상을 표명하였다. 법치주의자들은 법과 법의 강력한 시행, 즉 마오쩌둥이 후에 말했던 것처럼 ‘총알에 의한 힘(권력)’으로부터 지도력이 흘러나온다고 가르쳤다. 공자는 만일 지도자들이 부패한다면 모든 국가 권력은 불만을 떨쳐버리지 않을 것이고 이와 반대로 국민들은 다만 폭력과 억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맞섰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준 성현과 종교적 스승들에게서 모범적인 지도력의 본보기를 볼 수 있다. 나사렛의 예수는 단지 그의 설교 말씀뿐만 아니라 희생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가르쳤다.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무엇을 하려 했는가!’를 묻고 그렇게 한다고 한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원수를 사랑했다. 이는 우리가 따르기 어려운 본보기이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그 이후 기독교인의 신앙의 토대가 되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 성현들의 모범을 따를 때 그들은 의심 없이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모범적인 지도력의 자질은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에서 3대 주체사상으로 요약된다. 지도력의 표준은 ‘참부모, 참스승, 그리고 참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지도자는 주인으로서 이 세계를 감독하고, 깊은 부모의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돌보며, 우리를 참다운 생명길로 계속 교도해 가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 곧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가르침을 모르는 지도자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닌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1. 모범적이며 덕망 있는 개인생활
종교경전
자기 자신(윗사람)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그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
논어 13.6 (유교)
국왕이 정직하지 못함에 어느 백성이 정직할 수 있겠는가? 국왕이 의롭지 못함에 어느 백성이 의로울 수 있겠는가?
소마데바, 니티바크야므리타 17.183 (자이나교)
세계의 유지와 복리를 고려해서라도 그대는 마땅히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귀한 자들이 행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른 사람들이 또한 그것을 따라 행하는 법이다. 그가 세운 모범을 세상은 따라가느니라.
바가바드기타 3.20-21 (힌두교)
소들이 떼 지어 들판을 지나갈 때 우두머리 황소가 길을 벗어나면 그를 따라 다른 소들이 길을 벗어나듯, 백성들 가운데 수승하다고 여겨지는 이가 그릇되게 행하면 다른 대중은 이보다 더하며, 만백성의 우두머리가 의롭지 못하면 온 나라가 비탄에 잠긴다.
소들이 떼 지어 들판을 지나갈 때 우두머리 황소가 바른 길 가면 그의 길이 바르므로 다른 소들이 더불어 바로 가듯, 백성 가운데 수승하다고 여겨지는 이가 의롭게 살면 다른 이들도 또한 그를 따르며, 만백성의 우두머리가 정의로 굳게 서면 온 나라가 태평성가를 부른다.
앙굿타라 니카야 2.75 (불교)
의로운 이가 마을에 있으면 그는 마을의 빛이요, 위엄이요, 영광이다. 그러나 그가 마을을 떠나면 그것들도 떠나버린다.
창세기 랍바 68.6 (유대교)
정령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면할 수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워하고 또한 선(善)에 이를 것이다.
논어 2.3 (유교)
계강자가 정치에 관해서 공자에게 물었다. “만약 무도한 자를 죽여 없애고 백성들로 하여금 도를 따르게 하면 어떻겠소?”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은 정치를 하겠다면서 어찌 살인을 하려고 하십니까? 당신이 선을 원하면 백성들도 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으며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나부끼고 따르게 마련입니다.”
논어 12.19 (유교)
시경에 이르기를 “근엄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하여 빛나며 경건하게 머문다”고 하였으니, 다른 사람의 군주가 되어서는 어진(仁) 상태에 머물고,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는 경건한(敬) 상태에 머물고, 다른 사람의 아들이 되어서는 효성스러운(孝) 상태에 머물고, 남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애로운(慈) 상태에 머물고, 나라의 사람들과 더불어 사귐에 있어서는 믿음 있는(信) 상태에 머물렀던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淇) 강의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 문채 나는 군자여, (그 인격이 도야됨이) 잘라 놓은 듯하고, 민 듯하고,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엄밀하고 굳세고, 밝게 드러나니, 문채 나는 군자여! 끝까지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잘라 놓은 듯하고 민 듯하다는” 것은 배우는 것을 말하고,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행실을 닦는 것을 말하고, “엄밀하고 굳세다는” 것은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말하며, “밝게 드러나는” 것은 위엄이 있는 행동을 말하여, “문채 나는 군자여! 끝까지 잊을 수가 없다고” 한 것은 그 무성한 덕과 지극한 선함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학 3.3-4 (유교)
실로 너희에게는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염원하고 하나님을 잘 기억하는 하나님의 예언자가 훌륭한 모범이니라.
꾸란 33.21 (이슬람)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뒤에 옷을 입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복음 13.12-15 (기독교)
바로 이것을 위해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여러분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1 (기독교)
말씀 선집
전체를 위하는 사람은 전체 운행에 맞추어서 생활이나 일이나 언행심사(言行心事)의 모든 면에서 본이 되니만큼 자동적으로 윗사람으로 존경받는 것입니다.
(318.147, 2000.03.05)
무엇이 선이냐는 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요, 좋은 것은 찾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 말은 좋은 것을 갖고 중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중심자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들의 하나의 표준이 되어서 그들이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중심자는 그것과 관계된 모든 것과 격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것을 관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보호해 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심자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따라가려고 하고 그를 표준삼고 가려고 합니다.
(118.38, 1982.05.02)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숭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만물을 대해서도 부끄럽지 않게 숭배 받을 수 있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 ‘나를 본 받아라’ 하고, 그 후에 상대적인 세계를 바라보아라.
(뜻길, p.190)
지도자가 되려면 경제문제를 다룰 줄 알아야 되고, 외교를 할 줄 알아야 되고,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는 웅변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85.263, 1976.03.03)
하나님이 성자나 선지자들을 지상에 보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격과 생활의 본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참사랑의 뜻을 만민에게 교육하는 것입니다. 특히 위정자나 지도자들에게 천도를 교육하고 실천케 함으로써 마음의 세계와 몸의 세계가 하나님의 참사랑의 뜻을 중심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219.110, 199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