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20장 사회)

철장왕 | 20190114075632

정의
 
불의와 압제는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범죄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정의를 위해 싸우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하나님 사랑을 체감하는 신앙인들은 정의를 증진시키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
 
경전은 학대받는 자들이 당한 정의를 누리지 못하는데 신앙인들이 그들 곁에 한가하게 앉아서 그들을 구제하지 않는 것을 경고한다. 좌절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환경에 대항하여 반란을 야기하고 무기를 들기 이전에, 종교인들이 오랫동안 불의를 당했던 자들에게 정의로운 삶을 누리도록 당국에 촉구하고 사회적 양심으로 고투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은 종종 자신이 불의를 겪었지만 자신을 박해한 자들에게 결코 복수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봉사와 희생의 길이 모든 측면의 불의를 극복하는 가장 분명한 길이라는 확신 가운데 항상 사랑과 인내, 단호함의 방식을 택한다. 
 
종교 경전 
 
이 여호와가 말하지 않더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울하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건져주며, 더부살이와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고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말라고.  
예레미야 22.3(기독교)
 
오 믿는 자들아! 하나님의 증거자로서 공정함을 지키라. 너희 자신들이나 부모 또는 친척들에게 불리할지라도, 그들이 부자이건 가난하건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보다) 더 좋은 보호자이니라, 그러니 욕망을 따르지 말고 공정하라. 만일 왜곡하거나 거부한다면 진실로 하나님은 너희가 한 일을 알고 계시노라.   
꾸란 4.135(이슬람)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아모스5.23-24(유대교)
 
억압받는 자들의 탄원을 주의할지니, 그는 단지 그의 당연한 권리를 가장 고귀한 하나님께 탄원하도다. 하나님은 권리를 가진 자가 정당한 것을 받는 것을 막지 아니하신다. 
바이하키 하디스(이슬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오 나의 종복들이여, 나 자신을 위해 부정을 금하고 너희를 위해서도 그것을 금하였으니, 서로가 부정한 일을 행하지 말지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4(이슬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파라오에게 가서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라하고 이렇게 전하여라. ‘나의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 
출애굽기 9.1(기독교)
 
너희 중 누구든 하나님이 금하신 행위를 보거든, 그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고치도록 하라.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자신의 혀로, 그래도 아니 될 경우에는 그 자신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것은 가장 미약한 믿음이니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34 (이슬람)
 
비탄에 젖은 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 억압받는 자를 도와주는 것은 많은 죄과에 대한 보상과 속죄의 행위와 같으리라.      
나흐줄 발라가, 어록 22(시아파 이슬람)
 
죄를 짓거나 잘못된 길을 따르는 사람을 보면 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죄임을 알려주고 그 사람이 선한 입장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계명이다. 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료를 꾸짖어라.” 누군가를 힐책할 때는 그 일이 사람 사이의 문제든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든 사적으로 평정심을 갖고 부드러운 톤으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이 그를 위해 하는 것이며, 그가 앞으로 올 세상에 새로 태어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시켜야 한다.    
마이모니데스, 미슈네 토라(유대교)
 
어떤 이가 말하길,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였다. 공자가 말하길, “그럼 무엇으로써 덕을 갚을 것인가? 정직으로써 원한을 갚고 덕으로써 덕을 갚아야 한다.”고 하였다.    
논어 14.36(유교)
 
아나스 이븐 말리크가 전하길 사도께서 “억압하거나 억압받는 너희 형제를 도우라” 하시니, 아나스가 그에게 물었다. “하나님의 사도여! 억압받는 자에게 나는 기꺼이 도움을 주리라. 그러나 억압하는 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리오?” 그러자 사도께서 “그가 잘못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제재함으로써 이니라”고 답하셨도다.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도전하고 참사랑을 베풀기를 열망하고 계십니다.   
(234.273. 1992.08.26)
 
종교인들이 이 시대의 상황과 여러 비리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고 깊은 자기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 지도자, 특히 종교 지도자들을 소명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도전하고 참사랑을 베풀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330.247. 2000.08.18)
 
하루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으며, 일 년의 승리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생활에 있어서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앞서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어떻게 청산 짓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37.219. 1970.12.27)
 
불의를 보고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은 양심가가 아니다.  
(뜻길, p.207)
 
이 우주 간에 있어서 최고의 양심적 중심이 누구냐 할 때,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그렇지만 아무리 양심적이라고 하더라도 불의를 보고 ‘아이 좋다, 가만히 있어야 되겠다’합니까? 불의를 보게 될 때는 분노가 폭발하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하나님이 불의를 보고 6천년 동안 격분해 가지고 싸움터를 준비해 나온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개인을 위주해서 세계를 망치는 놀음 가정을 위주해서 세계를 망치는 놀음, 종족을 위주해서 세계를 망치는 놀음은 하나님 앞에 불효하는 놀음입니다. 그런 일체를 하나님은 용서 할 수 없어서 때려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맞는 선두에 선 기독교를 쳤던 로마제국이기에, 400년 동안 세계를 휘어잡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로마제국도 돌아가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400년 이내에 굴복당하고 말았습니다.   
(51.44. 1971.11.04)
 
선생님은 ‘정의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아서 이기는 것이다’ 하며 참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전신이 마비될 정도로 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이상 분해도 참아 오셨기 때문에 그 아들 된 죄로 참아야지 하며 참는 것입니다. 싸워서는 안 됩니다.   
(74.252. 1974.12.31)
 
청년들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희생과 봉사의 노력을 기울일 때 세계의 가난과 기아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빈부의 격차와 역사상 이질적인 경험에서 오는 갈등과 증오의 감정은 비로소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288.201-202. 1997.11.28)
 
인간세계에 참사랑을 완성한다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참사랑의 세계에서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참사랑의 세계는 곧 환희와 이상이 충만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세계입니다. 참사랑의 동위권, 동참권, 상속권에 의해서 기쁨과 행복이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확산되는 세계가 됩니다. 
(294.65. 1998.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