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 1. 모든 일은 신성하며 하늘에 봉사하는 것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20장 사회)

철장왕 | 20190103094053

노동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을 통해서 사회에 봉사한다. 인간은 어른이 되어 자기와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 인생을 영위한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은 개별적 이익을 얻기 전에 국가 전체의 풍요와 번영으로 연결된다. 더 나아가 노동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을 우리가 닮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하나님은 노동하는 인간에게 만족하고 노동의 결과를 보고 기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노동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공동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노동윤리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도 발전할 수 없다. 종교의 실체적인 기능은 정치적 경제적 성공을 위해 사회 구성원을 격려하고 고무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일터에서 근면, 절약, 신뢰, 책임감과 성실성, 그리고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이다.
 
어떤 종교 전통은 생산적인 일을 장려하기보다 가난과 청빈 생활을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종교 전통은 성직자에까지 성실하게 노동할 것과 자급자족을 장려한다. 대부분의 종교가 세속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생활을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은 사회봉사, 자선행위나 올바른 예배 등에 적절하게 쓰인다면 그런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고 높이 평가한다.
 
1. 모든 일은 신성하며 하늘에 봉사하는 것
 
종교 경전 
 
아부 후라이야가 이르길, 우리가 사도와 함께 있을 때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우리가 말하길, ‘이 젊은이는 그의 젊음, 에너지, 힘을 제물로 바쳐 알라께 경배를 드려야 하리라’ 하였다. 사도께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대답하길, ‘어떤 이가 알라의 방식대로 살해당하거나 그의 부모를 봉양하거나 그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거나 자신이 살기 위해 노력한 것 외에 알라의 방식은 아무것도 없도다. 이것들이 알라의 방식이라.’ 하였다. 
알 송요우티 하디스(이슬람)
 
힘써 일하는 것, 그것이 곧 제사이니라.   
비리샤이바 금언 (힌두교)
 
노동은 위대하다. 노동자에게 영광이 수여된다. 
탈무드, 네다림 49b (유대교)
 
쟁기를 잡고 막대기를 휘두르며 소를 모는 데 여념이 없고, 송아지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농부가 어떻게 현명해 질 수 있으랴? 그의 머릿속에 이랑을 짓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저녁에는 암소에게 먹이 주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낸다.
 
모든 직공과 기술자는 물론 주야로 일만 하는 자들은 모두 마찬가지다. 도장을 새기는 사람은 새로운 도형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그 도형과 똑 같은 것을 파느라고 부심하며 일을 완성하려고 밤을 새운다. 마찬가지로 대장장이는 모루 옆에 앉아서 이 쇠로 무엇을 만들까를 생각한다. 그의 살은 불길에 화끈 달아 뜨거운 화롯불과 맞싸우듯 한다. 망치 소리에 고막이 터질 듯하고 그의 눈은 모형을 노려본다. 일을 잘 마치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완성품을 내기까지 밤을 새운다.
 
또 옹기장이는 일터에 앉아서 자기 발로 풀무를 돌리며, 생각은 항상 자기 작품에 집중돼 있고, 동작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한다. 손으로 진흙을 빚으며 발로 반죽을 갠다. 그릇에 윤을 잘 내려고 온 정성을 기울이며 가마를 깨끗이 하느라고 밤을 새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 손재주에 자신을 갖고 있으며, 저마다 자기 일의 특기를 지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없이는 도시를 건설할 수가 없고 거주민도 없을 것이고 여행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의회에 불리지도 않으며 공중 집회에서 윗자리를 차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재판관 자리에 앉지도 않으며 법률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들의 교양이나 판단력은 출중하지 못하고 격언을 만드는 사람들 축에 끼지도 못하지만, 그들 때문에 이 세상은 날로 새롭게 되고 지탱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자기들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집회서 38.25-34(기독교)
 
야브네의 랍비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주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저 이웃 소작농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나는 마을에서 일하며, 그는 시골에서 일한다. 나는 내 일을 위해 일찍 일어나고 그도 그의 일을 위해 일찍 일어난다. 그가 나의 일을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 나 또한 그의 일을 무시하지 않는다. 과연 내가 더 많이 일하고 그는 적게 일한다고 할 수 잇겠는가? 우리는 배워왔다. ‘그 사람이 남보다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적게 할 수도 있다. ; 그러나 그 마음이 언제나 하늘로 향해 있다면 결국은 같은 일이다.’
탈무드, 베라코트 17a(유대교)
 
모든 자리는 하늘이 임명하신다. 청소부의 일까지도 하늘이 정하신 것이다. 
탈무드, 바바 바트라 91b(유대교)
 
일을 사랑하고 권력을 증오하라.
미슈나, 아보스 1.10(유대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들어라. 나는 유다 지파에서 후르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불러 그에게 신통한 생각을 채워주어, 온갖 일을 멎지게 해내는 지혜와 재간과 지식을 갖추게 하겠다. 그러면 그는 여러 가지를 고안하여 금, 은, 동으로 그것을 만들고 테에박을 보석에 글자를 새기고 나무를 다듬는 온갖 일을 다 잘 해낼 것이다.
 
이제 내가 그에게 단 지파에 속한 아히사막의 나들 오홀리압을 조수로 붙여주겠다. 그리하면 그들은 너에게 만들라고 명령한 다음과 같은 것을 다 잘 만들 것이다. 만남의 장막과 증거궤와 그 위에 덮을 속죄판과 장막에 딸린 모든 기구, 제사상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순금 등잔대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분향단과 번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 물두멍과 밑받침, 성별하는 기름과 성소에서 쓸 향기로운 향을 너에게 지시한 그대로 다 만들 것이다.  
출애굽기 31.1-7(기독교)
 
말씀선집  
나는 여기서 영생과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여기서 하는 무엇이든지, 공장에서 일하고 무엇을 하는 것이 영생을 위한 재료들이라는 것입니다. 
(216.127-128, 1991.03.09)
 
일할 때 왜 있는 정성을 다 하라고 합니까? 일하더라도 건성으로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부름꾼이 하는 것입니다. 심부름꾼은 자리 못 잡습니다. 일하더라도 본심을 가지고 이것이 내 절대적 상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절대적 상대를 창조하는 데에는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습니다. 
(330.117, 200001.14)
 
경제문제는 언제나 나와 물질의 관계입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그 사업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100이라는 가치가 있게 될 때, 이 물건은 100에 대한 대상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내가 1000이라는 가치가 있으면 아무리 작은 물건, 조그만 수첩을 하나 대하더라도 이건 몇 푼짜리 안 되는 것이지만 1000에 대한 상대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갖고 있던 만년필이라든가 아무 곳에 쓰던 것이 왜 가치가 있느냐? 그 사람의 사랑이 깃들어져 상대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입니다.   
(102.126. 1978.11.27)
 
경제를 중요시 하는 것보다 경제를 중요시 하는 사람을 중요시해야 되고, 물론 과학도 중요시해야 되지만 과학을 중요시 하는 사람을 중요시해야 되고, 예술을 중요시 하는 것보다도 예술을 중요시 하는 사람을 중요시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결론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떻게 됐느냐 하면, 경제를 중심 삼고 볼 때, 경제권 내의 사람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이면 과학권 내에 있는 사람이 중요시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중심이 되었고, 경제가 중심이 되었고 외교가 중심이 되었고, 예술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무가치하게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기술을 보고, 사람을 통해서 경제를 보고, 사람을 통해서 예술을 봐야 할 텐데 지금은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99.116. 1978.09.10)
 
선생님은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가 되고 농촌에 가면 농부가 됩니다. 선생님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대중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산에 가서 숯을 굽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광산에 가서 굴을 파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 박해를 받아 어쩔 수 없으면 광산에 가서 석탄을 캐는 굴속에서 운동을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훈련도 되어 있습니다. 
(256.100. 1994.03.12)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이 땅을 위해서 땀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노동도 해야 됩니다. 공적으로 땀을 흘리는 일도 해야 됩니다. 10리, 20리 길이라도 사람을 구해 주기 위해서 하루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철칙을 세워 놓고 거기에 일치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실체와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땀을 얼마나 일본 전국을 위해서 흘렸느냐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대까지 설교할 때 눈물과 땀을 힐리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땀방울을 뚝뚝 흘리면서 통곡할 수 있는 가슴이 터져 버릴 듯한 설교를 했습니다. 
(256.146. 199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