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자와 여자를 완전하게 하는 결혼
종교 경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하시고, 들짐승과 공주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아담은 집짐승과 공주의 새와 들짐승의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 가운데는 그의 일을 거들 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창세기 2.18-24(기독교)
결혼하지 않은 자는 기쁨도 축복도 선함도 누리지 못한다.
탈무드, 예바모트 62b(유대교)
처음에 오직 유일한 자아가 있었다. 오직 혼자였으므로, ··· 그는 아무런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날도 이와 마찬가지다. 혼자 있는 사람은 아무런 즐거움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제2의 존재를 갈망했다. 그는 서로 끌어안고 있는 남자와 여자만큼 커졌다. 그는 이 자아를 둘로 나누었으며,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야갸발키야가 종종 말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은 갈라진 완두콩의 반쪽과 같다.’ 이 공간이 여자로 채워진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그는 그녀와 하나되었으며, 이로써 인류가 생겨났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1.4.17과 1.4.3(힌두교)
의로운 자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그들이 남녀 함께 있을 때 번창할 수 있다.
조하르1.82a(힌두교)
그는 오직 아내, 자신, 자식,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베다와 학식 있는 바라문들은 이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남편은 아내와 하나라고 말해진다.”
마누법전 9.45(힌두교)
말씀 선집
결혼은 뭐냐 하면, 반쪽밖에 안 되는 남성 여성이 완성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완성을 위한 사랑은 자기가 자기를 위해 태어났다는 그러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흘러가는 사랑이고 거짓된 사랑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 상대를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참사랑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262.67-68, 1994.7.23)
우주의 존재 질서는 위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의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동시에 인간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기원, 행복과 사랑의 기원은 상대를 위하여 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주를 보면, 그 어느 존재물도 자기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물계는 식물계를 위하여, 광물계와 식물계는 동물계를 위하여, 또 이 모두를 합한 만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합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또 만물들을 위하여 그들을 있게 하시고 성장 발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하는 것이 존재세계의 기본 질서인 고로 그 누구도 위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지 자신만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고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할지라도 여자가 태어난 본래의 의의는 여자 때문이 아니고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남녀가 지니고 있는 소성과 감정도 모두 상대를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부의 경우 결혼 하면서 ‘아!나는 태어난 것도 당신을 위하여, 사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죽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사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죽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하게 되면 이를 이상적 부부, 행복한 부부라고 하는데, 존재세계의 기본 질서로 보아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거기서부터 참된 사랑은 시작됩니다. 이렇게 참된 것은 위하는 데에서부터 기원을 찾아야 합니다.
(135.234, 1985.12.11)
오늘날 처녀 총각들은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은 가정을 이루어서 그 가정의 부모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훌륭한 상대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왜 입니까?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느끼는 한편 훌륭한 아들딸을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족한 면을 상대방을 통해 보충해 가지고 더 좋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나 것들을 가슴 깊이 꽁꽁 품고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26.147, 1969.10.25)
해와는 여성 성품, 아담은 남성 성품을 중심삼고 분립해서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갈라졌다가 합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이 내적으로 품고 있던 사랑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내게 사랑이 있지만 사랑을 몰라요. 상대를 만남으로써 알게 됩니다. 내성적인 사랑을 사람을 통해서 느껴 보는 것입니다.
(185.187, 1989.1.8)
남편에게 있어서는 아내 되는 사람이, 아내에게 있어서는 남편 되는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필요한 사람이다. 서로 권고해 주면서 지팡이가 되고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27.87, 1969.11.26)
남자들은 부인이 내 색시이기 이전에 인류의 여성이요, 하나님의 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류가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 이상 사랑할 수 있다면 남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자는 그 반대입니다. 저 사람은 내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남자라고 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남성을 대표한 남성으로 생각해 가지고, 인류가 사랑하는 이상 내가 사랑하고 많이 위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그 이상 사랑하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남자로서 하나의 발을 만들 것이고, 여자로서 하나의 왼발이 되어 가지고 인류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발짝을 이룬 가정을 이루어 행복해 질 것이다.’ 이런 부부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른 발은 남편이요, 왼발은 여자입니다. 절름발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틀림없이 잘 가겠습니다’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또 그러면서 똑바로 가야 됩니다. 이럴 수 있어야 결혼할 자격이 있습니다.
(88.318, 1976.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