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모와 자녀의 불가분의 유대
종교 경전
우리(하나님)는 부모님에게 성실하라고 인간들에게 강요하였느니라. 어머니는 고통으로 잉태하고 고통으로 출산하느니라. 잉태하고 젖을 뗄 때까지 30개월이나 걸리고 마침내 성년이 되고 40세에 이르면, 그는 ‘주여 당신께서 저와 저의 부모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저의 자손이 저를 대신해서 당신을 공경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당신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진실로 저는 당신에게 귀의한 자입니다’라고 말하느니라.
이러한 자들로부터는 그들의 행위 중에서 최선의 것을 받아들이고 악행은 너그럽게 보아주느니라. 그들은 낙원의 주민들 속에 있을 것이니라.이것 이야말로 그들에게 약속된 진실한 약속이니라.
꾸란46.15-16(이슬람)
비구들이여, 두 사람의 은혜는 결코 되갚을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누가 그 둘인가?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설사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태우고, 그렇게 백년을 산다 해도, 향을 뿌리고 안마를 해드리고, 목욕시켜 드리고 몸을 문질러 드리면서 봉양한다 해도, 대소변을 받아 내더라도 그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부모님을 비록 칠보가 가득한 큰 땅을 통치하는 최고의 왕위에 모신다 해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부모는 자식들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한다. 자식들을 키워주고 먹여주고 이 세상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신심이 없는 부모로 하여금 신심을 가지게 하고 신심을 확고하게 지니게 한다. 비윤리적인 부모로 하여금 윤리적이게 하고 윤리를 확고히 지키게 한다. 인색한 부모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고 보시하는 삶을 확고하게 한다. 지혜가 없는 부모로 하여금 지혜를 지니게 하고 지혜의 삶을 확고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부모에게 마땅히 보답해야 할 은혜를 그 이상으로 보답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1.61(불교)
교우 한 사람이 묻기를, “하나님의 사도여! 나에게 가장 고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고 하자, 그는 “너의 어머니이다”라고 대답했다.“두 번째 고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자, 사도는 “너의 어머니이다”라고 반복했다. “나의 어머니 다음은 누구입니까?” 라는 물음에 하나님의 사도가 대답하길, “너의 아버지니라” 하였다.
붓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아들아, 너는 왜 네 아비와 다투고 있느냐? 그가 여태껏 너를 키웠나니, 그와 언쟁을 벌이는 것은 죄악이라.
아디 그란트,사랑,M.4, p. 1200(시크교)
너를 낳은 아비의 말을 듣고 늙은 어미를 업신여기지 마라. 진실은 팔아넘기지 말고 사들여라. 교훈과 슬기와 현명도 그리하여라. 아들이 옳게 살면 아비는 참으로 즐겁다. 제가 낳은 아들이 지혜로운데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러니 네 아비를 기쁘게 해다오. 너를 낳은 어미를 즐겁게 해다오.
잠언 23.22-25(기독교)
아버지여, 나를 총애하심에 감사합니다.
어머니여, 나를 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의복보다 더 중요한 지혜로 나를 입혀주시니,
어버이여! 감사합니다.
노예들은 당신에게 봉사할 것입니다.
하인들이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당신을 돌보아 드릴 것입니다.
요루바족의 결혼식 축가(아프리키 전통 종교)
말씀 선집
여러분, 부모 자식의 관계를 누가 뜯어고칠 수 없어요. 설명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힘으로 부정할 수 없고, 어떤 지식, 어떤 권력, 어떤 금력을 가지고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가지고도 이 부자의 관계를 부자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숙명적입니다.아무리 갈라놓더라도 영원히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사랑과 생명과 핏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6.235, 1990.10.14)
부자의 관계는 어떠한 것입니까? 아버지와 아들딸로서 영원히 떼어 낼 수 없는 사랑관계입니다. 그걸 부정할 수 있어요? 타락한 세상일망정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교육이나 혁명을 통해서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억 천만세 계속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불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성애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우주 전체가 모성애를 중심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143.52, 1986.3.15)
여러분 자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의 것이자 아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체는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고 자녀의 것이 된 후에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그 법도가 땅 위에 남아 있고 인간 생활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고아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고 자식을 사랑해 보십시요.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사방을 가릴 줄 알고, 위도 아래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18.209-210, 1967.6.8)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자식에게 생명까지 줬으니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 생명이 사랑에서 생겼으니, 본질적인 사랑 앞에서 생명을 희생하며 가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모순적인 결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37.76-77, 1985.12.18)
부모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부모는 못 먹더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쥐고 혀를 깨물며 굶주림을 극복해 가면서 그것을 자식에게 줍니다. 그 사랑은 부모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식으로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수고의 노정을 가야 부모의 그 수고가 밑천이 되어 자식이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수고의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여러분의 아들딸들도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이요,그럴 수 있는 아들딸을 두어야 선한 혈족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하고 부모님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효자라고 말하느냐? 부모가 나를 위해서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 앞에 할 수 있으면 그 자식은 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과도 통합니다. 부모는 중간에서 정성을 들여가며 키웠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은 아랑곳없다고 한다면 그 집안은 망하게 됩니다.
주고받는 이치에 있어서 상대적 기준이 조성되어야만 돌아오는 것이요, 또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재하실 수 있으며 천국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식은 어떠한 자식이냐? 부모의 사랑으로 진 빚을 자기 스스로 갚아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노망을 했을 때 자기가 어린 시절에 똥 싸고 오줌 쌌던 것을 닦아 주던 그 부모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참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부모를 모셔야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35.241-242, 1970.10.19)
가정에서 ‘효도해라’ 하는데, 왜 효도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가 가야 할 사랑의 길에 동참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님의 참다운 사랑의 길에는 천륜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모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종적인 천륜이 여기에 인연되어 가지고 가기 때문에 부모와 하나 되라는 것은 천륜의 역사, 보이지 않는 종적인 역사와 횡적인 역사의 양면의 심정권을 이어서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 앞에 효도하라는 이유입니다.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부모 앞에 효도할 것이 무엇이야? 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우리를 낳을 때 우리를 생각하고 낳았어? 자기들이 좋아서 낳았지’ 하는 식입니다. 그것은 이 원칙을 모르고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역사는 종적인 기준이 서야 횡적인 기준이 서게 됩니다. 빌딩을 짓더라도 먼저 수직선을 맞추어야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평선을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고층건물이라도 넘어가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세상에 서 있다는 자체가 벌써 종적 기준을 맞추는 것입니다.
(136.203, 1985.12.29)
요즘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정합니다. 인륜도덕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인륜을 부정할 때는 끝 날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이런 현재의 사조에 장단을 맞춰 춤춰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진실로 영원히 긍정할 수 있는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스승은 스승대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뜻에는 나이 많은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21.121, 1968.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