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 수도생활, 그리고 금욕생활 - 1. 수도자의 고행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8장 겸손과 자기부정)

철장왕 | 20181130084341

고행, 수도생활, 그리고 금욕생활
 
속세로부터 완전히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은둔을 선택하거나, 수도승이나 수녀의 삶처럼 독신생활을 주장할 것이다. 불교와 자이나교, 로마 가톨릭과 기독교 정교에서는 최고의 종교적 성직을 독신생활을 하는 승려, 수녀, 그리고 신부로 여기고 있다. 금욕주의는 힌두교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일생 동안 금욕생활뿐만 아니라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인생의 말년을 고독한 독신생활로 보내는 브라만들의 전통이 있다. 기독교의 수도원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여성에 대한 사랑보다 귀하게 여겨 청빈과 순결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이들에게 환경적 조건을 지원하기 위해 제도적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슬람에는 수도원 체제가 없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에 한 달 동안 이어지는 금식을 통해 폭넓은 금욕생활을 실천한다. 금식과 철야기도는 음식과 잠에 대한 육욕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과거에 영적 엘리트 소수자들만이 향유했던 전통적 수도원 체제와는 달리, 일반인들도 쉽게 행할 수 있는 금욕생활의 실천이다. 태국과 스리랑카의 젊은 남성 불교도들은 보통 가정을 꾸리기 전에 6개월 동안 수도원 훈련을 받는다.
 
육욕을 억제할 것을 강조하시는 문선명 선생도 몸 마음 통일을 이루기 위한 수도원의 수행은 높이 평가하신다. 독신생활을 하는 신부들과 인간 창조 시에 가정이상을 꿈꾸셨던 하나님의 이상 사이에는 분명 어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절의 마지막 부분에는 지나친 금욕적 삶에 대해 비판하는 몇 가지 구절들을 실었다. 이런 비판은 금욕을 실천하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지나친 금욕주의는 동정심이 결여된 인성으로 발전될 수 있다. 수도원 생활은 하나님이 경륜하시는 풍부하고 생산성 넘치는 사회와 결코 유비할 수 없을 것이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은 인간의 타락으로 잘못된 결혼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금욕과 독신생활을 강조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심정까지 언급하신다. 마지막으로 결혼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고 더 이상 독신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과거의 독신생활은 고귀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종교가 독신생활보다 결혼의 가치를 더 고양시켜야 할 때가 도래했다. 변화하는 해수면의 높이는 수도원과 독신생활이 사라지고 있음을 암시하며, 이것은 모든 종교세계에서 감지되고 있다.
 
1. 수도자의 고행
 
종교 경전
 
비유하여 공중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백조를 앞질러 갈 수 없는 것처럼, 속가에 사는 자는 이를 떠나 숲 속에서 초연히 명상하는 성인이나 수행자에 미치지 못한다.
숫타 니파타 221(불교)
 
탁발걸식을 계속하라. 숲에 머물라. 절식하라. 필요한 말만 하라. 곤궁을 참아 견디어 내라. 수면을 극복하라. 수승한 자세로 모든 이와 벗하라. 그러나 집착하지 말라.
밧타케라, 무라차라 981(자이나교)
 
남을 비방하지 말라. 해치지 말라. 바라제 목차에 따라 자신을 지키며, 음식의 적절한 양을 알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떨어져 지내라. 드높은 삼매에 전심하라. 이것이 깨달음을 이룬 자들의 가르침이다.
우단 43(불교)
 
궁극의 해탈을 얻기 위해 버리지도 않고 버려지지도 않은 고독한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아무런 동반자도 없이 홀로 다니게 해야 한다. 그는 불도 거처도 가져서는 안 되며,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목적을 향한 흔들림 없는 자세로, 온 마음을 신에게 집중하고 명상하며 음식을 얻으러 마을로 가야할 것이다. 탁발을 위한 질그릇, 거처를 위한 나무 밑동, 누더기, 독거, 모든 것에 대한 평정심은 해탈을 얻은 자의 징표이다.
 
죽음을 환영하게 해서도 안 되며 삶을 환영하게 해서도 안 된다. 마치 하인이 주는 대로 받는 월급을 기다리듯이 자기에게 정해진 때를 기다리게 해야 한다. 발밑을 살펴 청정해진 곳을 디디게 하며, 천으로 걸러 청정해진 물을 마시게 해야 한다. 진실에 비추어 청정해지 말을 내뱉게 하며, 마음의 청정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 거친 말을 참아내게 하고, 어느 누구도 욕하게 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의 몸을 위하여 어떤 사람의 적이 되게 해서도 안 된다. 화난 사람에게 화로 대응하게 해서는 안 되며, 욕을 먹을 때 오히려 욕한 자를 축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곱 문에 흩어져 있는,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게 해서도 안 된다.
 
자족하며 요가 자세로 앉아서 홀로 거하며 감각적 쾌락을 완전히 삼가며 오직 자신을 벗으로 삼아서 그는 해탈의 지복을 희구하며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하루에 한 번 탁발을 나가게 해야 하며, 많은 양을 탁발하려고 애쓰게 해서는 안 된다. 먹을 것에 집착하는 고행자는 다른 감각 대상에 대해서도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적게 먹고, 조용한 곳에서 서고 앉음으로써 설사 감각이 그 대상에 끌리더라도 스스로 삼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신의 감각을 제어하고 집착과 증오를 없앰으로써,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음으로써 그는 불멸에 적합하게 된다.
마누법전 6.42-60(힌두교)
 
말씀 선집
 
무엇을 죽이고자 하느냐? 이 몸뚱이를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을 해라, 기도를 해라, 잠을 자지 말라,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희생 봉사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 천주교 같은 데서는 신부와 수녀들이 독신생활을 하고 있으며, 불교도 고차적인 종교로서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떠하냐? 종교에서는 몸뚱이를 정복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정반대의 생활을 강조하고 있는데, 미국 젊은이들의 생활은 이러한 생활과는 완전히 먼 거리에 있습니다. 사탄세계에 포위되고 또 포위되어서 지옥 밑창에 들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지옥의 밑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몸뚱이를 쳐야 되느냐? 이것이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15.236, 1991.02.20)
 
몸뚱이가 크면 그 다음에는 양심을 밟아 치우는 겁니다. 힘없는 나를 밀어재끼는 것입니다. 양심이 그걸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요걸 몰랐기 때문에, 이것이 자기 스스로에서 정지 안 될 때까지는 계속하는 걸 모르기 때문에 중세 기독교에서 고행을 했고 수많은 종교들이 도를 닦느라고 야단했습니다. 그런데도 중단되는 이유는 이 원칙 규범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원수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는 겁니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는 겁니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이런 원수인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평정 안 되면 계속해야 됩니다. 계속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54.222, 1994.02.13)
 
플러스와 플러스는 상반입니다. 서로 반발하고 밀어내는 것입니다. 사탄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플러스 입장인데도 마이너스 입장에 서지 않고 플러스 입장에 서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도의 생활에서는 금욕주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편, 즉 악에 속한 플러스적인 면을 쳐서 마이너스적인 입장으로 전화시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4.23, 1958.02.16)
 
종교는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버려야 합니다. 먹는 것도 버리고, 자는 것도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정욕, 식욕, 수면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좋아하는 것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먹고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좋아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육신을 통해서 사망의 행로가 되었으니 이것을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몸에 폭탄을 터뜨리라는 것입니다. 원자탄을 터뜨리라는 것입니다. 옥살 박살시켜 전부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몸은 높임받기를 좋아하고 편안한 자리를 좋아합니다. 또한 울뚝불뚝한 것은 싫어하고 포동포동하고 , 매끈매끈하고, 폭신폭신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 몸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투실투실한 것, 울뚝불뚝한 것, 딱딱한 것 등, 몸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몸은 높아지기를 좋아하고 남의 돈을 빼앗아서라도 잘 먹으면 좋아합니다. 남이야 어찌 되든 잘 살면 좋아합니다. 그러한 근성을 전부 때려 부숴야 합니다. 높아지기를 좋아하는 몸을 낮추어라, 온유겸손해라, 희생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18.67-68, 1967.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