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분별 - 1. 세속적 방식을 따르지 않음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8장 겸손과 자기부정)

철장왕 | 20181128085156

세속의 분별
 
세속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삶과 비견할 수 없다. 쾌락과 부, 명예, 물질적 안정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영적 구도의 길에 방해가 된다. 속세를 향한 열정과 집착은 단순히 정신적 산만함을 넘어서 영혼을 지옥까지 끌고 간다. 그러므로 경전에는 세상과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지 말라는 수많은 충고가 담겨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세속적 성취를 하나의 망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러한 쾌락에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언제나 세상의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하늘이 주시는 영적 감동을 음미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보다는 영적 성장을 그 업적으로 이해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수도원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속세와 분별을 시도한다. 그러나 도덕적 권고나 교회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 수도생활과 세속적 생활의 경계선은 그리 분명하지 않다. 속세에 묻혀 살지만 결코 세속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흔히 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들의 내면은 세상의 지배적 가치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고 있다.
 
1. 세속적 방식을 따르지 않음
 
종교 경전
 
여러분은 이 세대의 풍조를 다르지 말고 오히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시오.
로마서 12.2(기독교)
 
클 길 가에 버려진 오물더미 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연꽃이 피어나듯이, 정각을 이룬 자의 제자는 버려진 오물 같은 무지한 중생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지혜로 밝게 빛난다.
법구경 58-59(불교)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또 사람이 무엇으로 자기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26(기독교)
 
한 사람이 사도에게 와서 말했다. “오, 알라의 사도여! 내가 할 수 있다면, 알라가 나를 사랑하도록 하는,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도록 하는 일을 가르쳐 주소서.” 그가 답하였다. “이 세상을 단념하라. 그리하면 알라가 너를 사랑하실 것이고,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버려라. 그리하면 사람들이 너를 사랑할 것이다.”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31(이슬람)
 
천박한 목표를 즐거워 말라. 게으름 피우며 건들거리지 말라. 그릇된 소견을 좇지 말며 세간의 근심 걱정에 휩싸이지 말라.
법구경 167(불교)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기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요한복음 17.14-18(기독교)
 
세속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무 집착, 완전한 자족, 일체의 소망을 버림, 그리고 인내, 이들은 스스로의 감각을 제어하고 최고아에 대한 바른 지혜를 실현한 자의 확고한 표징이니라
스스로 이 세상의 덧없는 것들에 탐착하지 말라. 세속적인 대상에 끌려 다님은 악을 증장할 뿐이니라.
마하바라타, 샨티 파르바 329(힌두교)
 
막힘(否): 군자가 보고서 덕을 검약(儉約)하여 난을 피한다. 작록(祿)으로써 영달하지 말아야 한다.
역경 12(유교)
 
성인은 하늘을 본받고 진리를 귀하게 여기고 세속에 구속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 반대로 하늘을 본받을 줄 모르고, 인간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을 괴롭히고, 진리를 귀중히 여길 줄 모르고, 자질구레하게 세속에 끌려 변화를 거듭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만족하지 못한다.
장자 31(도교)
 
(천하에 시초가 있어 그것이 천하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미 그 어머니[道]를 얻으면 그 아들임을 알고, 이미 그 아들임을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면, 몸이 다하도록 위태로비 않을 것이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면, 몸이 다하도록 수고롭지 않을 것이다.
그 구멍을 열고 그 일들을 보태면, 몸이 맞도록 구원되지 못한다.
도덕경 52(도교)
 
비말라키르티는 비록 범부의 흰 옷을 입고 있었으되 사문의 청정행을 받들며, 비록 가정에 있더라도 욕계, 새계, 무색계, 삼계의 욕망에 끌려 다니지 않으며, 처자와 시중드는 여자이이를 두었으되 청정한 마음으로 금욕을 행하며, 권속을 두었으되 항상 멀리 여의기를 좋아하며, 비록 좋은 옷을 입었으되 고결함을 잃지 않으며, 비록 음식을 먹으나 언제나 법열로써 몸 마으을 지탱하며, 만일 바둑이나 장기의 노름에 이를지라도... 문득 그로써 사람을 제도하고 온갖 일을 다스려서 비록 세속의 이익을 얻으나 그로써 기뻐하지 않으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자 네거리나 길모퉁이에 몸을 나타내어 바른 법으로 다스려 일체를 구호하느니라.
유마경 2(불교)
 
말씀 선집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타락한 세계의 인연을 그냥 그대로 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그렇게 살아서는 하나님이 가시는 동기의 길, 하나님께서 가시는 목적의 길을 우리가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1.102, 1968.11.17)
 
세속적인 세계에서는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하고, 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 가지를 가지고 하나님한테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갖고 연결됩니까? 참사랑입니다.
(270.308, 1995.07.23)
 
사람들은 어떤 걸 제일 좋아하느냐? 전부 가짜를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는 바로 걸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꾸로 온다면 그 얼굴을 보면 잘생겼는데 병신입니다. 그런데 병신 중에도 거꾸로 온다는 것입니다. 병신이 아닌데 거꾸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게 되면 바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온다는 것입니다. 발 대신 손을 짚고, 발이 하늘로 올라가게 하고 걸어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환영하겠습니까? 그 사람은 병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병신이라면 그런 병신을 다 환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뭐냐 하면 망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성공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망하고,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난 것이요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못난 것이요, 어렵게 살겠다는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이요,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어렵게 산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학교에 가서 꼴찌라고 생각하면, 꼴찌니까 열심히 하면 일등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입니다.
(102.251, 1979.01.14)
 
시간의 한계성을 초월한 무한한 세계에서 오는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땅 위의 어떠한 수고와 고통과 죽음의 공포까지도 제압하고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개인의 길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이나 욕망의 일체를 거부하고 당당히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길에서 승리한 자는 개인적인 싸움에서 승리했듯이 가정에 대해서 그러하고 민족, 국가, 혹은 세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문제에서 승리한 자입니다.
(7.97, 1959.07.19)
 
우리는 변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게 우리의 재산이자 자랑입니다. 이것은 억천만 금이나 세상의 무슨 권력이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돈 몇 푼에, 권력에, 여자한테 팔려 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싸구려 물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는 왕좌에 올라가서 변하는 일생을 보내는 것보다 변치 않는 거지 생활을 택하겠습니다.
(124.253, 1983.02.20)
 
여러분이 이 길을 가면서 자신의 물질에 대한 소유욕과 자녀에 대한 소망과 남편 또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애착심까지 빼앗기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그런 애착심을 붙들고 세계를 넘어서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과 자녀의 사랑, 그리고 자신을 중심한 소망 등의 인정적인 모든 조건을 끊어버릴 때에야 여러분은 세계적인 제물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2.118, 1957.03.10)
 
끝 날에는 이상세계가 오기 전에 심판이 와야 됩니다. 이 삼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인 사정과 인연을 그냥 그대로 품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흐르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박차고 뒤로 돌아서서 길을 피해 가는 사람이라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이상적인 출발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종교는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세상을 버려라.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라. 세상을 가까이하지 말라. 세상과 화하지 말라. 세상과 절단하라. 부정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각심(覺心)을 키우라’고 가르쳐 온 것입니다. 현재를 밀고 나갈 수 있고, 미래를 타개하고, 과거를 수습할 수 있는 이러한 각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종교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21.136-137, 1968.11.17)
 
사탄의 피를 받은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은 사람은 자기를 위주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미국을 중심한 기독교 문화권이 저렇게 개인주의 국가가 되어서 인본주의, 요즘에는 세속적인 인본주의라고 해서 세계의 혼란상을 중심삼고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행복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전부 다 문등병자가 되어 벼랑에 떨어집니다. 남녀들이 밤낮으로 안고 품고 좋아하며 야단하지만 에이즈(AIDS)에 걸려서 다 말라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187.241, 1989.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