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지만, 종종 영적 구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정과 가족을 등지고 떠난다. 어떤 섭리적인 인물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런 일을 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경우가 그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수도원 생활의 초기단계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신앙자의 출가는 가족의 갈등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기족들이 그의 신앙 길을 가로 막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랑하는 부모와 배우자로부터 반대 받을 것을 예상하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대가가 따를 수 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이에 대해서 문선명 선생은 가족과 친구와 이별은 복귀 길을 가는 데 있어 필요한 과정이라고 하신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의 습관적인 거짓 사랑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종교 경전
내가 세상의 평화를 주려고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그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합당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복음 10.34-37(기독교)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 아버지와 형제들이 믿음보다 불신을 택한다면 그들을 너희 벗으로 삼지 말라. 그들은 죄인들이니라. 말하라. 만약 너희 아버지와 자식, 형제와 아내, 씨족과 너희가 획득한 재화, 너희가 중단될까 두려워하는 교역, 사랑하는 보금자리들이 하나님과 그의 사도들, 그리고 하나님의 길에서 투쟁하는 것보다 더욱 귀중하다면, 하나님이 그의 명령을 주실 때까지 기다려라. 하나님께서는 불신하는 무리를 인도하시지 않도다.
꾸란 9.23-24(이슬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마라.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법구경 210(불교)
이웃을 믿지 말라. 벗이라고 기대지 말라. 네 품에 안겨 자는 아내라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아들이 아비를 우습게 보고 딸이 어미에게 거역하며 며느리가 시어미와 맞서는 세상, 식구끼리 모두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나만은 여호와를 우러르고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기를 기다리리라. 나의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라면서.
미가 7.5-7(유대교)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노아의 아내와 롯의 아내의 예를 보이셨다. 그 둘은 우리의 두 의로운 종 밑에 있으면서도 그들을 배반하였노라.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느니라. 그녀들에게 말하여지길 지옥으로 들어가는 자들과 함께 불속으로 들어가거라.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파라오 아내의 예를 보이셨다. 그녀는 말하길, 주여 저를 위해 낙원 안 당신 곁에 집을 지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를 파라오와 그의 소행으로부터 구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불의를 행하는 백성으로부터 구하여 주시옵소서.
꾸란 66.10-11(이슬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1(기독교)
내 이름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식이나 땅을 버린 사람은 여러 갑절의 보상을 받을 것이요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 19.29(기독교)
하나님의 길을 위해 그의 집을 떠나는 자는 지상에서 수많은 넓은 은신처를 찾게 되리라. 또한 하나님과 그의 사도를 향해 그의 집을 떠나 이주 중에 목숨을 잃는 자는 그의 보상이 하나님께 있나니, 하나님은 관대하시고 가장 자비로우신 분이도다.
꾸란 4.100(이슬람)
누구든지 내게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를 버려야 한다. 또 자기 목숨까지라도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가복음 14.26(기독교)
너의 집 식구, 너의 동기들이 너를 헐뜯으며 배신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들이 정답게 말을 걸어오더라도 믿지 마라.
예레미야 12.6(유대교)
그때 상가마지 장로가 세존을 뵙고자 사밧티로 왔다. 그러자 상가마지 장로의 아내였던 여인은 상가마지 장로가 사밧티에 왔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제타 숲으로 갔다. 그녀가 상가마지 장로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말을 걸었다. “제게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사문이시여! 저와 아이를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말했지만 상가마지 장로는 침묵하고 있었다. 여인은 두 번, 세 번 이렇게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했다. 여인이 아이를 상가마지 장로 앞에 세우고 “사문이시여! 이 아이는 당신의 자식입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러나 상가마지 장로는 그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여인은 얼마쯤 가다가 뒤돌아서서 상가마지 장로가 아이에게 조금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자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문은 자기의 자식에게조차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구나.” 그녀는 돌아와서 아이를 데리고 떠나갔다.
우다냐 5-6(불교)
그대의 부와 아내를 포기하라. 그대는 출가자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토한 것처럼 싫은 것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가우타마여, 항상 주의하라!
그대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떠나고, 그대가 모은 엄청난 부를 버려라. 두 번 다시 그들에 대한 욕망을 품지 말라. 가우타마여, 항상 주의하라!...
이제 그대는 가시가 말끔히 치워진 길, 위대한 길에 들어섰다. 바른 길로 걸어가라. 가우타마여, 항상 주의하라!
웃타라디야야나 10.29-32(자이나교)
착한 사리풋타여! 부양해야 할 양친이 있고, 부양해야 할 처자가 있고, 거두어야 할 하인들과 여러 일꾼들이 있을 때, 내가 어찌 힘써 정진할 수 있었겠는가? 친구나 동료를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있고, 찾아 온 손님을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있고, 조상에게 드려야 할 제사가 있고, 신들에게 드려야 할 제사가 있고, 왕을 위해 해야 할 의무가 지워져 있을 때, 또한 이 육신이 구하는 바를 고분고분 따라갈 때, 내가 어찌 힘써 정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난자니여! 가령 어떤 이가 자신의 부모나 처자 때문에 거룩한 수행을 닦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런 연유로 니라야 지옥의 문지기들이 그의 목을 잡아끌고 지옥으로 데려가게 된다면, 그때 만일 말하기를 “부모와 처자, 그리고 다른 일들 때문에 거룩한 수행을 닦지 못하였나이다” 한다면 그에게 무슨 소용 있을까?
맛지마 니카야 2.186-187(불교)
친구를 동정한 나머지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고 사된 마음이 일어난다. 벗을 두어 사귐에 이러한 우려가 있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마땅히 혼자서 가야 하리.
처자에 대한 탐착은 마치 서로 엉켜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 숲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는 것처럼 그들에 끌려 다니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마땅히 혼자서 가야 하리...
무리 가운데 끼면 유희와 환락의 욕망이 일어난다. 또한 자녀들에 대한 지극한 애착이 생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무소의 뿔처럼 마땅히 혼자서 가야 하리...
처자나 양친에 대한 탐착도 버리고, 재물과 곡식에 대한 욕망도 버리고, 친척이나 벗에 대한 욕망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마땅히 혼자서 가야 하리.
지혜로운 자는 무엇이 집착인 줄 알고, 그곳에는 즐거움도 없고 안락함도 없으며 다만 괴로움이 있을 뿐임을 알며, 그것은 필경 고기를 낚는 낚시 바늘인 줄로 알고 무소의 뿔처럼 마땅히 혼자서 가야 하리.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그물을 찢고 나오듯이, 이미 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마땅히 혼자서 가야 하리.
숫타 니파타 37-62(불교)
말씀 선집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어미나 처자나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못 된다’ 고 했는데, 이 말은 공식입니다. 그러면 반대인 자가 누구냐? 자기를 제일 많이 사랑했던 순서대로, 자기를 더 사랑하던 사람의 순서로 반대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 라는 말이 우주적인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92.207, 1977.04.10)
예수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는 말을 했기 때문에 반대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반대를 받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원죄를 끊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피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봅아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내 어미가 원수고 내 아비가 원수고 내 아내, 내 아들딸이 원수란 말이지 않습니까?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원죄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원죄를 중심삼은 몸들이 서로 사랑하는 날에는 이 원죄가 끊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원수라는 것입니다.
핏줄이라는 것은 사랑을 통해서 연결되므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전부 다 180도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다 필요 없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제일로 해야 되겠다’ 이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79.160, 1975.07.20)
남편이 제일이고 아내가 제일이고 내 아들딸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제일이라는 자리가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리에서의 제일이라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남편의 사랑을 부정해야 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아내의 사랑을 부정해야 합니다. 자식의 사랑을 부정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만이 대할 수 있는 것이 본래의 인간인데, 여러분 몸뚱이에 사탄이 장난한 흔적이 있는 한 여러분은 본래의 사랑의 이상을 몸 마음에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140.24, 1986.02.01)
하늘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서는 세상의 첫사랑보다도 높은 사랑을 하늘을 중심삼고 느끼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는 하늘로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사랑의 자기의 상대를 종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바치니 생명문제니, 그 다음엔 물질문제니, 그 다음엔 지식문제니, 그 다음엔 권력문제니, 전부가 문제 됩니다. 죽자 살자 하고 둘이 연애결혼한 사람이 하늘의 뜻 앞에 들어오려면 일주일 이내에 이걸 버릴 수 있는 사랑권을 찾아가야 됩니다.
(102.19-20, 1978.11.19)
이 세계를 어떻게 복귀하느냐? 개인을 중심삼고 여기에 심는 것입니다. 반대가 되어서 끌고 나가야 됩니다. 탈출해야 됩니다. 그래서 불교 같은 고차적인 종교는 출가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서는 안 되고 형님 누나를 사랑해서도 안 됩니다. ‘그 부모나 형제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나의 제자가 못 된다’는 성경의 말이 역설적 논리지만 그것은 하늘 길을 찾아가는 순리적 논리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81.212-213, 1988.10.03)
아버님! 제가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 것은 아버님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인간의 위신을 여지없이 포기해 버렸고, 아버님의 위신과 아버님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의 어떠한 위치와 어떠한 환경과 어떠한 입장도 다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을 당신은잘 아시옵니다.
세계를 통하여 그 누구도 가지 못하던 사연의 길을 찾아야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역사과정에서 당신은 낱낱이 위로하였고, 낱낱이 붙들면서 ‘이 길을 가는 너 이상 외로운 자가 이 땅 위에 없다. 다시 가야 할 외로움이 남아 있다.’ 라고 권고하시던 아버지의 그 음성을 잊을 수 없사옵니다.
(159.61, 1968.01.28)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뒤에다 두고 고독의 길을 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하늘의 길을 찾아가고, 나라 없는 운명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나도 핏덩이 자식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이북 땅을 향했던 역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하늘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안 가려고 몸부림치면서 하루 이틀은 고민도 컸지만, 그 고민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64.148, 1972.10.29)
여러분도 가정을 붙들고 얼마나 몸부리쳐 왔습니까? 자기 아들딸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 돼지 새끼도 그렇습니다. 목석같이 둔한 사람도 그런 겁니다. 나 레버런 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을 사랑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입니다. 예민한 사람입니다. 일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감옥을 방문할 때, 내가 눈을 부릅뜨고 아무개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 어머니 살아 있지 않습니다. 돌아간 것을 안 지금은 ‘불효 했구나’하고... 그렇지만 그 아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고 일가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 하나님의 뜻, 천리를 대신해서 했습니다.
(168.148, 198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