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재물에 초연한 삶
부와 소유물은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을 얽어매는 족쇄와 같다. 탐욕과 물욕, 증가하는 자기 중심한 욕망 등이 우리를 이끄는 것들이다. 부의 집착은 ‘모든 악의 근원’ 이라고 교시되어 왔다. 그리고 물질주의는 인간의 영성 계발에 엄청난 장애물이 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하늘 향한 길에서 부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승려들과 수녀들은 전형적으로 청빈한 인생을 영위할 것을 맹세했다. 일반인들 역시 보다 큰 선을 위해 자기의 부를 희생함으로써 집착에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자선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다른 이들은 병든 가족을 간호하기 위해 좋은 직장도 포기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헌신에 뛰어든다. 이들은 기존의 것을 지키려는 초조함을 버리고, 봉사와 베풂을 위해 물질을 모음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새로운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무소유의 가르침을 참사랑 철학과 관련시켜 말씀하신다. 하나님 사랑은 독점을 배제하는 심적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하신다. 반면,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소유물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이 원리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국가 복지와 지구성 전체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1. 몰락의 원인인 돈
종교 경전
비방하고 중상하는 자들에게 고통이 있으리라.
그들은 부를 축적하고 그것을 계산하고 그의 부가 그를 영원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느니라.
꾸란 104.1-3(이슬람)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데모데전서 6.10(기독교)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여호와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신명기 8.3, 마태복음 4.4(기독교)
자신의 부유함을 추구하지 말고 성공을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것은 자신의 천성을 버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 29(도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24(기독교)
부유함은 어리석은 자를 황폐케 하지만 피안을 추구하는 자들을 다칠 수는 없다.
어리석은 자는 향락의 욕망으로 남과 함께 스스로를 망친다.
법구경 355(불교)
그들은 말한다. “나는 오늘 이것을 얻는다. 내일 나는 저것을 성취할 것이다. 이 재물은 네 것이며 저것 또한 내 것이 될 것이다. 나는 내 적들을 무찔렀으며 다른 적들 또한 쳐부술 것이다. 나는 신과 같지 않은가?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향수한다. 나는 성공했다. 나는 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부자이며 지체가 높다. 누가 나와 비견할만한가? 나는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쳤으며 나의 관대함에 흡족해한다.” 무지에 미혹된 자들의 행태는 이와 같다. 스스로의 탐욕에 속박되고 미혹의 그물에 사로잡혀 전일되지 못한 마음에 휘둘리며 그들은 어두운 지옥에 떨어진다.
바가바드기카 16.13-16(힌두교)
그들은 상품이나 오락을 보게 되면 너를 남겨두고 그쪽으로 흩어지나니, 말하라,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오락과 상품보다 더 좋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공급자이시니라.
꾸란 62.11(이슬람)
재산이 많으면 그만큼 먹여 살릴 사람이 많은 것, 그러니 많은 재산은 눈요기밖에 될 것이 없다. 막일을 하는 사람은 많이 먹든 적게 먹든 단잠이나 자지만, 부자는 아쉬운 것 없어도 뒤척이기만 하며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하늘 아래서 나는 기막히게 억울한 일을 보았다. 일껏 재산을 모아놓았는데 그 재산 때문에 우환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불운이 닥쳐 재산이 달아나 제 몸에서 난 아들에게도 물려줄 것 하나 없이, 세상에 떨어졌을 때처럼 알몸으로 돌아가더라. 일껏 수고해서 얻은 것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니, 이 또한 기막힌 노릇이다. 사람은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것뿐이라, 바람을 잡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전도서 5.10-15(기독교)
그대는 다만 행동할 권리를 지닐 뿐이며 결코 행동의 결과에 대한 것은 아니다. 보상을 위한 행위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행위의 포기를 원해서도 안 된다. 아르주나여, 자신 속에 확립된 사람으로서 이기적인 욕망 없이 성공과 실패를 평등하게 여기며 이 세상에서 행동하라, 수련은 완전한 평등심이 때문이다.
집착 없는 태도를 귀의처로 삼아라. 그러면 풍부한 영적 앎을 누릴 것이다. 결과를 행위의 동기로 삼는 자들은 가련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이 행하는 것의 결과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이 하나로 통일될 때 모든 허망한 염려는 사라진다. 잘된 일이든 그렇지 못한 일이든 염려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바가바드기타 2.47-50(힌두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나는 원한다’ 는 욕망과 ‘나는 가질 것이다’ 라는 욕망을 버려라! 만일 이들을 여읜다면 그대는 자신을 안내하는 바른 눈을 갖추어 이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숫타 니파타 706(불교)
우리가 불로 황금을, 황금으로 우리 종들을 시험하노니 이 세상일에 몰두하지 말라.
바하울라의 숨겨진 말씀, 아라비아어 54(바하이교)
말씀 선집
돈이라는 게 추한 것입니다. 똥보다도 더 더러운 것입니다. 똥을 묻혔다고 사람이 나빠지지 않지만, 돈을 잘못 쓰면 똥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선생님은 돈을 안 씁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안 쓰는 것입니다. 돈을 쓸 수 있으면 다 줘 버립니다.
(381.304, 2002.06.17)
돈이 있으면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다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중요하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돈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돈을 가질 때 돈의 사랑의 주인이 되고 싶으냐, 돈의 권력의 주인이 되고 싶으냐? 돈이 필요하지만 전체를 위해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116.18, 1981.12.01)
세계평화는 평화로운 국가가 먼저 있어야 됩니다. 국가의 평화는 가정의 평안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소망해온 권력이나 부귀나 지식이 평화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사랑의 소유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요, 외적인 생활의 편리에 따라 좌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참사랑과 더불어 있을 때 참된 평화와 참된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도 무한한 행복도 참사랑으로 남을 위하고 베풀 때, 그리고 그 베푼 것이 전체를 돌아 다시 찾아올 때만 확실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294.69, 1998.06.11)
하나님이 상대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소유관념이 없습니다. 자기 소유관념이 있으면 백 만큼 소유하면 백 이상 가치 있는 것을 못 줍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것은 내가 쓸 돈이다. 이것은 내몫이다.’ 하는 것은 사탄 편의 사고방식입니다.
(287.265, 1997.10.05)
인류는 전쟁과 고통이 없는 평화의 세계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보다는 오히려 점점 심해 가는 물질만능주의 경향과 함께, 국가 권력과 종교가 바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속에 청소년들의 퇴폐, 가정파탄, 마약과 에이즈 등은 인류의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294.61, 1998.06.11)
저물어 가는 20세기의 모든 선진국들은 지금 모두 한결같은 고민 속에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 원인은 선진국들이 모두 물질문명의 극치를 구가하다가 이제는 그 물질문명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고 마음을 지배하다 보니 인간의 영혼이 물질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사랑의 몰락입니다.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도시에는 고층누각이 늘어섰지만 인간의 마음은 사막과 같이 거칠어지고 거기에서 참사랑의 오아시스는 찾을 수 없으니 인간생활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참사랑이 없으니 인간이 이기주의만 무성하게 되었는데이 이기주의의 최대의 피해자는 아름다운 대자연입니다.
본인은 본 평화회의의 한 주제로 지구, 인간 환경의 회복에 관한 토의를 포함시켰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연환경은 이제 파괴될 대로 파괴되고, 물과 공기는 오염되었으며, 인류를 보호해 주던 오존층까지 파손되어 있으니 이대로 가면 인류는 스스로 구축한 물질문명 때문에 자멸을 면치 못할 경기까지 이를 것입니다.
물질문명의 극도의 피해는 모든 국가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의 파괴에 있습니다. 가정은 사회의 세포입니다.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수십조의 세포 하나하나가 건전하면 그 몸은 건전한 몸이지만, 그 세포가 파괴되면 그 몸 전체가 약해지고, 결국은 그 몸도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지구상에서 참다운 가정제도가 파괴되어 간다는 것은 곧 세계인류 전체의 파멸이 멀지 아니함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본래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던 것과는 정반대의 위치를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어차피 하나님이 뜻하시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세기입니다. 물질문명의 시대는 가고, 정신과 마음이 주인이 되는 정신문명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 21세기가 이제 5년 후로 임박해 있는 것입니다. 이때,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들은 개발국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선진국을 교훈삼아 물질문명의 함정 속에 빠짐이 없이 마음과 정신이 주인 되는 세계로 직접 돌입하여 주기를 열망하면서 절규하고 싶었던 충고의 내용이었습니다.
(271.95-96, 199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