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참회는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본연의 자신을 찾아가는 첫 단계이다. 죄와 집착, 그릇된 견해 등을 한결같이 인정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신앙 길을 출발할 수 있다. 우리에게 축적된 죄와 기만은 하나님 실존의 인식, 감지를 왜곡시키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죄 사함과 인간의 헛된 망상 제거의 전제조건은 무엇보다 참회이다. 하늘은 뉘우치는 자의 삶에 다시 한 번 은사를 베푸시는 것이다.
참회 내용을 기도를 통해서 조목조목 열거해야 한다. 가슴에서 타져 나오는 통성과 통한의 눈물의 기도, 과거의 잘못을 총 탕감하는 강렬한 의지의 기도, 그것이 참회다. 그 후 용서와 해방, 새로운 통찰이 삶의 방향성을 설정해 줌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참회다.
문선명 선생은 참회란 개인적 죄상을 후회하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개인은 역사적 열매로 태어난 존재이며, 나아가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대표한 존재다. 따라서 개인을 넘어서 조상들의 잘못, 국가의 잘못, 세계의 잘못까지 모두 참회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참회를 통해 보다 심오한 경지로 들어가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이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무한히 품고 싶었지만 우리의 마음에 안착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곡절과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내용 모두를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회를 통해서 영혼의 깊은 곳에 스며든 내적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1. 죄의 인정, 고백, 그리고 참회
종교 경전
진실로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와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자를 사랑하시도다.
꾸란 2.222(이슬람)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복음 3.2(기독교)
하나님, 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터지고 찢어진 마음을 경멸하지 아니하십니다.
시편 51.17(기독교)
악을 감추면 악이 악을 끌어당겨 불어나리라. 그러나 스스로 악을 숨기지 않고 뉘우치면 죄가 말라 죽으리라. 이런 까닭에 모든 부처들이 이르기를, 지혜로운 이는 죄악을 감추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반열반경(불교)
후회하지 않게, 또는 애석하지 않게 미리 걱정하고 ‘잘못이나 실책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은’ 오직 한계를 지킴으로써 이루어진다. 또 미리 겁내고 허물을 없게 하는 일은 오직 ‘잘못을’ 후회함에 있느니라.
역경, 계사전 1.3.4(유교)
기껏 잘했다는 것도 개짐처럼 더럽습니다.
이사야 64.6(기독교)
선의 뜻대로 생각했어야 하고, 신의 뜻대로 말했어야 하며, 신의 뜻대로 행동했어야 하리라.
만일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며,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죄를 뉘우치노라.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회개하며, 온 마음으로 남김없이 회개하노라.
파테트 6(조로아스터교)
우리의 죄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우리의 악행은 끝이 없으니,
오, 주여!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으리는 극악부도한 죄인이니 헤어날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오, 주여! 경애하는 주여!
당신이 저울질한 우리의 행위는 당신의 궁전 어느 곳에도 둘 곳이 없을 것이로되,
구루의 은총으로 우리를 용서하시어 당신과 하나되게 하소서.
아디 그란트, 샬로크 바드히크, M.3, p.1416(시크교)
나는 자신의 죄에 대해 자문합니다. 오, 바루나여,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나는 그것을 묻고자 지혜로운 자들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현자들은 모두 나에게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위대한 신 바루나가 너에게 화가 났다.”
오, 신아여, 그런데 당신이 당신의 악사와 친구를 파멸시키고자 했던 나의 가장 중대한 죄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오, 신이여, 누가 전혀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아는지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래서 곧장 부복하여 내가 용서를 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리그 베다 7.86.3-4(힌두교)
베로 내가 정토에 대한 참된 믿음에 귀의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슴에는 온 마음을 다하는 성실함이 없었네.
속임수와 거짓이 내 몸 속에 있으며, 내 영혼에는 청정한 빛이 없도다.
겉으로 보기에 모든 사람들은 근면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영혼에는 탐욕과 분노, 그리고 의롭지 못한 기만으로 가득하며, 그들의 몸속에는 거짓되고 교활한 승리감이 가득하도다.
내 가슴속의 악이 너무 강하여 나는 그것을 극복 할 수 없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은 뱀의 독과 같으니, 이 독이 섞인 나의 의로운 행위들조차도 거짓된 행위라고 불러야 하리라.
내가 그와 같고 나의 영혼에는 아무런 진실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이름의 공덕, 깨달은 그의 선물은 설사 나는 단지 나라 할지라도 나의 말을 통해 온 세계에 두루 퍼지네.
내 영혼에는 아무런 자비심도 없네.
내 벗의 선행은 내 두 눈에 달갑지 않네.
만일 자비의 방주, 무한한 지혜의 거룩한 약속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겠는가?
그 마음의 뱀의 독 같은 교활함과 기만으로 가득찬, 나는 의로운 행위를 실천할 수가 없네.
만일 우리 아버지의 선물에 귀의처를 찾지 않는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신란(불교)
말씀 선집
‘회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입니까? 간단합니다. 그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희생하고 봉사해야 할 도리에 어긋난 모든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105.92, 1979.09.30)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와서, 맨 처음 이스라엘 민족 앞에 경고한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99.75, 1978.09.01)
여러분들도 잘 알지만, 부모한테 잘못한 자식이 그 잘못된 것을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물이라는 걸 흘려야 됩니다. 눈물이라는 것을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지은 녀석이 있으면 어느 나라나 벌을 주는 것입니다. 몽둥이로 칩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그런 벌이... 벌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치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뭘 하느냐?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겁니다. 모든 분야에서 제재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데는 많은 아픔을 느껴야 됩니다. 자기가 잘못한 데 대해서, 죄지은 데 대해서 그것을 매 맞는 것 이상, 고통 받는 것 이상 아프게 느끼지 않고는 회개의 길이 있을 수 없다 하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99.77, 1978.09.01)
여러분은 회개했습니까? 회개도 못한 사람이 누구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회개했다는 공인을 받지 못해 가지고 누굴 구해 줍니까? 어떻게 구할 수 있겠습니까? 죄지은 것을 용서도 안 받고 죄를 판결할 판사가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느껴봤습니까? 역사적인 죄를 짊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지은 역사적인 죄를 짊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인 현재의 죄를 짊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미래의 죄까지 내가 책임져야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3대 죄를 짊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9.90, 1978.09.01)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천륜의 원칙을 파괴하고 하늘과 인간의 인연을 유린하고 인간과 만물의 인연을 파괴한 죄, 심정문제에서 지은 죄를 용납해 주십시오’ 해야 됩니다. 그렇게 히개함으로써 용서받고 승리하여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다면 만사는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회개자를 찾아 나오십니다.
심정을 통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물건이 자기 것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정을 통한 사람은 세상의 어떤 물건을 가져오고 가져가도 아버지에게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천국 세계에서는 이웃집에 가서 말없이 먹고 싶은 것 좀 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정적으로 연결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심정을 유린한 죄 이상 큰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한 죄인이요, 만물의 심정을 거부한 죄인이요, 심정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게 한 방해꾼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심정을 걸어 놓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9.185, 1960.05.08)
요즈음 미국으로 말하면 뭐 민주주의의식이고 사람은 다 마찬가지인데 누구는 뭐 어떻고, 자유인데, 부끄러움이 어디 있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게 어디 있느냐는 사상이 강하지요? 여러분들은 부끄러운 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여러분이 죄된 의식을 한번 가져 봤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역적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역적의 아들이라면 당당하겠습니까? 또, 강도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당하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또 말할 수 없는, 짐승 같은 치욕을 느끼는 불륜한 사랑관계를 갖고 있으면 당당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만약에 자기가 그런 죄를 졌다면, 그런 죄를 진 사람의 아들딸이라면, 그런 후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얼굴을 들고 ‘아, 나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또 ‘나는 이 자리에서 그냥 그대로 자리 잡아야 되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누구를 막론하고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은 당연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떳떳하고 자유롭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죽었다가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든가 거꾸로 뒤집어지든가, 청산하는 문제가 있어야 됩니다.
(66.14, 1973.03.11)
부족한 저희들, 어찌 아버지 앞에 나올 수 있는 저희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하늘을 대하여 얼굴을 들 수 있겠사옵니까? 저희 자신들은 천만번 죽어도 마땅한 존재들이고, 죄악의 형틀에 사로잡혀 심판의 고난을 당해 마땅한 인간들이옵나이다. 그러기에 저희들, 이 시간 아버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바라고, 아버님의 은사를 바라며 스스로를 직고하는 마음으로 엎드렸사오니, 저희 가진 모든 것을 아버님께 내놓고 옳지 못함이 있거든 모두 청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