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뺨까지 돌려대라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8장 겸손과 자기부정)

철장왕 | 20181117084252

다른 뺨까지 돌려대라
 
예수님은 한쪽 뺨을 맞았으면 다른 쪽도 대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모욕과 비난을 아무 불평 없이 견뎌내고 복수심마저 떨쳐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죽음까지도 감수하라는 비저항의 가르침은 자아주관에서 엄청난 의미를 띠고 있다. 악당에 똑같은 방식으로 응답할 때 악당은 다시 우리를 공격하고 지배할 수 있다. 공격자에 대한 증오심은 오직 피해자의 복수심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그렇게 하면 영적 에너지와 자기 균형을 상실해버린다. 그러나 반대자의 모욕과 비난에 대해 자신의 호의를 한결같이 돌려주고 정신을 집중하면, 원수의 증오심도 소화하고 영적 독립심과 주체성을 고수할 수 있다. 모욕을 받을지라도 자신의 영적 주체성을 고수할 때 비로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영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비정항의 윤리가 정의와 화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 경전들은 하나님은 다른 쪽 뺨까지 대는 무리들의 편에 서라고 명시한다. 문선명 선생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예로 들어 가장 잔인한 고문과 죽음에 처한 한 사람의 굴복이 어찌하여 역사상 엄청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하나님 역시 수많은 모욕에 부딪힐 때 다른 쪽 뺨까지 대시는 분이라고 하신다. 인간들의 경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어떠한 굴욕에 직면하더라도 자신의 절대성을 견지하며 자신을 배신한 천사장까지 사랑하는 분이다. 하나님도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신다. 그러나 그 방법은 오직 참사랑의 원칙을 통해서 사탄을 자연 굴복시키는 것이다.
 
종교 경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보복하지 말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돌려대고, 누가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주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라.
마태복음 5.38-41(기독교) 
 
설사 그대에게 주먹질하는 자라도 되갚음 하려 하지 말라. 다만 그의 발에 입 맞추라.
아디 그란트, 샬로크, 파리드, p.1378(시크교)
 
복수할 마음으로 남을 모욕하기보다는 모욕을 당하는 사람, 아무런 대꾸 없이 비난을 듣는 사람, 여호와의 사랑 힘으로 선한 일을 하고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을 갖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밝히는 태야’ 같다.
탈무드, 요마 23a(유대교)
 
불자들아! 만일 남들이 욕하거나 법을 비방하거나, 또는 승가를 매도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성을 내거나 악의를 품지 말라. 만일 그로 인하여 너희가 성을 내거나 해칠 마음을 낸다면 그것이 너희의 고요한 마음을 흩트려 놓을 것이니라.
디가 니카야 1.3(불교)
 
상해도 앙갚음도 없게 하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32(이슬람)
 
승리는 원한을 낳는다. 패자가 고통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음이 평화로운 자는 승패를 버리고 행복하게 산다.
법구경 201(불교)
 
모욕과 학대에도 불구하고 성내지 않고 견디어내는 사람, 그의 힘센 군대가 인내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법구경 399(불교)
 
하나님보다 더 자신이 들은 모욕을 잘 참는 자가 없도다.
부카리 및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주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해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베드로후서 3.9(기독교)
 
수행승들이여, 양쪽으로 날이 선 톱으로 천한 도둑들이 사지를 갈라놓는다 할지라도, 만약 그의 마음에 적의가 일어난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기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다음과 같이 스스로를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우리는 악한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며, 악한 말을 내뱉지 말아야 하며, 선한 의지와 증오를 여읜 생각으로 자애로운 마음을 내야 할 것이다. 그 도둑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온 세상을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무량하고 적의나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만일 그대들이 톱의 비유에 대한 이 교훈을 항상 마음에 새긴다면, 과연 그대들에게 견딜 수 없는 어떤 조롱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맛지마 나카야 1.129(불교)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겨 두시오. 성서에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보상하겠다고 주께서 말씀 하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 원수는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라. 그렇게 하면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얹은 것이 되리라” 했습니다.
로마서 12.19-20(기독교)
 
어떤 사람이 부처의 선법을 듣고 이를 욕하고 대들면 다만 그를 선으로 대할 것이요, 꾸짖거나 화내지 말라. 그가 나를 욕했지만 내가 받지 않았으니 그가 스스로 가지고 돌아갈 것이며 화는 그의 몸에 미치리라.
사십이장경 7(불교)
 
말씀 선집
 
나의 어린 두 소년이 싸울 때 보면, 분하지만 참고 단방에 해치우고 싶겠지만 그런 기분을 다 포용하는 마음으로 그만두는 쪽이 있습니다.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양보해 줍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이라든가 혹은 옆에 있는 사람이 누가 더 선하냐를 판단할 때, 관용으로 용서하고 포용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100.84, 1978.10.08)
 
과거의 역사적인 위인들, 성인들 중에 와서 그 시대에 핍박을 안 받은 사람 있습니까? 그렇게 역사 과정에서 반대 받게 될 때, 내가 옳다고 변명한 사람들은 성인 축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역사와 더불어 그런 비난을 받고 한을 품었지만, 묵묵히 입을 다물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시대의 승리자로서 다시 등장한 것은 왜냐? 악과 더불어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0.34, 1975.10.04)
 
예수님이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한 것은 완전히 주기 위해서는 오른편 뺨을 맞으면서 왼 뺨까지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돌아오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게 되면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천리 원칙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까지도 복을 빌며 죽어갈 수 있었던 것도 완전히 투입하고 완전히 주고 가자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나라까지도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중에는 로마제국까지 기독교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방향을 역사적으로 뒤집어 놓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69.88, 1973.10.20)
 
세 번 때려서 승리한 사람이라도 열 번 양보하는 사람에게는 굴복당하고 맙니다. 예수님도 그런 법을 지켜 왔던 겁니다. 오늘날 세상에서도 그렇잖습니까? 선한 사람은 자기를 희생하려고 합니다. 주먹 잘 쓰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매를 맞고도 사랑으로 포섭하려고 하고, 티 없이 넘어서서 그 가정까지도 희생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나님이 그래서입니다. 우주의 중심 되는 그 분이 그렇게 나감으로 말미암아 선의 표준이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한 길을 통해서 선의 세계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는 종교인들은 종교 자체, 믿는 사람 자체를 희생해야 되고 종교 단체를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101.69, 1978.10.28)
 
여러분은 이런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 하나님이여, 선조들이여, 나를 반대하는 사람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반대하지 못하게 하소’ 이런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보다는 불쌍한 사람을 구해 주겠다고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복을 빌어 줘야 된다는 겁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가인 아벨이 하나 되는 자리를 언제나 취하기 위해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거기에 하나 된 그 자리를 취하면 내가 망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보면 뉴욕 타임즈가 나의 원수요, 워싱턴 포스트가 나의 원수인데 신문에 낼 것 있으면 뉴욕 타임즈에 내주고 워싱턴 포스트에 내주라고 합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나는 언제나 완성한 아벨 자리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승리한 아벨 자리에 서겠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욕을 먹으면서도 꾹 참고 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89.114, 1976.10.04)
 
사탄이 하나님께 ‘하나님! 애초에 저를 천사장으로 세우셨을 때에는 일시적인 사랑으로 세우셨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사랑을 위해 세웠습니까?’하고 질문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하나님은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 세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일시적인 사랑으로 세웠다고 하면 일시적인 하나님이 됩니다. 영원히 사랑한다고 하는 기준을 갖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탄 앞에 하나님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탄이 아무리 반대해도 그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에 대해서 ‘무저항주의자’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천국이상의 세계를 성취할 때까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타락하여 사탄이 된 천사장을 사랑해야 합니다.
(316.79, 2000.02.10)
 
하나님은 당장이라도 사탄이나 인간을 전부 다 쓸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의 전능성이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이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말하기를 ‘당신은 전능하신 분이 아니요? 이러한 죄 때문에 하나님은 깨져 나가는 분이요?’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침범을 안 받기 위해, 사탄이 화살을 쏘게 된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네 힘을 다하고 네 모든 것을 다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지은 판도권 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입장에 세워야 될 것이 아니냐. 기가 막힌 장면이요, 용서할 수 없이 참을 수 없는 장면이지만, 기가 막히니까 참아야 되겠고, 참을 수 없더라도 참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하나님의 권위가 생겨나고, 그러므로 하나님다운 자리, 하나님의 전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이 모른다고 한번 뒤집어 박았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면 우주는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도 다... 하나님이 생각을 다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비참한 하나님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인내가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았을 것입니다. 인내가 얼마나 귀하냐? 이렇게 보게 되면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저길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76.219-220, 197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