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겸손과 자기부정
겸손
겸손한 자세는 하늘과 가까이 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탁월한 지성, 부, 높은 지위, 그리고 칭찬 등에 의한 자만심은 구도자의 길을 가로막는 장해물일 뿐이다. 진정한 겸손은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비판하고, 불평 없이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입장과 다를지라도 하늘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자세이다.
겸손은 진실과 정직을 요구한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어린아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어런이의 순수한 반응과 삶의 수용 태도는 종종 가면을 쓰고 원한과 편견으로 살아가는 복잡한 어른들의 성향과 반대이다. 어떤 경전에는 한 낱의 숨결, 한 줌의 흙, 벌레의 먹이에 불과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상한 존재인가를 깊이 명상하고, 특히 겸손 미덕을 함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 또 다른 역설이 있다. 겸손하며 낮아지려는 자가 교만하며 높아지려는 자보다 더 존경받고 번영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온갖 공격을 받았지만, 결국 겸손하며 낮은 자리에서 승리한 예수님의 사례가 그것이다. 선과 악의 관계는 겸손과 교만의 관계와 같다. 문선명 선생은 겸손은 에덴동산의 생활원칙이며 하나님과 일치되는 덕목이며, 반면 교만은 사탄의 진영에 정착하게 한다고 하신다. 문 선생님은 또 다른 인용 구절 - 오르막과 내리막의 자연 순환 과정 - 을 예시하며, 교만하여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길밖에 없지만, 겸손하여 아래에 내려가면 오르막길밖에 없다고 하신다.
1.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종교 경전
믿음을 가진 자가 승리하리니, 그들은 겸허히 예배드리고 쓸데없는 언사를 피하고, 희사금을 바치며, 자신을 정결히 지키는 자들이로다.
꾸란 23.1-5(이슬람)
온유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 5.5(기독교)
만일 그대가 도움을 얻고자 한다면 자존심을 버려라. 심지어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자존심도 그대를 가로막아 버린다, 마치 큰 먹구름에 가려지는 것처럼.
카수가 신사의 신탁 (신도)
사람들은 경멸하여 나의 뺨을 돌리지 말고 이 땅위를 거만하게 걷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거만함을 사랑하지 않으시노라. 겸손한 걸음으로 걸을 것이며 소리를 맞추어 말하라.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당나귀 소리이니라.
꾸란 31.18-19(이슬람)
“모두 내가 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다 나의 거싱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시다. “그러나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억눌려 그 마음이 찢어지고 나의 말을 송구스럽게 받는 사람이다.”
이사야 66.2(기독교)
지금 이 유랑의 때에는 성전 붕괴 전보다도 성령이 우리를 더 자주 찾아오신다. 어떤 한 왕이 있었다. 그는 권좌에서 쫓겨나 떠돌이로 내몰렸다. 유랑하며 헤매다가 그는 한 가난한 자의 집에 갔다. 거기서 왕은 평민들의 음식과 거처를 제공받았다. 그러나 그 대접은 여전히 왕의 입장에서 받은 것이었다. 점점 그는 마음이 가벼워졌고 조정에서 간신들과 담소를 나누듯 집주인과 친군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 우리와 같이 유랑하시는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와 같이하고 계신다.
메지레치의 도브 바에르(유대교)
겸손하라.
남을 해치지 말라.
거짓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인내하라.
지성으로 스승을 공경하며 몸 마음을 고결하게 지키라.
고요함 속에 꿋꿋하며 자기를 다스려라.
아만을 벗어 버리고 무상한 감각적 대상들에 초연하며 필멸자의 나약함을 직시하라.
바가바드기타 13.7-8(힌두교)
모든 인류는 아담의 자손이고 아담은 흙에서 창조되었도다.
티르미디 하디스 (이슬람)
지극히 불쌍한 영혼을 가진 자의 최후는 벌레와 같은 신세가 된다.
미슈나, 아보스 4.4(유대교)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알아주시옵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염려해 주시옵니까?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라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시편 144.3-4(기독교)
다음 세 가지를 반성해 보아라. 그러면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 네가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미래에 누구 앞에서 심판받을지를 말이다. 너는 과거에 악취가 풍기는 빗물로부터 왔으며, 지금은 먼지 벌레 구더기가 득실대는 곳으로 향하고 있고, 미래에는 왕 중에 왕, 거룩하신 그분 앞에서 심판받을 것이다.
미슈나, 아보스 3.1(유대교)
선지자가 이르기를 “천국의 거주자들이 얼마나 겸손하고 연약한지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지 않았더냐? 그들이 신앙을 맹세할 때 하나님이 그들의 맹세를 받아 주리라. 지옥의 거주자들이 얼마나 잔인하며 힘이 세고 오만한 자라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지 않았더냐?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의 사랑은 이러한 온유 겸손, 금식, 희생, 수교의 토대 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288.228, 1997.0326)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스스로를 강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온유 겸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희생 봉사를 강조하는 거예요.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본향 땅의 법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차피 본향 땅을 찾아가는 나그네와 같은 신세이므로 본향에 가서 살 그 법도에 알맞게 훈련시키려니,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하라는 이런 교훈을 가르쳐 온 것입니다.
(77.190, 1975.04.06)
사탄의 본질은 교만과 혈기입니다. 이런 성질로 세상 사람을 대하는 사탄이었으나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세사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또한 엄연히 천리법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탄이기 때문에,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온유와 겸손을 들고 나서게 되면 사탄세계도 자연히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아시는 예수님은 사탄이 하지 못한, 사탄이 할 수 없는 온유 겸손한 입장에 서야 중심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로 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예수님이 각르치신 온유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에 비추어 보고 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실천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면 아직까지 사탄의 종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187, 1957.10.27)
하늘나라의 생명록을 한번 점검해 보니까, 어떤 사람이 기록되어 있느냐 하면 못난 사람들이 전부 다 기록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107.21, 1980.02.21)
본래 에덴동산은 싸움이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서로가 자기를 높이는 세계가 아니라 겸손과 사랑이 깃드는 세계였습니다.
(98.31, 1978.04.08)
개인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에게 있어서 자기만을 주장할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의 사랑으로 어머니의 뱃속, 난자로부터 자라 태어날 때 99.999퍼센트가 어머니의 뼈와 피, 살입니다. 그리고 0.001퍼센트 아버지의 정자 하나가 합해져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태어날 때 자기 자신만이란 개념은 없었던 것입니다.
(299.119, 1999.02.07)
타락은 악이 먼저 출발하여 올라간 것이므로 악을 끌어내리고 선을 끌어올리는 작전을 해야 됩니다. 이 작전을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걸 알아야 됩니다. 먼저 교만을 때려잡아야 됩니다. 타락은 하나님을 제쳐 놓고 자기가 높아지고자 한 데서 되었습니다. 사탄의 본성이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높아지겠다는 것, 환경이야 어떻든 질서야 어떻든 법도를 무시해 버리고 자기만을 주장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거기에는 의리도 없고 법도도 없다는 것입니다.
법도를 따라 법대로 사는 사람을 어떻다고 합니까? 교만하다고 합니까? 그렇게 사는 사람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직은 바를 정(正)하고 곧을 직(直)입니다. 바르고 곧다, 똑바르다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뭐냐? 똑바른 것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은 무엇으로 가르느냐? 법으로 가르는 것입니다. 교만은 법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법도를 무시하고 위치와 환경을 무시하며 행동하는 것을 꺾어 놔야 합니다. 교만을 제어하고 겸손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37.129, 1970.12.23)
높은 데 올라가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게 할 수 있는 길을 없습니다. 밟혀야 됩니다. 선생님도 높아질까 봐 하나님이 지금까지 40년을 발로 밟아 버린 것입니다. 자꾸 밟아 버리니까, 높아지려는 것이 짓이겨져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삼천리반도에 돌아다니던 저 옛날의 김삿갓처럼, 욕을 먹고 밟히고 천대받으면서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걸 다 소화할 수 있고 그걸 다 기쁘게 소화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됩니다.
(144.255, 1986.04.25)
나는 복 달라고 기도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돈 주소’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덜 했다고 생각하고 더 고생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걸 좋아하는 겁니다. (102.314, 197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