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 전쟁 - 1. 정의의 용사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7장 복종과 희생)

철장왕 | 20181107083414

악과 전쟁

 

죄악의 투쟁에서 일말의 타협이 없는 신앙이 살아있는 역동적 신앙이다. 최고선의 실현은 하나님의 방식을 고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을 이슬람에서 지하드(성전)’ 라고 부른다. 그중 하나의 차원은 악령과 이기적 욕망을 다스리는 내적 투쟁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영적 투쟁 이라고 부르고,이슬람에서는 위대한 성전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회가 부정부패로 뒤덮여 있고 평화가 공격자에게 위협받는다면, 그 세계에서는 정의 편에 설 투사가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종교에서는 약자를 보호하고 공격자들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사랑의 외침으로 여기는 반면, 사회적 부정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곳을 죄로 다룬다.

 

자기 방어나 공격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히 총(무기)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고 선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때 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사들의 임무는 세계 정의를 향한 것이기에 그 투쟁은 근본적으로 영적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의 적들이 갖는 적대감 배후에 악령의 권려과 주권 이 작용하고 있다. 적진의 육신을 공격하여 승리하는 것이 반드시 그들의 내면적 원한까지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더 악화할 수 있다. 특히, 승리자들이 무자비하고 보복심을 가지고 대처했다면 더욱 그렇다. 이와 달리, 상대방의 내면적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악령은 자연굴복하고 퇴각할 것이다. 비록 적이 깊은 원한에 차 있어서 반드시 무력을 통해서만이 굴복시킬지라도, 진정한 승리는 적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교육할 때까지 확보되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영적 전사들이 가야할 길은 원수를 사랑하라 는 가르침의 실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들 자신을 희생하여 - 비록 그들이 거부하거나 비웃거나 심지어 핍박할지라도 - 원수의 복리를 위해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수를 향한 사랑은 오직 희생을 통해서만 명백히 드러난다. 마치 예수님이 그렇게 한 것처럼, 원수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면 죽음도 문제되지 않아야 한다(13 원수 사랑 참고). 어느 측면에서 영적 전쟁은 어떤 물리적 전쟁만큼이나 위험하기 때문에 영적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용기와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문선명 선생의 전투의식이란 대부분 영적 전사로서 영적 투쟁의 길을 의미한다.

 

1. 정의의 용사

 

종교 경전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수호하여 싸우는 참된 영웅이다.

아디 그란트, 샬로크, 카비르 p.1412(시크교)

 

전사에게는 본연의 의무인 악을 쳐부수는 싸움보다 더한 선행은 없다. 이제 그대는 기꺼이 나아가야 하느니라. 아르주나여! 다행이도다. 이와 같은 전쟁은 그대에게서 천계로 가는 열린 문이나 다름없나니, 그러나 만일 그대가 악을 대항하는 이 의무를 그만둔다면 이것은 그대의 의무와 명예를 저버리는 것이며 자신에게 악을 초래할 것이로다.

 

이 명예로운 싸움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천계를 얻을 것이요, 살아서 승리한다면 또한 땅 위의 영광을 누리리라. 그러므로 일어나라 아르주나여! 주저하지 말고 싸우라! 즐거움과 고통, 이득과 손실, 승리와 패배를 하나로 보고 이 숭고한 싸움터로 박차나가라. 그리하면 그대는 마땅히 죄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리라.

바가바드기타 2.31-38(힌두교)

 

, 사도여! 신자들을 싸우도록 권고하라. 너희 가운데 스무 명이 결사 항쟁한다면 이백 명을 물리칠 것이고 백 명이 결전을 치른다면 불신자 천 명을 물리치리니 그들은 우매한 자들이로다.

꾸란 8.65(이슬람)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군인답게 고난을 함께 받으시오.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자기 살림에 얽매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군인으로 부른 자를 기쁘게 해야 하기 때무입니다.

디모데후서 2.3-4(기독교)

 

, 지혜의 주여! 선한 마음으로

당신의 의롭다고 언명하신 그 뜻을 이루고자 힘을 다하여 분투하는 사람들,

그들은 만인을 위한 미래의 구세자입니다.

광포한 자들을 무찌르도록

택함 받은 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베스타,야스나 48.12(조로아스터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용기 백배, 있는 힘을 다 내어라. 그래서 내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법을 한 눈 팔지 말고 성심껏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이 책에 있는 법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밤낮으로 되새기며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어김없이 성심껏 실천하여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네 앞길이 열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너는 내 명령을 듣지 않았느냐?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 떨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 1.7-9(기독교)

 

진정한 승리를 갈망하는 그들은 무력으로 정복하려 하기보다는 진리, 사랑, 정의, 그리고 끊임없는 수련으로 정복하려 합니다. 더욱이 의와 불의를 분간할 줄 알며, 탐욕이 가져오는 결과를 잘 이해하며, 의로운 전투에 전념할 뿐 결코 자만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있는 곳에 승리가 있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 왕이시여! 지금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우리의 것임을 의심하지 마소서. 진실로 크리슈나가 있는 곳에 승리가 있습니다.

마하바라타, 비슈마 파르바 21(힌두교)

 

, 나의 아버지, 위대한 선조여!

나는 당신에게 감사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깊은 지혜로써

내가 영광스러운 당신의 선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당신은 알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나의 아버지!

내가 당신의 위대함을 생각할 때에,

나는 경외함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위대한 선조여!

땅과 하늘 모든 것의 지배자여!

나는 당신의 전사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키쿠유족의 기도(아프리카 전통 종교)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 산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불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수 하나가 싸움을 걸어 왔다. 그는 갓 출신으로서 장신이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비늘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 세겔이나 나갔으며, 정강이에는 놋으로 만든 정강이받이를 찼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 그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고 창날은 쇠로 되어 있었는데, 그 무게는 육백 세겔이 넘었다. 방패당번을 앞에 세우고 나서서 그는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전열을 갖추어 가지고 나오면 어쩌겠다는 말이냐? 너희 사울의 졸개들아, 이 블레셋 장수와 싸울 자를 골라 이리로 내려 보내라. 만약 그자가 나한테 이겨서 나를 쳐 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될 터이나, 내가 이겨서 그자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블레셋 장수는 다시 소리쳤다. “내가 오늘 이렇게 너희 이스라엘 진영에 욕을 퍼붓는데도 나와 결판을 낼 사람을 내보내지 못하겠느냐?” 사울과 이스라엘 전군은 이 블레셋 장수의 말을 듣고 너무나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저자 때문에 상심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나가 저 블레셋 놈과 싸우겠습니다.” 그란 사울은 다윗을 말리며 말했다. “네가 나가 저 블레셋 놈과 싸우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으로 몸을 단련해 온 자인데, 너는 아직 나이 어린 소년이 아니냐?”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았다. “소인은 아버지의 양을 쳐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나타나 양 새끼를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소인은 한사코 뒤쫓아 가서 그놈을 쳐 그 아가리에서 양 새끼를 빼내곤 했습니다. 그놈이 돌앙서서 덤벼들면 턱수염을 휘어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소인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습니다. 저 블레셋의 오랑캐 놈도 그렇게 해치우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시는 이 군대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자를 어찌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블레셋 장수는 다윗을 건너다보고 볼이 붉은 잘 생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 여겨, “막대기는 왜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개란 말이냐?”하고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리고 블레셋 장수는 다윗에게 을러메었다. “어서 나오너라. 네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 장수에게 이렇게 응수하였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 주셨다. 나야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블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이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여호와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블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블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다윗은 달려가서 그 블레셋 장수를 밟고 서서 거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목을 잘랐다.

사무엘상 17.4-51(기독교)

 

말씀 선집

 

아침이나 저녁이나 강해야 됩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어떠한 장벽도 치면 그것이 깨지고 그것이 깨지지 않으면 주먹이 나가고 내 몸뚱이가 나간다는 신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나를 통하여 미래의 사명을 완결하여야 하는 나의 현재 입장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를 부활시키고, 현재를 부활시키고, 미래를 부활시키는 그런 왕자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73.106-107, 1974.08.04)

 

나는 하나님의 참용사가 될 것이다. 그 어떤 하나님을 위한 전장이 비참할지라도 나는 그 전선에 참여할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정신입니다.아무리 세계의 핍박이 몰려와도 고독단신의 핍박의 자리입니다. 고통의 자리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불평 한번 안 했습니다. 이것이 레버런 문의 자랑입니다.

(193.74, 1989.08.20)

  

고문에 쓰러져 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안 했습니다. 나를 구해 달라고, 내가 몰려다녔지만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내 갈 길을 지켜달라고, 날 구해 달라고 기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나이로서의 내 여력을 갖고 있고 내 기백을 갖고 있고 싸울 수 있는 자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힘이 부족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들랑 나를 구해 주겠지, 그전에는 내 힘으로... 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은 미리 앞에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138.360, 1986.01.24)

 

하나님의 승리를 내가 안겨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전쟁에서는 내가 먼저 나가겠다. 내가 먼저 나간다, 골리앗 앞에 다윗과 같이 라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118.129, 1982.05.09)

 

12지파를 대신한 열두 사람을 세워서 가나안 땅을 정탐시켰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을 자기들 힘으로는 가나안 7족을 당하지 못한다는 보고였습니다.그러나 열두 사람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반기를 들고 있을 때, 당당하게 나타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갈라 쳐서 탄탄대로의 길을 만들어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가는 길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라고 외쳤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시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9.240, 1968.01.15)

 

이것은 골리앗과 다윗의 비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기도 없고 훈련도 안 되어 있습니다. 꿰매진 한 조각의 옷을 입은 철부지한 목동 다윗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쥐어진 물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 땅에서 안 되면 한국 땅에서 될 것이고 한국 땅에서 안 되면 중동에서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스크바 대회 같은 데서 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서 우리는 단결하고, 훈련하고, 집결해야 되겠습니다. 내 이마가 깨지더라도, 내 눈이 튀어나와도, 내 생명의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16개국 유엔군이 한국 도처에서 피를 흘렸는데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도처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세계와 하나님을 위해 그보다 많은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일을 단행하는 나라와 국민이 없으면 하나님의 소망의 기준이 이 지구상에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천지의 공동 운명을 걸고 전진해야 합니다.

(88.323-324, 1976.10.03)

 

나의 용맹스럽고 기운찬 이 맹세의 소리와 더불어, 혹은 젊은 가슴에서 뛰는 고동 소리와 내가 부르짖는 함성 소리와 적진을 항하여 행군하는 대열과 더불어, 이 행차에 달렸구나! 이렇게 되면 그것을 바라던 영계의 수천억 영인들도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입니다.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까지도제발 승리 하소서. 제발 승리 하소서, 나는 고개를 들고 가지만 엎드려서라도 할 것이요 이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지가 동원될 수 있는 숨 가쁜 찰나가, 이 한 나라를 중심삼고 몇 년 안에 그런 일이 결정되어서 그 결전장에 나아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나이답게, 의의 있게 싸워 가지고 정의에 입각한 하늘의 공신으로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한 때를 표준해서 나왔기 때문에, 이 하나를 다짐시키기 위한 하나의 소원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에서 배척받고, 나라로부터 배척받고, 수많은 교단으로부터 배척받아 나온 것이 아니냐? 하늘이 바라고 역사가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결정적인 그 한날을 위해서 장엄하고 멋지게 승리하라고 수많은 사람들을 억울한 운명 길에서 희생시키며 가게 했던 것이 아니냐? 그것이 우리의 한칼로 말미암아 내가 흘리는 땀과 내가 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연결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실이 아니냐? 그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감촉으로 느낄 수 있고 그것을 활동 무대로 삼아 가지고 싸울 수 있다면 그 이상 보람 있는 인생이 어디 있을 것이냐. 그것을 느껴야 됩니다.

(57.352-353, 1972.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