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희생 - 2. 십자가를 짊: 희생의 죽음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7장 복종과 희생)

철장왕 | 20181106174407

2. 십자가를 짊: 희생의 죽음

 

종교 경전

 

바른 법을 받아들임에서 나는 몸, 생명, 소유물을 포기하고 바른 법을 받들 것입니다.

승만경 3(불교)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베드로전서 3.17(기독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논어 15.8(유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의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물고기를 포기하고 웅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의도 내가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돌을 다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 삶은 내가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삶보다 더욱 심하게 원하는 것, 즉 의가 있기 때문에 구차하게 삶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 한편 죽음은 내가 싫어하는 바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욱 심하게 싫어하는 것, 즉 불의가 있기 때문에 비록 의를 지킴으로써 환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굳이 피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원하는 바에 있어 삶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면 그 삶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반대로, 사람이 싫어하는 바에 있어 죽음보다 더 한 것이 없다면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산다는 경우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또 이렇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는 수가 있다.

그런고로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 심한 것이 있고, 또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고 하겠으며, 이러한 마음은 오직 현자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직 현자는 그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맹자 VI.A.10(유교)

 

말씀 선집

 

하나님이 그걸 원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자기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시키면서 죽음의 길을 자처하는 길로 이 모든 교인들을 내모는 하나의 종교가 나온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를 방어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최후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죽음 길을 자처해 십자가를 진 것처럼 자기를 희생시켜서 가는 길을 자처해 가는 세계적인 하나의 교단이 나오게 되면, 그 교단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가 제일 소망을 갖고 바라볼 것입니다.

(124.299-300, 1983.03.01)

 

이 길은 불평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변명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자기를 세우는 자 후퇴할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길을 예수님이 피 흘리며 가신 십자가의 길, 연장된 골고다의 길인 것을 알았기에 변명할 몸이로되 변명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세워 자랑하고 싶으나 자랑할 줄 모르고, 분함을 알면서도 밟히며 가야 할 길임을 알았사옵니다.

(6.125, 1959.04.12)

 

종교생활은 뭐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적인 기반의 사탄 마귀와 더불어 지옥으로 통하는 길을 갈 것이 아니라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러한 공적인 길에서 천국으로 통하는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과는 다른 생활이념을 지니고 가는 것이 종교인들의 생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공적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적인 일을 위해서는 자기의 나라를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가정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요, 자기의 세계까지 희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권한을 지닌 분이지만 공적 인간을 위해서 역사를 넘고 넘으면서 역사시대의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홀로 겪으면서라도 누구를 탓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것을 감수해 나오는 것입니다. 공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잘했다고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공적인 무엇을 했다고 자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묵묵히 끝까지, 공적인 세계가 완성되기까지 하나님은 공적인 일에 전심하는 분입니다.

(101.146147, 1978.10.29)

 

지금까지는 내 것, 내 것. 돈도 내 것 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어서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전부다... 그 대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일수록 복되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지금 제일 그리운 것이 감옥에서 고문 받아 가지고 피를 토하던 자리입니다.


이놈의 몸뚱이가 사탄의 바위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하나님과 공명해야 될 텐데 바위에 붙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끊을 수 있는 힘을 통일교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행해라, 고행! ? 어째서? 하나님의 공명체가 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102.35-36, 1978.11.19)

 

지금까지의 종교는 뭐냐 하면,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희생의 목적이 뭐냐하면, 구원받기 위한 것인데, 그게 틀렸다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하는 것은 하나님을 해방하고 인류를 해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서 일한다는 말입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악한 종교로 귀결되느냐, 선한 종교로 귀결되느냐 하는 출발점이 바로 이 점에 있다는 것을 오늘날 종교인들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102.234, 1979.01.01)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이런 표어가 필요합니까? 이는 눈물을 흘리되 부모를 대신하여 흘리고, 땀을 흘리되 부모를 대신하여 흘리고, 피를 흘리되 부모를 대신하여 흘리자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죽음의 길을 도맡아서, 하늘을 위하여, 땅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내가 먼저 죽음의 제단에 오르자는 것입니다.

(14.244, 1965.01.01)

 

나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모르고, 밤을 아침같이 새벽같이 느끼면서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놀음 해온 사람입니다. 편안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 죄, 누구보다도 비통한 하나님인 걸 알았기 때문에 내 일신이 갈갈이 찢기는 한이 있고,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이 모든 날아가는 세포는 하나님의 한 점의 세포라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보람 있는 죽음이라고 하면서 죽음 길을 찾아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7.179, 198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