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복종 - 1.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의 순종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7장 복종과 희생)

철장왕 | 20181102201128

순종과 복종

 

세속적 목적과 생활 방식이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 기준에서 계속 격리되면 될수록, 순종 자세가 더욱 절실해진다.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과일을 따먹지 말라는 계명이 내려진 이후, 하나님은 자기 중심적, 인간 중심적 욕망과 배치되는 계명을 계속 견지하였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것은 이슬람에서 특히 강조되는 덕목이다. ‘이슬람 의 의미는 곧 신에의 복종 을 의미한다.

 

복종은 희생을 요구한다. 예수께서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듯이 예수님은 생명을 초월하는 상황에서도 복종을 이행하였다. 복종함은 인간이 좋아하고 편리한 사고방식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에 가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헌제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경험처럼, 복종은 상상활 수 없는 일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순종과 복종 자체는 어떤 상황일지라도 인간과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의 구현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성의 길로 선도하기 위해 특별한 계명을 주신다. 부모는 자녀가 사회에서 성장하여 성현이 될 것을 염원하고 자녀에게 규범을 준수하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그들의 궁극적 목적, 곧 사랑의 실현에 있다. 오늘날 우리의 계명 역시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 실현에 있다.

 

1.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의 순종

 

종교 경전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여 선을 행한다면 주님의 보상이 있으리라. 그들에게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느니라

꾸란 2.112(이슬람)

 

이제, 이스라엘아!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겠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영혼을 다하여서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여호와의 계명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내(모세)가 오늘 너희의 유익을 위해 명령하는 것이다.

신명기 10.12-13(유대교)

 

여호와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번제나 친교제를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같소? 순종하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그분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기름기보다 낫소.

사무엘상 15.22(유대교)

 

수천, 수만으로 드려지는 제의식도 마음을 정하게 하지 못하며,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되는 무아의 황홀경도 또한 그러하다.

온 세상을 다 가진다 해도 타는 욕망과 탐욕을 가시게 하지 못하며,

다함없는 지식도 해탈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면 창조자에게 어떻게 진실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미망의 벽을 허물 것인가?

다만 그의 명령과 뜻을 따르다.

아디 그란트, 자푸지 1.M.1, p.1(시크교)


여러분이 자기를 누구에게나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죽음에 이르는 죄의 종이 되거나 아니면 의로움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부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로움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로마서 6.16-23(기독교)

 

말씀 선집

 

일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생활에 있어서 절대 복종하고, 심정문제에 들어가서도 절대 복종하여 하늘 법도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45.88, 1971.06.13)

 

내가 기원이 아닙니다. 기원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하고 목적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고서 이 세계와 대립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나의 생명은 부모나 사회나 민족, 국가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하나의 기원, 즉 절대자인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동기를 절대적인 입장에 있는 초월적인 동기와 결부시켜야 합니다. 시대적인 인연이라든가, 환경적인 인연, 혹은 사회적인 여건에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초월적인 원인에 결부시키고 초월적인 목적에 결부시켜야만 비약하고 초월하고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36.64, 1970.11.15)


사회생활, 회사에 가도 회사가 왜 이 모양이야? 내 마음대로 하지 미국 자체도 그렇습니다. ‘이거 뭐 수많은 법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도 못 하고 저렇게도 못 하고 이게 뭐야!’ 하며 전부 다 부정합니다. 대통령이 뭐고, 지사고 뭐고... 그렇게 생각하면 종교나 어떤 사회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모든 길은 누구나 다 가는 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고 있는 겁니다.

 

종교의 길을 다릅니다. 종교의 길은 특별한 길입니다. 종교 생활은 이 세계에서 두 세계의 생활을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두 세계를 사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사는 사람으로서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딴 분야의 한 세계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92.298, 1977.04.24)

 

아버님! 이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우주의 중심에 계시고, 높고 지존하신 자리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주체 되시는 아버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사오니 이 먼 거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순리적 노정이 아니라 역리적 노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저희들이 알고 있는 탕감노정과 한스러운 복귀의 길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10.65-66, 198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