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명 성취의 노력과 고난
종교 경전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여호와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다. 날개가 여섯씩 달린 스랍들이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 훨훨 날아다녔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여호와,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그 외침으로 문설주들이 흔들렸고 성전은 연기가 자욱하였다. 내가 부르짖었다.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여 살면서 만군의 여호와,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
그러자 스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뜨거운 돌을 불집게로 집어 가지고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보아라, 이제 너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너의 악은 가시고 너의 죄는 사라졌다.”
그때 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께서 이르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일러라. ‘듣기는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보기는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마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서 성해지면 어찌 하겠느냐?”
이사야 6.1-10(기독교)
여호와여, 주께서는 저를 아시지 않습니까? 저를 잊지 마시고 도와주십시오. 저를 못살게 구는 자들에게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언제까지나 모르는 체 하시다가 이 몸 죽는 모양을 보시렵니까? 제가 주님 때문에 수모를 받고 있는 줄을 알아주십시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는 받아 삼켰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에 흐뭇하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웃으며 깔깔대는 자들과 한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주님 손에 잡힌 몸으로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홀로 앉아 있습니다.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셨습니다.
예레미야 15.15-18(유대교)
타키프가... 부랑배와 노예들을 선동하여 [무함마드]를 모욕하고 비난하였는데, 그때 한 무리의 군중이 다가와 그를 과수원에 피신하도록 하였다...선지자가 안전한 곳에 닿았을 때 그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께 저의 나약함과 자원이 없음과 사람들 앞에서 보잘 것 없음을 호소하나이다. 가장 자비로우신 분이여, 당신은 약자의 주님이요, 따라서 나의 주님입니다. 당신은 나를 누구에게 맡기려 하나이까? 나를 악용하는 자에게 입니까? 아니면 나를 누를 힘을 가진 적들에게 입니까? 만약 당신이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면 저는 근심하지 않겠나이다. 당신의 호의는 내게 더욱 광대한 것입니다. 당신의 노여움과 분노가 나에게 내려지지 않는다면, 어둠이 빛나고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일이 바른 질서를 잡는 당신의 도움에 보호를 구하나이다. 당신의 기쁨이 바로 만족입니다. 당신 외에는 어떤 권능도 없나이다.”
이븐 이사크, 시라트 라술 알라(이슬람)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4-15(기독교)
말씀 선집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소명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명을 따라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소명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겠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충효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40.86, 1971.01.24)
소명의 길을 따라 가는 데는 언제나 내적인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투쟁을 가려 가는 것은 책임자가 잘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책임자가 잘못하면 망하게 되는 거싱ㅂ니다. 책임자가 잘못하면 큰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고, 나쁜 것을 보더라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자기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아 가지고 정부(正否)를 가려 가면서 조심스럽게 나가야 됩니다.
(40.98-99, 1971.01.24)
이제 저희들에게 남아진 우주적인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은 우리가 우주만상의 전체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병들이 되어 온 피조만물을 해방시키고 만인을 기쁘게 해 주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고, 하늘의 명령을 받들어 책임 다 할 수 있고 그 사명감에 취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의 뜻을 이 땅 위에 찾아 세우기 위해서 하늘의 법도를 알고 우주의 싸움의 법도를 알아서 불변의 중심을 대신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과 복귀의 영광이 온 피조만물에 나타날 때까지 저희들은 변할 줄 모르고 쉴 줄 모르고 오직 싸울 줄만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2.181, 1957.04.14)
소명을 받아 가지고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생각해야 될 것은 항상 정성을 들이면서 뜻의 목적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문제를 중심하고 나아가는 선생님의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나 자신도 생각할 수 없는 초조한 자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길을 가야 하는가? 자기 마음에 있어서나 심정에 있어서 욕심을 가지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해보겠다, 내가 무엇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것은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계획대로 되었더라도 이것은 인간적인 시각에서 벌어진 계획이기 때문에 섭리와 상충될 때가 많습니다.
(40.77,1971.01.24)
아버님! 외로운 이 한 자리에 찾아온 당신의 아들 딸들, 이들이 갈 방향을 당신은 알고 있사옵고, 이들이 취하여 나아갈 길도 당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의 마음의 시작도 자기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옵고, 이들의 권고의 자리에 서는 것도 자기를 위함이 아니고, 남을 위하고 아버지를 위함이었을진대, 끝까지 그 심정이 변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6.62, 195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