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과 사명 - 1. 하나님의 소명과 우리의 사명의식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7장 복종과 희생)

철장왕 | 20181031112545
17장 복종과 희생

 

 소명과 사명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엄청난 영적 자각을 경험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언가를 영적으로 간절히 요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기독교 신앙에의 개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그 이상의 사명,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라는 사명을 받았던 것이다. 이 사명의식이 그의 마음에 불타올랐고 이것이 곧 남은 일생 동안 그리스 전역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켰다.거기서부터 그는 자신을 산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치고 하나님의 소명에 복종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성인들과 사도 바울 같은 의인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도구로 쓰셨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명을 띠고 하늘의 이름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신앙인들을 필요로 하신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무함마드의 교우들, 그리고 하늘의 소명에 응답한 후 이를 따라갔던 수많은 신도들까지 모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소명을 받는 자는 도전과 역경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 신성한 목적을 가슴에 품고 뜻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그들은 참고 견딜 수 있었다.

 

1. 하나님의 소명과 우리의 사명의식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1-3(기독교)

 

,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을 돕는 자가 되어라. 마치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하길 누가 하나님을 위해 나를 돕겠느냐.’ 제자들이 말하길 우리가 하나님을 돕겠습니다 라고 말한것처럼.

꾸란 61.14(이슬람) 

 

나 여호와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 주고 너를 세워 인류와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

이사야 42.6-7(기독교)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희 비추었다.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사울아,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도 그 음성은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벙벙해서 서 있기만 하였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못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다마스쿠스에 아나니아라는 제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주께서 신비로운 영상 가운데 나타나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셨다. 아나니아가 , 주님, 말씀하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주께서는 어서 일어나 곧은 거리 라는 동네에 사는 유다의 집으로 가서 다르소 사람 사울을 찾아라. 사울은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손을 얹어 다시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을 신비로운 영상으로 보았다 하고 말씀하셨다.이 말씀을 듣고 아나니아가 주님, 그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사는 주님의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쳤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는 대사제에게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갈 권한을 받아가지고 여기 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주께서는 그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 사람은 내가 뽑은 인재로서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제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할 사람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 그에게 보여주겠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곧 그 집을 찾아가서 사울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하였다. “사울 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사도행전 9.3-18(기독교)

 

게으른 시인, 내가 그대의 부름을 받았도다.

밤낮없이 그대를 찬미하라는 명을 받았도다.

시인은 거룩한 스승의 부름으로

영원한 그의 집에 소환되어 거룩한 찬야양의 옷을 받았으며,

신성한 이름의 거룩한 음식을 대접받았도다.

스승의 인도하심으로 이들을 받음에,

시인의 가슴은 지복으로 충만하였고,

거룩한 말씀을 따라 드높은 찬미를 온 세상에 널리 펼쳐냈도다.

이디 그란트, 바르 마즈, M.1, p.150(시크교)

 

말씀 선집

 

장차 하나님이 이 죄악세계에서 선한 개체를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선의 씨족사회를 세우고, 나아가 선의 봉건사회를 이루어서 선의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선의 판도와 주권을 수립하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또한 이것을 먼저 알아서 그러한 형의 노정을 앞질러 걸어 나온 것이었다.

 

실상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사회에서 선의 중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녀를 번식케 함으로써,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원리강론,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 7.1)

 

하나님의 창조가 그러했듯이, 그의 재창조역사인 구원섭리도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전체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위한 예정에 있어서도, 먼저 그 중심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어떤 사람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본장 제3)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미리 알고 계시는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얻어 영화를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부름 받는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예정론 3.4)

 

타락된 인간은 신령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대개 진리 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 노정을 따라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 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기도로써 신령한 것을 감득할 수 있는 성도들은 새 시대의 섭리를 심령적으로 알게 되므로 낡은 시대의 진리 면에서는 상충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신령을 따라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인류역사 종말론 5.2)

 

하나님이 있다면 미국에, 자유세계에 레버런 문을 그 경계선, 그런 찰나에 보냈다는 것이 지금부터 10년 전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전부 레버런 문의 말을 들어라 이것입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한테 책임 다했느냐 묻게 될 때, 레버런 문의 말이 미국 사람들이 병이 났으니 의사는 외부에서 데려와야 되니 동양에서 레버런 문이 았다 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실감이 납니까. 불이 나면 소방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걸 다 했다는 것입니다. 다 했다 이겁니다.

(123.320, 1983.01.09)

 

하늘은 나를 대하여 요구하고 계신다. 새 세계를 건설하라는 것이다. 이미 저끄러진 사건들을 해결하라는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 내 한 개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인류의 것이요, 세계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인 까닭이다.

 

부족한 민족이요, 부족한 우리들이지만 부르심을 받았다는 황공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국가, 민족을 위해서 자진해 간 사람들도 허락받지 못하였는데, 우리들을 불러서 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과 황공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9.344, 1960.01.30)

 

방대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신임할 수 없는 고독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신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그 이상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 이상 바랄 것이 있느냐 이겁니다. 죽어도 좋다는 겁니다. 내 육신이 물이 되어 흘러간들 무슨 한이 있고, 가루가 되어 날아간들 무슨 한이 있느냐 이겁니다. 세상에는 개돼지처럼 죽어가는 무가치한 인생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62.140, 197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