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를 넘어서 - 2. 시대의 변화에 따라 관습적 예식은 순수한 헌신의 형태로 대체됨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철장왕 | 20181029185343

2. 시대의 변화에 따라 관습적 예식은 순수한 헌신의 형태로 대체됨
 
종교 경전 
  
어느날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예루살렘에서 왔을 때 랍비 여호수아가 그를 따라가 무너진 성전을 보았다. “애통하도다,” 랍비 여호수아는 울부짖었다. “이스라엘이 죄 사함을 받던 이곳이 쓰레기 위에 놓여 있구나!” “나의 자녀여,” 랍비 요하난이 말했다. “슬퍼하지 마라. 성전만큼 우리 죄를 사해 줄 다른 것이 있느니라. 그게 무엇인가? 자애를 베푸는 행위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호세아 6.6) 
탈무드,아보스 드 랍비 나단6(유대교)
 
어느 때 세존께서 사밧티 근처 제타 숲 아니타핀다카 동산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바라문 웃사에 쓰일 오백 마리의 암소와, 오백 마리의 군마와, 같은 숫자의 송아지와 양과 염소들이 말뚝에 매여 있었다. 준비를 마친 바라문 웃가타사리라가 세존께 다가가 절을 하고 예에 따른 인사말을 건넨 후 한 쪽 옆에 앉았다. 그가 세존께 말하였다. “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제단을 쌓는 것은 큰 공덕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스승이시여, 고타마시여 진실로 저는 불을 지피고 제단을 쌓아 올리는 이 제사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스승께서 부디 저의 행복과 자손만대의 복리를 위해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바라문이여! 불을 지피고 제단을 쌓는 이는 희생제의를 드리기 전에 결과적으로 죄악인 세 자루 사악한 검을 세우느니라. 불을 지피고 제단을 쌓는 이는 희생 제의를 드리기 전에 이미 생각하기를 ‘희생 제의를 위해 그와 같이 많은 암소아 군마와 송아지와 염소와 양들을 죽여야겠다’하나니, 공덕을 쌓고자 생각하되 그는 이미 사악한 업보를 쌓고, 선을 행하리라 생각하되 그는 이미 악을 짓고 있으며, 행복에 이르는 길을 구하노라 생각하지만 그는 이미 불행의 길에 들어서 있느니라. 이로써 그는 먼저 이와같이 사악한 생각의 검을 세우게 되느니라. 바라문이여! 희생 제의를 드리기 전에 ‘그와 같이 많은 암소와 군마와 송아지와 염소와 양들을 잡아야겠다.’고 말함으로써 그는 다시 사악한 말의 검을 세우게 되느니라. 게다가 또한 바라문이여! 희생 제의를 드리기 전에 그는 스스로 나아가서 ‘그들을 잡아야겠다’고 말항며 이를 행함으로써 그는 또한 사악한 행위의 검을 세우게 되느니라.
 
‘바라문이여! 이들 세 가지 불이 존중되고 숭상되고 존경될 때, 이들은 필경 최상의 행복을 가져오리라. 그 셋이란 무엇인가? 덕망 있는 자의 불과, 재가자의 불과, 선물을 받을 만한 자의 불이다. 무엇을 일러 덕망 있는 자의 불이라 하는가? 생각하건대, 자신의 부모를 명예롭게 하는 자를 일러 덕망 있는 자의 불이라 하느니라. 생각하건대, 자신의 아들들과 그 외의 식솔들과 하인들, 심부름꾼들을 명예롭게 하는 자를 일러 재가지의 불이라 하느니라. 바라문이여! 생각하건대, 나태와 자만을 버리고 매사에 인내하고 유순한 은둔자들과 신심이 돈독한 이들을 일러 상을 받을 만한자의 불이라 하느니라. 이들 세 가지 불이 존중되고, 숭앙되고, 공경되며, 잘 받들어질 때 이들은 최상의 행복을 가져오리라.“
망굿타라 니카야 4.41-45(불교)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선언한다. 친교제에다가 번제를 보태어 바치고 그 고기를 처먹어라.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데려 내올 때, 내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라고 한 번이라도 시킨 일이 있더냐? 나는 내 말을 들으라고만 하였다. 그래야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다. 잘되려거든 내가 명하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나의 말을 듣기는 커녕 제멋대로 악한 생각에 끌려 나에게 등을 돌리고 나를 외면하였다. 
예레미야 7.21-24(유대교)
 
어떤 장소에서나 나의 이름으로 제물은 태워서 바쳐진다.(말라기 1.11) “‘어떤 장소에서든지!’ 이 말이 가능한가?“ 랍비 요나단의 이름으로 랍비 사무엘 벤 나마이가 말하였다. ”이 말씀은 어떤 곳에 있든지 토라 연구에 자신을 몰두시키는 학자들을 언급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것을 그들이 내 이름으로 제물을 바치고 태우는 것으로 간주한다.’“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아! 여호와의 집에서 밤새워 모시는 사람들아! 모두들 여호와를 찬양 하여라.” (시편 134.1) “밤새워 모시는 자들아‘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랍비 요하난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밤을 새워가며 율법 연구를 하는 데 자신을 바치는 학자들을 언급한 것이다. 성서는 그것을 그들이 성전 봉헌에 종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탈무드, 메나호트 110a(유대교)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거쳐서, 오직 한 번 지성소에 드러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여 주셨습니다.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해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 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서서, 직무를 행하고, 똑 같은 제사를 거듭 드리지만, 그러한 제사가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려고, 오직 한 번으로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 아래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한 번 자기를 바치심으로서 거룩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셔서 그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도 우리에게 증언하여 주십시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그날 이후에, 내가 그들에게 세워 줄 언약은 이것이다. 나는 내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다가 주고, 그들의 생각에다가 새겨 줄 것이다.” 그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난 그들의 죄아 그들의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죄와 불법이 용서되었으니 죄를 사하는 제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히브리서 9.11-14. 10.11-18(기독교)
 
다섯 가지 위대한 제물, 숭고한 제의식이 있나니, 그것은 만물을 위한 제물, 인간을 위한 제물, 조상을 위한 제물, 신을 위한 제물, 브라흐만을 위한 제물이다. 날마다 일체중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것, 그것은 만유에 대한 제물이다. 매일 손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 그것은 사람에 대한 제물이라 하나니, 물 한 잔을 마시게 하는 것도 이에 속한다. 날마다 제사에 필요한 공물을 마련하는 것, 그 것은 조상에 대한 제물이라 하나니, 물 한잔 떠받드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날마다 신에게 오물을 드리는 것, 그것을 일러 신에 대한 제물이라 하나니, 땔나무를 마련하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브라흐만에 대한 제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날마다 행하는 거룩한 학습을 말한다. 
사타파타 브라흐마나 11.5.6.1-3(힌두교)
  
말씀 선집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은 양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을 씻어야 됩니다. 표백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표백할 수 있는 수고, 표백할 수 있는 재료가 절대 필요합니다. 탕감조건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를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제물이 뭐냐 하면 탕감조건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개한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서 제물로 삼고, 동물을 제물로 삼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전부가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보호를 받고 살 수 있는 물건들, 그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과 더불어 동화돼서 살 수 있는 이 세계 가운데 모든 무리들이 피를 흘려야 됩니다.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겁니다. 피가 뭐냐 하면,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핏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피가 더렵혀졌기 때문에 피를 뽑아야 됩니다. 
(374.21.2002.04.04)
  
인간시조가 타락하여 ‘믿음의 기대’ 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게 됨으로 말미암아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말씀 대신의 조건물로 세운 것이 제물이었다. 그런데 모세 때에 이르러서는 제물을 조건물로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던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지나가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할 수 있는 복귀섭리시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위한 ‘상징헌제’는 필요 없게 되었던 것이다. 
 (원리강론, 모세와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2.1.1.2)
 
종교를 통일해야 됩니다 기독교가 교파가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파를 전부 불살라야 됩니다. 간판을 떼어비리고, 기독교의 십자가를 다 떼어버려야 됩니다. 그 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399.100-101, 200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