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과 십일조 - 2. 십일조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훈독왕 | 20181014085308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2. 십일조

 https://www.youtube.com/watch?v=Ni7w28BZfcQ&feature=youtu.be

 
종교 경전 
  
땅에서 나는 곡식이든, 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든, 땅에서 난 것의 십분의 일은 여화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바칠 거룩한 것이다. 
레위기 27.30(기독교)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만일 제가 이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여 주시고 저를 짘켜 주셔서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고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만 하여 주신다면, 저는 여호와님을 제 하나님으로 모시고 제가 세운 이 석상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그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창세기 28.20-22(기독교)
 
소든 양이든 목자가 지팡이로 거느리는 모든 짐승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께 거룩한 것으로 바쳐야 한다. 좋고 나쁜 것을 고르지 못하고 바꾸지도 못한다. 그것을 기어이 바꾸려고 하면 그 바꾸려는 것 둘이 다 거룩한 것이 되어 물러낼 수 없게 되리라. 
레위기27.32-33(기독교)
 
너희는 나를 속이면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속이다니요? 어떻게 하나님을 속이겠습니까?’ 하는구나.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바친다고 하면서도 그대로 바치지 않으니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 이 천벌 받을 것들아. 너희 백성은 모두 나를 속이고 있다. 너희는 열의 하나를 바칠 때 조금도 덜지 말고 성전 곳간에 가져다 넣어 내 집 양식으로 쓰게 하여라. 그렇게 바치고 나서 내가 하늘 창고의 문을 열고 갚아주는지 갚아주지 않는지 두고 보아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말라기3.8-10(기독교)
  
아들은 아비를 어렵게 알고 종은 주인을 어렵게 아는 법인데 나를 아비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를 주인으로 어렵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 사제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다.’ 그랬더니, 너희는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너희는 제단 위에 더러운 빵을 바치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제단을 더럽히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여화와의 제사상쯤이야 아무러면 어떠냐고 하는구나.
눈이 먼 짐승을 제단에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는 말이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너희는 내 제단에 공연히 불을 피운다. 그러지 못하도록 아예 문을 닫아걸었으면 좋겠구나. 너희가 하는 짓이 나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말라기1.6-11(기독교)
  
말씀 선집 
  
십일조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제물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전체를 바친다는 뜻을 지닙니다. 아버지께 전체를 바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를 정성들여 바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를 바침으로써 남은 아홉도 거룩한 물건으로 취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바치며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창고가 불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1.240,1970.06.04)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시간까지도 십일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150.219,1961.04.15)
 
한국 백성으로 태어났으면 이 나라 앞에 세금을 바칩니다. 이 나라에 세금을 바치고, 그 다음에는 하늘에 십일조를 냅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자기 나라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사장, 레위 족속을 위해서, 제사장으로 세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수로서 주는 것입니다. 
(150.219-220,1961.04.15)
 
십일조는 모든 면에 있다. 학교도 열 교실 중에 한 교실은 불쌍한 자녀들을 위한 무료봉사의 교실로 써야 한다. 
 (뜻길.p.340)
 
십일조라는 것은 제일 정성을 들인 숫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물입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면 어떤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되겠습니까? 미운 아들? 소망이 없는 아들? 그런 아들은 제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아들이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제물은 ‘나’ 대신이기 때문입니다. (48.85,1971.09.05)
  
자기가 쓰는 돈 중에 얼마를 헌금해서 그것으로 교회가 지탱된다는 것은 지극히 좋은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지극히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생활보다도, 자기 전체보다도 먼저 해야 될 텐데, 그거 몇 퍼센트 바친다는 관념으로 인하여 자기 생활이 위주요. 하나님이 다음단계에 서는 것이 상습화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둘째가 되면 맨 꼴찌가 되어버립니다.
  
우주를 창조하고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에게 교인들이 푼돈이나 내는 걸 보고, 거지한테나 던져주는 그런 돈을 좋아하면서 ‘너희들은 사랑스런 종교인이다’하며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사탄 앞에 위신이 서겠습니까? 안 섭니다 헌금 바구니를 돌리면서 돈을 받는 것은 간판 붙은 거지의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96.101,197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