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의도 - 2.예배의 기준으로서 성실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훈독왕 | 20181010085903

2.예배의 기준으로서 성실



종교 경전 
  
형태에 따라 상을 반영하는 깨끗한 거울처럼 붓다의 축복의 나라로부터 보상은 우리의 심정에 따라 얻어진다. 
대방광불화엄 10(불교)
 
수행승들이 점심식사 전에 그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을 때 세이료의 위대한 호겐께서 대나무밭을 가리켰다. 두 수행승이 동시에 가서 두 개의 발을 말아 올렸다.
호겐께서 말했다. “한 사람은 얻었고 한사람은 잃었다.”
무몬이 주석한다. “나에게 말하시오. 누가 얻었고 누가 잃었소? 만일 그대가 그 비밀을 꿰뚷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그 스승이 틀린 곳을 알 수 있을 것이요. 그러나 내가 강력하게 경고하건대 얻음과 잃음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마시오.” 
무문관 26(불교)
 
행위는 다만 의도의 산물이니 모든 사람은 그가 의도한 대로 행하도다. 그리하여 알라와 그의 사도에게 향하고자 하는자. 그의 이동은 알아와 그의 사도를 향하게 되고, 세속적 이득을 취하고 여자와의 결혼을 탐하는 자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 
알나와위 하디스 40선1(이슬람)
  
다르마는 더러움이 없으며 모든 오염에서 벗어나 있다. 설사 열반이라 할지라도 어떤 것에 집착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얼룩에 관심이 있다. 다르마는 어떤 대상이 아니다. 다르마를 하나의 대상으로 추구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에 관심이 있다….다르마는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다. 그것을 안전한 피난처로 향유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피난처에 관심이 있다. ….다르마는 교제가 아니다. 다르마와 관계하고자 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제에 관심이 있다. 
유마경6(불교)
  
말씀 선집 
  
여러분들은 여기에 왜 앉아 있습니까? 내가 좋은 말씀듣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앉아 있습니까, 미국을 훌륭하게 만들고 교회를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앉아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두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라고 해야 옳은 말이지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두 번째로 하지, 웃는 것을 보니 그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118.46,1982.05.02)
 
오늘날 자체 이익을 위하여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복받겠다고 믿는 사람들을 복 받으면 하나님 그만 믿는다는 겁니다. 복 받는 것이 목적 아닙니까? 좀 잘 살면 그 다음에 다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계에 복을 주겠다고 하면서 믿어야 됩니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127.27,1983.05.01)
 
영계가 보면 옛날에 순교한 신도들 가운데 ‘내가 이렇게 순교해야만 천당에 갈 수 있지’ 했던 사람들은 천당에 못 갔더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아버님께서 나를 찾아오기 위해 수난 길을 걸으셨고, 피를 흘렸고, 주님께서도 이와 같이 희생하고 갔으니, 나는 천만분의 일이라도 그 분의 은덕을 갚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이라도 가겠다.’고 하면서, ‘그 은덕을 갚을 수 있는 지리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의 한 때를 맞은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면서 죽은 사람은 영락없이 천국에 갔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를 위해 죽은 것입니까? 자기를 위해 죽었습니까, 남을 위해 죽었습니까? 하늘땅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믿고 죽어야 천당가지’ 이것은 누구를 위해 죽은 것입니까? 자기를 위해 죽은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를 주장해서는 절대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41.355,1971.02.18)
 
여러분에게 ‘정성을 들여라, 정성을 들여라!’ 하는데, 왜 그러냐? 정성을 들일 때는 자기 하는 일을 가지고 정성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게 되면, 하나님이 세계에 햇빛을 수평으로 비추려고 하는데 수평으로 비추지 말고 내게로만 비추어 달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기도한다는 마음을 언제나 가지고 정성 들여야 됩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정성들이는데, 하나님이 자신이 지금 역사를 통해서 얼마나 정성을 많이 들였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308. 200-201, 1999.01.05)
 
하나님의 슬픔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고통 받을 때 같이 고통 받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인류를 붙안고 나오시는 하나님은 혼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혼자 억울함을 당하고 혼자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통 당할 때 그 고통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슬픔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고통이 심했고, 슬픔이 심했습니다. 
(11.95-96, 1961.02.12)
 
아버님의 마음을 저희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의 사정으로, 아버지의 소원을 저희의 소원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저희의 원수로, 아버님의 이 싸움을 저희의 싸움으로 하여서 아버지의 소원을 성취해 드릴 수 있는 승리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5.213, 2959.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