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의도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훈독왕 | 20181008093722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순수한 의도

https://youtu.be/QVhONitBqyU 


섬김의 뿌리는 심정에 있다. 섬김의 행위로 우리를 이끄는 의도가 바로 섬김의 가치를 결정한다. 처음에는 신앙과 복종이 외적인 형태로만 표현되지만, 결국 본래의 내면적 의도는 외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에는 순수한 심정과 신실한 마음이 요구된다.
 
속세에서 삶도 우리의 의도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전에 다가가 ‘누가 주의 언덕을 오르겠는가?’ 라는 성가를 부를 때 그들은 말하였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그들은 도덕적으로 정의롭게 살라는 하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았다고 말이다. 언제나 순수한 의도에서 하나님 섭리를 세속적 관심보다 우선적으로 섬길 때 마음의 순결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마음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에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이바지하겠다는 순수한 의도를 지닐 때 우리는 하나님과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며 천문이 개문된다. 순결한 정성의 반대 개념의 이해를 위해서 제15장 ‘위선’ 을 참고하라 . 정성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12장 ‘정성과 성실’ 을 참고하라.
  
1.마음의 순수와 성실

  
종교 경전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태복음5.8(기독교)
 
사람은 지성의 순수함을 통해 청정하게 된다. 그 후 명상 중에 그는 부분 없는 ‘그’를 본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3.18(힌두교)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랴? 어떤 사람이 그 성소에 들어서랴?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허망한 데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 아니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 하나님께 구원 받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며 야곱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다. 
시편2.4.3-6(기독교)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내 앞에 나아오는 그대들은 모두 거짓 없이 순하고, 안팎으로 정결하고 거울처럼 진리를 반영하는 마음으로 기원해야 한다. 
텐만구 신사의 신탁(신도)
 
비록 내가 벌겋게 단 철공밖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해도, 깨끗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치는 제 아무리 거창한 공양물이라도 결코 나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비곡 내가 구리를 녹인 만한 뜨거운 불 위에 않을망정 더럽혀진 마음을 가진 사람의 처소는 결코 찾지 않으리라. 
하치만 신사의 신탁(신도)

  
나의 형제여! 순결한 마음은 거울과 같으니, 사랑의 빛과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의 절연으로 그것을 깨끗이 하여라. 그래야 참된 태양은 그것 속에서, 그리고 영원한 아침의 여명 속에서 빛날 수 있느니라. 
일곱 골짜기와 네 골짜기, 2.1(바하이교)

  
성실(이흐산), 너희가 하나님을 경배할 때 너희가 그분을 보는 것처럼 하라. 비록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분이 너희를 보리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2(이슬람)

  
성실함(마카토)은 신의 마음이다. 따라서 신에게 예배드릴 때 만일 우리가 성실한 마음을 지닌다면 신은 확실히 응답할 것이다. 
가이바라 에켄, 신기훈(신도)

  
주 하나님을 따르려 하는 자는 사소한 문제에 걱정할 시간이 없다. 창조자 하나님을 늘 섬기려 할 때 허영은 끼어들 시간조차 없다. 
이스라엘 바알 셈토브(유대교)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요한계시록3.15-16(기독교)
  
말씀 선집 
  
복의 영원한 고향은 하나님의 심정이므로 하나님의 심정의 안식처를 마련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곳에 하나님의 복이 운행한다. 
(뜻길,p.213)
  
하나님은 정성 안 들인데는 움직이지 않으신다. 
(뜻길,p.23)
  
그리스도를 멀리하고 자신을 위하여 사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2.300,1957.06.30)
 
극복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은 수단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슨 재간 가지고도 안됩니다. 오직 정성으로만 극복할 수 잇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얼마만큼 정성을 들여 모셔봤느냐? 얼마만큼 정성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워 했느냐. 얼마만큼 정성들이는 감동을 통해서 느끼려고 했느냐, 또 그러한 체휼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42.228,1971.03.14)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내 할 일은 내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전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그것이 산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104. 112, 1979.04.15)
  
앞으로 참된 아들딸들이 들여야 할 정성은 어떤 정성이냐? 현실적인 생활 무대에서의 정성이 아니라 소망의 정성, 영광의 정성, 충성의 정성, 모심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한 정성을 남기고 가야만 천국이 내 천국이 되고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7.245.1967.01.29)
  
어떤 주의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혹은 어떤 사랑을 위하여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일으키는 진리를 찾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천륜과 아무런 가치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핵심을 찾아들어가 6천년동안 선조들로부터 죄악의 혈통을 통하여 이어받은 더렵혀진 마음을 다시 씻어내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러분들은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2.194.1957.05.19)


2.예배의 기준으로서 성실

  
종교 경전 
  
형태에 따라 상을 반영하는 깨끗한 거울처럼 붓다의 축복의 나라로부터 보상은 우리의 심정에 따라 얻어진다. 
대방광불화엄 10(불교)
 
수행승들이 점심식사 전에 그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을 때 세이료의 위대한 호겐께서 대나무밭을 가리켰다. 두 수행승이 동시에 가서 두 개의 발을 말아 올렸다.
호겐께서 말했다. “한 사람은 얻었고 한사람은 잃었다.”
무몬이 주석한다. “나에게 말하시오. 누가 얻었고 누가 잃었소? 만일 그대가 그 비밀을 꿰뚷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그 스승이 틀린 곳을 알 수 있을 것이요. 그러나 내가 강력하게 경고하건대 얻음과 잃음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마시오.” 
무문관 26(불교)
 
행위는 다만 의도의 산물이니 모든 사람은 그가 의도한 대로 행하도다. 그리하여 알라와 그의 사도에게 향하고자 하는자. 그의 이동은 알아와 그의 사도를 향하게 되고, 세속적 이득을 취하고 여자와의 결혼을 탐하는 자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 
알나와위 하디스 40선1(이슬람)
  
다르마는 더러움이 없으며 모든 오염에서 벗어나 있다. 설사 열반이라 할지라도 어떤 것에 집착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얼룩에 관심이 있다. 다르마는 어떤 대상이 아니다. 다르마를 하나의 대상으로 추구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에 관심이 있다….다르마는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다. 그것을 안전한 피난처로 향유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피난처에 관심이 있다. ….다르마는 교제가 아니다. 다르마와 관계하고자 하는 자는 다르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제에 관심이 있다. 
유마경6(불교)
  
말씀 선집 
  
여러분들은 여기에 왜 앉아 있습니까? 내가 좋은 말씀듣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앉아 있습니까, 미국을 훌륭하게 만들고 교회를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앉아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두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라고 해야 옳은 말이지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두 번째로 하지, 웃는 것을 보니 그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118.46,1982.05.02)
 
오늘날 자체 이익을 위하여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복받겠다고 믿는 사람들을 복 받으면 하나님 그만 믿는다는 겁니다. 복 받는 것이 목적 아닙니까? 좀 잘 살면 그 다음에 다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계에 복을 주겠다고 하면서 믿어야 됩니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127.27,1983.05.01)
 
영계가 보면 옛날에 순교한 신도들 가운데 ‘내가 이렇게 순교해야만 천당에 갈 수 있지’ 했던 사람들은 천당에 못 갔더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아버님께서 나를 찾아오기 위해 수난 길을 걸으셨고, 피를 흘렸고, 주님께서도 이와 같이 희생하고 갔으니, 나는 천만분의 일이라도 그 분의 은덕을 갚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이라도 가겠다.’고 하면서, ‘그 은덕을 갚을 수 있는 지리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의 한 때를 맞은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면서 죽은 사람은 영락없이 천국에 갔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를 위해 죽은 것입니까? 자기를 위해 죽었습니까, 남을 위해 죽었습니까? 하늘땅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믿고 죽어야 천당가지’ 이것은 누구를 위해 죽은 것입니까? 자기를 위해 죽은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를 주장해서는 절대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41.355,1971.02.18)
 
여러분에게 ‘정성을 들여라, 정성을 들여라!’ 하는데, 왜 그러냐? 정성을 들일 때는 자기 하는 일을 가지고 정성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게 되면, 하나님이 세계에 햇빛을 수평으로 비추려고 하는데 수평으로 비추지 말고 내게로만 비추어 달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기도한다는 마음을 언제나 가지고 정성 들여야 됩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정성들이는데, 하나님이 자신이 지금 역사를 통해서 얼마나 정성을 많이 들였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308. 200-201, 1999.01.05)
 
하나님의 슬픔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고통 받을 때 같이 고통 받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인류를 붙안고 나오시는 하나님은 혼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혼자 억울함을 당하고 혼자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통 당할 때 그 고통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슬픔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고통이 심했고, 슬픔이 심했습니다. 
(11.95-96, 1961.02.12)
 
아버님의 마음을 저희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의 사정으로, 아버지의 소원을 저희의 소원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저희의 원수로, 아버님의 이 싸움을 저희의 싸움으로 하여서 아버지의 소원을 성취해 드릴 수 있는 승리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5.213, 2959.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