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랑을 위하는 신부로서 하나님에의 헌신
종교 경전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 사랑하는 임 그리워 애가 탔건만, 찾는 임은 간 데 없어 일어나 온 성을 돌아다니며 이 거리 저 장터에서 사랑하는 임 찾으리라 마음먹고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하였네.
성 안을 순찰하는 야경꾼들을 만나 “사랑하는 나의 임 못 보셨소?” 물으며 지나치다가 애타게 그리던 임을 만났다네.
나는 놓칠세라 임을 붙잡고 기어이 어머니 집으로 끌고 왔다네.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던 바로 이 방으로 들어왔다네.
아가 3.1-4 (유대교)
내 손에 거울처럼,
내 머리에 꽃처럼,
내 눈에 코흘처럼,
내 입에 땀불처럼,
내 가슴에 사향처럼,
내 목에 목걸이처럼,
내 육신에 황홀경처럼,
내 가정에 사랑처럼,
새에게 날개처럼,
물고기에게 물처럼,
생물에게 생명처럼,
당신은 바로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말하소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실로 당신은 누구입니가?
비디야파티가 말하노니, “그들은 서로입니다.”
비디야파티(힌두교)
거룩한 어머니 주 없이 어찌 사오리까?
만유의 주 당신에게 영광의 있기를!
내가 당신을 찬양하나니
당신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나이다.
신부는 주를 애타게 갈망하여
온 밤을 깨어 그를 기다립니다.
내 가슴을 사로잡은 주,
그만이 나의 고뇌를 헤아려 아나니,
주 없는 내 영혼은 괴로움과 고통 속에 있나니,
그의 말씀 구하고 그의 밭에 닿기를 원하옵니다.
주여, 자비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품에 들게 하소서.
아디 그란트, 사랑, M.1.p. 1232(시크교)
나의 임이 속삭이는 소리,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자, 겨울은 지나가고 장미는 활짝 걷혔소. 산과 들엔 꽃이 피고 나무는 접붙이는 때 비둘기 꾸르륵 우는 우리 세상이 되었소. 파란 무화과 열리고 포도 꽃향기가 풍기는 철이오.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나와요.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바위 틈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벼랑에 몸을 숨긴 비둘기여, 모습 좀 보여줘요. 목소리 좀 들려줘요. 그 고운 목소리를, 그 사랑스런 모습을.”
아가 2.10-14(유대교)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시게 되어 식사하실 때에 한 여인이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향유를 에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이들 몇이 분내어 “왜 이렇게 낭비하는 가? 이 향유를 팔면 삼백 데라리온 이상을 받을 수 있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 텐데...” 하고 서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나무랐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만두어라. 왜 그녀를 괴롭히느냐? 그가 내게 한 일은 아름답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있지를 않을 것이다. 이 여인은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계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일도 전해져서 이 여인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4.3-9(기독교)
오 라마여!... 나는 그대와 더불어 있기를 간구합니다! 설사 내가 호화로운 수레를 타고 그대 가가이에서 이제 더 이상 쉴 수 없다 해도, 그대를 따라감에 아무런 피곤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와 함께 있다면 쿠샤 풀도, 거친 갈대도, 억새풀, 가시 돋친 찔레덤불이라도 양털처럼 포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나를 뒤덮는 흙먼지도 전단향보다 감미로울 것입니다.
오 경애하는 나의 주여! 풀을 깔고 그대 옆에 누워 잠들 때 비단금침도 부럽지 않나니, 무엇이 나에게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나뭇잎이나 풀뿌리, 나무 열매들, 그것이 무엇이든 적거나 많거나 간에 그대의 거룩한 손으로 거두어 몸소 나에게 주시는 것들은 불로불사의 감로처럼 감미로운 것입니다!... 그대와 함께 있는 곳, 그곳이 곧 천계이며, 그대를 떠나 사는 곳, 그곳이 곧 지옥이라 할 것이니, 이보다 더한 진리는 없는 줄로 압니다!
라마야나 아요드야 칸다 30(힌두교)
말씀 선집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내 몸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내 심정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본연의 세계는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 할지라도 남편이 부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해서 부인이 그 남편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부인이 하나님을 남편보다 더 사랑한다고 해서 왜 하나님을 나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사랑, 어떠한 내용을 초월한 주체적인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내 몸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몸둥이의 영원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품, 그 동산에 있으면 죽어도 좋은 것입니다. 내 마음의 영원한 주인, 내 심정의 영원한 주인이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7.255. 1959.9.20)
여자들의 소망은 그렇잖습니까? ‘저 남자면 나는 죽어도 좋다’ 할 수 있는 남자를 얻게 되면 천하에 무엇도 필요 없습니다. 못 먹어도 그만, 잘 먹어도 그만, 울어도 그만, 죽어도 그만입니다.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최고 욕망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인데, 이 사랑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이 우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왕의 왕권을 갖는 것입니다. 왕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전부 욕심을 부여한 것은 그 목적을 만민 공통으로 부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연적 이상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은 자연적 이치입니다. 그러니 그게 우리가 자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다 이겁니다.
신인애,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이, 종횡이 하나 되느냐? 하나님은 수직적인 사랑입니다. 수직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승천한 이후에 성신이 왔습니다. 성신은 어머니 사랑입니다. 기독교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종교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만나기 위해서는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권을 이겨야 됩니다.
그런데 종교가 얼마나 희생을 많이 당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평면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것이 지상천국, 재림이상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재림주를 보내서 중심으로 세워 가지고 횡적으로 판도를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이중으로 되는 것입니다. 완성한 이중적 모든... 몸 마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되는 것입니다. 남자의 몸과 여자의 마음이 상대를 이뤄 가지고 천지조화의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심으로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252.120-121, 1993.11.14)
타락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정을 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을 논하지 못하는 것이 타락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들딸을 대할 수 있는 심정은 갖고 있지만, 그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그 사람들을 찾아 세우는 역사를 하시는데, 그것이 구원역사요, 그 사람들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보내심을 입은 자가 구주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망하기 전에 하나님의 심정을 바라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심정을 바라기 전에 내 한 자신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먼저 모시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높고 귀한 것을 대하여는 머리를 숙이고 그리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했을망정 높고 귀한 하늘의 심정을 대하여 모시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지음 받은 인간의 본연의 심정입니다. 따라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모심의 생활을 해보지 못한 자는 천국과 하등의 인연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291, 1960.2.14)
아버지 오늘 아버지의 심정동산에서 저희들의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모든 생각이 움직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심정은 무한한 사랑의 심정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심정은 무한히 슬픈 심정이옵고, 무한한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한없이 슬프신 아버님, 한없이 수고하신 아버님, 지금도 한없이 마음을 졸이시는 아버님, 그 아버님이 창조주이시고, 그 아버님이 온 만상의 주인공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이 당하시는 그 한없이 슬픔이 저희 가슴에 스며들게 하여 주시옵고, 한없는 분함과 원통함이 저희의 심중에 흘러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체휼한 자, 몸 둘 곳을 몰라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슬픔에 잠기게 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을 수습할 수 없어 하늘인지 땅인지 모르는 채 통곡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정성을 다하고 이 몸 마음을 다 드려 그 심정 앞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는, 인정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하늘이 어떠한 물질을 주는 것을 원치 아니하옵고, 사정을 알아주는 것을 원치 아니하옵고, 은혜를 주는 것을 원치 아니하옵니다. 그보다는 은혜를 주신 후에 연락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그 내정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슬펐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고통의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8.262, 196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