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각화와 환상
종교 경전
안개, 연기, 태양, 불, 바람, 개똥벌레들, 번개, 수정, 달, 이것들은 브라흐만의 현현이 일어나는 전조들이다.
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2.11(힌두교)
그때 부처께서 바이데히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부인이여, 그대와 중생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여 서쪽을 생각하시오. 어떻게 관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모든 중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 아니고 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해가 지는 것을 볼 것이니, 단정히 앉아서 서쪽을 똑똑히 보도록 하시오. 그러고 나서 해를 명상하기 위해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곧 지려는 해가 마치 서쪽하늘에 매달린 북과 같음을 보도록 하시오. 그래서 해를 보고 난 후에도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그 영상이 한결같이 분명히 보이도록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일러 해를 관하는 일상관이라 하며 또한 첫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다음에 물을 생각하시오. 물이 맑아서 투명함을 생각하여 그 영상이 분명하게 남아서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물을 보았으면 다음에 얼음을 생각하시오. 그 얼음이 투명하게 비침을 보고 나서 다시 유리를 생각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 생각 다음에는 유리로 된 땅의 안팎이 환히 꿰둟어 비침을 생각하시오. 그리고 그 밑에는 금강과 칠보로 된 황금의 기둥이 유리 같은 대지를 팔방으로 받치고 있습니다. 또한 그 황금의 기둥은 팔모로 이루어지고 그 낱낱의 면마다 백 가지 보배로 구며져 있으며, 알알의 보배구슬에서는 일천 가지 광명이 빛나고, 그 한 줄기의 광명마다 팔만 사천의 빛이 있어 유리의 대지에 비치는 것이 마치 억 천의 해와 같이 빛나서 눈이 부시어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광명탑 위에는 온갖 보배로 된 천만의 누각이 있으며, 광명탑의 양편에는 각기 백억의 꽃송이로 꾸며진 화려한 깃발과 헤아릴 수 없는 악기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찬란한 과염ㅇ에서 저절로 여덟가지 맑은 바람이 일어나서 무량한 악기를 울리면, 그 선율은 자연히 인생의 진리를 아뢰어, 괴롭고 공허하고 무상하고 무아한 소리를 연주합니다. 이와 같이 분명히 생각하고 보는 것을 일러 물을 생각하는 수상관이라 하며 둘째관이라 합니다.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그 영상이 흩어져 스러지지 않도록 하여 다만 잠잘 때 외에는 항상 이 일을 기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생각하면 극락세계를 대강은 보았다고 하겠으나, 더욱 깊이 관조하여 마침내 삼매를 얻으면 실제로 저 극락세계를 분명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갖추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일러 땅 생각하는 지상관이라 하며 셋째 관이라 합니다. 관무량수경 9-11(불교)
내가 나의 환상 추구를 시행하기 전에 오이니카가 막사, 이니피, 정화의 집에서 나 자신을 정화해야 했다. 굿 랜스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돌에 들소뿔 국자로 얼음처럼 찬 물을 퍼부었다. 아주 큰 ‘쉿’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순식간에 자욱한 마른 흰 증기에 휩싸였다. 굿 랜스가 기도했다.
그는 옛날 말을 사용했다. “이 증기는 우주의 거룩한 숨결이다. 얘야, 혹실리야, 너는 다시 네 어머니의 자궁에 있다. 너는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우리 수우족이 대초원을 방랑하던 그 시대로 들어가서 매우 오래된 노래 두 곡을 불렀다. 갑자기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지혜로 인해 슬기로워지는 것 같았다.
나의 친족인 이 사람들이 큰 소리로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오두막집이 거대한 손에 잡혀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그것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떨고 있었다. 우리 밑에 있는 대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조상님이 여기 계셔”라고 굿 랜스가 말했다. “영혼들이 여기에 있다. 독수리의 지혜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믿었다. 담뱃대가 건네졌다.
우리는 네 차례 담배를 피웠다. 마지막 담뱃대가 돌아간후에 굿 랜스가 내게 말했다. “혹실라야, 너는 정화되었다. 너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너는 지금 준비되었고 거기에 올라가 굼을 소리쳐 부를 만큼 강하다.
우리의 환상 구덩이는 땅에 파인 L자 모양의 구덩이이다. 그것은 먼저 곧바로 내려가고, 나무의 부리 아래로 깊숙이 짧은 수평적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너는 그 통로의 끝에 앉아 금식을 한다. 성인은 어디에서나 하루에서 나흘까지 금식을 한다. 내 경우에는 내가 이틀 낮 이틀 밤 동안 음식이나 물을 먹지 않고 홀로 거기에 머무르도록 결정되었다.
처음 몇 시간이 가징 힘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쥐죽은 듯한 고요 속에 나는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 앉아 있었다. 팔과 다리가 마비되었다. 나는 듣거나 보거나 느낄 수 없었다. 내 영혼은 육체에서 거의 이탈되어 기억과 산만과 생각을 가졌으나 살도 뼈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다시 보고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에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시간 감각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낮인지 밤인지 몰랐고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 나는 기도를 하고 또 했다.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을 마시고 싶었으나 계속해서 기도했다. 대략 추측컨대 두 번째 날 저녁이 될 무렵, 나는 내 눈앞에 있는 바퀴들을 보았다. 하나의 불타는 듯한 둥근 테를 이루었다가 다시 찬란한, 많은 색깔의 원형들로 갈라지고, 내 눈앞에서 춤추듯 너울거리고, 다시 하나의 입과 두 눈을 가진 원형, 하나의 큰 원형으로 뭉쳐졌다.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으로부터의 목소리, 그것은 묶여 있는 내 안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처럼 말하는 새 소리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었다. “그 둥근 테를 기억하라. 오늘 밤 우리가 너를 가르칠 것이다”라고 그 목소리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조그만 환상 구덩이를 걸어 다니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나는 구덩이를 나와서 다른 세계, 사슴과 들소 때가 노니는 야생 화초로 덮여 있는 대 초원의 정화의 집 앞에 서 있었다.
한 남자가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발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손에 딸랑거리는 두 개의 방울을 가지고 나를 향해 안개 속을 부유하여 날아왔다. “얘야, 네 부족에게 무엇을 말하든지 간에 과장하지 말라. 항상 너의 환상이 네게 말한 것을 말해라. 결코 속이지 말라”라고 그는 말했다. 그 사람은 깃털로 장식된 구형의 수사슴 가죽 옷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나의 별무늬 누비 이불속으로 돌아올 때, 돌과 담배 끈으로 된 약품 꾸러미를 꼭 붙들고 그 사람을 만지려고 손을 뻗쳤다. 여전히 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 둥근 테를 기억하라.” 나는 더 이상 겁내지 않았다. 누가 내게 말하고 있든지 간에 해롭지 않았다.
갑자기 번개를 동반한 숯처럼 새까만 구름이 내 앞으로 뻗쳐 왔다. 그 구름은 더 넓게 확산되었다. 그것에서 날개가 돋아나더니 그것은 독수리가 되었다. 그 독수리는 내게 말했다. “내가 네게 힘을 준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네 부족을 위해 사용해라. 이것은 네 것이 아니고 부족 공통의 것이다.” 나는 회색 말을 타고 나를 향해 오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샐비아로 만들어진 둥근 테를 한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안개 속에서 머리칼과 말뚝으로 덮여 있으나 형체가 확실하지 않은 이상한 생물이 부유해 왔다. 그는 내게서 내 약품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나는 그와 맞붙어 싸워 그것을 지켰다. 그는 내 약품을 빼앗지 못했다. 그 사람 또한 사라졌다.
갑자기 누군가 나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얘야, 일어나라.” 나의 아버지와 아저씨가 내게 와 있었다. 이틀간의 낮과 밤이 지난 것이다.
리어나드 크로도그, 수수족의 환상 추구(미구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점점 상대적 입장에 서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입체적인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인지 모르게 옵니다. 옛날에는 겨울 같은 기분만 느꼈는데 가을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가을 같은 기분만이 아니라 여름같은 기분도 느껴지고 봄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 우주가 돌고 있는 것처럼 마음도 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면서 춘하추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의 세계도 돌면서 그와 같이 변화하는 감도를 느끼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것이 일년을 두고 보면 사시, 춘하추동이 있지만 일 년을 축소한 것이 하루인데 하루에도 춘하추동이 있습니다. 아침은 봄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울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춘하추동의 계절적 형태가 하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아침이면 아침을 두고 보더라도 봄 같은 계절도 그렇습니다. 거기에서도 봄 같은 아침을 느끼고, 여름 같은 것을 느끼고, 가을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고, 겨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 것은 큰 것을 중심삼고 단위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작은 것도 상대적인 그 단위의 형태를 각자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느껴지는 느낌이 언제나 같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니다. 계절을 따라서 자기가 봄이다 하는 것을 알면 좋지만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여름절기다 하는 것을 알면 좋지만 그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혹은 겨울이다 하는 걸 모릅니다. 이것을 많은 체험을 통해서 많은 기도생활을 통해서 ‘아! 지금 때가 어느 때에 처해 있구나!’ 하는 것을 가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느냐? 우리나라 말에 암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무심코 길을 가는데 어떤 좋은 집 담 벽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을 때, 새는 날아갔지만 푸드덕 새가 날아가는 그 자체를 보게 될 때, 그 사실을 통해서 암암리에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런 형태가 전개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암시적 조건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말하는데, 무엇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지나가게 되면 어떠한 형태가 벌어지느냐 하면, 몽시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꿈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데 꿈도 깊은 잠 가운데서의 꿈이 아닙니다. 비몽사몽간입니다. 바울 같은 양반도 비몽사몽간에 3층천을 체험했습니다. 꿈 같기도 하고 굼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꿈 안에 있는지 사실 안에 있는지 모릅니다. 옆에서 누가 말하는 것을 다 들으면서도 비몽사몽간에 그런 현상이라든가 혹은 음성이라든가 하는, 이 오관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이 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종합해서 어떤 방향의 인연을 나에게 연결시키기 위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과학적인 면에서 종합해보라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매일매일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검토해 보십시오.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잊을 수 없는 몽시 같은 것은 백 퍼센트 적중합니다. 그런 체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몽사몽간에 누구하고 얘기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면 사람, 물건이면 물건이 그 꿈 가운데 인연돼 있지만 그것이 사실 가운데서 실체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꿈 가운데서 누구하고 노래를 하고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꿈 가운데 노래가 아니고 옆에서 누가 부르는 노래가 그 노래였다, 이런 사실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영적 차원에서 마음 상태가 공명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지극히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과 내가 둘이라는 것을 압니다. 다른 존재인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아직까지 존재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몸뚱이한테 끌려 다니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마음이 존재성을 확립해 가지고 또 다른 하나의 주체다 하는 그런 인격적인 차원의 자리가 형성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다르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높아지게 되면, 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공명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원 높은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서 말하는 것을 내가 듣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맨 첫 단계에서는 암시와 같은 사실들이 여러분의 생활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자는 이런 막대한 자료를 수집해야 됩니다.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언제나 배고픈 자의 심정이 돼야 합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그렇게 찾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그 자체는 뭐냐? 내가 언제나 주체가 되든가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확정적인 주체요, 확정적인 대상의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찾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혹은 대상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대번에 압니다. 내가 누굴 전도할 사람이 있으면 대번에 안다는 말입니다. 괜히 마음이 좋아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걸 심파(心波)라고 하지요? 마음의 파장이 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을 보게 되면 고기 장사 하는 사람은 푸주 냄새가 나지요? 그렇잖아요? 천(옷감) 장사 하는 사람은 천 냄새가 납니다. 여러분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하는 사람의 태도는 전부 다 나와 더불어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모든 관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관계, 본연의 인간에 대한 관계, 본연의 신에 대한 관계를 전부 절단해 버린 것입니다. 절단된 관계의 세계를 우리가 다시 접속시키기 위해는 언제나 내 자체가 이걸 접속시킬 수 있는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작용을 해야만 이 관계가 개척되지, 접속시키고자 하는 태도를 갖지 않는 한 이 환경은 개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을 찾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기도하고 나면 ‘아, 오늘 좋은 일이 있다’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니까 그냥 좋은 일이 나타나겠지’ 이게 아닙니다. 그걸 찾아야 됩니다. 이러한 생활태도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체휼과 실천이라는 것은 생명의 인연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이런 사실이 벌어집니다.
(76.129-133, 1975,2,2)
여러분들이 철야기도 같은 것 하지만? 정신을 하늘로 전부 다 올리고, 세상물정을 다 잊어버리고..., 그런 경지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자 그 말입니다. 그런 경지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찌꺼기가 전부 다 침체되면 맑은 물이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잠은 우리가 정신수양 해 가지고 정신을 올리고 나쁜 의식을 전부 다 내리자는 것입니다. 자는 경지,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이 고단하고 그러면 잠들락 말락 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 때는 다 듣습니다. 다 보입니다. 듣기는 듣지만 확실히 듣지 않고 보기는 보지만 확실히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벌어지느냐? 꿈과 같은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대 무엇인가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철야기도를 하고 모든 육욕을 단절시키고 정신을 통일해서 자꾸 올림으로 말미암아 장래에 자기의 갈 길이라든가 이런 것이 보이고, 그 다음에 그것이 습관화 되면 전체를 조정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만 하면 눈 뜨고도 볼 수 있고 다 들을 수 있는 경지까지 들어갑니다. 두 가지를 보고, 두 가지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91.275, 1977.2.27)
그 단계가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그 다음엔 여러분에게 계시라든가 지시라든가 하는 것이 벌어져요. 계시라는 것은 우리가 분석해야 됩니다. 지시라는 것은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이지만 계시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석을 해야 됩니다. 무엇을 가르쳐 줄 때도, 가르쳐 주는 데는 음성으로 들려주기도 하지만 환상으로도 보여 줍니다. 좋은 봄날을 맞이하여 사슴 한 쌍이 시냇가에서 생수를 마시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 이런 환상은 지극히 행복스러운 소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우연한 사실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밭을 계발하기 위한 하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우리 마음의 밭이라는 것이 유리 판 같이 평평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울퉁불퉁하다는 것입니다. 형은 수평같은 면을 가졌지만 그 자체는 울퉁불퉁하다는 것입니다. 울퉁불퉁한 여기에 하늘의 감도가 반사되어 가지고 오게 되면 빛의 굴절과 마찬가지로 들어오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반사돼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가리려니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부분 부분을 계발하려니 그런 역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시는 단계를 지나게 되면 묵시 단계입니다. 여러분, 묵시록 알지요? 하루 종일 영계에 들어가서 체험을 한다든가, 저 나라의 세계가 어떻다든가... 전부 다 그런 세계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활적인 감정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체휼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의 뜻의 결과 세계를 우리의 생활무대에 적용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을 갖지 않는 신앙자는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역사를 합니다. 역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힘이 전기 작용과 마찬가지로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체험을 해 봤으면 알겠지만, 고압에 접한 것과 같은 힘이 찾아 들어오게 되면 우리 의식보다 강한 힘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건 딴 세계의 의식입니다. 초자연적, 초인적인 의식적인 감정이 찾아들게 되면 우리 몸, 이 육신이라는 것이 타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본연의 심성, 본연의 하나님의 신성에 반발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 앞에 어떤 신의 성품이 강력하게 들어와도 자연적으로 순화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들어오는 데는 플러스, 마이너스와 같이 음파도 강약으로 전파되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그 힘도 한꺼번에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강하게 들어왔다 약하게 들어왔다 이러면서 개척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진동이 벌어지고 자기의 의식이 없어지고 영적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자꾸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 몸뚱이가, 육성이라는 것이, 타락성 그 자체가 전부 순화되어 가지고 자연히 백퍼센트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현상이 없이 역사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서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을 다 받으면서도 감쪽같다는 것입니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과정을 거쳐서 순화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단계적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암시라든가 몽시라든가 계시라든가 지시라든가 하는 이런 과정을 여러분이 거쳐야 합니다.
그런 체휼 단계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을 명령합니다. 누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할 텐데 책망의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이건 미치광이로 취급받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할 줄 모르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체휼적 신앙을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그 체휼적 신앙을 가지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체휼한 것을 가지고 실험을 통한 체험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은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체휼과 실천,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76.133-136, 197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