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명상
4. 주의 집중 : 모든 사고와 감정의 자각
종교 경전
비구들이여! 여기 한 길이 있느니라. 이 길은 일체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고통을 없애며, 고뇌와 비탄을 물리치며, 올바른 길을 걷게 하며, 마침내 열반에 들게 하는 길이니, 이를 일러 마음이 늘 깨어있게 하는 네 가지 관법이라 하느니라. 이 네 가지란 무엇인가?
여기 어떤 비구가 있어 그는 몸의 몸을 관하나니,.. 느낌의 느낌을 관하나니,... 의식의 의식을 관하나니,.. 이는 이 세상에서 온갖 탐욕과 낙담을 다 극복하여 불타는 열망과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신을 잘 다스려 삼가는 까닭이다.
그러면 비구니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몸의 몸을 관하는가? 그는 숲으로 들어가서 다리를 포개고 앉아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한 점에 온 마음을 집중하고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고르게 한다. 안으로 길게 들이쉬는 숨에는 ‘내가 숨을 길게 들이쉰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길게 내 쉬는 숨에는 ‘내가 숨을 밖으로 길게 내 쉰다’는 것을 알며, 밖으로 짧게 내 쉬는 숨에는 ‘내가 숨을 짧게 내쉰다’는 거을 안다. ‘온 몸을 체험하여 내가 숨을 내쉬리라’하며 이로써 자신을 다스리고 단련하느니라.
게다가 또한 그 비구는 그가 가고 있을 때 ‘나는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서 있을 때 ‘나는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며, 그가 앉아 있을 때 ‘나는 앉아 있다’는 것을 알며, 그가 누워 있을 때 ‘나는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아 자신의 몸이 처한 바를 늘 깨어 알고 있느니라.
게다가 또한 그 비구는 생각하기를 ‘이 몸뚱이는 머리털과 살갗에 난 털, 손톱, 발톱, 치아, 피부와 그 밑에 있는 살집, 근육, 뼈마디, 골수, 콩팥, 염통, 갈빗대, 늑막, 허파, 지라, 위장, 큰창자, 작은창자, 똥오줌,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질, 타액, 점액, 활액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 비구는 죽은 지 하루나 이삼일이 지난 시체가 부풀고 썩고 검푸르게 변해 관 속에 던져진 것을 바라볼 때, 이 광경을 자기의 육신에 비추어 ‘진실로 내 몸뚱이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곧 썩어 저와 같이 던져지리니, 이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있는 바가 아니로다‘ 하고 생각하느니라. 그러면 비구니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느낌의 느낌을 관하여 사는가? 그는 즐거운 기분을 체험할 때 ’나는 즐거운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알며, 고통스런 기분을 느낄 때 ’나는 고통스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알며,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기분을 느낄 때 ’나는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아느니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의식의 의식을 관하며 사는가? 비구들이여, 그는 갈망을 지닌 의식을 갈망을 지닌 줄로 알고, 갈망을 여읜 의식을 갈망을 여읜 줄로 알며, 노여움을 지닌 의식을 노여움을 지닌 줄로 알며, 무지로 가득한 의식을 무지로 가득한 줄로 알며, 무지를 없앤 의식을 무지로 없앤 줄로 알며···.
그러면 비구가 어떻게 상념의 상념을 관하며 사는가? 비구들이여, 그는 장애가 되는 다섯 상념들에서 상념들을 관하며 사느니라. 감각적 욕망이 일어날 때 ‘나에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감각적 욕망들이 사라질 때 ‘나는 아무런 감각적 욕망도 없다’는 것을 아느니라. 노여움이 있을 때 그 노여움을 알며, 게으름이 있을 때 그 게으름을 알며, 혼란과 근심이 있을 때 혼란과 근심이 있음을 알며, 의혹이 일어날 때 의혹이 일어남을 아느니라.
비구들이여, 진실로 이와 같이 마음 다스리기를 칠년 동안 끊이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두 가지 과보 중의 하나를 받으리니, 그는 이승에서 최상의 지혜를 얻어 깨달음에 들거나 혹 탐착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는 불환과를 얻어 최종의 천상에서 해탈을 이루어 지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맛지마 니카야 1.55-63, 사티팟타나 수트라(불교)
일체의 현상적 분별들을 버리고 위없는 정등각에 마음을 내어야 한다. 형상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며 소리, 맛, 냄새, 감촉, 마음의 대상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 법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며, 비법에 머무르는 마음도 내지 않아야 하며, 어떤 것에도 머무르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
금강경 14(불교)
말씀 선집
마음에도 문이 있습니다. 심문이라고 하지요. 그 문이 언제나 한 면으로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자체가 돌고 있기 때문에 그 문도 이동합니다. 이 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이 있으면 신을 중심삼고, 플러스면 플러스를 중심삼고 마이너스 입장에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각도, 방향이 틀리게 되면 이것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마음의 문 심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기도를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해보면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새벽 한 시에 기도하는 것과 세 시에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건 여러분이 체험해 보면 압니다. 신비스런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기도해 보면 기도하는 시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아침에 느끼는 것과 대낮에 느끼는 것과 저녁에 느끼는 것과 밤에 느끼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우리가 육체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상대적인 면의 느끼는 감도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데도 어떤 시간에 잘 되는지를 알아야합니다. 기도가 잘 되는 시간, 그것은 하나님과의 감응의 도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잘 된다는 거기를 점점 들어가게 되면 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문과 인간의 마음의 문이 딱 맞아서 같이 어느 기준까지만 맞추어 돌아가는 날에는 하나님이 느끼는 것을 체휼할 수 있는 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음을 중심삼고 마음을 닦아야 됩니다. 마음의 상태를 우리가 찾아봐야 됩니다. 원래는 이 기준에 영점에 있어야 할 텐데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이 180도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도수가 영점에 있어야 할 텐데 제멋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돌려서 정상적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점에 여기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시계바늘 가는 방향으로 돌아서 가야 하는데 이것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이 영점을 중심삼고 이렇게 움직이면 마이너스적 감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이렇게 (시계바늘 가는 반대 방향으로) 가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가면 천년 가도 안 됩니다. 이것은 되돌아와야 합니다.
오늘날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도 목적의 때에 대해서는 끝 날이다, 말세다 하는 것을 다 가려야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해 내려온 종교는 이렇게 가면 되지만, 이 자리에 와 머물러 있으면 이렇게 돌아가면 되는데, 만일 반대로 여기 있으면 이 종교는 끝 날이 되면 멸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각도와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 자리로 가려면 반대의 길을 가게 되는 현상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벌어진 종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이렇게 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려서 가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우리 마음의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마음도 선한 마음이 있음과 동시에 악한 마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의 마음이 ‘아! 나는 선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 자체도 선하지 않다 이겁니다. 타락의 결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기 때문에 악한 마음 권, 악한 사탄 권에 감염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선한 권내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천태만상의 차이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이 영도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 문을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과정에서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마음문이 열리는 때를 알아서 하늘의 마음 문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언제나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이 시간이 마음의 문에 맞는 시간이 아니냐? 혹은 학생이면 공부하는 이 시간이 혹시나 그런 때가 아니냐? 혹은 내가 세상을 잊고 재미있게 노는 그 시간이 그런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언제나 수시로 찾아 맞추는 생활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심도를 가려가면서 마음 문을 열게 하고, 그래서 하늘이 향하는 문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76.127-129, 197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