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3. 마음을 진정하고,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 자신을 비움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6장 기도와 숭배)

훈독왕 | 20180921082413

3. 마음을 진정하고,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 자신을 비움


 https://youtu.be/7FbWGk60mGM

  
종교 경전 
  
모든 감각들이 적정 속에 고요해질 때, 의식이 잠들때, 지성이 동요하지 않을 때, 그 때 그는 구극의 경계에 이르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2.6.10(힌두교)
 
흔들리고 산만한 마음이 그 만족을 찾아 방황할 때마다 그것을 내면으로 인도하라. 그것을 자아에 고정되게 다잡아라. 항구한 기쁨은 마음이 고요한 자에게 찾아온다. 자기 의지의 흠에서 벗어나서 통일된 의식을 지닐 때 신과 하나가 된다. 
바가바드기타 6.26-27 (힌두교)
 
지혜로운 자는 말을 마음에 굴복하게 하며, 마음이 인식하는 자아에 조복하며, 인식하는 자아를 위대한 자아에 조복하며, 위대한 자아를 적멸 속의 자아에 또한 조복해야 하느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3.13(힌두교)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시편 46.10(기독교)
 
욕망의 입을 막고, 욕심을 문을 닫고,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마음의 엉킴을 풀어 헤치고, 눈부신 빛을 부드럽게 누르고, 진세의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것을 현동이라 한다. 
도덕경 56(도교)
  
허의 극치에 도달하고 정을 돈독히 간직하라. 만물이 다 같이 자라지만, (도를 터득한) 나는 만물이 근원에 되돌아감을 볼 수 있다.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나, 결국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 즉 고요라 하고, 그것을 복명, 즉 본성으로 복귀한다고 말한다. 본성으로 복귀하는 것이 상, 즉 상도이며, 상도를 아는 것을 명, 즉 총명이라고 한다. 
도덕경 16(도교)
 
자존자(아트만)는 우리의 감각들이 바깥으로 향하게 뚫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안이 아니라 바깥을 본다. 그러나 불멸을 추구하는 어떤 지혜로운 자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서, 안에 있는 자아를 보았다. 
키타 우파니샤드 4.1(힌두교)
 
자기를 제어한 지혜로운 자들, 영혼에 만족하여 고요하고 외진 곳에서 명상과 고행을 실천하는 자들은 모두 불순함을 떨쳐버리고 불멸에 이르는 해탈의 길을 통해 참으로 존재하는 것, 불변의 자아를 실현한다. 
문디카 우파니샤드 1.2.7-11 (힌두교)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사랑하고, 지선에 가서 머무름이다. 멈출 줄 알아야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어야 조용해지고, 조용해져야 평안하게 되고, 평안해야 깊이 생각하게 되고, 깊이 생각을 해야 얻을 수가 있다. 모든 사물에는 본말과 시종이 있으니, 선후를 알면 도와 가까워질 수가 있다. 
대학(유교)
 
자리에 누워 반성하라. 고요를 깨지 마라. 
시편 4.4(기독교)
  
말씀 선집 
  
우리 마음 쓰는 것,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훈련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러기에 명상이니 혹은 기도니 하는 것도 그러기 위한 한 수양 방법입니다. 마음의 수양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67.178. 1973.6.10)
 
여러분의 마음 세계가 수평선이 된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 참선이라든가 기도라는 것은 수평선 자리입니다. 자기의 의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공명권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종적인 세계의 파장이 와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96.203-204. 1988.11.9)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 혹은 불교도들이 참선을 통해 무아의 경지를 찾아 들어가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깨우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기준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마음의 중심을 천륜 앞에 세운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경배드리며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93-194. 1957.5.19)
  
오늘날 도의 세계, 종교의 세계에서는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마음의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참선하는 사람들도 마음이 무엇이냐,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냐 하면서 마음의 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어갑니다. 마음의 골짜기, 그 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면 인간 시조가 타락하기 전단계의 마음, 그 마음이면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게 되면 하늘과 인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세계로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하늘과 인연 맺을 수 없습니다. 세상 그대로를 품고는 하늘을 모실 수 없고 하늘과 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영육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마음과 몸을 중심으로 볼 때 마음과 몸이 하나 된 자리에서 그 세계를 추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몸의 세계를 부정해야 됩니다. 백 퍼센트 부정해야 됩니다. 세상과 격리되고, 세상과 이별하고, 세상을 뒤로 하고 몸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제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대의 길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종교의 길입니다. 본 거점으로 돌아가려면 잃어버린 본 거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본 거점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는 그 세계를 탐구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1.37-38. 1968.9.1)
 
신앙자로서 제일 주의할 것이 무엇입니까? 일을 대하는 데 있어서 사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어떤 일을 막론하고 개인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팽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팽팽하게 공기를 넣어 완전히 둥글게 된 공과 같은 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찌그러지지 않고 완전히 팽팽한 공과 같은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라든가 혹은 개인의 욕심을 중심삼은 사된 마음을 가지면 둥그런 공과 같은 마음에 모가 생깁니다. 
 
이 마음이 돌 때에는 평면적으로 전부다 접촉되어야 할 텐데, 모가 생기면 모난 끝부분부터 접촉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체를 원활히 자극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반대적인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런 입장에 처하면 처할수록 우리의 양심은 가책을 받고 양심의 기준이 점점 삭감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원만한 공처럼 팽팽한 마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에 어떠한 자극이 들어오면 마음 전체가 공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유 진동수가 서로 같은 음차 두 개를 놓고 하나를 울리면 다른 하나는 치지 않아도 그 음파에 자극되어 같은 진동수로 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공명체가 될 수 있는 원만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한 주체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영적인 파동을 감지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명상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것을 그리며 명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명상을 할 때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 마음을 둥글게 해서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본성과 내 본성이, 봄 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봄 절기의 주체 되는 하나님과 더불어 그 성품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완전히 공명될 수 있는 마음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이렇게 공명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자기가 요구하는 목적을 대하게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십니다. 
(40. 278-279. 197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