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명상은 장애물로 덮여 있는 마음을 정화시켜 내면의 궁극적 실재에게 개문하는 것이다. 명상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모든 명상법의 공통점은 방황하는 감정과 잡념을 순화시켜 참된 본성이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명상이란 정숙과 순수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체적 감각 자극을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전에서 명상이란 동야 종교의 수행, 수련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에서도 명상은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신비주의자, 수도자, 수피, 카발리스트 등 모두는 수행자들을 신적 영성과 일체를 향한 고차원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명상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명상시간은 마음을 안정, 정화시키는 동시에 영적 감각을 높게 고양시킨다. 다라서 기도의 전단계로서 명상이란 침묵의 기도이며, 효과적 영적 기도기술이며, 명상기간을 의미한다.
명상에 대한 주제는 너무도 방대해서 평생 동안 수행해도 그 끝을 보기 어렵다. 이 장에서 다루는 내용에는 사유의 정화법, 호흡 집중법, 고차적 집중력 양성법, 자신의 몸과 생각 감정의 경계를 허무는 훈련, 성스러운 형상의 시각화, 그리고 초자연적 광경에 대한 샤머니즘적 요청 등이 포함되어 있다.
1. 주일(主一)적 집중
종교 경전
참선이란 생각과 감관의 활동을 제어하고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다.
나가르주나, 보의 화환437(불교)
수레바퀴의 살이 중심축에 모여 있듯이 온 몸의 동맥들이 만나는 곳, 심장의 연꽃 속에 그가 사나니 그를 옴으로 염하라. 그리하면 그대가 쉽게 어둠의 바다를 가로질러 건너가리라.
문다카 우파니샤드 2.26(힌두교)
형기에 올라타고 하나인 도를 지키고 이탈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정기를 집중하고 흐트리지 않고 유연한 자세로 영아 같을 수 있다면, 마음속의 거울을 말끔히 씻어 닦고 흠이 없게 할 수 있다면 (만물을 낳고 키울 수가 있다)
도덕경 10(도교)
그때 세존에게서 멀지 않는 곳에 어떤 비구가 다리를 포개고 몸을 아주 꼿꼿하게 펴고, 전생의 과보로 생겨난 바늘에 찔리는 듯한 아주 고통스런 아픔을 견디며, 그러나 올바른 생각과 지혜로써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 그 비구를 바라보시고 이러한 우다나를 노래하셨다.
모든 업을 불사르고 지난 세상에서 지은 티끌을 떨쳐버린 또는 ‘나의 것’이라는 생각도 없이 마음을 흩트리지 않는 저와 같은 비구에게는 굳이 다른 이와 이야기 나눌 필요도 없다.
우다나 20(불교)
삼백 육심 뼈마디와 사만 팔천 털구멍의 온 몸을 일깨우라. 큰 의혹의 마음을 내고 다만 무지에 마음을 모으라. 이를 나날이 힘써 정진하라.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의 생각도 여의고 ‘무엇이 들어있다’거나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상대적인이니 개념들도 짓지말라. 그것은 마치 벌겋게 달아오른 쇠구슬을 삼키는 것과 같아 설사 뱉어내려 해도 뱉어낼 수 없으리라. 이때까지 축적된 온갖 미망된 사념들이 일순에 사라지고, 내외 혹은 주객의 이원이 동시에 사라지느리라, 그대는 이것을 알리라. 꿈을 꾼 벙어리처럼 다만 홀로 알게 되리라. 그 때 별안간 천지가 진동하는 대전환이 일어나리니, 깜짝 놀란 가운데 문득 천계를 볼 것이며 속계의 일들을 떨쳐버릴 것이니라.
무문관 1(불교)
내가 명상 가운데 들어 있는 한, 동물이나 인간 혹은 신에 의해 야기되는 일체의 재앙을 나 스스로 감내하리라, 내가 명상에 들어 있는 중에 나는 내육신과 모든 음식들과 모든 욕망들을 버리리라. 집착, 혐오, 공포, 슬픔, 즐거움, 걱정, 자기연민... 신, 구, 의의 삼업에서 이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리라. 또한 일체의 성적 유희를 삼가리라.
삶과 죽음, 얻음과 잃음, 승리와 패배, 만남과 이별, 친구와 적, 즐거움과 고통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한마음으로 평등하게 대하리라.
지식이나 통찰력을 얻음에 있어서나 바른 행위를 닦음에 있어서도 그 주인은 나 자신의 영혼이며, 업의 유입을 부르는 것도, 이를 멈추게 하는 것도 또한 나의 영혼이다.
유일하며 영원한 것은 나의 영혼이니, 이는 바른 지혜와 직관으로 충만하다. 내가 겪는 그 외의 다른 모든 상태들은 나에게 외적이다. 그들은 집합으로 이루어진 까닭이다. 이러한 집합들도 인해 내 영혼은 고통을 겪나니 나는 신, 구 의의 삼업에서 이 모든 집합들을 끊으리라.
이로써 내가 평정심과 나의 참 모습을 얻으리니, 바라건대 이 여여함이 내게서 떠나지 않아 내가 곧 열반에 들리라.
시마이카 파타(자이나교)
말씀 선집
도의 길을 찾기 위하여 산중 수도하는 것도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적 각오 밑에 거기에 대비되는 외적인 각오, 청산조건을 구비해 놓고 어떤 것에 부딪쳐도 나간다는 자신, 맨 밑창에 떨어져도 심신을 지탱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되니다. 그렇지 않고는 달릴 수도 없고 경주 마당에 나설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주 마당에서 하나의 종목을 택해 달려야 할 경주자이니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변치 않는 신념을 갖고 연단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자의 태도, 달리는 자의 태도, 도의 길을 가는 자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자나 깨나 그 목표를 정복하기 위한 결의에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7.135. 195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