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은혜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5장 신앙)

무지... | 20180817212916

감사와 은혜 

감사하는 마음은 일상적 신앙생활의 원동력이다.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는 언제나 하늘의 영광과 권능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항상 감사한다. 가족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하고, 식탁 위에 놓인 음식에 감사드리는 지극히 단순한 가정생활의 이 관습은 아이들이 감사함을 배우는 출발점이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부족함을 보완해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언제 어디서든 느낄 때 감사할 내용은 더 많아진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성장을 위한 기회로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보다 높은 사랑과 봉사의 경지로 인도하려는 하늘이 주신 선물로서, 우리는 수용할 수 있다. 감사의 생활은 하나님의 리듬에 맞춰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우리의 생활에 불평할 여지는 거의 없다. 불평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을 분리시켜 우리의 인성을 해치는 영혼의 독버섯이다. 
  

그동안 나를 사랑해 주고 정성들여준 모든 분들—부모님, 선생님, 형제자매, 배우자—의 은혜를 상고해보면, 그리고 내 삶을 지탱하고 보호해 준 모든 것들—흙, 물, 공기, 그것의 부산물, 태양, 지구, 달의 공전 및 자전, 음식을 차려준 요리사, 경찰관과 소방관, 병원과 의사, 가정의 가전제품, 자동차 등등—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감사할 내용들이 끝없이 증대할 것이다. 어느 측면에서 볼지라도 우리 모두는 생명의 원천이자 자비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빚진 삶을 누리고 있다. 이 은혜들을 과연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범사에 감사하는 자세와 남에게 베푸는 미덕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이다. 
  
1.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감사
  
종교 경전 
  
오, 너희 믿는 자들이여! 우리〔하나님〕가 너희에게 부여한 좋은 음식을 취하고 너희가 경배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분께 감사할지어다.
꾸란 2.172 (이슬람)
  
하나님께서는 믿는 이들과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게 하시려고 음식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3-5 (기독교)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가 대접했던 모든 여행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회자되었다. 여행자들이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베풀 때,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먹었던 음식은 내 것인 줄 아느냐? 진실로 너희가 먹었던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당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를 축복하라.
탈무드, 소타 10b (유대교)
  
밤을 두어 너희를 쉬게 하고, 낮을 두어 보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실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비와 풍요로 가득 찬 분이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도다. 너희를 위해 대지를 안식처로 하고 하늘을 지붕으로 하여 너희에게 형체를 주되 가장 아름다운 형체로 만드셨도다. 그리고 순수하고 좋은 양식을 주셨으니, 그 분이 바로 하나님, 너희의 주님이시도다! 만유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나이다.
꾸란 40.61,64 (이슬람)
   
오, 아들아!
교만하지 말고 신의 사업에 놀라운 영력을 지닌 신들을 도와라.
오곡과 울창한 초목들조차도
위대한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 신의 축복의 덕분이니라.
아침저녁, 네가 음식을 들 때마다 도요우케 신의 축복을 기억하라.
세상 사람들아.
천지의 신들의 축복.
이것 없이 어찌 하루 낮 하루 밤조차 존재할 수 있으랴.
수많은 선조들의 은혜를 잊지 말아라.
대대로 선조들은 우리들의 우지가미, 씨족신이니라.
모토오리 노리나가, 고귀한 창에 관한 백편의 시 (신도)
   
쓸모없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입은 은혜를 망각한다. 이와 같은 배은망덕은 인색한 사람들에게 적합하지만,… 훌륭한 사람은 감사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입은 은혜를 마음에 새긴다. 이와 같은 사려 깊음은 최고의 사람들에게 어울린다. 
앙굿타라 니카야 1.61 (불교)
   
우리가 친절을 베푼 사람이 감사함을 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소유물을 빼앗아가 버리는 강도보다 더 나쁘다. 
요루바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번영할 때는 자기들의 신께 영광을 돌리고, 역경에 처할 때는 신을 저주하는 자들과 같이 너희는 되지 말라. 기쁠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늘 감사하라!
메킬타 출애굽기 20.20 (유대교)
   
말씀선집 
  
선한 사람은 음식을 대해서도 먼저 하늘, 다음은 땅, 그 다음은 인류를 생각하고 나서 먹는다. 
(뜻길 p.30)
   
신앙생활의 본질은 무엇이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이 하나님과 내가 타락한 인연을 넘어 하나의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좋은 입장에 처해야만 감사해야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좋은 때만 우리를 위해 수고해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수고하실 것을 다짐하고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기 위해서는 내 대신 일하시며 싸워 나오신 하나님을 좋은 자리에서 감사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자리에서 더욱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중한 십자가 도상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원칙을 이해하게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29.338, 1970.03.14)
   
저희들이 아버지의 정성을 아는 아들이라면 잠을 자다가 일어나도 죄인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릴 수 없는 민망한 마음으로 엎드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아침 밥상을 대하는 자리에서 내가 이 밥을 먹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묻는 자신이 되게 하시옵고, 점심 밥상을 대할 때에는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물음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자책하는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저녁 밥상을 대할 때에는 하루를 청산 짓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루를 보냈는가를 자문할 수 있는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것으로서 하루를 시작하여 아버지의 것으로서 이 시간까지 왔는가, 또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가치 있게 지내야 할 하루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빈 몸을 가지고 세상의 마음을 지닌 하루가 아니었나를 생각하며 침상에 누워 아쉬워하며, 아버지 앞에 눈물로써 사죄하고 침상에 누울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매를 맞는 자리에서도,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그런 역사적인 서러운 한의 심정을 품고 오신 아버지에게 효(孝) 중의 효의 도리와 충(忠) 중의 충의 도리를 다해야 할 저희들인 것을 아옵니다. 여기에서 내가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는 그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고, 그러한 자신을 발견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는 불쌍하고 약한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 이상 무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감사하며 생활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한 남자 앞에 맺어진 아내가 부족할지라도 생애를 통하여 봉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 아내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되겠고, 혹은 자식이 나에게 십자가의 일생을 주어도 그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되겠으며, 환경이 나에게 생애를 가눌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더라도 그것을 어떠한 조건을 세워서라도 감사의 인연으로 남기고 쓰러지겠다고 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아버님의 사람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29.348-349, 1970.03.14)
 
저희들이 만나게 된 이 인연은 저희들의 능력으로 만난 것이 아니오라, 아버님을 중심삼고 수천만 대의 선조가 다리를 놓고 그 터전을 넓히고 넓힌 공적으로 말미암은 것이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날 수 있는 한 날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신 모든 은사를 저희들이 감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39.78, 1971.01.09)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고 ‘아이쿠, 힘들어라’ 하면 되겠습니까? 참고 견디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같지 않게끔 감사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도 감사한 마음과 찬양하는 마음을 갖고 참고 견뎌야지, 불평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오다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참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받침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못합니다. 
(44.28-29, 1971.05.04)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님입니다. 피, 생명, 혈통이 연결되어서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의 결속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든가, 하나님의 생명이라든가, 하나님의 혈통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눈물겨운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골수가 흐느낄 것 같은 아픔을 느껴 본 적이 있느냐 말입니다. 산천초목을 바라볼 때 자신의 갈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하나님한테 감사하는 마음을 하루에도 한두 번씩 느껴 보지 않으면 본래의 심정세계와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371.115, 2002.02.24)
   
선생님이 가르쳐 준 다음에 안 하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은 여러분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불평하면 지옥이요, 불평 안 하고 감사하며 가면 천국입니다. 불평할 것을 감사하며 가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96.122, 1978.01.02)
  
감사는 어느 때에 해야 되느냐? 쉽고 좋을 때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감사의 심정을 중심삼고 오늘 이 현재를 하나님이 비교 심판하고 있다는 거예요. 법정에서도 그렇잖습니까? 법정에서 판사, 검사들이 구형할 때, 그걸 고맙게 받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형을 감해 주려고 하는 것이 판사의 심정이요, 검사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104.279, 1979.06.01)
   
2. 위하는 삶으로 보답하는 하나님과 자연과 조상에게 진 빚
   
종교 경전 
  
인간은 모두가 신의 대물이다. 무엇으로 알고 쓰고 있는가?
친필 3.41 (천리교)
  
사람이 태어날 때 누구를 막론하고 신들과, 현자들과, 조상들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빚도 또한 함께 생겨난다.
그가 희생 제의를 바칠 때 그것은 관련 있는 신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제의를 드리거나 공물을 마련할 때 그가 하는 행위는 바로 신들을 위한 것이다.
그가 베다를 낭송할 때, 그것은 관계있는 현자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행위는 그들을 위한 것이다. 베다를 낭송하는 사람은 현자들의 보고를 지키는 수호자라고 일컬어지는 까닭이다.
그가 공물을 바치고자 할 때, 그것은 관계있는 조상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와 같은 그의 행위는 그들을 위한 것이다. 이에 그들의 자손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가 집에 찾아온 이들을 기쁘게 할 때, 그것은 관계있는 사람들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손님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음식과 마실 것을 준다면, 그가 행하는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행하는 자는 참된 일을 하였으며, 그는 모든 것을 얻었고 또한 모든 것을 정복한 자이다.
사타파타 브라흐마나 1.7.2.1-5 (힌두교)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에 비길 수 있다.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몸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랬더니 그 종이 엎드려서 무릎을 꿇어 애원하기를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였다.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 그를 놓아 주고 빚을 삭쳐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기를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가두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간청하기에 내가 네게 그 빚을 다 삭쳐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마태복음 18.23-34 (기독교)
    
말씀 선집
  
생명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본전을 다 찾자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가 본전을 전부 다 찾아가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만물이 전부 다 ‘내 것 다오’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생명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도 생명을 돌려 달라고 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부 내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는 빚더미 위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빚을 갚았습니까? 빚을 갚으려고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빚진 사람은 감사해야 합니다. 빚 준 사람이 달라고 하지 않고,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빚진 자가 빚을 탕감 받고서 자기가 빚 준 자를 빚을 갚지 않는다고 벌주는 사람을 도리어 벌하는 성경 말씀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이치11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빚진 사람으로서 빚을 갚으려니 할 수 없이 우리가 남을 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서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무조건 받았으니 남을 위해 무조건 넘겨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93.193, 1977.05.29)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한 자세는 무엇이냐? 빚진 자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빚져 봤습니까? 빚진 것이 없으면 빚을 좀 져 가지고 단련해 보십시오. 빚진 자의 수고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알아보십시오. 빚을 갚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비참합니다. 한 푼이라도 빚을 지면 그 조건으로 멱살을 잡힐 수 있고, 근본적으로 인격을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거기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43.108, 1971.04.25)
   
‘하나님, 걱정 마시고 합시다’라고 권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지쳤습니까? 몸부림치며 나오신 그 하나님이 얼마나 지쳤겠느냐는 말입니다. ‘걱정 마소. 제가 해 주겠습니다’ 해야 말이라도 그게 좋습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도 ‘야, 그놈 그거 훌륭한 녀석이구나. 그 녀석 장래성 있는 녀석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환드레이징 하러 나갈 때, ‘하나님, 오늘 장사 잘되게 해 주소’ 하는 이런 기도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 오늘 백 불을 벌었습니다. 내 당신을 위해서 정성껏 벌었기 때문에 바치는 데도 정성껏 바치니 오늘날 역사상에 어떠한 사람들이 헌금한 것보다도 더 귀하게 받으십시오’ 하면 하나님도 ‘음, 그 녀석 쓸 만한데’ 하며 좋아하는 것입니다. 
 (93.22, 1977.05.08)
  
하늘의 복을 받기 위해 너희는 무엇으로 그 값을 치르겠는가? ‘효자의 피 끓는 사랑으로 갚겠나이다!’ 해야 한다. 
 (뜻길 p.353)
   
아무리 초조하고 아무리 처량하고 아무리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 저희들이라 할지라도 저희들보다 더 불쌍한 아버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앞에 저희가 제물이 되어 저희보다 더 불쌍하신 아버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25.41, 1969.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