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5장 신앙)

무지... | 20180815151450

증거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문제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세석족인 사람들이 하는 것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주관하고 경륜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게 필요한 것을 언제든지 주실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생활필수품, 돈 등을 걱정하는가? 하나님은 인간 운명의 설계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노력의 결과를 염려하고 걱정하는가? 영생의 차원에서 볼 때 우리의 죽음조차도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하나님은 공중에 새, 땅에는 백합을 창조해 주신 것처럼, 우리가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의’를 추구·실현하는 한,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오직 이타심을 지니고 하나님의 창조목적 구현을 열망할 때 천국평화의 열쇠를 지닐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과 인간의 수수작용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덧붙여 설명하신다. 하나님이 긴간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듯. 하나님도 자신의 요구와 상황을 염려해 주고, 하늘의 슬픔을 위로해 드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문선명 선생은 하늘의 고통을 나누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했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하나님의 비참한 심정을 체휼한 사람)은 인간의 슬픔과 고민을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에 비교할 때, 인간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심각한 고통에 처하였을지라도 하늘의 슬픔을 위로하고 하늘의 고통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늘의 깊은 심정을 체휼하면서 하늘의 증거와 보호를 체감하게 된다.
  
종교 경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산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릴 수 있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25-33 (기독교)
  
수많은 동물들이 자기들의 양식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노라. 하나님은 그것들과 너희들을 위해 베풀어주시니라. 그 분은 모든 것을 들으시고 전지하시니라.
꾸란 29.60 (이슬람)
  
역에서 이르기를 “이리저리 자주 왕래하면 벗만이 네 생각을 따를 것이다.”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천하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가지이니,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역경, 계사전, 2.5.1 (유교)
  
하늘과 땅을 비추는 태양이나 달처럼 무한한 나의 주여,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지닐 수 있습니까?
만요슈 20 (신도)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4.11-13 (기독교)
  
모든 이기적인 집착을 신에게 바친 자들은 물에 젖지 않고 깨끗하게 떠다니는 연꽃잎과 같다. 죄악은 그들을 더럽힐 수 없다. 스스로의 이기적인 욕망을 버렸기 때문에, 봉사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 정화를 위해 몸, 감관들, 그리고 의근으로 행위를 한다. 의식이 전일된 자들은 행위의 모든 결과들을 포기하고 지고의 평안을 얻는다.
바가바드기타 5.10-12 (힌두교)
  
세존께서 밧디야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밧디야여, 그대는 숲에 가서 나무 아래에 가서 혹은 인적 없는 곳에 가서나 항상 ‘즐겁다, 참으로 즐겁다’라고 우다나를 노래한다는데, 무슨 까닭으로 그러한 우디나를 노래하는 것인가?”
  
스승이시여, 제가 이전에 가장으로서 왕의 지복을 누리고 있을 때는 궁궐과 도성 안팎의 경비가 아주 튼튼했습니다. 스승이시여, 이와 같이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려움에 떨고 근심과 공포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숲에 가서나 나무 아래에 가서나 혹은 인적 없는 곳에 가서나 공포가 없으며 떨리는 일도 없고 근심도 없고 무서움도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산야의 짐승들처럼 평온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항상 ‘즐겁다, 참으로 즐겁다’라는 우다나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다나 19-20 (불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로마서 8.28(기독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일이다. 이른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밤늦게야 잠자리에 드는 것도, 먹으려 애쓰는 것도 다 헛되고 헛되니 여호와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
시편 127.1-2 (기독교)
  
삶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육지로 가도 외뿔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전쟁에 나가서도 무기의 새를 입지 않는다. 외뿔소도 그 뿔을 들이받을 여지가 없고, 호랑이도 그 발톱을 둘 여지가 없으며, 병기도 그 칼날을 들이댈 여지가 없다. 대저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그 죽음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덕경 50 (도교)
  
“그것은 권세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 내 영을 받아야 될 일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시다.
스가랴 4.6 (기독교)
  
만일 주께서 그의 권능을 보잘것없는 개미에게 준다 해도, 수백만 힘센 약탈자 무리를 단숨에 쳐부수리. 그가 몸소 죽음으로 내몰지 않은 모든 이들을 그의 강한 팔에 거두어 안으리. 그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수고로움은 헛되리라. 그 외 누구도 구원자나 파괴자가 아니며, 오직 그만이 만유의 수호자로다.
오, 사람들이여! 왜 그다지도 괴로워하고 있는가? 나나크가 말하노니, 그대의 이해를 넘어선 주를 염하라. 놀랍고 놀라운 그를 염하라.
아디 그란트, 가우리 수크마니 17, m.5, pp.285-28 (시크교)
  
형벌로 발을 잘린 자가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비난과 명예 같으 srjt을 잊었기 때문이다. 죄수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음과 삶을 잊었기 때문이다. 반복하여 마음속으로 부끄러울 게 없게 되면 사람을 잊게 된다. 사람을 잊게 되면 하늘과 하나가 된 사람(天人)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공경하여도 기뻐하지 않고, 그를 모욕하여도 성내지 않는다. 이것으 오직 하늘의 조화와 합치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자 23 (도교)
  
대저 술에 취한 사람이 수레에서 떨어지면 다치기는 해도 죽지는 않는다. 뼈나 관절은 다른 사람과 같지만 상해를 입는 것이 남과 다른 것은 술 취한 사람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레에 탔다는 것도 모르고, 수레에서 떨어졌다는 것 역시 모른다. 죽음과 삶, 놀람과 두려움이 그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어떤 사물에 부딪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술에서 정신의 온전함을 얻고서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자연으로부터 온전함을 얻은 자야 어떻겠는가! 성인은 자연에 머물고 있어서 그 무엇도 그를 해칠 수가 없는 것이다.
장자 19 (도교)
  
말씀 선집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우리 노동시간이 8시간입니까? 24시간입니다. 24시간 일하지 않고는 양심적으로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르냐. 저 세상 사람은 8시간 일하고도 집도 사고, 가정용품도 사고, 생활도 넉넉히 하는데 우리는 24시간 일해도 집도 없고, 살림도 못하고, 그저 고생만 죽도록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릅니까. 여러분 다른 거 알겠습니까? 얼마나 다릅니까? 180도 다릅니다.
  
그래 가지고 절망하고 있느냐, 희망을 갖고 있느냐? 문제는 그것입니다.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랑입니다. 레버런 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레버런 문 자랑할 게 웝니까? 천하에 무서운 게 없습니다. 내가 주장하는 데는 천하에 무서운 게 없습니다. 얼마나 당당하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07.83, 1980.04.06)
  
하나님을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소화하고, 내 나라와 내 종족과 내 가정과 내 상대를 위해서 소화한다 하는 생각을 해야지, 나를 위해서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위해서 소화하고 살게 되면 모든 것이 완성된 세계로 끌려가는 것도 나 때문에 끌려가기 때문에 내가 안가려고 도망가더라도 뒤로 끌려가도 끌려가는 것입니다. 천국 가다가 도망가더라도 끌려갑니다. 그거 얼마나 안심이 되고 편안해요!
 
일생 동안 자기를 중심삼고 살면 ‘아이구, 이것도 안 됐구나! 저것도 안 됐구나!’ 하면서 전부가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위해서 10년, 20년 살게 되면 모든 것이 내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꾸 위하다 보면 나는 진공상태로 되기 때문에 참이 찾아 들어옵니다. ‘참된 거기에 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따라오고, 창조주도 그걸 바라기 때문에 내게 속한다.’ 이게 이론적입니다. 그래서 완전소화를 바라는 사람은 완전시대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203.102, 1990.06.17)
  
낮과 같이 밝고 기쁠 때는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명랑해야 됩니다. 언제나 감사하고, 기분 나쁜 것이 있으면 빨리 제거하고 얼른 잊어버리십시오. 그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느냐? 하늘을 대할 수 있는 시간적 거리를 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기 혼자 ‘아이구’ 이러는 것보다도 종교가 인간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이것 다 맡아 주소. 하나님이여! 이것 전부 다 알아서 처리해 주소’ 전부 다 하늘 앞에 보고하고는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인의 생활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많이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미래의 행복을 지금부터 그려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접근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많이 갖자는 것입니다.
(91.272-273, 1977.02.27)
  
사람 사람끼리 모이는 곳은 풀려다가 도리어 엉클어지는 일이 벌어지지만, 하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은 마음에 응어리졌던 것이 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7.13, 1959.07.05)
  
여러분이 여기서 장사를 하든가 전도를 하든가 뭘 하든가 간에 기도하고 정성들이고 가게 되면 벌써 보여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하는 것까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척 나서게 되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자꾸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 가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 페험을 하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69.288, 1974.01.01)
 
선생님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경기에서도 이를 악물고 싸워 나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피를 토하는 자리에 가서도 ‘아버지! 나를 살려주십시오!’ 안 그랬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난 졸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나약한 자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것이니 나를 위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를 하려고 했지, ‘아이고! 나 못 살겠습니다. 나 고생시키지 말고 놓아 주십시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기도 배워 본 적이 없고, 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하나님이 다 알고 있습니다.
(93.321, 197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