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신앙생활에서 소망은 필수적인 전제요소이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시각은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서 역사를 운행하신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이 세계의 폭력과 억압, 가난과 슬픔을 종결하겠다는 하나님의 계시가 인류역사에 역동적으로 전승된다. 인간은 일생동안 자신들의 소망이 항상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죽음 이후의 삶, 곧 영원한 세계에서 새 삶을 누리겠다는 소망을 항상 품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런 소망을 갖도록 창조하셨으며, 그 소망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더욱 가깝게 인도해 준다.
문선명 선생은 긍정적이고 소망에 찬 태도로 종교적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할지라도 확고한 희망과 목표를 견지하면서,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희망을 춤고 영원한 가치에 마음을 고정시켜야 한다. 소망의 횃불을 들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그리고 그 외에 히브리서에 언급된 ‘보이지 않는 것들에의 믿음과 소망의 확신’을 품수한 인간의 발자취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왕국을 실현하겠다는 소망에 벅차 있어야 한다. 특히 메시아 재림 시대에 문선명 선생의 삶은 그 전형이 될 것이다.
종교경전
청년들도 힘이 빠져 허덕이겠고 장정들도 비틀거릴 것이다: 그러나 주임 안에서 소망을 지난 자들은 자신들의 활력이 소생할 것이다.
이사야 40,30 (기독교)
계시의 말씀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해진다.
잠언 29.18 (기독교)
여호와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그 사랑을 바라는 자들을 지켜보시며
죽을 자리에서 목숨을 건져주시고 굶주릴 때에 살려내신다.
여호와는 우리의 도움, 우리의 방패, 우리는 애타게 그분을 기다린다.
그분 안에 우리의 기쁨이 있고 우리의 믿음은 거룩하신 그 이름에 있다.
우리가 이렇게 당신만을 기다리오니, 여호와여, 한결같은 당신 사랑 베푸소서.
시편 33.18-22 (기독교)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올바른 일을 해야 하며 또한 주님을 섬길 때는 다른 어떤 것도 섬겨서는 아니 되노라
꾸란 18.110 (이슬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실상 옛 조상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좋은 증언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곧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생기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런 제물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는 의인이라는 증언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두고 증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믿음을 매개로 해서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겨 가셨으므로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옮겨 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증언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닌ㅁ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을 지시하셨을 때에 경외심을 가지고 방주를 지어서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른 의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차 분깃으로 받을 땅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마치 타국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하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리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약속해 주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자손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네가 본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맑혔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좋은 것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도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은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1.1-16, 12.1-2 (기독교)
그리하여 당신께 희망합니다. 오, 주여, 곧 당신 권능의 승리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상숭배는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며 거짓된 것들을 완전히 멸할 것입니다.
세상이 당신의 권능 아래 완성되고 인류가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는 법을 배울 날을 고대합니다. 지상의 사악한 무리가 당신 앞에 회개할 그날을 고대합니다.
만민이 당신 앞에 무릎 꿇고 그들 혀로 충성을 맹세할 것을 깨닫게 하소서. 오, 주여, 당신 앞에 그들이 경배하고 당신의 이름에 영관 돌리게 하소서. 만민이 당신의 왕국을 깨닫고 당신의 주권이 그들 위에 빠르게 영원히 세워지기를 기원하나이다. 당신의 주권으로 영원한 영광 속에 거하시길 기원하나이다.
매일 기도문, 알레루 (유대교)
말씀선집
희망은 소생과 통하는 것이요, 모든 발전과 통하는 것이요, 승리와 통하는 것이요, 흥함과 통하는 것입니다.
(64.311, 1972.11.12)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68.131, 1973.07.29)
하나님의 영원한 소망이 남아 있는 한, 오늘 우리에게도 영원한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1.99, 1956.06.06)
미래를 위해서 살고, 공부도 미래를 위해서 하고, 미래를 위해서 투쟁하고, 미래를 위해서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97.242, 1978.03.19)
인간은 일생 동안 온갖 소망을 품고 살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부딪쳐 자기가 품었던 소망의 전부를 버린 채 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기를 바라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죽음에 부딪치게 될 때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절망하면서 최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 소망을 가진 듯 하지만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생의 본으로 알고 죽어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을 찾아 그 소망을 즐기면서 갈 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오늘날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가정도 지나가고 국가도 지나가고 세계 혹은 어떤 주의도 지나가고 마는데, 최후에 남아져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일체의 소망을 거부하고 생활하면서 인간적인 것 일체를 거부하고, 인간 세상의 소망이 아닌 새로운 하늘의 소망,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지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 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45-46, 1959.03.22)
고생 가운데 참고, 수난 가운데 인내하며 하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풀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의 마음을 민족이 하나되어서 역사를 통하여 계승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민족 같으면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냐’고 하며 자기들을 저주하는 하나님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168.52, 1987.09.01)
평화의 나라를 향하여, 평화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소망의 아들딸이 늠름하고 활기찬 자세를 갖추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고, 악의 세력 앞에 패배의 자극을 받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상의 권한으로 천만년 이것을 징벌하고도 남을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고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3.273, 1970.08.16)
오늘은 참부모님 선포의 날입니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고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정말적인 세상이지만, 하나의 희망이 싹텃는데 그것이 바로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202.341, 1990.05.27)
차디찬 엄동의 설한 풍아
잔인한 네 손을 걷어차라
춘풍은 이르러 꽃향기 날리고
숨죽은 강산에 불을 켜라
아무리 잔인한 설한 풍도
사리지는 운명의 한때로다
춘풍은 이르러 꽃향기 날리고
숨죽은 강산에 불을 켜라
깨어라 봄 나비 종달이 새
적막한 강산에 애달픈 꿈
춘풍은 이르러 꽃향기 날리고
숨죽은 강산에 불을 켜라
(성가 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