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 4. 개인적 욕망과 환경에 물들지 않는 절대 신앙 (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5장 신앙)

철장왕 | 20180807084634

4. 개인적 욕망과 환경에 물들지 않는 절대 신앙

종교경전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을 향해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해도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 17.20 (기독교)
  
한 알 겨자씨만틈의 신앙을 가슴에 품은 자는 지옥에 들어가지 않을지나 한 알 겨자씨만큼의 교만함을 가슴에 지닌 자는 천국에 들지 못하느니라.
무슬림 하디스 (이슬람)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주님, 내가 먼저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허락해 주십시오”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누가복음 9.59-62 (기독교)
  
천계를 여행하는 자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들은 천계, 즉 그 두 세계로 날아오른다.
사타파타 브라흐마나 9.2.3.27 (힌두교)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창세기 19.26 (기독교)
  

“내 옷은 낡고 해어졌다. 나는 머잖아 벌거숭이가 될 것이다.” 또는 “나는 새 가사를 얻을 것이다” 출가 수행자는 이와 같은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 어떤 때는 옷이 한 벌도 없을 수 있고, 또 어떤 때는 몇 벌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건전한 규율임을 알기 때문에, 현명한 출가 수행자는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웃타라디야야나 수트라 2.12-13 (자이나교)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8-39 (기독교)
  
말하라. 나의 기도, 나의 헌신, 나의 생명, 나의 죽음이 모두 온 세상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위함이라고.
꾸란 6.162 (이슬람)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데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여호와 안에서 환성을 울리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하박국 3.17-18 (유대교)
  
말씀선집 
  
우리가 이 땅 위에서 그런 사명을 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보고와 우리의 요구를 기다리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밀사의 입장에서 시급히 원하는 것을 보내 달라고 하면 백방으로 모험을 극복하면서라도 보내 주려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그런 신념을 갖고 하나님의 특권적인 영광의 아들딸인 것을 인식하면서 ‘내가 이것을 원하니 이루어 주소’하면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5.287, 1973.01.01)
 
신앙 길에서는 자기주장, 자아관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재적 신앙이라는 것은 자아관념이 하나도 남지 않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절대적으로 믿는다 할 때는 나 자체에 절대적으로 반대되는 요인이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 되겠다고 하는 거기에는 자기주장을 할 것이 없습니다. 주체가 요구하는대로 완전히 일치해야 합니다.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일쳔의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46.82, 1971.07.25)
  
노아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 정상적인 입장에서 부르지 않았습니다. ‘야! 너 120년 동안 산에다 방주를 지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려면, 바닷가에 짓게 하시든지 강가에 짓게 하셔야 할 텐데, 저 끝 쪽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전부 다 그렇게 섭리하시는 겁니다. 아브라함 대해서도 우상장사를 하는 맨 괴수의 아들을 끌어냈던 것입니다.
(70.64, 1974.02.08)
  
자기를 해명하려고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를 해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해명당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잘했어도 잘했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백퍼센트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이 볼 때는 하나입니다. 내가 백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절대적인 신앙을 기점으로 해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는 자기를 절대 부정하는 자리입니다. 자기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절대적인 신앙이 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만사를 중심삼고 거기에 긍정하면서 신앙길을 간다고 할 때 절대적인 신앙이 나올 것 같습니까?
  
이러한 근본 문제를 놓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을 보게 되면 하루의 생활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하는 습관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당당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당당할 수 없습니다. 나를 공인하는 어떤 상대적인 요인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 신앙기준도 못 갖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 기준도 갖지 못했는데 절대적 신앙기준을 극복하고 난 후에야 이뤄질 천국이 성사될 수 있겠습니까? 어림없습니다. 왜 그러냐? 그 자리에는 사탄이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46.74, 1971.07.25)
  

사랑이 어디서 연결되기 시작합니까? 절대적인 제로가 되는 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나’라는 개성이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도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이 서로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가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로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하나 되는 데는 자기가 없고,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 되는 데도 자기가 없습니다. 이 둘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완전히 하나 되는 것입니다.
(279.146, 1996.08.04)
   
하나님이 창조할 때 절대적인 신앙 위에서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말하게 되면 말하는 대로 대상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넉인 신앙 위에서 발언했다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신앙 위에서 짓는 그 대상은 절대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실체가 내 몸의 몇 천만 배 귀한 것이 되기를 바라니만큼 내 사랑 전부를 투입한 것입니다. 절대 하나 된 자리에서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273.298. 199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