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앙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
종교경전
여러분은 은혜 가운데서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10 (기독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신앙을 좋아하게 하셨고 너희 마음에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시었으며 믿지 않는 것과 사악함 그리고 불복을 혐오하도록 하시었느니라. 이러한 자들이야말로 옳은 길을 걷는 자들이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와 은총이니라.
꾸란 49.7-8 (이슬람)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
요한복음 6.65 (기독교)
그분은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평온함을 내려 보내신 분이시니라. 그들의 (현재)믿음에 믿음을 좀 더 깊게 하시려고.
꾸란 48.4 (이슬람)
모든 의무들을 포기하고 오직 나만을 귀의처로 삼아라. 내가 그대를 과거의 모든 죄에서 건져주리니 슬퍼하지 말라.
바가바드기타 18.66 (힌두교)
여러분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까?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여러분이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러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움으로 여겨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아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7.11 (기독교)
“만일 심지어 선한 사람도 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데, 사악한 사람은 얼마나 더 많이 그렇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이와 반대로 생각한다. ’만일 심지어 악한 사람이 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선한 사람은 얼마나 더 많이 그렇겠는가?‘ 언뜻 보기에 이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미타불의) 본래 서원이나 타력에 대한 믿음에 어긋난다. 그 이유는 자력에 의지하면서 공덕 있는 행위를 하는 자는 타력에 의지하지 않으며 타력에 의지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본래 서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력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타력을 믿을 때 그는 진정한 보상의 나라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자기 열정의 그물에 걸린 우리는 아무리 힘든 고행이나 선행을 한다 해도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을 알고 우리의 처지를 긍휼히 여겨 아미타불은 악한 사람들에게 불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 서원을 했다. 그러므로 타력에 의지하는악한 자는 확실한 구원의 대상이다.
신란, 탄니쇼 (불교)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려 있습니다. 어디서나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이를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씁하셨다. “‘할 수 있으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이 아버지는 큰소리로 “내가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마가복음 9.17-24 (기독교)
말씀선집
역사적인 곡절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 자체들의 한스러운 입장을 해명하고 찾아 세워야 할 부자의 인연을 해명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무슨 소망이니, 무슨 천국이니, 무슨 이상세계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악의 혈통을 받은 우리, 죄악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 죄악권내에 속하여 생활하면서 그 환경을 넘어설 수 없는 우리, 이러한 우리인데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 이것은 우리가 노력한다 해도 할 수 없기에 심정을 걸어 놓고 믿으라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전한 목음입니다. 무슨 조건을 걸어 놓고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심정을 통해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7.52-53, 1959.07.12)
천상의 심판은 어디에서 결정되어질 것인가? 여러분들이 하늘을 위한 공로와 수고가 많다고 해서 뽐낼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결정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심정이 여러분 자신의 몸에서 체휼되고 결실되어 그것이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된 그것만이 영생불사하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4.107, 1958.03.16)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포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로되, 자체를 위주한 사랑과 자체의 가치를 자랑하는 생명력으로 끝난다면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은 이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2.22, 1970.06.14)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으니 우리는 이것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구원섭리를 해 오신 하나님도 이것을 찾으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인간, 말씀을 잃어버린 인간, 실체를 잃어버린 인간, 인간은 왜, 무엇 때문에 사랑과 말씀과 실체를 잃어버렸는가?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려면 인간의 믿음의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믿음을 조건으로 해서 인간을 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밎음을 전제조건으로 하여 인간을 구원섭리 하신다는 것입니다.
(5.37, 1958.12.14)
하나님은 어떤 심정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이 무한히 믿어줄 수 있는 만물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 무한히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 무한히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지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구태여 신앙이란 명사가 필요 없는 일체적인 이념권내에서 그와 우리가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같은 불가분의 일체성을 갖추어서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도 하늘을 대해 변함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일체적인 입장에 서서 믿음이라는 명사까지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인간을 믿어주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원히 믿어주고자 하시려던 하나님의 그 마음에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4.71, 1958.03.09)
보잘 것 없는 모습이옵고,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분석하여 볼 때 아버지께 그 무엇을 돌려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자녀의 인연을 맺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저희들 자체를 보시고 슬픔과 기쁨의 분기점에서 저희들을 대하여 나오고 계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24.245, 1969.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