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신앙
신앙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참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쉽게 느끼거나 체험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진리 역시 쉽게 이해되고 실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만을 믿고서 목적 없이 허황된 욕망과 잘못된 개념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인도해줄 별이 필요하다. 그 별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곳을 가르쳐주는 별이며, 이것이 곧 신앙이다. 신앙은 종교적 신념과 하늘의 계명에 따라 살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신조는 몇 단어로 표현되지만 그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게 바른 길로 이끌어준다.
신앙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타락 인간들과 다시 관계 맺으려는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신앙과 일을 비교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처럼 일본의 불교 성자 신란도 비슷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또 다른 하나의 힘’에 의탁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순수하며 자기 본위의 이기심에 물들지 않은 신앙이다. 신앙자의 자신감이나 신앙하는 능력 자체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문선명 선생은 인간은 누구나 죄에 찌들어 있고 죄악의 혈통을 타고 났기 때문에 자기만의 노력으로 죄를 탕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하늘과 관계에서 유일하고 가장 합당한 원칙은 하나님의 사랑, 즉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신앙은 하늘과 상호 관계 속에서 성숙되고, 믿음과 신실함으로 특징지어진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실존을 깨달으면서 어려운 역경까지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앙의 주체로 모실 때, 과연 내가 하나님께 의지하듯 하나님도 똑같이 나를 믿고 의지하실 수 있을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두 마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어떤 날은 신앙을 지키고 다른 날은 그 신앙을 저버리기도 한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남아질 수 있는,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적 완결성과 극기의 자세가 필요하다(제12장 참고). 하나님도 큰 사명을 받아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문선명 선생은 ‘절대신앙’을 강조하신다. 고난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절대신앙이다. 그것은 또한 사적 욕구에 타협하지 않는 신앙이다. 핍박과 비극,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신앙이 약한 자는 흔들릴 수 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간청으로도 포기시키지 못하는 것이 절대신앙이다. 자신의 주인을 부정했던 베드로처럼 신앙이 약한 자는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가거나 심지어 신앙을 다 잃어버린다. 그러나 절대신앙을 가진 이는 산을 넘고 어떤 역경이라도 이겨내며 죽음까지도 극복하여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1. 믿음:신앙의 출발점
종교경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3.16 (기독교)
믿음이란… 알라와 천사들, 경전들과 사도들, 그리고 최후의 날을 믿는 것이며, 선이건 악이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이니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 (이슬람)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두 분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말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29-31 (기독교)
오, 사람들이여! 나는 너희 모두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예언자이니라.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지배하시는 분이시며 그분 외에는 신이 없으며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이시노라.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의 예언자를 믿으라.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문맹이니 그러하면 너희들은 인도되리라.
꾸란 7.158 (이슬람)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아니다.
논어 20.3.1 (유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를 외롭다고 여기셨다.
창세기 15.6 (기독교)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야, 누가 아브라함의 종교를 배반하리요? 하나님은 현세에서 그를 선택하셨으니 내세에서 정의로운 자들 가운데 있게 되리라. 주님께서 그에게 “복종하라”고 명하셨을 때, 그는 “만유의 주님께 복종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은 이를 그의 자손들에게도 부과시키고, 야곱도 또한 그러했도다. “나의 아들들아,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종교를 선택하셨으니, 너희들은 귀의자로서 생을 마쳐야 하느니라.” 야곱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너희가 지켜보지 않았느냐?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내가 죽은 후 너희는 무엇을 섬기려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당신의 하나님이며 당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스마엘, 그리고 이삭의 하나님을 경배하겠나이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복종하나이다.” 그들은 지나가버린 사람들이라. 그들은 그들이 얻은 것이 있으며, 너희는 어희가 얻은 것이 있을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 질책 받지 아니할 것이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였다.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 되어라. 그러면 너희는 올바른 길로 인도되리라.” 말하라, “아니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종교를 따르도다. 그는 가장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자였으며, 우상 숭배자가 아니었도다.” 그리고 너희가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야곱,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계시된 것과 모세와 예수가 계시 받은 것과 사도들이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것을 믿나이다. 우리는 그들 사이를 구별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복종할 따름입니다.”
꾸란 2.130-136 (이슬람)
믿음으로 깨달음을 얻으라, 그러면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리라.
숫타 니파타 1146 (불교)
마음에서 우러나는 뜻으로
믿음은 이루어져 있나니,
빛은 믿음을 타고 오도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기도하누나.
아침에 믿음, 한낮에 믿음, 해질녘에 믿음.
오, 믿음이여! 우리에게 믿음을 내리소서!
리그 베다 10.151.4-5 (힌두교)
믿음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극의 근원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인해 신앙인은 환희로써 진여를 엄하게 된다. 둘째는 부처의 수많은 딱월한 덕성들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인해 신앙자는 언제나 그 덕성들을 염하고, 그들을 가까이에 품어 지니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을 공경하며, 이러써 자기의 선한 품성을 증장시키며, 일체를 포용하는 밝은 지혜를 구하게 된다. 셋째는 법의 드높은 유익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인해 신앙인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온갖 가르침들을 끊임없이 마음에 간직하며 실천하게 된다. 넷째는 승가에 대한 믿음이니, 자기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모두 유익하게 하는 실천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수행승들에 대한 믿음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으며, 바른 수행을 닦는 이들의 가르침을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대승기신론 (불교)
헤아려 알 수 없는 나의 믿음, 누가 이를 말과 글로 퍼내려 한다면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붓과 종이로도 그려낼 수 없으며, 직관으로도 그 비밀을 꿰뚫어 드러낼 수 없다.
숭엄하고 청정한 신의 이름은 다만 믿음이 굳은자가 이루리라.
믿음으로 의식과 지성이 전일되며, 깨달음의 진면목이 낱낱이 드러나 보인다.
믿음으로 이승에서 지은 죄를 씻으며, 또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리니,
숭엄하고 청정한 신의 이름은 다만 믿음이 굳은자가 이루리라.
믿음으로 모든 장애가 사라지며, 신과 더불어 그의 나라에 높이 들리우리라.
믿음이 굳은 자는 사악한 무리들에 빠져 방황하지 않으며,
다만 참된 믿음으로 꿋꿋이 서리니, 숭엄하고 청정한 주의 이름은 다만 믿음이 굳은자가 이루리라.
아디 그란트, 자푸지 12-15, M.1,p.3 (시크교)
말씀선집
원래 신앙은 각자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직접적으로 맺어지는 종적인 관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원리강론,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1)
종교생활은 왜 하느냐? 나보다 차원 높은 힘의 투입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방향을 어디로? 오늘날의 타락한 세계가 아니라 차원 옾은 이상적 목적의 방향을 향해서 종교생활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론적 근거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89.76, 1976.07.11)
신앙의 기준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이 땅의 무슨 영광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가치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심되는 표준을 하나님에게 두고 나가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일체를 인정치 않는 것입니다.
(8.131, 1973.07.29)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심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을 갖기 전에는 아무리 각오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다가 어떤 일에 부딪치게 되면 나의 신념은 어떠헥 될 것인가? 자문자답해 보십시오.
(27.114, 1969.11.30)
어떻게 해서 아담이 타락하게 되었는가? 불신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불신이 제일 원인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불신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이걸 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 조상이 타락한 그 선 이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절대 신앙을 해야 됩니다.
(126.35, 1983.04.10)
복귀의 길을 가려면 메시아가 필요한 것이고, 병이 낫기 위해서는 조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의사가 필요하고, 다음에는 조건물이 필요하고, 기간이 필요합니다. 의사가 ‘약을 사흘은 먹어야 합니다, 일주일간 치료를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병난 사람은 메시아 대신, 구주 대신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주가 하는 말, 의사가 하는 말을 자기의 말 이상으로 믿어야 합니다.
(63.183-184, 1972.10.14)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의 대상,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엔 뭐냐? 신앙의 주체 되는 하나님은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엇갈려요,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문전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나 자신이 남겨야 할 하나의 골수적인 사상을 지니고 생사를 같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59.237-238, 1972.07.23)
어떤 병폐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믿으면 모든 복을 내 것으로 만든다’ 이런 사상을 가졌기 떼문입니다. 이런 사상이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 없이 전부 내 것 만들겠다는 사람들뿐입니다. 그것이 도둑놈이지요. 도둑놈 심보입니다. 도둑놈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는 어째서 그렇게 갔느냐?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나라와 환경이 안 되었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갔습니다.
(124.296, 1983.03.01)
하늘은 무엇을 고대하느냐? 신앙자를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 실천하는 자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6.84, 1959.03.29)
나는 과연 신앙자의 태도를 갖추고 있습니까. 소망의 마음을 세워 나오기 위한 신앙이었습니까. 그것을 바라던 나였습니까. 묵은 믹음을 갖고 다 될 줄 알고 모든 것을 해결 짓고자 하면 그 길을 못 갑니다. 바른 신앙의 태도를 지니고 가야 할 우리인 연고로 이제 우리에게 사망의 위력이 부딪혀 온다 할지라도 그 사망의 힘을 청산하고도 남음이 있어야겠습니다. 남아지는 흔적이 있어야겠습니다. 내 정열도 그렇고, 내 충성도 그렇고, 내 노력도 그렇고, 내 참는 데도 그렇고, 내게 속한 모든 것이 남아지는 분야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상속의 제1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92) 195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