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 20180727082029
제자의 도리
학생은 가르침을 받으려면 훌륭한 스승을 찾아 그분의 훈련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자식 수혜자 단계를 넘어 바른 제가가 되어야 한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교육의 핵심적 부분이다. 훌륭한 교육이란 훈련과 지도과정을 통해 학생의 전반적 존재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데 관여한다는 의미다.
동양종교에는 스스로가 제자 관계의 전형이 성립되었다. 이 종교들은 말보다 실질적 체험을 통해 진리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의학과 다른 학문처럼 오랜 견습기간을 거쳐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단락이 끝날 때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능력차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육이 지능보다 심정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새 포도주로 우리를 채워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포도주를 담을 포대가 낡았다면 결국 다 터져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슴에 당신의 씨를 심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우리 심정의 밭이 돌 같다면 그 씨는 뿌리내리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구도를 걷는 학생들의 최대 과제는 마음의 파편들을 제거해 심정의 밭이 영적 진리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1. 훌륭한 스승의 제자 되기
종교 경전
아무튼 바른 행위에 대해 의문이 있다면, 간특하지 않고 훌륭한 판단을 하며 진리에 헌신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실천을 따라야 한다.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1.11.4(힌두교)
너의 집이 지혜로운 자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게 하고, 그들 발에 묻은 먼지로 너를 덥고, 그들의 말로 네 마른 목을 축여라.
미슈나, 아보스 1.4(유대교)
길을 알지 못하는 이는 그것을 알고 있는 이에게 묻나니, 들어 그것을 알게 되느니라.
곧장 가는 길을 들어 아는 것, 진실로 이것이 배움의 축복이다.
리그 베다 10.32.7(힌두교)
경외와 물음과 섬김으로써 이것을 알리니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 다가가라. 공경과 헌신의 마음으로 그에게 구하라. 그대에게 지혜를 가르쳐 줄 것이니라. 지혜를 얻으면 그대는 다시는 이와 같이 미혹되지 않으리니.
바가바드기타 4.34-35(힌두교)
내 허물을 지적하고 꾸짖어 주는 어진 사람을 만났거든 그를 따르라.
그는 감추어진 보배를 찾아준 고마운 분이니, 그를 따르라.
그런 사람을 따르면 좋은 일이 있을 뿐 나쁜 일은 결코 없으리라.
남을 훈계하고 가르쳐 깨우치라.
사람들을 불의로부터 구하라.
이와 같은 사람을 선인은 사랑하고 악인은 미워할 것이다.
법구경 76-77(불교)
나는 생각마다 부처의 예를 따르리라. 설령 끝없는 허공이 끝나고, 삼계와 그곳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업과 그들의 슬픔이 끝난다 해도, 내가 부처의 예를 따르고 실천함에는 끝이 없느니라.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생각을 지니며, 신, 구, 의로 짓는 모든 행위에 있어서도 지치거나 싫증내는 일이 없으리라.
보현행원품(불교)
일어나라! 깨어나라! 위대한 사람에게 가서 배워라, 그 길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그러므로 지혤운 자들이 말하기를 , 통과하기 어렵고 건너기 어렵다고 했다.
카타 우파니샤드 1.3.14(힌두교)
안연이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선생님의 덕은 우러러보면 더욱 높게 보이고, 뚫어 파면 더욱 굳으며, 앞에 보인 듯이 하다가 홀연히 뒤에 있는 듯하다.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사람을 유도해 계발시키신다. 학문으로 나를 넓게 해주시고, 예절로 나의 행동을 잡아 주신다. 그만 배우려 해도 그만둘 수 없게 잘 가르쳐 주시므로 나도 모르게 나의 재능을 다해서 좇아가 배우나, 그래도 또한 앞에 우뚝 새로운 지표를 세워 놓으신다. 자꾸만 좇아가지만 끝내 좇아갈 방도가 없다.”
논어 9-10(유교)
그대의 견해가 그대 스승의 것과 같을 때, 그대는 그대 스승의 장점을 깎아내린다. 그대의 견해가 그대 스승의 것을 능가할 때, 그대는 그를 이을 만한 자격이 있다.
무문관 17(불교)
말씀 선집
이 땅에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자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 예수님의 순수한 성품을 소유한 자가 있습니까? 그를 찾아 친구로 삼으십시오. 어디 고결한 자가 있습니까? 글 따르십시오. 어디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고 화동시키는 자가 있습니까? 그를 따르고 모셔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생명의 길을 찾을 것입니다. 또 그분을 따르고 모셨다는 조건으로 심판을 모면할 것입니다.
(2.318, 1957.07.07)
심정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습니다. 심정의 골짜기 길은 고통스럽고 처참한 길입니다. 스승을 요구하되 지식의 스승을 요구하지 말고 심정의 스승을 요구해야 합니다. 심정의 골짜기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눈물입니다. ‘자기’ 는 없어집니다.
(9.81, 1969.04.12)
선생님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는지 압니까? 어떻게 여러분이 글을 잘 쓰고, 시를 잘 짓고, 명필이 되었습니까? 전부 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알았습니까? 그게 여러분의 것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에 전부 다 선생님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입니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들,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식이나 학문은 사랑하지만, 이것을 전수해 주기 위해 무한한 공을 들인 선생님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사람은 부모에 대해서 은덕을 입은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스승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스승은 제2의 부모입니다. 동양에서는 스승을 제2의 부모라고 합니다.
(104.278-279, 1979.06.01)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여러분을 지긋지긋하게 고생을 시켜 효자 충신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안 가겠다면 후려갈겨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와 너의 생활에 있어서 이것을 아는 사람과 부자관계에 있으면, 형제관계에 있으면, 사제관계에 있으면, ‘부모님 뼈를 가르시오.’, ‘형님 뼈를 가르시오.’, ‘스승님 뼈를 가르시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발길로 차서 현재의 비참함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49.304, 1971.10.17)
‘야, 야, 야, 너 그거 힘든 일할 것 없다. 적당히 하면 되는 거야. 힘든 공부할 필요 없다고. 적당히 해라’ 하는 선생님이라면 그런 선생님은 가짜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선생님이 좋습니까? 왜 그러는 거냐를 생각해봅시다. 지금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겁니까? 이렇게 하면 장래는 틀림없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93.232, 1977.06.05)
유효원 협회장은 선생님을 따라 나오면서 나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을 많이 생각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유협회장을 생각하면 ‘그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었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방에 누워 있다가도 새벽이면 만나고 싶은 정에 이끌렸고, 전해 받은 쪽지 하니까 지도 생명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내연의 뒷받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 협회장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33.83, 1970.08.09
)
2 자아를 적절히 계발하지 않는 이해는 근원에 이르지 못함
종교 경전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다가 넣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한다.
누가복음 5.37-38(기독교)
처음에 그 말을 따라 그 도리를 헤아려 보면, 이미 일정한 법(방법)이 있다. 그러나 만일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면 도가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역경, 계사전, 2.8.4(유교)
마음속에 주인이 될 만한 것이 없으면 [도는] 거기 머물지 않고, 밖에 올바름이 없으면 도는 실행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에서 나가는 도를 밖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인은 나가지 않고, 밖에서 들어오는 도에도 주인 노릇할 만한 것이 안에 없으면 성인은 그것에 의거하려 하지 않는다.
장자 14(도교)
보지만 베다의 말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 듣지만 그녀(베다의 말)를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에게 그녀는 남편에게 잘 차려 입은 사랑스러운 아내 같은,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보인다.
리그 베다 10.71.4(힌두교)
너희는 이제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들어라.
누구든지 하늘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자갈밭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또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
마태목음 13.18-23(기독교)
상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한다. 중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마음에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다. 하들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그것을 크게 비웃는다. 그들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는다면 도라 하기에 부족한 것이다.
도덕경 41(도교)
말씀 선집
선생님도 가만 생각하니, 고생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그저 못살게 고생한 것이 뭐냐 하면, 결국은 마음 하나 크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뭐 떤 거 없습니다. 딴 거 없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해서 뭘 하느냐? 하나님이 들어와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발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발을 집어넣으려는 데 발이 들어오지 못하게 딱 닫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왼발로 차는 것입니다. 이 발로 차는 것입니다. 자꾸 차다 보면 자꾸 늘어나는 겁니다. 자꾸 찬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한 발이 들어가던 것이 두 발이 들어가고, 두 발이 들어가서는 손이 들어가고, 머리도 처넣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늘어나면 무척 큰 겁니다.
선생님이 우리 어머니를 보게 되면, 홀쪽하던 배가 애기가 있어서 열 달쯤 되면 자꾸 커집니다. 그거 무엇이 그렇게 늘어났다 줄었다... 조그마한 자궁이 말입니다. ‘아휴, 사람 그거, 10파운드 가까운 아기를 물에 담고 크니 얼마나 잘 늘어나겠나? 내 마음 보따리는 그거보다 더 잘 늘어나겠지’ 생각해봤습니다. 자, 여자들의 자궁이 늘어나지 않아서, 애기가 있는 자궁이 늘어나지 않아서 죽는다고 생각해 봤습니까? 그런 것은 생각도 안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과 같은 생명의 씨가 내 마음 보따리에 딱 떨어져서 자라기 시작하면 하나님만큼 클 텐데, 그렇게 큰 하나님을 포괄할 수 있는 내 마음 보따리가 안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 납니다. 사람도 큰일 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석 달쯤 자라다가 더 못 커서 유산이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자라다 말고 낙태할 수 있는 마음 보따리에 들어가겠습니까? 거기에 씨를 심겠습니까?
(110.326, 198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