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자신의 가르침 속에서 언행일치의 선례를 보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수준 높은 행위가 뒷받침 된 윤리적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전수해 주어야 한다. 성숙된 신앙과 풍부한 경험, 학생 개개인의 기질과 흥미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지도하는 분별력까지 스승이 갖추어야할 자질이다. 스승은 자신의 임무가 단순한 지식 전수를 넘어서, 학생들이 삶에 대한 목표를 갖도록 독려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가장 위대한 스승은 부모의 심정을 갖고 자기 자녀들을 가르치듯이 제자들을 훈련하는 사람이다.
가르침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스승은 궁극적 스승, 곧 하나님의 동참자 자리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스승은 가진 것이 없어도 배움을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자신까지 희생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가르침을 행할 때 언제나 하나님께서 내 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씀을 대신 하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 따라 마지막 단락에서 가르침을 하늘이 주신 소명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선명 선생께서 목회자들에게 해주신 설교 방법에 대한 조언들도 담고 있다.
1. 훌륭한 스승의 자질
종교 경전
스승들은 합당한 방법으로 그를 훈육한다. 그들은 그가 윤리규범을 확고히 지키게 한다. 그들은 모든 과목의 내용에서 빈틈없이 가르친다. 친구와 동료들에게 그를 잘 소개하고 칭찬한다. 모든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이와 같이 남쪽 방향은 제자에 의해 보호되고 안전하게 된다.
디가 니카야 3.185-91, 시갈로와다 수트라(불교)
아무도 그대가 어리다고 해서 그대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도리어 그대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이들의 본이 되십시오. 내가 갈 때까지 성경을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일과 권면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그대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들의 모임에서 그대가 안수를 받을 때에 예언으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이 일들을 실천하고 그것에 전심전력을 다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게 하십시오. 그대와 그대의 가르침을 살피십시오. 이런 일을 계속하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2-16(기독교)
비구들이여, 스승은 제자를 그의 아들로 여기며 제자는 스승을 자신의 아버지로 여겨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스승과 제자가 서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함께 거함으로써 불법을 닦고 실천함에 큰 진전이 있으리라.
비나야 피타카, 마하박가 3.1(불교)
공중을 날아다니는 흰 깃 왜가리가 끊임없이 둥지 속의 어린 새끼들을 생각하며 온 마음을 그곳에 두듯, 참된 스승은 가슴속에 제자를 품어 잊지 못하며 그로 하여금 신의 사랑에 몰입하게 한다.
아디 그란트, 가우리, M.4(시크교)
공자가 말하길 “덕을 닦지 못한 것, 배움을 강구하지 못한 것, 의를 듣고 옮길 수 없는 것, 착하지 못함을 고칠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근심거리다”고 하였다.
논어 7.3(유교)
말씀 선집
교수들의 단호한 결심과 명확한 가치관에 의한 후진교육이야말로 이 시대의 요청일 뿐 아니라 가르치는 자의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이점에서는 종교 지도자와 교수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자식을 전달하고 또 연구결과를 교육하는 것만이 아니고 인생을 책임 있게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130.16, 1983.12.18)
나 자신을 좋건 없이 바쳐서 의지할 수 있고, 내 마음과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의지할 수 있으며, 자신을 전부 맡기고도 안심할 수 있는 하나의 목자를 지상에서 맞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천상의 심정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을 인간 앞에 직접적인 관계로 맺어 놓은 것이 부자의 관계입니다.
(4.168, 1958.04.06)
스승은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주인 된 마음을 가지고 내 집을 지키듯 학교를 지키고 학생들을 내 아들딸같이 교육해야 합니다.
(203.308, 1990.06.27)
스승은 부모 대신 사랑으로 제자들을 교육해야 됩니다.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교육해야 됩니다. 그 학급에서 만나는 그때의 인연만은 아닙니다. 자기가 가르쳐 준 제자에 대해서 일생 동안 잊을 수 없어야 됩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자기의 모든 지식을 사랑과 더불어 연결시키는 스승이 참된 스승입니다. 무슨 생활방편으로 월급을 받기 위해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못 이겨서 안 가르쳐 줄 수 없는, 자기가 생활의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가르쳐 줘야 되겠다는 그런 스승이 되어야 됩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자신의 지식을 항상 사랑으로 전수해 주고, 또 그걸 받고 싶은 그런 사제지간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참된 스승이요, 참된 제자입니다.
(127.17, 1983.05.01)
여러분의 학교에 어떻게 하든 자기 제자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전수시키기 위해 애쓰는 스승이 있다면, 그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권고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순응하지 말고 나라에 대해 순응하라. 나를 위해 잘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잘 하기를 바란다.’ 하고 말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 스승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은 자기의 생애를 바쳐서 제자들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도 국가와 세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식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그 승의 제자와 그 부모의 아들딸들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될 것입니다.
(25.98-99, 1969.09.30)
교수들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사람은 부모를 통하여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개인의 성격과 인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학교입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교육, 정서교육을 통해 심정의 깊이와 폭을 키웁니다. 이것이 자녀의 인격을 만드는 주춧돌이 됩니다. 또한 가정은 자녀에게 미덕과 규범을 교육하는 학교입니다. 사람은 이와 같은 정서교육과 규범교육을 받은 터 위에 지식교육, 체육, 기술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천도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참사랑을 베푸는 참부모가 되는 동시에 참스승이 되어 심정교육, 규범교육을 바로 시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록 부모가 참스승임을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자녀는 부모로부터 있는 그대로를 닮고 배우게 됩니다. 부모의 역할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베푸는 참사랑과 부모의 사랑의 생활을 닮으면서 사랑의 인격이 형성되고 영성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271.80-81, 1995.08.22
2. 학생의 가치를 드러내는 스승
종교 경전
공자가 말하길 “육포 한 속(束, 10개) 이상을 가지고 와서 예를 행한 자에게 내가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하였다.
논어 7.7(유교)
나는 청년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유한 집 아이들을 똑같이 대한다. 돈을 낼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무료로 가르쳐 준다. 나는 또한 어부이기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들이 집으로 가져갈 물고기를 한 마리씩 건네준다.
탈무드, 아니트 24a(유대교)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어 놓고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해서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해서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찍어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누가복음 12.6-9(기독교)
도를 터득한 성인은 노상 모든 사람을 살려 쓴다. 고로 아무도 보리지 않는다. 또 성인은 모든 물건을 잘 활용한다. 고로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습명이라 한다. 그런고로 착한 사람은 착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고, 착하지 못한 사람은 착한 사람의 거울이라 하겠다. 스승을 높이지 못하거나 제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즉 겸허하지 못하면 비록 안다고 해도 크게 미혹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바로 오묘라 한다.
도덕경 27(도교)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깨닫고 있는 자, 이는 학자라 - 그를 따르라.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잠자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자 - 그를 깨우라.
아무것도 모르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름을 아는 자는 무지하도다. - 그를 가르치라.
아무것도 모르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름을 모르는 자는 악마라. - 그를 피하라.
알 가잘리. 이흐야 울룸 알 딘 59.1(이슬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해 분발하지 않으면 나는 그를 깨우쳐 주지 않고, 표현하지 못해 더듬거리지 않으면 나는 일러주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가르쳐서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 만큼 반응하지 않으면 나는 더 가르쳐 주지 않는다.”
논어 7.8(유교)
나는 나의 스승으로부터 많은 율법을 배웠고 동료들로부터 더 많은 율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제자들로부터는 모든 율법을 배우게 되었다.
탈무드, 타아니트 7a(유대교)
세 사람이 길을 갈 때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논어 7.21(유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너희들은 나를 위해 있어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아빠가 자식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엄마 아빠를 위해서 있어라’ 하는 것과 ‘엄마 아빠는 너희들을 위해 있다’ 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참된 부모의 입장입니까? 교사가 학생에게 ‘너희들은 내 월급 보따리를 보급하기 위한 창고다. 그러니 돈을 안 가져오면 모른다’ 하고 야단하는 것과, ‘돈을 안 가져와도 좋고 내가 굶어도 좋으니 너희들을 위해서 나는 가르친다’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참된 선생님의 입장입니까?
(104.210, 1979.05.06)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언제나 배고픈 자의 심정이 돼야 됩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그렇게 찾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결국 그 자체는 뭐냐? 내가 언제나 주체가 되든가 대상이 되든가 입니다. 확정적인 주체요, 확정적인 대상의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찾고 있다는 사실은 시험이라는 것은 학생들이 다 아는 문제를 내느냐, 모르는 문제를 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짜로 일들을 내기 위해서는, 여기에 오십 명 가까이 있지만 이 오십 명이 모를 제목을 뽑는 것입니다. 그것을 문제없이 해치우게 되면 그 교수 분하고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보기만 해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에 테스트를 해봐도 누구도 몰랐는데, 그 문제를 푸는 어떤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후계자가 될 수 있는 평가의 기준이 벌이지는 것입니다.
(66.45, 1973.03.18)
하나님은 선생님을 대해서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맨 아래에서 올라가서 여기 레버런 문이 없으면 하나님이 외로우니... 무슨 시험, 무슨 다 해봐도 그 시험에 패스하고 그렇기 때문에 믿지, 시험을 패스하고 또 시험할 것이 남은 것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박사 학위를 주는 지도 교수가, 논문을 잘 썼으면 그 박사가 ‘내가 선생으로 모시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야 박사 전체가 사인하고 역사에 자랑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교수도 ‘내가 잘 했다’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320.251, 2000.04.16)
3. 하나님과 함께 가르침
종교 경전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6-8(기독교)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해서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모든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누가복음21.13-15(기독교)
눈으로 보는 자가 격언을 남긴다.
이갈라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아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설사 듣는다 해도, 대부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 말하는 자는 놀랍다. 그것을 배우는 자는 총명하다. 훌륭한 스승에게 배워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복되다.
무지한 자가 가르칠 때, 자아에 대한 진리를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확실한 지식에 근거하지 않을 때 자아에 대한 견해는 각기 다양하기 때문이다. 가장 미묘한 것보다 더 미묘하며, 모든 논리를 초월한다. 자아와 브라흐만을 하나로 아는 스승에게 배움으로써 헛된 이론을 떨쳐버리고 진리를 얻는다.
언설은 그를 드러낼 수 없다. 마음은 그에게 도달할 수 없다. 두 눈은 그를 볼 수 없다. 실로 그를 안 성현들에게 배우는 것을 제외하고, 어떻게 그가 파악될 수 있겠는가?
카타 우파니샤드 1.27-8, 2.6.12(힌두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스승입니다.
(203.237, 1990.06.26)
여러분이 단에 설 때 ‘내가 단에 선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선다' 는 생활철학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이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자리에서 성인을 대표한다. 나라님을 대표한다. 국민을 대표한다 하는 자리에 서서 선언하는 교육을 해야 됩니다. 나를 본받아라! 본받는 데는 지식이 아닙니다. 나라와 더불어, 성인의 도리와 천리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정서적 터전 위에서...
(148.277, 1986.10.11)
기도생활을 하면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 경지가 창세전 하나님의 생각의 경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경지에서 ‘이렇다’ 하는 내용을 갖고 설명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입장이 바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피조물을 창조하시던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서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도 반드시 그 말씀과 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29.321, 1970.03.13)
이 세계는 좋은 스승을, 좋은 선생을 원하고, 좋은 부모를 원하는 것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최고 부모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요, 최고 교사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도 충만하고 지식도 충만하니 그 누가 끌어 갈 수 있느냐? 사탄이 젊은 사람들을 전부 빼앗으려고 ‘야, 전부 하버드 대학 가라!’ 다음에는 또 ‘사랑하는 사람 찾자!’ 그러지요.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 미국식 사랑은 무슨 사랑일까요? 그것은 틀림없이 사탄이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뭐냐? 하나님이 진짜 선생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고, 하나님이 진짜 어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뭐냐 하면, 무지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지 때문에 타락 했습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자기를 사랑하겠다고 한 것이 타락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을 요구했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자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하자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