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탐구(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4장 지혜)

무지... | 20180719083008

지식 탐구


지식 탐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무다. 교육과 꾸준한 학습은 그 사람을 보다 높고 고귀한 존재로 고양시켜 준다. 이번 장에는 지식 탐구의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해 다룬 구절들을 실었다. 

 

첫째, 진리 탐구는 종교적 의무다. 그러한 탐구가 우리를 진리가 시작된 우주의 근원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둘째, 학습의 중요한 효과는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포함해 무지의 범위를 깨닫는 것까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셋째, 지식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한 후 소화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모든 시각으로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꼼꼼하게 노력한다. 

 

넷째, 탐구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과학을 포함한 모든 종교와 문화까지도 포용해야 한다. 

 

이번 장에 실린 문선명 선생의 말씀 일부는 교수, 과학자 모임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 외에 개인적 진리 탐구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 하나님과 신적 원리는 이해의 출발점

 

종교 경전 

 

믿음이 없다면 지식은 있을 수 없으며, 지식이 없으면 덕행은 있을 수 없다. 덕이 없다면 구제는 있을 수 없으며, 구제가 없다면 완성(열반) 또한 있을 수 없다. 

웃타라디야야나 수트라 28.30(자이나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잠언 9.10(기독교)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넉넉하게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시오. 그리하면 얻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1.5(기독교)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보여 준 증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고 멸망할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닙니다. 우리는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2.4-7(기독교)

 

진리는 길이다. 진리는 자기 의지를 여읜 성자들에 의해 도달되는 삶의 목표이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3.1.6(힌두교)

 

옳게 닦는 수행자는 이 세계를 정복하고 지옥과 천상을 벙복하리라. 옳게 닦는 수행자만이 잘 설해진 법문을 엮을 수 있다. 마치 솜씨 있는 여인이 고운 화환을 엮듯이.

법구경 45(불교)

 

말씀 선집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 즉 진리를 통하여 최후의 목표를 추구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초월자 혹은 절대자가 개재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절대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모든 학문이나 모든 존재의 가치의 기원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오한 자리에서는 반드시 이와 관계를 맺고 참을 통하여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24.318, 1969.09.14)

 

진리를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자연과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입니다. 자연계에서 이 원리는 우주만물 만상의 근원입니다. 인간에서 이 원리는 그 영성(靈性)과 육성(肉性)의 조화를 통한 인격을 완성하고 진, 선, 미를 실현하도록 인도하는 참사랑의 절대가치입니다.

본인은 여태까지의 신본주의나 인본주의, 그리고 물본주의의 주장들이 상호 화해할 수 없는 가치들의 상충만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원리, 절대가치의 미완성적이고 일면적인 표현이요, 불완전한 주장이었다고 봅니다. 인간과 현실세계의 여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주의나 주장들을 뛰어넘어 전체를 수습할 수 있는 절대가치, 하나의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절대가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까지 다다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수긍하는 것은 자연계 및 인간계에 항구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보편적 원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바탕 위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가치들은 절대적 가치의 토대 위에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70.268, 1987.11.27)



2. 너 자신을 알라

 

종교 경전 

 

원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니라. 지혜를 얻은 자는 풍요로운 좋은 것을 얻은 것이니라. 그러나아는 자 외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노라.

꾸란 2.269(이슬람)

 

다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도덕경 33(도교)

 

맹자가 말했다. “군자가 도에서 깊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함은 스스로 도를 터득하기 위해서이다.”

맹자 IV. B.14(유교)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스스로의 마음에 의해 격리되고 파묻혀서 방황한다.

진리의 첫 자손이 나에게 왔을 때, 나는 그 동인한 말의 일부를 얻었다.

리그 베다 1.164.37(힌두교)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체하는 것이 최상이요,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이 병이다. 

도덕경 71(도교)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줄 알면 그만큼 그는 지혜롭다.

그러나 어리석으면서 지혜롭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법구경 63(불교)


말씀 선집 

 

지금 여러분들의 위치를 모르면 항해할 때 위도 경도가 몇 도인지도 모르고 가는 것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알고 자기가 방향을 잡아야 됩니다. 자기가 갈 길을 잡아야 됩니다.

(120.303, 1982.10.20)

 

수면제 같은 것 먹고 자살하는 사람 많이요?... 그럼 왜 죽느냐? 내가 애 태어났는지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죽느냐, 애 태어났느냐 하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철학의 입문에서 첫째로 묻는 것이 인생이 무엇이냐, 그 다음에 인간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222.70, 1991.10.28)

 

인간들은 선의 욕망을 일으키는 본심이 무엇이고 이 본심을 거슬러 악의 욕망을 일으키는 악한 마음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성을 갖게 하여 파멸을 초래케 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 등의 문제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선의 욕망을 따라 본심이 지향하는 선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 무지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원리강론, 총서)

 

진리는 영원불변의 중심을 갖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선악을 분별하면서 진리를 찾아가야 되겠습니까? 자신을 중심한 마음을 버리고 항상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성서에서도 높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2.138, 1957.03.17)

 

알고 보니 무수한 면에서 ‘아이구 부족하구나’ 하는 것이 좋은 선물이다.

(뜻길, p.81)

   

  

3. 교사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포괄적 연구에 의해 이해하라

 

종교 경전

  

소문이나 전통 또는 권위에 의해서 오도되지 말아야 한다. 종교 경전들의 권윙 의해서, 단순한 논증이나 추론에 의해서, 현상들에 대한 숙고에 의해서, 또는 관념에 의해서 오도되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스승이다.” 그러나 그대가 어떤 것이 유해하고 그릇되며 악한 것임을 스스로 알 때, 그것을 버려라... 그리고 그대가 어떤 것이 유익하고 선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1.190-191(불교)

 

지식의 탐구는 모든 무슬림에게 부과된 의무이니라.

이븐 마자흐 및 바이하키 하디스(이슬람)

 

온 정력과 정신을 기울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옛 성현들의 지혜를 탐구하고 예언을 연구하는 데 자기 시간을 바친다.

그는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보전하고 비유의 깊은 뜻을 파고든다.

그는 격언의 숨은 뜻을 연구하고 난해한 비유를 푸는 데 흥미를 느낀다.

그는 벼스렝 올라 군주들을 섬기고 통치자들 사이에서 중책을 맡는다.

외국을 두루 여행하며 인간 사회의 좋은 것과 나쁜 긋을 체험으로 안다.

집회서 39.1-4(기독교)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먼저 마음으로 믿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앎이 없이는 생길 수 없다.

(원리강론, 총서)

 

말씀 선집

  

여러분은 자신에게 희미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확실한 진리에 의한 방향이 없이는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누가 여러분에게 어떠한 새로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냥 그대로 믿지 말고 반드시 여러분보다 아벨적인 사람과 의논해야 할 것입니다.

(3.212, 1957.11.01)

 

이제까지의 철학이나 종교가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정신적인 짐을 지워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철인들과 성현들은 인생의 갈 길을 열어 주려고 각각 시대에 있어서 선구적인 개척의 길로 나섰던 것이었으나, 그들이 해 놓은 일들은 모두 오늘의 우리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 냉철히 생각해 보자. 어느 철인이 우리의 고민을 풀어 주었으며, 어느 성현이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여 우리의 갈 길을 뚜렷이 보여 주었던가? 그들이 제시한 주의와 사상이란 것은 도리어 우리들이 해결하고 가야 할 잡한 회의와 수많은 과제들을 제기해 놓은 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가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시대의 많은 심령들에게 비쳐 주던 소생의 빛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어느덧 꺼져버리고, 이제는 타다 남은 희미한 불똥만이 그들의 잔해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지어졌다면, 하나님에 대한 무지야말로 우리 인생을 얼마나 비참한 길로 몰아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실재성을 대하여는 성서를 보아도 명확히 알 도리가 없다. 하물며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랴.

(원리강론, 총서)

 

내가 이 길을 나설 때에도 ‘하나님 있습니까?’ 하고 끝까지 케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알고 출발했습니다.

(13.201. 1964.03.15)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기성교회같이 성경만 보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방대한 잼대로 재고, 얼만 들췄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실험하는 사람이 혹시나 이것이 맞지 않을까 해서 얼마나 실험하고 갖다가 맞추고 하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진리, 원리를 찾아낸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선생님이 많이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93.69, 1977.05.01)

 

철부지한 선생님을 하늘이 가르쳐 줄게 뭐야? 하늘이 못 살게 얼마나 야단했겠느냐 이겁니다.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한다는 것과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라는 것, 그 두 가지밖에는 가르쳐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 풀어내야 됩니다.

그래서 원리의 세계, 부자의 관계, 부자는 세상에 핏줄을 가진 그 부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근원에서부터 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원리를 모르면 안 됩니다. 내가 근본을 다 밝혔습니다. 그것이 전부 우주의 법입니다. 천법입니다.

(376.315, 2002.04.29)

 

나는 성경을 볼 때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년, 2년, 3년이라도 정성들입니다. ‘아, 그것은 이렇게 된 것이구나’ 할 때까지 뿌리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35.38-39, 1970.09.27)

   

  

4. 주제에 대한 모든 측면의 탐구
 
종교 경전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당파를 만들지 않으며, 소인은 당파를 만들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논어 2.14(유교)
 
나는 마하비라에 대한 좋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며, 또한 카필라나 다른 스승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는 다만 참으로 이치에 닿은 설법을 받아들일 뿐이다.
하리바드라, 로크탓트바니르나야 38(자이나교)
 
군자가 걱정할 일이 셋이 있다. 아직 못 들었을 때는 혹 듣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이미 들었으면 배우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이미 배웠으면 실천하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예기 18.2.2.20(유교)
 
벤 조마는 말했다. 누가 현명한 자인가? 그는 모든이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이는 시편의 가르침과 같다. “나의 모든 스승들로부터 나는 지혜를 얻었노라.” (시편 119장 99절)
미슈나, 아보스 4.1(유대교)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견해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열등한 것으로 얕보는 것, 이것을 지혜로운 자는 족쇄라고 부른다.”
숫타 니파타 798(불교)
 
하나의 철학적인 의견을 이해하려면 다른 소견의 포괄적 학습을 통해 하라.
아차랑가 수트라 5.113(자이나교)
 
말씀 선집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수많은 스승들의 훌륭한 교훈을 전부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박사가 되어서라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의 모든 지식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흡수하여 그 종합적인 가치를 스스로의 생명 요소로 삼아서, 여기에 색다른 하나의 새로운 선의 실체로서 등장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으며, 세계적인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5.327-328, 1970.11.01)
 
여러 가지 연구 분야에서의 지식이라는 것은 서로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데, 자칫하면 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고착하는 경향을 가지기 쉽습니다. 극단적인 전문화는 그것을 추구하는 개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의미만을 주는 지식을 마련하게 됩니다. 발견의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학자로 하여금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이 피상적이고 불확실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특히 르네상스 이후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위협을 받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소위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발전하는 지식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실히 과학은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서 크게 공헌해 왔습니다. 
한편 인간과 우주의 신비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종교와 과학은 두 가지가 다 영감과 논리와 관찰을 통해서 우주와 인류를 존재하게 한 그 원인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기원과 목적에 관한 그와 같은 고찰은 우리 인간이 어디까지나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되어 나왔는데, 그것은 또 우리의 그칠 줄 모르는 에너지 원(源)을 형성시켜 나오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20세기의 우주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심사에 관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95.202-203, 1977.11.25)
 
지혜는 연구와 배움에 의하여 단계적으로 얻어지는 지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축복인 영감에 의하여 얻어집니다. 인간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따라가서는 영감이 개발될 수 없습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심정과 이상을 아는 것입니다.
(219.105-106, 199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