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지혜
교육의 근본 목적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문화의 전통교육에서는 덕목을 키우는 것을 기본적으로 강조했다. 곧 영혼을 살찌우고, 문명인으로서 인격을 형성하고, 선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복잡한 현대 직업사회에서 필요한 기술과 기술적 지식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인성 교육과 가치관 교육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테오도르 루스벨트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인간의 마음을 기르는 규범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사회의 위험인물을 길러내는 것이다.” 세계의 경전들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교육의 근본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문선명 선생은 교육을 3단계로 구분하신다. 첫째, 심정 교육은 이타적 사랑을 위한 정서적 토대를 형성하는 교육이다. 둘째, 윤리 교육은 바람직한 관계 형성에 필요한 윤리성을 가르친다. 셋째, 학문 기술 교육은 이 두 기초교육 위에 확립되는 교육이다. 앞의 두 단계의 교육은 상당 부분 가정에서 부모의 책임 아래 이루어진다. 물론 학교도 부분적으로, 특히 인성 교육과 결혼 교육에 관해서는 일정 부분 책임을 할 수 있다. 개인의 성격과 결혼생활 문제가 직장의 업무 수행에도 밀접하게 관련된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교육 목표는 현대 학교교육의 직업 지향적 교육방식과 반드시 모순된다고는 할 수 없다.
1. 교육의 근본목적: 덕성 개발
종교 경전
청소년기의 자녀를 적절하게 교육하지 못한다면 부모는 단지 아이의 적일뿐이다... 지식은 사람을 정직하고 덕 있게 하며 사회에 대한 애정을 지니게 만든다. 사람이 친구와 친척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배움이다. 지식은 거룩한 것들 중에 가장 거룩하며, 신들 중에 신이며, 왕관 쓴 자들의 존경을 호령한다. 만일 지식을 잃어버린다면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의 비품과 가구는 도둑들이 가져갈 수 있지만 최고의 보물인 지식은 훔쳐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루다 푸라나(힌두교)
참된 배움은 마음에 인류에 대한 봉사를 새긴다.
아디 그란트, 아사, M.1, p356(시크교)
지혜를 갖는 목적은 참회하고 선행을 행하기 위함이다.
탈무드, 베라코트 17(유대교)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문(文)을 널리 배우고 예(禮)로써 단속한다면 또한 도(道)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논어 6.25(유교)
사물이 연구된 후에 지식이 이루어지고, 지식이 이루어진 뒤에 뜻이 정성스러워지며, 뜻이 정성스러워진 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안락해지고, 집안이 안락해진 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
대학(유교)
반야는 그를 훈육하고 바꾸며, 그는 더 이상 노여움이나 자만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적의도 악의도 그를 흔들어 놓을 수 없으며, 심지어 이런 악한 성향조차도 없다. 그는 사려 깊고 우호적이다... 어떻게 이 반야가 보살의 훈육과 마음 닦음을 위해 마련되었는가 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팔천송반야 3.51-54(불교)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일러준 이 말을 너희의 마음에 간직하고 골수에 새겨두어라. 너희의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이것을 너희의 자손들에게 깨우쳐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신명기 11.18-19(기독교)
지혜가 부르지 않느냐? 슬기가 목청을 돋우지 않느냐? 지혜가 길가 언덕에서 부르고 슬기가 네거리에 자리 잡고 목청을 돋운다. 마을 어귀 성문께 대문 여닫히는 곳에서 외친다.
“사람들아, 내 말을 들어라. 사람의 아들들아. 내 말을 들어라. 풋내기들은 처세하는 길을 배우고 미련한 자들은 마음을 바로잡아라. 들어라. 나는 곧은 말만 하고 바른 소리만을 입 밖에 낸다. 내 입은 진실만을 말하고 내 혀는 그른 소리를 꺼린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옳은 말뿐 내 말엔 잘못이나 거짓이 없다. 어진 사람은 내 말을 밝히 알고 지식 있는 사람은 내 말을 옳게 여긴다. 네가 받아야 할 것은 은이 아니라 내 교훈이고 순금이 아니라 지식이다. 지혜는 붉은 산호보다도 값진 것,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을 이에 비하랴.”
잠언 8.1-11(기독교)
말씀 선집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 자기 개체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도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지금까지 교육이나 도덕이 지향해 나오는 표준인 것입니다.
(24.212, 1969.08.17)
‘만민은 선한 것을 바라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기 전에 사람을 위해라, 전체 인류를 위해라, 사람을 사랑해라, 사람을 위해 살라, 사람을 위해서 태어났다’ 하는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64.20, 1972.10.22)
좋은 마음을 가지고 희생을 하는 사람은 좋게 된다는 것이 막연하나마 일률적으로 교육의 목표가 되어 있고 교양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인간은 떨어진 자리에서 보다 높은 한 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하늘은 불가피하게 그런 것을 일대일의 자리에서 세밀하게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암암리에 상징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이 오늘날 선을 행하라는, 적선하라는 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65.118-119, 1972.11.05)
악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대번에 악해질 수 있습니다. 대번에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을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이 되려면 자동적으로 되어지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선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가는 길은 서로 상반된 길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 가는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39.23, 1971.01.09)
이상적인 사회나 나라는... 교육은 모든 문명의 이기들을 활용하여 받되 지식교육, 체육, 기술교육은 물론이요, 축복가정을 터로 한 심정교육과 규범교육을 우선함으로써 천도를 따르는 선민을 기르는 교육이 된다.
(269.156, 1995.04.17)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자녀 교육의 재료가 나와 있어야 합니다. 또 형제 교육의 재료, 그 다음에는 부부 교육의 재료, 부모 교육의 재로, 그리고 가정이 어떻게 자라겠다는 교재, 종족이 어떻게 자라나겠다는 종족적 재료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233.336, 1992.08.02)
가정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학교입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교육, 정서교육을 통해 심정의 깊이와 폭을 키웁니다. 이것은 자녀의 인격을 만드는 주춧돌이 됩니다. 또한 가정은 자녀에게 미덕과 규범을 교육하는 학교입니다. 사람은 이와 같은 정서교육과 규범교육을 받은 터 위에 지식교육, 체육, 기술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천도입니다.
(271.80, 1995. 08.22)
우리가 태어날 때 어떻게 태어납니까?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태어날 때, 신랑 각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로 태어나서 사랑의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부모는 아들딸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됩니까? 지식교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하나 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이고, 또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이고, 둘 다 좋아하는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이고,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좋아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봐도,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봐도 사위기대입니다. 전부 사위기대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모두 사위기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의 기원이 어디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담 해와는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의 가치 기준의 설정은 어디서부터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교육에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교육을 받는 데는 어느 때까지 받느냐?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면 성숙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이 성서에 있습니까? 사랑 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기분 나쁘게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51.172, 1969.10.03)
2. 교육은 마음을 확장하고 새로운 발달 가능성을 열어감
종교 경전
널리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숫타 니파타 261(불교)
지식보다 더 큰 재산이 없고, 무지보다 더 큰 빈곤이 없으며, 문화보다 더 큰 유산이 없도다.
나흐줄 발라가, 어록 52(시아파 이슬람)
공자가 말하였다. “성품은 서로 가까우나 익히는데 따라서 서로 멀어지게 된다.”
논어 17.2(유교)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32(기독교)
토라를 연구하는 데 힘쓰는 자, 자유를 얻을 것이다.
미슈나, 아보스 6.2(유대교)
말씀 선집
공부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잠자기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처음부터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공부함으로써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36.120, 1970.11.22)
사람들은 누구나 훌륭한 아들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될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학교가 많은데 거기에서 교육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육은 일생 동안 해야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부모가 정성들여 키운 자식에게 가문을 맡길 때, 즉 그 대산자로 세울 때는 부모의 마음과 일치되게끔 하여 그 부모의 인연을 따라가게 하면서 대신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24.257, 1969.08.24)
‘아! 우리 아들딸을 공부시켜야 되겠다. 공부해야 출세한다’ 고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아야 출세한다’ 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귀하지,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144.130, 1986.04.12)
세계 모든 나라의 교육제도에서,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획득할 수 있다는 경쟁의 장점과 이에 가장 적합한 삶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평화로운 공존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건전한 인간의 노력을 잠식하는 전염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현재 인류는, 지성인 사이에서 그러한 경쟁의 강조가 바뀌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협동이 불가결한 요소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비춰 볼 때, 교육의 목적과 교육 철학은 심층으로부터 변혁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74.109, 197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