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에 대한 박애정신은 모든 종교에서 강조되는 덕목이다. 궁극적 선과 연결된 인간이기에 사회의 모든 이들과 우리는 그들이 부자든 가난하든 한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녀에 대해 느끼시는 사랑과 자애의 감정을 우리가 느낄 수 있고, 특히 가난, 질병, 전쟁, 기근과 자연재해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더 동정심을 느낀다.
위로금과 구호물품을 보내는 행동은 이런 영적인 사랑의 유대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것이다. 신약성서의 양과 염소의 비유는 긍휼한 자를 돕는 것이 곧 하나님과 위대한 성인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주는 데 가장 인색한 사람들까지도 이런 박애정신에 예외일 수는 없다.
자비를 베풀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몇 가지 구절들이 있다. 베푸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든 그 존엄성을 유지해야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지 마라.” 이 말은 수혜자와 기증자 사이의 익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기증자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만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수혜자는 자신의 위엄을 보존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하다.
마이모니데스에 따르면 최고의 자비로운 행위는 가난한 자가 사업이나 무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무 이자 대출 또는 경제적 원조를 해주어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잇게끔 도와주는 것이로 했다. 이것의 현대적 버전은 아마도 “물고기를 잡아주면 그 사람을 하루 동안 먹일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그 사람을 영원히 먹일 수 있다”는 격언일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식량 자금자족을 할 수 있게끔 돕기 위해 다양한 해양사업을 전개해 오고 계신다.
1.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자선
종교 경전
복되어라, 딱하고 가난한 사람 알아주는 이여, 불행한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구해 주시리라.
시편 411.1(기독교)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궁핍한 자와 고아, 포로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도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들로부터 보상을 받기도 감사의 말을 듣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꾸란 76.8-9(이슬람)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사도행전 2.45(기독교)
목마른 이, 배고픈 이, 고통 속에 잇는 이에게 측은지심을 내어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가지는 자비행은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쿤다쿤다, 판차스티카야 137(자이나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의 어느 한 성읍에 동족으로서 가난한 사람이 있거든 너희는 인색한 마음으로 돈을 움켜잡거나 그 가난한 형제를 못본 체하지 말라. 손을 펴서 그가 필요한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라.... 시원스럽게 꾸어 주어라. 주면서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너희가 사는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가 사는 땅에는 너희 동족으로서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이 어차피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너희 손을 뻗어 도와주라고 이르는 것이다.
신명기 15.7-11(기독교)
인자가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영광 중에 와서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아 놓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그들을 구별하여 양은 그들의 오른편에, 염소는 그의 왼편에 둘 것이다. 그때 임금이 자기 오른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했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의인들은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했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고, 언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우리가 찾아갔습니까?”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것이다.” 하고 말했다.
마태복음 25.31-40(기독교)
심판의 날 지고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이다. “아담의 아들아, 내가 아팠을 때, 너는 나를 문병 하지 않았도다.” 그가 대답하기를 “주여, 제가 어찌 당신을 방문할 수 있으리오, 당신은 우주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나의 종복 누군가 병에 걸린 것을 몰랐더냐? 너는 그를 문병하지 않았도다. 만약 네가 그를 방문했더라면 내가 그와 함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는 몰랐더냐?”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너희는 주 하나님만을 따르거라.” (신명기13장 4절). 그러나 삼키는 불이신주 하나님을인간이 어떻게 따를 수 있는가?(신명기4장24절) 이 말은 곧 주 하나님의 속성을 닮으라는 뜻이다.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해 입히고, 병든 자들을 방문하며, 장례식에 모인 자들을 위로하고, 죽은 자들을 장사 지내 주어라.
탈무드,소타14a (유대교)
거룩하신 분께서 사람을 사랑하실 때에,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와서 선물을 주신다. 사람이 가난한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게 되고, 하나님은 그 장점을 이용하여 은총을 베푸는 조건으로 삼으신다.
조하르, 창세기104a(유대교)
신들은 실로 기근만을 죽음의 원인이 되게 하지 않았으니, 먹을 것이 풍족한 자에게도 죽음은 다가오도다. 아낌없이 베푸는 자의 재물은 바닥나지 않으나 베풀지 않는 자를 위로할 자 아무도 없도다.
스스로 의식이 풍족하면서도 배고픈 이들에게 가슴을 닫는 자, 스스로 도움을 입엇던 지난날의 벗들을 푸대접하는 자, 진실로 그를 위로해 줄 자 아무도 없었다.
동냥을 원하는 이에게, 집 없는 이에게 먹을 것을 구하여 마음 졸이며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베푸는 자야말로 참으로 관대한 자로다. 싸움에 응하여 승리가 그에게 오나니, 이로써 그는 미래의 곤경들을 위하여 한 사람의 벗을 얻도다.
먹을 것을 구하여 찾아온 벗에게 음식을 베풀지 않는 자는 벗이 아니로다. 그냥 내버려두라. 그의 것은 마음 편한 것이 아니니 차라리 편안한 낯선 이를 찾아야 하리.
부유한 자는 실로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베풀어야 하리. 멀고 먼 앞날을 내다봐야 하리. 왜냐하면 재물이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 이 사람에게, 또는 저 사람에게 다가가나니. 인색한 자는 헛되이 먹을 것을 구하는구나. 내 진실을 말하노니, 그것은 죽음을 가져올 뿐 벗이나 또는 가까이 있는 이들을 모르는 체하는 자, 혼자서 배를 채우는 자는 또한 혼자서 모든 재앙을 감당해야 하리.
리그 베다 10.117.1-6(힌두교)
말씀 선집
자녀들이 아플 때 부모가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형제가 아플 때 그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인은 세계 만민들이 살고 있는 정상을 바라볼 때 자기 아픔 대신 그들의 아픔을 느낍니다.
만민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처지를 잊어버리고 투입하려 하는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는 역사를 넘어서, 시대를 넘어서, 세계를 넘어서 오늘날 전 세계에 모든 도덕 기중으로서 이어 받아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박애정신입니다.
(186.74-75,1989.01.29)
길가에 놀고 있는 못 입고 못 먹고 뼈만 남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자기 아이들처럼 안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못 하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놓고 책임을 못 하는 부모처럼, 자기 아이를 어느 유모에게 주거나 혹은 어떤 동네에 버린 어머니가.... 지나가다가 그 아이를 보게 되면, 그 아이 앞에 얼굴을 못 드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이상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정의 인연입니다. 만일 자기가 낳은 아들딸이 그렇게 헐벗고 있다면 그 아이를 붙들고 뼈가 녹아나고 살이 일그러지도록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46.281,1971.08.17)
길을 가다 허리가 굽은 불쌍한 노인을 보게 되면 ‘내 아버지도 저런 모양으로 찾아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또 부풀은 노동자의 손을 보게 될 때도 ‘아들을 찾으려는 내 아버지은 저 이상의 모양을 하셨겠구나!’ 불쌍한 거지를 보게 될 때도 ‘이 거지는 거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구나’ 하며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보잘것 없고 가련한 인생이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내 아버지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자기의 처지와자기의 위신을 초월하여 행동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8.346,1960.02.28)
나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생각하라는 거예요. 점심때가 되어 전부 식당에 들어가는데 돈이 없어서 걱정하는 빛이 보이면 데리고 들어가서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215.122,1991.02.06)
선생님 자신도 감옥에서 외로운 적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외로운 자리에 있을 때 와서 위로해 주고 간 사실이 언제나 잊히지 않습니다. 친척이나 다른 누가 왔던 것은 잊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잊히지 않습니다.
(63.205,1972.10.14)
어떤 때는 공창가, 창녀 굴, 젊은 처녀가 그런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구해 주기 위해 그저 동생같이 생각하고 구해 주던 일, 그런 사정을 듣고 그저 붙들고 통곡하던 것이 지금도 안 잊힙니다. 그렇게 붙들고 눈물 흘리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이런 사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이 다 기도보다 귀한 자리입니다.
(93.66,1977.05.01)
이제 8월 초하루면 수산사업을 한 지 20년이 됩니다. 일 년에 2천만 굶어 죽는 사람들을, 아프리카의 오지나 제3세계 불쌍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20년 동안 배를 탔습니다. 그물이면 그물을 만드는 방법, 공장을 만들고, 배를 만들어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머니들이 낚시질을 할 줄 알았으면 왜 굶어 죽습니까? 물이 있고 고기가 있는 강이 있는데, 낚시질해서 잡은 고기로 아이들을 다섯, 여섯 먹여 살리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사냥해야 됩니다.
하루에 6만 명이 죽어 갑니다. 그들이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로,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는데 배를 쓸고 전부 곰같이 살이 쪄 가지고 살을 빼기 위해서 금식하고 안 먹고 있는 이런 미국이 벌 받아야 되겠습니까, 안 받아야 되겠습니까? 영계 가서 지옥 가야 되겠습니까, 천국 가야 되겠습니까?
(261.308-309,1994.07.24)
2. 자선의 자세
종교 경전
친절한 말과 용서가 위법한 행동 후 해야 하는 자선보다 좋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부자이시며 인자 하시니라.
오, 믿는 자들아! 비난과 위법행위로 인해 너의 자선을 헛되게 하지 말거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자와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믿지 않는 자들처럼
꾸란 2.263-264(이슬람)
비록 가진 것이 적더라도 누가 와서 빌거든 선뜻 내어주라
법구경 224(불교)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탈무드, 기틴7b(유대교)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과 나누어 가지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
누가복음 3.11(기독교)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네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를 네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은밀한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3-4(기독교)
깨달은 자들은 관대하게 주는 자들이다. 후회 없이, 대가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명예를 바라지 않으며, 물질적인 이익을 탐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일체중생을 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누어 준다.
화환경 21(불교)
오, 믿는 자들아! 너희가 벌어들인 좋은 것과 우리(하나님)가 너희를 위해 대지로부터 나오게 한 것을 사용하라. 너라면 눈을 감지 않고서는 받지도 않을 나쁜 것만을 베풀려고 하지 말거라.....
너희가 공개적으로 자선을 한다면 그것을 잘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면 더욱더 좋은 것이니라. 이것으로 인해 너희가 나쁜 행동들도 속죄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행동들을 다 알고 계시는니라.
하나님의 길을 가기 위해 고생하며 땅 위를 활보하지 못하는(장사를 위해)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하라) 무지한 자들은 이들이 청하지 아니하므로 이들이 필요한 것이 없는 줄로 생각하리라. 너희는 그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노라. 이들은 집요하게 사람들에게 청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자선 행위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느니라.
꾸란 2.267-273(이슬람)
거지와 도움의 요청이 금지된 자에게도 그들의 재산에 권리가 있느니라.
꾸란 51.19(이슬람)
최고의 자비는 가난한 동료의 일손을 돕고, 선물이나(이해관계 없이)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동업자가 되어 일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 가난한 자는 더 이상 공적인 보조에 의지하지 않고, 도움을 통해 결국 토라에서 가르치는 독립심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레위기 25장 35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너의 동족 가우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희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의 곁에 살면 너는 그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자비는 베푸는 자가 수혜자에 대해 모르고, 수혜자도 베푸는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경우이다. 즉, 남이 모르게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츠바를 위해 자선 미츠바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자비는 고대 성전의 뜰에서 의로운 이가 가난한 자들이 가져가도록 남몰래 기부금을 놓고 갔던 것과 같다. 자선 상자에 돈을 넣어주는 행동이 이 성전 뜰에서의 행동과 흡사하다.
그보다 낮은 단계의 자비는 베푸는 자는 수혜자를 알지만 상대는 모르게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성인들이 가난한 자의 집 앞에다 몰래 선물을 놓고 오던 것과 같다. 공공복지를 책임진 자가 의롭지 못할 때 이런 행위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수혜자는 베푸는 사람을 알지만, 베푸는 자는 누구에게 돈이 전해질지 모르는 경우가 다음 아래 단계이다. 그러나 이것의 장점은 수혜자가 직접적 대면을 통한 부끄러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덜 바람직한 경우는 둘 다 서로를 알지만. 가난한 자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주는 것이다. 이보다도 낮은 단계는 요청을 받고 나서 도와주는 경우이다. 자신이 품위를 차릴 정도로만 주면서 실제 필요보다 적게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가장 최악의 경우는 억지로 베푸는 것이다.
마이모니데스, 미수네 토라, 자선의 8단계(유대교)
말씀 선집
불쌍한 사람을 만나서 동정하게 될 때 동전 한 푼을 주면서 ‘야! 젊은 사람이 뭐이래?’ 절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한 푼이라도 천 배 만 배 받들어서 오늘 이 시간 이후에 복을 받으소서’ 그런 말은 얼마든지 해도 좋습니다.
(127.89,1983.05.05)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전부 다 재료를 제공해야 됩니다. 재료를 제공하는 데는 재 것을 갖다가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늘 것을 갖다가 제공한다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주게 되면 하늘 것으로써 준다고 생각해야지, 내 것으로 주지 말라는 겁니다. 그 받는 사람은 내 마음을 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손해 안 나게 하늘이 몇 십 배로 갚아 줄 것입니다.
(102.119-120,1978.11.27)
없는 가운데서 잘 주는 사람이 있기만 하다면 얼마나 잘 주겠느냐!
(뜻길,p.200)
마음은 선을 행하라고 몸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하고 자기를 어렵더라도 뭇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줘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41.60,1971.02.13)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누구에게 몇 천만 원을 주었으미 그에 대한 이자를 얼마 가져와야 할 텐데 하면서, 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준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몇 냥 전을 투자했으니 그 이자를 받겠다고 하는 그런 부모 있습니까? 주고도 다 잊어버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준 것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36.85,197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