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받음(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3장 사랑)

무지... | 20180711074306

주고 받음
 
베풂의 지혜가 이번 장의 주제다. 아무 대가 없이 조건 없이 서로 주고받을 때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 그리고 베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받는다. 당장의 즉각적인 보답은 없을지라도 하늘은 알고 계시며, 결국 더 큰 사랑과 보답으로 축복을 돌려주신다. 먼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면서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하늘 법에 어긋난다(제2장 ‘이중 속성’ 참조). 반대로,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부탁을 하거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조건적으로 주는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베풂에 대한 문선명 선생의 폭넓은 가르침은 보편적 윤리 덕목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다 투입해 지상 천상의 만물을 창조하셨다.
문선명 선생은 먼저 주면 보다 크게 돌아오는 역설적 힘이 작용한다는 데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 하신다. 첫째, 줌으로써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게 된다. 둘째, 수수작용의 개념은 자연 세계가 순환하는 원칙이다. 셋째, 부모가 자식에게 투입하는 것은 수년동안 (자녀가 성장해서 결혼 하고 손자 손녀를 낳을 때까지) 기쁨으로 주는 것이다 조건 없이 먼저 줄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문선명 선생은 “주고 또 주고 주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려라” 하고 가르치신다.


1. 베푸는 길과 그 보답
 
종교 경전  

너희가 좋아하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 때 너희는 진정한 신앙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너희 가 베푸는 자선이 무엇이든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시도다.
꾸란 3.92(이슬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기독교)
 
관대하게 주는 자, 그는 곧장 신들에게 간다. 그는 천계의 높은 산마루 위에 고귀하게 서 있다. 
리그 베다 1.125.5(힌두교)
 
이득을 바라는 생각으로 베풀지 말라. 너희 주님을 위하여 인내하라.
꾸란 74.6-7(이슬람)
 
사람이 부드러운 땅을 걸어가려면 먼저 땅 위에 찬물을 부어야 한다.
요루바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인심이 후하면 더욱 부자가 되지만 인색하게 굴면 오히려 궁해진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어야 풍부해지고 남을 대접해야 저도 대접을 받는다.
잠언 11.24-25(기독교)
 
실로 불쌍한 자는 천계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자는 자유를 찬양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보시를 좋아하므로
저 세상에서 복락을 누린다. 
법구경 177(불교)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다.
대학 10.9(유교)
 
적게 뿌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각각 마음이 정한 대로 학 아까워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모든 은혜를 풍성하게 하셔서 모든 일에 언제나 여러분을 충족하게 하시며, 온갖 선한 일을 넘치도록 행할 수 있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고린도후서 9.6-8(기독교)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다른 이와 베푸는 보시의 도를 보고 그를 도와 크게 기뻐하면 또한 복의 과보를 얻으리라.” 어떤 사문이 물었다. “그 복은 장차 줄어지지 않겠나이까?”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그것은 햇불과 같아서 수천 사람이 각기 햇불을 가지고 와서 그 불을 붙여 가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어둠을 밝히더라도 그 본래의 햇불은 전고 같은 것이니, 그 복도 그와 같느리라.”
사십이장경 10 (불교)

말씀 선집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우리 인간들의 사랑의 본질이 다르겠습니까, 같겠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같은 것은 같은 건데 하나는 주고자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는 주체적 사랑이요, 하나는 대상적 사랑입니다.
(130.118,1984.01.01)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25.15,1992.01.01)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줘야 되는냐? 제일 나쁜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옷 짜박지를 주는 것이 아니며, 먹다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뿐만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 줘야 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사랑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4.246,1970.09.13)

우주운동의 발생은 주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모든 이론적인 기반에서 이 운동을 수수작용이라고 합니다. ‘수수작용’ 이라는 말은 ‘받고 주는 것’입니까, ‘주고받는 것입니까?’ 주고받을 때는 뿌듯하지만 받고 못 주면 창피한 것입니다.
(239.223,1992.11.25)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받고 싶습니까, 주고 싶습니까?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원리에는 수수작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에서 ‘줄 수(授) 가 먼저입니까, ’받을 수(受) 가 먼저입니까?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줍니까,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줍니까? 부모가 먼저 주지요? 이것을 볼 때, 존재의 최초 기원이 되는 그분으로부터 주는 일이 시작되어서 작용이 연결되었다는 논리를 인정해야 됩니다.
(239.59,1992.11.23)
 
통일의 원칙은 창조력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창조력을 투입하는 데서 통일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받고자 하는 데서는 통일이 안 됩니다. 받는 것은 좋습니다. 받았으면 거기에 이자를 가산해 가지고 그 이상 줄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위에서 또 받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도 절대 싫어하는 것입니다. 안 줍니다.
(82.326-327,1976.02.0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 대해서 한 번 예를 들어 봅시다. 선한 사람은 열 친구가 있다면 그 열 친구에 대해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금년이나 내년이나 십년이나 일생 동안 시중들고 봉사합니다. 그러는 친구는 좋은 친구입니다. 열 사람 전부가 제일 좋은 친구라고 말합니다.자기들만 좋아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라든가 자기 누이동생이 있으면 데려가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열 친구를 대해서 ‘야! 이놈아, 날 위해라’ 고 세 번만 그런다면 다 도망갑니다. 그가 따라올까 겁이 나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남을 위해, 상대를 위해서 투입하는 자는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인류 교육이라든가 모든 지도 이념에 있어서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관점에서 선을 세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는 전체 앞에 선한 사람이요, 어떤 가정이 전체의 가정을 위해서 완전히 희생하면 전체의 가정 앞에 선한 가정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또 어떤 민족이 전체의 민족을 위해서 등장하는 것이요, 어떤 나라가 전 세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면 그 국가는 선한 국가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69.86,1973.10.20)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사랑의 심정을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한 신이라면 그러한 마음을 가진 대상이 반드시 생겨나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흥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이런 사실을 이론적으로 확실히 모르지만 서로서로 사랑해라, 서로서로 위해라  하는 것이요, 종교는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말이 우리의 인륜도덕과 상치되지 않습니다. 맞는 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라 이겁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입니다. 남을 사랑해라 이겁니다. 그래서 위하여 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112.301,1981.04.25)


2. 품격을 갖춘 주고받음의 순환
 
종교 경전 
 
남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나님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을 헤라리는 대로 하나님도 너희를 헤아리실 것이다.
누가복음 6.38 (기독교)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태복음 5.7(기독교)
 
현세에서 친절을 행하는 자들은 보상을 받으리라.
꾸란 39.10(이슬람)
 
누가 명예로운 사람인가? 인류를 명예롭게 하느느 사람이 명예로운 사람이 된다.
미슈나, 아보스 4.1(유대교)
 
너희가 인사를 받았을 때 더욱 예의바르게 응답하라. 아니면 동일한 예의를 갖춰라. 하나님은 모든 일에 세심하게 계산하시노라.
꾸란 4.86(이슬람)
 
나에게 목과를 보내 주니, 나는 패옥으로 보답하네.
충분한 보담이 될 수 없겠으나 나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고자!
나에게 복숭아를 보내 주니, 나는 미옥으로 보답하네.
충분한 보답이 될 수 없겠으나 나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고자!
나에게 자두를 보내 주니, 나는 옥석으로 보답하네.
충분한 보답이 될 수 없겠으나 나의 고마움을 길이 남기고자!
시경 64(유교)
 
말씀 선집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더 사랑한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40.244,1971.02.06)
 
사랑을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도 받지마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몇 배 남는 장사입니까? 2배 남는 장사가 넘습니다. 몇 배 남는 장사다 이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하면 할수록 입체적으로 장사하는 것입니다.
(90.21,1976.12.05)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받은 것을 잘라먹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고, 받은 것에 대해 플러스 시켜 베푸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자신보다도 낮아지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또 남편은 아내가, 그리고 아내는 남편이 자신보다도 훌륭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형은 동생이, 동생은 형이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315.210,2002.02.020)

내가 제일 좋은 걸 가져서 좋아하는 마음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남을 주고 기뻐하는 마음 중에 어떤 것이 더 기쁜가 비교해 보십시오. 거기서 번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면 돌아올 때는 크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기 때문에 큰 데 점이 생겨 가지고 돌라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일은 거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기뻐서 주게 될 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또 주려고 할 때 더 커지는 것입니다. 더욱 발전하는 것입니다.
(248.96,1993.08.01)
 
대기가 백퍼센트 절대 저기압권이 되면 절대 고기압권이 생겨서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지혜의 왕입니다. 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느냐? 자동적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논리가 설정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204.107,1990.07.01)
 
나무도 그렇잖아요? 뿌리에서 영양소가 오게 되면 잎사귀는 광합성작용을 해서 영양소를 뿌리에 보급해 주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입니다. 받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 주체 되는 사람이 먼저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먼저 주어야 됩니다. 물리 흐를 때 구덩이가 있으면 메우고 가야 됩니다.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흐릅니다. 사랑도 흐르는데, 구덩이가 있으면 메워 주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241.306,1993.01.01)

참사랑은 투입하는 힘입니다. 주는 힘이지 받기만 하는 힘이 아닙니다. 전부를 다 주어 영점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온전히 빈 자리가 되니 영점 자리에는 무엇이든 들어와도 오케이입니다. 그래서 주는 힘이 영속하면 돌아오는 힘이 보태져서 영속하므로 영원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으로 위하여 사는 세계는 수수작용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상대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이렇게 주고받는 작용을 통하여 참사랑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상대관계에 있어서 모든 주는 힘에 대하여 돌아오는 힘이 작용하므로 그 중심점은 영원히 정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315.209,2000.02.02)
 
주는 것이 왜 흥하고 왜 주는 것으로 말미암아 크느냐? 하나님의 본래 이 우주 창조의 근본과 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잡아당기는 것입니까? 주는 것입니다. 주면 자꾸 커지는 법입니다. 모든 것이 주는 개념으로 바뀌면 미국은 점점 커집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원칙에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가 나를 협조합니다. 우주가 나를 협조하기 때문입니다. 자꾸 받고 또 받으면, 모든 것이 작아집니다.
참됨 사랑의 뿌리가 뭐냐 하면, 영원히 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영원히 주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참된 사랑은 작동하면 할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비로운 것입니다. 세상의 힘은 작동하면 작아지는데, 이건 작동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을 가지고 수 천 년 전에 간 그런 사람도 지금 시대에 와서 천만으로 불어나는 것입니다.
(183.324,1988.11.09)
 
여러분의 상대는 자기의 이상적인 터전이요, 행복의 터전이요, 모든 기반이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의 대상으로 지은 것입니다.... 주고받는 수수작용의 원칙이 천지의 작용, 운동과 법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다 주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완전히 사랑하려면 남편으로부터 완전히 사랑받았다고 하는 그날에 가서야, ‘남편을 진짜 사랑하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사랑받게 될 때에, 완전히 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의 원칙입니다. 주체로부터 완전히 받았을 때만 완전히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전에 돌려주기 시작하면 완전한 것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60.232,1972.08.17)
    

3. 조건 없이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줌
    
종교 경전 
 
그는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재산을 베풀고, 그가 베푼 은혜에 누구로부터의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오직 지고하신 주님의 기쁨을 구하니, 그는 분명 만족하게 되리라.
꾸란 92.18-21(이슬람)
 
올바른 때와 장소에서 합당한 자에게
보시의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단지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베풀어질 때
그 보시는 고결한 보시라 한다.
그러나 되돌아올 대가를 목적으로
또는 어떤 결과를 위하여
또는 마지못해서 주어지는 것,
그것은 격정적인 보시라고 전해진다.
합당하지 않은 때와 장소에서 합당하지 못한 사람에게
존중하는 마음도 없고 경멸하는 태도로 주어질 때
그것은 어둡고 게으른 보시라고 한다.
바가바드기타 17.20-22(힌두교)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능히 천승(千乘)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거니와, 진실로 그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그릇의 밥과한 나무그릇의 국에도 얼굴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맹자VII.B.11(유교)
 
“내가 이것을 준다면 무엇을 향유하게 될까?” 이와 같이 이기적인 생각은 마귀들의 습성이다. “내가 이것을 향유하게 되면 무엇을 나누어 줄까?” 이와 같은 자기 없는 생각은 신들의 덕성이니라.
샨티데바,바살행의 도 8.125(불교)
 
말씀 선집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주고도 잊어버리고, 하고 또 하고 싶은 사랑입니다. 
(162.239,1987.04.12)
 
투입하고 그 다음엔 잊어버립니다. 투입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잊어버립니다. 자꾸 투입하면 할수록 자기의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높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개념입니다. 기억하면 벌써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디서 통일이 벌어져야 되느냐? 남자가 남자를 주장하는 데서는 없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만 주장하는 데서는 없는 것입니다. 투입에서부터 우주 창조가 시작했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남자는 상대에 대해서 무한히 투입하고 그 상대도 무한히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하나되는 길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같이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 통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67.301-302,1995.02.05)
 
하나님은 주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고, 받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자리를 소원하십니다. 그러한 자리를 세계적으로 넓혀 온 만민을 거기서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두시려는 소기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13.249,1964.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