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3장 사랑)

무지... | 20180706111943

용서

내게 잘못을 행한 자에게 용서를 베풀라는 관용의 태도는 모든 경전에서 강조한는 내용이다. 용서는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기독교인의 의무는 용서하는 것이라고 기도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이야 말로 언제나 용서해 주시는 분이다. 꾸란에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가고자 열망하는 가는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 차야 한다.
부모에게는 용서가 자연스럽다. 우리가 타인에게 부모의 심정으로 다가갈 때,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그들을 대할 때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나에게 엄청나 불의와 해를 가져다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원한을 품음으로써 내 영혼을 다시 한 번 상처 입히고 곪게 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가볍게 잊어버리고 발로 뭉개버릴 문제가 아니다. 쉽게 형식적으로 용서하는 것은 위선이며, 계속되는 원한의깊은 감정을 가면으로 덮어 놓는 것일 뿐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용서한다는 것에 기억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제 날씨를 잊어버리듯 자연스럽게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는다는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은 남을 용서하고 싶으면 용서가 필요한 긍정적 이유를 찾으라고 하신다. 과거 잘못에 대한 아픈 기억을 대체하고 새롭게 관계를 시작할 만한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분도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신 이유를 탐구하셨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동정하기 위해서 그의 단점과 고뇌가 무엇이었는지를 찾고자 노력하셨다.

종교 경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마태복음 6.11-12(기독교)

만약 너희가 용서하고 관용을 베푼다면, 그렇게 하나님은 관대하고 자비로우실 것이다.
꾸란64.14 (이슬람)

알라는 가장 관대하시며 다른 이를 용서하는 자를 사랑하시니라. 
알가마 알사가이르 2.1749(이슬람)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복음 6.14-15(기독교)

가장 좋은 보상은 믿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보상이며, 화를 냈다가도 곧 용서해 주는 자들이노라. 악에 대한 보답은 같은 악이니라. 용서도 잘하고 화해도 잘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상을 주시노라. 실로 그분께서는 불의한 자들을 사랑하시지 않노라.
꾸란 42.36-37,40,43(이슬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다른 제자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 주어라. 그가 네게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 한다’ 고 하면 너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 
누가복음 17.3-4 (기독교)

진정으로 위대한 자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않고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
주희(朱熹) (유교)

훌륭한 사람의 최상의 행위는 용서와 불문이니라.
나흐즐 발라가, 어록 201 (이슬람)

군자는 잘못을 용서해 주고, 또 그들의 죄를 관대하게 감해준다.
역경 40 (유교)

이므란의 아들 모세가 “주여, 당신의 눈에 가장 훌륭한 당신의 종복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자 그 대답은 “권력 있는 지위에 있을 때 용서해 주는 자이니라” 였다.
바이하키 하디스(이슬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인,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일을 놓고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보고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따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돌아가고 마침내 예수만 남았으며, 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여저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요한복음 8.3-11(기독교)

원수가 넘어졌다고 좋아하지 말고 그가 망했다고 기뻐하지 마라. 여호와께서 그것을 못마땅하게 보시고 네 원수에게서 노여움을 돌이키신다.
잠언 24.17-18(기독교)

복수를 하거나 적의를 가지고 행하는 자는 칼을 쓰면서 자기 손을 자르는 것처럼, 다른 손에 상처를 냄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앙갚음하는 것과 같다.
예루살렘 탈무드, 네다림 9.4(유대교)

관용으로 분노를 흩어 버리라.
가마나숫캄 136(자이나교)

관중은 “백씨의 읍 삼백호를 빼앗았는데,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며 평생을 마칠 때까지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고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 교만이 없기는 쉽다.” 
논어 14.11 (유교)

그때에 베드로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
마태복음 18.21-22(기독교)

용서가 있는 곳에 신이 있다.
아디 그란트, 샤로크, 카리르,P.1372(시크교)

상해는 너를 상대의 밑에 들어가게하고, 복수는 너를 그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며, 용서는 너를 그의 위에 세운다.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말씀 선집 

크게 용서해 주는 것도 그 사람의 사정을 백퍼센트 알게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사정을 아시기 때문에 인간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2.221,1957.05.26)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용서한 것은 부모를 용서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원수입니다. 내가 요셉 입장에서 볼 때, 전부 다 원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요셉 입장에서 볼 때 전부 다 원수지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봐서라도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6.125,1986.06.06)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오면서 잘못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잘못했을 때 척 보고 ‘백 번 용서해 주마’ 하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선생님은 대하는 사람들을 백 번 용서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지금 자기의 아들이 살인강도를 해 가지고 사형수가 되었다 합시다. 그래서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야, 너는 잘 죽는다. 자, 어서 죽어야지, 이 자식아’ 라고 합니까? 결과는 사형이라 다더라도 그 심정은 천번 만번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용서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157.259-260,1967.04.10)

여기 책임자들 중에 식구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식구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정면적으로 말하기 보다 잘못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느냐, 그 부인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부인을 보라는 것입니다. 부인이 그 남편보다도 악하냐 이겁니다. 다음에는 자식을 두고 보십시오. 자식을 볼 때 그 아버지보다도 나쁘냐 이겁니다. 다음에는 어머니 아버지르 두고 볼 때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보다 나쁘냐 이겁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 나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는 나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면, 그 가정에 지금까지 쌓아 둔 복이 나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복을 접붙이는 방법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려고 하면 하늘이 보호하는 것입니다.
(308.208,1990.01.05)

하늘은 망한 자를 또 치지는 않습니다. 망한 자 가운데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사죄하는 자에 대해서는 긍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이 있기 때문에 패자에게 또 칼을 들어 치게 되면 친 자의 후손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친구 이상 가까운 자리에서 정성을 들이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25.333,1969.10.12)

기독교 역사를 두고 볼 때, 로마의 400년 박해시대에 있어서 사자으 lqkq이 되거나 희생하는 순교자가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불의의 시저(Caesar)왕에게 항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여 벌을 내리소서! 전부 망하게 하소서’ 하면서  죽어간 순교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소서! 하고 죽어 간 순교자가 있을 것입니다.
로마 황제인 시저를 위해 기도하고 원수이지만 로마를 위해 기도한 사람은 원수 사탄세계를 이긴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로마를 반대하고 나 하나 구원받기 위해서 죽어 갔던 사람은 로마 이하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30.233,1984.01.29)

예수님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으면 사탄을 사랑하라는 겁니까?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 가지고 사랑하라고 했지만, 사탄을 사랑하라는 말이냐는 겁니다.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 하리이까 할 때, 예수님이 말하기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예수님이라면 사탄도 사랑해야 되는데, 왜 사탄을 사랑하지 못합니까? 사탄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간단합니다. 그러면 그 사탄하고 하나님하고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위해 기도한 것은.... 그 사람, 사탄이 붙은 그 사람을 원수시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는 사탄인데, 사탄 편에 잇는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사탄 편에 잇는 사람을 찾기 위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지, 사탄 그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몸이었습니다. 그것을 안 찾으면 하나님이 완성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될 수 있는 이러한 입장에 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차탄시켰으니 원수입니다, 원수. 만일 이것을 용서함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파탄시킨 사탄인데 이를 용서한다면, 이 우주의 이상이라는 것은 완전히 깨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92.187,1977.04.10)

당신은 선의 본체이시기에, 무한하신 사랑과 관용으로 이 나라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통일의 자녀들을 핍박했던 과거지사를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그간 통일의 문을 두드렸으나 핍박의 길, 눈물의 역로를 개척하는 도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맞지 못하였기 때문에 외로움에 지쳐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사옵니다. 또한 이 길을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도 거리거리에서, 혹은 처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빌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원한 맺힌 아버지의 심정을 풀어 드리고 싶은 참기 어려운 분한 심정도 있지만, 원수의 자식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긍휼하신 복귀의 길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이들을 하시 축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버지, 배반하고 배신한 불쌍한 무리들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기억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7.301-302,1969.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