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사랑
참사랑은 보편적인 사랑이다. 끝이 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모두가 한 형제자매임을 경험할 수 있다. 절대적 참사랑과 타락한 세상의 상대적 사랑에는 큰 차이가 있다. 참사랑은 공명정대한 보편적 사랑이 반면, 타락한 세상의 사랑은 일가친척과 친구, 동료만 사랑하는 편협한 사랑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개인이 개인적 관심사를 뛰어넘어 인류를 향한 더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류를 향한 사랑, 그것으로 충분할까? 이 사랑이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정치활동 혹은 자선활동으로 표현되는 일반적 동정심과 같을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의 진정한 단계는 실질적인 관계 형성이다. 어떻게 얼굴도 알지 못하는, 저 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가족을 사랑하듯 똑같은 강도로 사랑할 수 있을까?
여기에 모아 놓은 가르침은 낯선 타인들을 대할 때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대하라고 가르친다. 문선명 선생도 이 주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문선생님은 자녀를 다른 인종의 자녀와 교체 결혼시킬 것을 제안하신다. 다른 문화에서 온 상대방 가족을 이해하려는 결코 쉽지 않은 노력을 통해서 우리의 사랑은 인종적 장벽을 넘어서는 진실한 사랑으로 거듭날 것이다.
1.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심정
종교 경전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소서.
모두에게 평화가 있으소서.
모두가 완성에 적합하소서.
모두가 상서로운 것을 경험하소서.
옴, 모두가 행복하소서.
모두가 건강하소서.
그는 자신의 마음이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세계의 한 방향을 가득 채우게 한다. 그와 같이 두 번째 방향을, 그와 같이 세 번째 방향을, 그와 같이 네 번째 방향을, 그래서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세계에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편안하게 한다. 마치 고동을 부는 자가 자신뿐만 아니라 어려움 없이 온 사방에서 다 들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생명의 형태를 지닌 모든 존재들 중에 그냥 지나치거나 내버려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들 모두를 마음이 자유로워진 것으로 간주하며 깊은 자비와 사랑을 느낀다. 실로 이것은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디가 니카야 13.76-77.테빗자 숫타(불교)
언젠가 한 사람이 사도에게 이슬람에서 가장 좋은 행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도가 대답하기를 “가난한 자에게 양식을 주고, 아는 사람이건 낯선 사람이건 그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제는 것이다.”하였다.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어진 자라야맘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
논어 4.3-4 (유교)
성인은 고정된(고집하는, 항상적인) 마음이 없고, 백성의 마음으로써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사람은 선히 여기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또한 선하게 여기니, 덕은 선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을 진실하게 여기고 진실하지 못한자도 또한 진실하게 여기니, 덕은 진실하기 때문이다.
도덕경 49(도교)
말씀 선집
옛날의 성현들이 가르쳐 준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더불어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19.285.1968.03.10)
우주의 본원적인 하나님의 사랑, 그런 사랑이 타락 이후 오늘날까지 살아 나오는 인간 개인에게 찾아 들어가 절충 되었다면 영원한 한날을 중심삼고 올라가도 사랑이요, 넘어져도 사랑이라 할수 있는 경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경지에서는 인격의 귀함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 사람은 말을 잘해서 좋다거나, 그 사람의 눈이 비둘기 눈 같아서 좋다거나 하는 것을 초월합니다. 어디를 보아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관게되어 있는 모든 것은 전부 향수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전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분신이요, 하나님과 인연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심정을 가지고 보면 전부 친구입니다.
(33.89-90,1970.08.09)
적이든 친구든 사랑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적입니다. 전부가 하나의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4백조에 달하는 세포가 합해야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전체의 세포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체가 되어야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25.132,1992.01.05)
사랑은 국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오색 인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흑인종⋅황인종 무슨 차별이 없습니다. 사랑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 환경을 개의치 않고 흘러가면 환경이 동화되지, 환경이 반발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상적인 내용을 갖춰야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의 배급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64,93,1987.04.26)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자기보다도 상대를 더 사랑하는 분입니다 자기보다도 상대편을 더 사랑하여 두 사람이 하나 되어 가지고 더 큰 범위의 상대편을 사랑하기 위한 운동이 하나님의 운동입니다 하나님의 사상은 이것이 본질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을 악한 세상에 보내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위인들, 과거에 왔다 갔던 성인 현철들은 전부 이 세상에 와서 ‘인류를 사랑하자’ 는 타이틀을 걸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든가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서 환영받은 것이 아니라 전부 배척받아 희생되었습니다.
(100.81,1978.10.08)
2.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남을 사랑함
종교 경전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그로 하여금 모든 존재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을 지니게 하라.
쿠아카 파타,멧타 숫타 (불교)
일체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없다면 부모에 대한 효성도 윤회를 부른다.
밀라레파(불교)
내 어른을 공경하여 남의 어른을 공경하는 데에게까지 미치며, 내 어린이를 사랑하여 남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데에게까지 미친다.
맹자I.A.7(유교)
나는 마치 부모에게 효성을 보이듯 일체 존재의 편의를 도모하고 섬기리라. 스승들과 장로들과 아라한들과 여래들이 이르기까지 한 가지로 합당하게 공경하리라.
가다비유하 스트라,사만타바드라의 서원(불교)
자비와 연민과 기쁨을 실천한 위대한 분, 보디사트와 가장 사랑스런 외아들의 지위를 얻는다. 예를 들어, 아들이 평화롭게 있는 것을 볼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이 단계에 머무는 보디사트와 의 경우는 바로 이와 같다. 그는 일체 존재를 마치 부모가 외아들을 보는 것처럼 본다. 그들이 선을 실천하고 있을 때 그는 크게 기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단계를 가장 사랑하는 계위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아들이 아플 때 걱정한다.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그들의 가슴을 적신다. 그 마음은 아들의 아픔과 떨어질 수 없다. 이 계위에 있는 위대한 분,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가 미혹의 병에 걸린 존재들을 볼 때 그의 가슴은 아픔으로 가득하다. 그는 마치 외아들에 대한 부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걱정한다. 피부의 모든 모공에서 피가 난다. 우리는 이 계위를 외아들의 계위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흙, 더러운 것, 기와, 돌조각, 오래된 뼛조각, 나무토막을 집어서 입에 넣는다면, 그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아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른 왼손으로 아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입에 든 오물들을 꺼낸다.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체 존재가 법신의 단계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며 몸, 말, 뜻에서 불선이 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보디사트와는 그것을 알고 지혜의 손으로 불선을 뿌리 뽑는다.
그는 사람이 생사를 거듭하며 슬픔과 고통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의 죽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와 이별할 때, 그들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그와 함께 죽고싶은 마음이 든다.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가 지옥에 떨어진 어리석은 사람을 볼 때, 그 또한 몸소 그곳에 태아나고 싶어 한다. (그는 생각한다) ‘아마 저 사람은 스슷로 고통을 당할 때 참회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로써 그가 선한 생각을 하게 할 수있다.’
외아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나 깨나, 걷거나 서있거나 앉아 있거나 쉬고 있거나 항상 그 아들을 생각한다. 만일 그가 그릇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상냥하게 타일러서 그 아이가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인도한다. 보디사트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 굶주린 아귀들이나 축생들을 볼 때, 또는 인간계나 천계에서 선하고 악한 행위를 하는 그들을 볼 때, 그의 마음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으며,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는 그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여워하거나 악한 위도로 벌하지 않는다.
마하파리니르와나 수트라470-471(불교)
말씀 선집
자기 자식에게만 예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목고 자라나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31.168,1970.05.24)
여러분이 우주적인 천국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운동을 전개한다면, 평화의 세계가 이 땅에 건설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만이 부모가 아니고, 자기의 형제만이 형제가 아니며, 자기의 아들딸만이 아들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사람을 나의 부모, 형제, 자녀로 여길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사망세계에서 시달리는 뭇 백성들을 바라볼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을 것이며 형제나 나이 어린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그들을 구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눈물 흘리며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그러한 여러분을 중심삼고 이 땽에 천국이 건설 될 것입니다.
(2.144,1957.03.17)
예수님이 말하기를 ‘네 집안 식구가 원수’ 라고 했습니다. 집안 식구들을 더 사랑했다가는 그게 원수라는 것입니다. 천국 못 간다는 말입니다.
(161.249,1987.02.22)
참된 효자를 거느릴 수 있는 부모는 자기에게 효도하는 자식을 칭찬하는 것보다, ‘나에게 효도하듯이 형제를 나 이상 사랑하고, 이웃과 나라를 위해서 나 이상 사랑해라’ 하고 가르쳐 주는 부모입니다. 효자를 거느릴 수 있는 자격은 그런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군이 있다 할 때 그 선군은 충신을 대해서 말하기를 ‘충신아! 네가 나를 위해서 정성들이고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먼저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난 후에 나를 사랑해라’ 하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충신을 거느릴 수 있는 선군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날 성인을 거느릴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말하기를 ‘너는 나한테 충성의 도리를 다 해라’ 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나를 버리고라도 만민을 사랑하고,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해방하는 동시에 영계에 있는 영인까지 사랑하고 나서 나를 사랑해 달라’ 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기 때문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을 영원히 지닐 수 있습니다.
(85.265,1976.03.03)
누가 효자입니까?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중심삼고 늘 생각하면서, 그 일을 행동으로 이루어서 상대역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자리에선 사람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눈으로 보고 뭘 느낄 때 부모님이 더 좋아하시는 걸 보고 느끼고, 말씀을 듣게 될 때도 ‘아, 부모님이 이런 말 좋아하겠느냐, 어떻겠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듣는 겁니다. 느낄 때도 그렇고, 모든 오관의 감정이 부모님을 중심하여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 심정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효자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볼 때 어떤 효자가 있고 애국자가 있고 성인이 있다 한다면, 이들은 모두 세계를 중심한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 지상을 중심삼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의 중심된 하나님을 중심 삼으련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늘과 땅을 사랑으로 품으려고 하고, 이 모든 우주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161.132-133,1987.01.180
3. 특히 이방인, 외국인, 사회가 멸시하는 자를 사랑하라
종교 경전
세상에 신도 많고 주도 많지만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 말로 신이시오 주이시다. 크고 힘 있으며 지엄한 신이시오 뇌물을 받고 낯을 보아주는 일이 없는 신이시다. 고아와 과부의 인권을 세워 주고 떠도는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너희도 한때는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너희도 또한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기 10.17-20(기독교)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응답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서 그 사람을 보고 피아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잇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사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
누가복음 10.25-37(기독교)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천사들이 합창을 하려 하자 거룩하신 그분께서 그들을 책망하시며 말씀하시길 “내 자녀들이 물에 빠지는데 어찌 노래를 할 수 있는가?
탈무드, 메길라 10b(유대교)
보살은 일체 존재에 대해 한결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의 마음은 일체 존재에 대해 평등해야 하며, 그는 한결같지 않은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대해서는 안 되며, 친근하고 우호적인 마음, 해를 끼치거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 대해야 한다. 그는 다른 이들을 마치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또는 딸인 것처럼 대해야 한다. 일체 존재의 구제자로서 보살은 일체 존재를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
팔천송반야 321-322(불교)
말씀 선집
남남끼리 모여서 형제이상 사랑하지 못해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간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
(뜻길, p.166)
우리는 그 사랑을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랑에는 개인과 종족, 종족과 민족, 민족과 국가, 국가와 세계, 천주 혹은 하나님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종족적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랑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하나님까지 종적인 인연을 맺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원이 되는 동시에 횡적으로 세계에 까지 넓혀서 세계 인류를 형제의 인연으로 묶을 수 있고, 역사 과정에 나타난 모든 부정적 여건을 영원히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엇을 중심삼은 것이냐? 그 사랑은 개인을 중심사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가정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종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민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또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세계를 초월하여 천주를 중심삼은 것이며 천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5.271-272,1970.10.25)
자기가 백인이라고 해서 ‘아이고, 난 백인만 좋아,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흑인 할머니 할아버지, 아시아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사랑 못 해, 잘 입고 아주 멋진 할머니 사랑하지, 저 미개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못 해.’ 하면 안 됩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사람이 이 땅 위에 살면서 훈련받기 위한 공식이라는 말입니다.
(130.274,1984.02.05)
우리 축복가정 가운데서 세 아들이 있다면 하나는 독일 사람 며느리를 얻고, 하나는 불란서 사람 며느리를 얻고, 하나는 영국 사람 며느리를 얻는 것입니다. 세 며느리 나라가 원수입니다. 전부 원수 나라의 며느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며 싸울 겁니까, 밥 ajar는 것까지 ‘나눠 먹자’ 이럴 겁니까? 이건 독일 며느리 먹을 것, 이건 불란서 며느리 먹을 것, 이건 영국 며느리 먹을 것, 이렇게 할 겁니까, 섞어 놓고 먹게 할 것니까? 어떻게 할 겁니까?
섞어 놓고먹다가 흘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흘렸어도 그저 긁어다 먹을 겁니까,어떻게 할 겁니까? 맨 처음에는 싫지만 눈을 이러고 긁어다 먹는 겁니다. 왜? 아프리카 사람이 먹던 것을 내가 먹지 않고는 사랑하는 것이 안 되니 그러는 것입니다. 백인들끼니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 준비를 다 해야 됩니다. 그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이냐는 것입니다. 떨어뜨린 밥을 먹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사랑이 임재하는 것입니다.
(99.134-135,1978.09.10)
여러분들은 미국 사람은 미국 사람만, 동양 사람은 동양 사람만, 그리고 자기 씨족적, 민족적, 국가적 기준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종차별 문제를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건 무엇으로 증명하느냐? 국제결혼이다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것이 개략적인 입장의 역사적인 진실된 관점에서 보는 관입니다.
(112.86,198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