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적 사랑
참사랑은 희생하는 사랑이다. 남을 위해 살려면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세께의 난문제 해결에 동참 하도록 자극하는 것도 사랑이다 타인의 약점이나 실패에 관용을 베풀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어떠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타인을 돕도록 이끄는 것도 사랑이다. 예수는 죄지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린 사랑의 실천자였다. 모세와 무함마드 모두 당대에 핍박을 받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만 민족을 해방하고 계몽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일했다. 이 모든가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이다.
불교에 보살이라는 존재가 나온다. 보살은 만유의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고, 타인을 먼저 해방하기 전에는 자신의 행복을 즐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선명 선생은 희생적 사랑의 근원을 하나님으로부터 찾고 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줄 아름다운 집을 짓기 위해 창조를 시작하신 이래로 쉬지 않고 투입해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부모가 탕자인 자녀를 슬픔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 타락 이후부터 쉬지 않고 슬픔 속에서 투입해 오셨다. 성스러운 사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부모들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조차 바침
종교 경전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13(기독교)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마태복음 20.28(기독교)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주신 것같이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베소서 5.1-2(기독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3.16-18(기독교)
진실로 우리는 너희를 위했고 너희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불행을 견디어 왔다. 너희는 너희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신 분을 회피했느냐? .... 너희는 그분이 적의 칼에 위협을 당할 때는 언제나 그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느냐? 또는 그분이 가장 황량한 도시에 감금된 이후에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느냐? ....
참으로 그분은 너희가 영광을 얻도록 스스로 굴욕을 당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무관심의 골짜기에서 즐기면 놀고 있구나. 사실상 그 분은 너희가 너희의 궁전에서 살 동안 너희를 위해 가장 황량한 처소에서 거하신다.
키타비악다스 이후 바하울라의 서판들(바하이교)
말씀 선집
내가 생명을 바쳐 악을 굴복시키게 되면 생명을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40.243,1971.02.06)
이웃을 위하여 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희생정신이 곧 참사랑입니다.
(224.254,1991.12.07)
사랑이라는 것은 희생의 본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63.25,1972.10.01)
참된 부모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자식을 사랑할 때, ‘아이고, 내 이거 전부 다 이자 쳐서 받겠다.’ 하는 마음을 가진 부모는 참부모가 아닙니다. 밤낮으로 희생을 하면서도 위하여 사랑하고, 또 하고 또 하려고 하고, 시장에 나갈 때에 거기서도 잊지 않고 더해 주려하며, 24시간 거리를 초월하여 그를 위하는 사랑이야말로 본질적인 사랑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런 사랑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기초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42.35,1986.03.03)
사랑하는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잇다는 것입니다. 법을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은 사망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 여기서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가더라도 남자가 반대하지 않습니다. 반대합니까? 환영합니다. 남자도 그렇습니다. 천만세의 담이 막혀 있다 해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담이 있더라도 그 담을 무난히 헤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전체를 투입하고 달려드는 거기에서는 그 어떤 담도 전부 무너지는 것입니다.
(49.52,1971.10.03)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복귀하기 위해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의 주의는 어떤 주의냐? 악한 세계를 구하고, 불쌍한 사람을 구하고, 가난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구원해 나오셨습니다.
종의 종에서부터 아들까지 제물로 삼았습니다. 원수의 족속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딸까지 희생시켜 나오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를 위해서, 제일 원수의 종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제일 사랑하는 당신 편을 희생시키며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오, 자기편을 위해서가아니라, 이 세계와 원수의 편을 휘해서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 인류는 하나님을 푸대접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푸대접하는 현상이 벌이지고 있지만 이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33.298,1970.08.21)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는 전체 앞에 선한 사람입니다. 어떤 가정이 전체의 가정을 위해서 희생의 생활을 하면, 전체의 가정 앞에 선한 가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민족이 자기 민족보다 전체의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그 민족들을 위해서 총력을 기울인다면, 그 민족은 선한 민족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또 어떤 나라가 전 세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면, 그 국가는 선한 국가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를 보낸 것은 그런 뜻을 이루기 위해서 보냈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인류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국가를 희생시키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시켜 나왔더라면, 기독교는 선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 시킬 수 있는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69.86-87,1973.10.20)
참사랑은 누구나 원하는데 누구나 나를 위하라는 감정이 있게 되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는 사탄의 전략이요, 사탄의 목적입니다. 세속적인 세계에서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붙여준 열매요, 지옥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위해 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게 봉사 하게 되면 이 모든 전부가 와서 나를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라’ 는 사람은 천국에 못갑니다. 하나님이 걸작품 전부를 품고 사랑하던 것처럼 위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세 번 이상 생명을 바치고도 위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렇게 세 번 죽어서도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나 알아주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겠습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알아주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이 되면 지상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그런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300.223,1999.03.14)
2. 궁핍한 사람을 돕기 위해 고난과 슬픔을 참음
종교 경전
믿는 자들이라면 살아가는 동안 고통과 고난에 스스로 직면하는 것이 그것을 피해 가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로다.
이븐 마자흐 하디스 (이슬람)
그늘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태양의 뜨거움을 모른다.
이갈라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우리는 마땅히 공동체가 겪는 어려움을 나누어야 한다. 우리의 스승이신 모세가 공동체의 어려움을 같이 나누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탈무드, 타아니트 11a(유대교)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조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마태복음 9.10-12(기독교)
육체적으로 용감한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현재의 인생에 직면하고 슬픔을 헤쳐 가며 언제나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킵시기족의 속담(아프리카 전통종교)
믿음이 강한 우리는 약한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짐을 져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에게 유익을 주어 그들을 기쁘게 함으로써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시기 않았습니다. 도리어 성경 말씀에“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내렸다”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15.1-3(기독교)
(도에) 맞는 이가 (도에) 맞지 않는 이를 길러주며, 재주 있는 이가 재주 없는 이를 길러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진 아버지와 형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만일 (도에) 맞는 이가 (도에) 맞지 않는 이를 버리고 재주 있는 이가 재주 없는 이를 버린다면, 어진 이와 어질지 아니한 이가 떨어짐이 그사이가 한 치도 못되는 것이다.
맹자IV.B.7(유교)
보살은 다음과 같이 서원한다. “일체 중생의 모든 괴로움은 나 스스로 지리라. 나는 이와 같이 굳게 결심하고, 그것을 참아 견뎌내며, 뒤돌아보거나 피하려 하지 않으며, 떨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겁에 질리거나 낙담하지도 않으리. 그러면 왜냐?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일체 중생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감내하리라. 이렇게 함에 있어서 나 스스로 기분을 따르지 않으리.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을 서원하고 그들을 내가 필경 구하고야 말리니, 생로병사와 재생의 두려움에서 그들을 구하고, 온갖 도덕적 죄악의 두려움에서 그들을 그해 내야 하리. 내가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다만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함이 아니며, 일체를 꿰뚫어 아는 지혜의 배를 지어 이 모든 중생을 삼사라의 강물을 건너게 하리, 심히도 건너기 어려운 그 강물을. 일체 중생의 온갖 고통을 몸소 대적하여 내가 맞붙어 싸워야 하리. 내게 목숨이 남아 견뎌낼 수 있는 한 모든 비탄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만세계의 모든 고통과 대적하리.
그러면 왜냐? 모든 중생이 괴로움 가운데 떨어져 있으니, 차라리 내가 홀로 그 고통을 참아 견뎌내는 편이 오히려 나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인질이 되어 이로써 모든 중생이 나를 밟고 육도 고해를 건너며, 나는 다만 모든 중생을 위해 그들의 고통을 대신해야하리. 그리고 모든 중생의 다행을 위해 그들에게 틀림없는 믿음을 심어 주리니, 이를 행함에 있어서도 참을 말하며, 스스로 진실하게 하며, 내 말을 번복하지 않으며, 끝까지 그들을 버리지 않아야 하리.“
시크샤사뭇차야 280-281,바즈라드바자수트라(불교)
나는 모든 중생의 주처가 되어 이로써 그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생의 수호자가 되어 이로써 그들이 모든 번뇌에서 해방을 받도록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새의 피난처가 되어 이로써 그들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생을 위해 그 어떤 괴로움도 받아 감당하며, 이로써 그들이 깊이 모를 생사의 심연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삼계의 모든 중생을 위해 영원히 그 어떤 고통이라도 받아 견뎌내며, 항상 그들을 위해 선의 토대를 쌓으리.
무슨 까닭인가? 다른 모든 중생들이 지옥에 떨어지게 하느니보다는 나 스스로 이 모든 괴로움을 받아 감당하는 편이 나으리라. 나는 공통 가운데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대신 고통 받는 볼모 가 되어 그들이 지옥⋅축생⋅아귀의 모든 악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리.
나는 모든 중생을 지키며 결단코 버리지 않을 것을 서원하니니,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하여 추호의 거짓이 없어라. 무슨 까닭이냐? 내가 스스로 온 마음을 다만 다른 모든 중생들의 해탈에 두며, 나 자신을 위하는 불의한 길을 구하지 않는 까닭이다.
대방광불화엄경23(불교)
말씀 선집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극복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46.35,1971.07.18)
천국은 지옥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다.
(뜻길, p.165)
학생시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복을 벗어 던지고 노동판에 가서 일했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석탄을 나르는 일도 해보았고, 배도 타 보았고, 머슴살이도 해봤습니다. 온갖 일을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고락이 어떤 것인가를 다 알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고락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책임자가 되어 이들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37.35-36,1970.12.22)
이런 비참한 세계에서 행복한 세계를 찾으려는 사람은 더 비참한 길을 뚫고 넘어가야 됩니다. 더 비참한 데서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 길 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래도 없다면, 하나님도 없고 다 없다고 해야 합니다.
레버런 문도 일생 동안 그런 길을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욕먹고 핍박받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 하는데 있으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래도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중심삼고 ‘나를 따르라! 나는 실망하지 않으며 나는 행복하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적 영웅 열사, 애국 충신, 열녀, 성인들은 그런 자리에서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애국자는 미국을 위해서 비참하게 붙들고 싸운 사람입니다. 생명을 걸고 비참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91.287,1977.02.27)
우주의 공법은 어떤 사람을 보호할 것이냐?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보호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희생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우주 공법이 제거할 것입니다.
(105.91-92,1979.09.30)
종교를 믿는다 해도, ‘나 하나 천국 가자’ 하는 놈들은 사기꾼들입니다. 통일교회는 가정에서도 여편네는 ‘남편을 먼저 천국 보내고 내가 따라가겠다’ 고 해야 합니다. 우선 가정을 천국 보내고 자기가 천국가려 하는 게 통일교인입니다. 대한민국을 천국 보내고 자기가 천국가려고 합니다. 세계 만인을 천국 보내고 천국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까지 해방시키고 천국가려 한다면, 그는 예수와 같은 사람입니다. 메시아의 책임이 그것입니다.
메시아가 와서 ‘아이고, 내가 빨리 천국 들어가겠다’고 생각 안 합니다. 개인을 천국 보내고, 가정들을 천국 보내고, 종족을 천국 보내고, 민족을 천국 보내고, 대한민국을 천국 보내고, 이 세계를 천국 보내고 지옥에 있는 모든 만민까지 해방시켜서 천국 다 보내고, 하나님의 자리에 슬픈 모든 것을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할 때, 그런 책임을 짊어 지고 오신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이 지옥 보는 것이 마음에 편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지옥을 보는 것까지 해방을 시켜 놓고, 천상천국 지상천국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보기에 구원의 도리가 필요 없는 자리에 서 가지고 끝난 때 비로소 메시아는 천국 들어가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거 심각한 말입니다. 심각한 말 중의 가장 귀한 말입니다.
(188.283-284,1989.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