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한 삶
신에 대한 헌신가 믿음으로 시작하는 영적인 구도의 삶은 자비와 타인에 대한 봉사를 통해 완성된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다.’(요한일서 4.19).위해 사는 사랑의 핵심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인간 내면에 자발적으로 흐르고 있는 사랑하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났기 때문이다. 창조의 시작부터 끊임없이 피조물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간은 점점 부패해 갔고, 사랑을 성스러운 근원과 분리하고 자기 쾌락적 측면으로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태고, 습관은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변했다. 따라서 조건 없이 먼저 베푸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우리는 먼저 주는 사회가 아니라 받기만 하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이런 사뢰는 자연스럽게 불평등과 원한, 범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종교인들은 봉사하며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가르친다. 예수도 참된 리더쉽은 봉사하는 자세라고 하며, 본인도 “나는 대접받고자 온 사람이아니라 대접하기 위해 온 사람” 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명한 종교 서적인 바가바드기타와 더덕경에서도 남을 위한 삶이야말로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경륜해 가는 근본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다. 문선명 선생도 위해 사는 삶이 곧 천국 생활이라고 하며 이 주제에 대한 많은 말씀을 전해주고 계신다.
1. 타인을 돌보는 것이 인생의 근본 도리
종교 경전
서로 남의 무거운 짐을 져줍시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이룰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2(기독교)
남을 돕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땅한 직분이다.
탓트바르타 수트라 5.21 (자이나교)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줍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아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베드로전서 4.8-10 (기독교)
모든 사람은 이웃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들이다.
탈무드 산헤드린 27b(유대교)
최상의 인간이란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자이니라.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24(기독교)
부모님과 친척들, 고아들과 가난한 자들, 네가 아는 이웃과 네가 모르는 이웃들, 동료들과 여행자들, 그리고 너의 오른손이 소유하고 있는 자들에게 친절히 하여라. 하나님은 거만하고 허풍 떠는 자를 사랑하지 않으시노라. 또한 인색한 자,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명령하는 자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로서 베푸신 것을 은폐하는 자들이노라.
꾸란 4.36-37(이슬람)
지금까지는 온 세상이 한결같이
각자 제 생각만 하고 있지만.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을 할지라도
남을 구제할 마음이 없으므로.
이제부터는 월일 부탁이야 모든 사람들을
마음을 단단히 바꿔다오.
이 마음 어떤 것으로 바꾸는가 하면
세계를 구제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앞으로 온세상이 한결같이
만가지를 서로 도와 간다면
월일도 그 마음을 받아들여서
어떤 구제도 할 것이라 생각하라.
친필 12.89-94 (천리교)
너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타인도 생각하라. 네가 풍족하다 하여 “남들이 내게 관심두지 않으니 나도 그들에게 신경 쓸 필요 없다!” 고 말하지 말라. 네가 운 좋게 사냥했으면 타인에게도 나누어주어라. 또한 많은 강치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좋은 장소를 남들에게알려 주어라.
가끔은 타인들도 그들의 몫을 가질 수 잇게 해주어라. 만일 네가 모든 것을 너를 위해 쌓아 놓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너를 떠날 것이고, 아무도 너와 같이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네가 어느 날 병에 걸린다면, 네가 이전에 남들에게 관심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너를 문병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무엇을 주어라 야마나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야마나 에스키모족의 입회식 (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을 보면 남을 위하고 절대 복종하고 희생 봉사하라는 것인데, 세상에는 이런 놀음이 없습니다.
(46.42,1971.07.18)
이타주의, 남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몰입하고 희생 봉사하는 삶이 이 세상에서는 가장 멍청한 바보의 인생철학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보면 오직 이 길만이 인간세계에 가장 유익한 길이요, 영원히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98.163,1990.02.01)
원리원칙에 들어가서 남을 위해, 상대를 위해 투입하는 자는 천국 가는 것입니다. 교육이라든가 모든 지도 이념에서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관점에서 선을 세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지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69.86,1973.10.20)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위해서 살 수 있는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참사랑의 길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398.284,2002.12.15)
넓고 크게 하늘나라의 레일에 맞게끔 지상에서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태어나기를 위해서 태어났으니 위해서 살고, 더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사랑하고 잊어버리고 무한히 사랑해야 합니다.
(306.215,1998.09.23)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참은 곧 선한 것인데,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가 자기 앞에 굴복하기를 바라는 자리에 선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선한 사람은 전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집안에서도 제일 착하고 귀하고 소망적인 아이라고 할 때, .... 미래에 선을 차지할 수 있는 소망적인 아이라고 할 때는, 할아버지도 ‘그래’ 할머니도 ‘그래’ 어머니 아버지 할것없이 형제 가족 일가친척까지도 ‘그렇다’고 할수 있는 아이라고 할 때는, 그 아이는 틀림없이 할아버지를 좋게 하는 아이일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나좋게 해! 나 좋게 해’ 그러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아이지만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 대해서 밤이나 낮이나 할아버지가 좋을 수 있는 길을 언제나 생각하고, 그걸 위해 언제나 행동하고, 언제나 모셔 드리려고 하는 아이임에 틀림없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할아버지에게 뿐만 아니라,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 할 것 없이 일가친척 전체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활양식과, 혹은 예의범절을 따라가는 그아이가 참된 소망의 아들임에 틀림없고, 손자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전체를 위해 기쁠 수 있는 환경의 요건을 만들고, 그러한 내용을 제시하려고 하는 사람이 역사시대를 거쳐 와서 선을 이어받을 수 있는 참의 자리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174.11-12,1988.02.23)
위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투입해서 우주가 창조됐기 때문에 우주가 생겨났습니다. 내가 위하면 우주 존속 기원과 일치되니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망하지 않으니 나는 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주의 주인 되니 내가 우주의 주인이 아니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위하는 사람은, 위하는 자는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270.166,1995.05.29)
미국 국민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존중시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망각한 개인주의 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막다른 골목에 온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어디서 나올 것이냐? 이제야말로 기독교 정수의 노정을 파헤쳐 가지고 하나님 본연의 생명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있어서 미스터 문이 여러분이 환영하지 않는 놀음을 이렇게 하더라도 필요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리원칙을 통하여 주장핳나니, ‘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있고, 네 가정은 민족을 위해서 있고,네 민족은 나라를 위해서 있고, 네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있고,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 것이자 내 것이 되는 겁니다.
(69.88-89,1973.10.20)
2. 어떤 보답을 바라지 말고 남을 섬겨라
종교 경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는 대로 이방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교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0.25-27 (기독교)
사심 없는 봉사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상의 청정행은 사심 없는 봉사에 있다.
아디 그란트, 마루, M.1,p.992 (시크교)
남을 위하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는 주와 하나됨을 얻는다.나나크가 말하노니, 그와 같은 종만이 거록한 주의 이끄심을 받으며 거룩한 은총이그에게 내린다.
아디 그란트 가우리 수크마니 18,M.5,p.286 (시크교)
너희가 이웃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다만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몰론경, 모사이야서 2.17(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성인은 자기를 위해 쌓아 놓지 않는다.
본래부터 남을 위해 모든 것을 주기 때문에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이 있게 되고
본래부터 남을 위해 모두 베풂으로써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게 된다.
하늘의 도는 오직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오직 남을 위해 베풀기만 하고 다투지 않는다.
도덕경 81 (도교)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볼보아 주십시오,
빌립보서 2.3-4(기독교)
말씀 선집
복 중의 최고의 복이 무엇이냐 하면 희생적인 사랑, 봉사적인 사랑, 남을 위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43.309,1971.05.02)
어느 누구나,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사랑을 다 원하지요? 무슨 사랑? 위하는 사랑! 위하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위하는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211.207,1990.12.30)
나를 중심삼고 사랑을 받겟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입장에 선 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희생하려고 합니다. 양보하려고 합니다. 주고도 또 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100억이 있어서 길가에 나가 전부 다 나눠 주었는데,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를 못 도와주었기 때문에 돈이 더 있으면 더 나눠 주고 싶다는 말입니다.
(133.180,1984.07.10)
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주고도 더 주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는 사랑입니다. 주고 나서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옷을 해 입히고 나서도 더 좋은 옷을 해 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주면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을 통해서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게 주지만 완전한 것으로 보답해 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지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이는 흥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 없이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38.327-328,1971.01.08)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남을 위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주적인 본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내 사랑이 부족하여서 그렇가. 모든 것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지 못한 탓이다’ 하면서, 그 자식의 뼛골리 녹아나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식 앞에 나서게 될 때에, 그 자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돌아서는것입니다. 더 큰사랑은 약한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닙니다.
(48.182-183,1971.09.12)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그 몇 가지 요건을 들어 보겠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에게 묻겠는데 만일 여러분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진정으로 생명을 다하고 희생을 다하면서 100퍼센트 은사를 베푼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의 본심이 그 은사를 갚는 데 50퍼센트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50퍼센트만 갚고 싶습니까, 아니면 있는 대로 다 갚고 싶습니까? 우리의 본심이 어떻게 작용합니까? 누구나 더 갚고 싶어하는 것이 본심입니다. 여기 통역하고 있는 미스터 박에 대해서 내가 만약에 100퍼센트 그런것을 줬다면 주는데도 진정 사랑하는 가운데서 준 것을 안다면 이 사람은 100퍼센트 이상을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100퍼센트가 110퍼센트로 돌아오고 그 110퍼센트 돌아온 것은 또 그쪽에서 진정으로 주었기 때문에 120퍼센트를 갚게 되고.....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영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비로소 발전과 번창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도 다섯 식구가 있는데 누군가가 그 다섯 식구를 위해서 살게 되면 나중엔 그 위해서 살앗던 사람이 그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같이. 그러한 중심이 결정됨과 동시에 주체와 대상, 중심과 상대관계에 있어서의 자원적(自願的)인 주관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절대 위하는 그 주체 앞에 주관 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직접주관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여기에서 비로소 주종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냐? 이상과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이런 것이 자기의 것으로서 자기에게 나타나는 줄 아는 것, 이것이 큰 오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대상에게서 옵니다. 대상에게서 오기 때문에 위하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결과를 아시기 때문에 그런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없다는 것을 이제 여러분들이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73.326-327,1974.10.08)
3. 우주 창조에서 모든 것을 투입하신 하나님
종교 경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9 (기독교)
천지는 영원무궁하다. 천지가 영원무궁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도를 체득한 성인은 자신을 남보다 뒤로 돌림으로써 남보다 앞에 나서게 되고,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함으로써 자신이 영원히 있게 된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영원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니라.
도덕경 7 (도교)
옛날 창조자 프라자파티는 인간과 더불어 사심없는 봉사의 의무를 지어낸 후 말햇다. “사심 없는 봉사로 너희는 번성할지어다. 너희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리라.”일체의 사심 없는 행위는, 오, 아르주나여! 영원 무한한 신성으로부터 일어남을 알라! 또한 신은 모든 봉사의 행위와 함께 거하나니 모든 삶은 이법을 지향하느니라. 오, 아르주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해 감각적 대상들을 탐닉하고 남의 아픔을 외면하며 이 법을 어기는 자는 누구나 헛되이 사는 것이니라. 그러나 내면에 있는 신을 깨달은 자들은 언제나 스스로 족하다. 내면에서 기쁨과 성취의 원천을 발견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외계 대상에서 기쁨을 구하지 않느니라. 무엇을 하든 그들은 잃는 것도 얻는 것도 또한 없나니, 아무도 아무것도 그들의 흔들리지 않음을 어찌 할 수 없느니라.
뛰어난 자가 하는 일은 다른 이들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세운 기준은 온 세상에 따르게 되리라. 오, 아르주나여! 삼계에서 내가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얻어야 하나 얻지 못한 것 또한 없느니라. 나는 여전히 행위에 임하지만 나 자신의 필요에 내몰리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지속적인 행위를 멀리 한다면 사람들이 나의 예를 따를 것이며, 만일 내가 행위를 멈춘다면 세상은 혼돈으로 내몰릴 것이며, 이로써 온 세계와 온 인류가 파멸에 이르리라.
일체만유의 복지를 증장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라. 집착 없이 행하라. 사심 없는 봉사와 헌신은 구극의 경지를 얻게 하느니라.마음속에 언제나 다른 이들의 복지와 안녕을 생각하면 지신의 일을 행하라. 지나카 왕이 완성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사심 없는 행위를 통해서였으며, 다른 이들도 또한 이러하였느니라.
무릇 무지한 자들은, 아르주나여! 다만 자신의 유익함을 구하여 행하되 지혜로운 자들은 사심없이 일체만유의 복지를 위해 행하느니라. 행위를 포기함으로써 행위에 집착하는 무지한 자들을 혼란으로 내몰지 말라. 자비와 사랑으로 그들이 행위 속에서 행위를 즐기면서 또한 행위에 집착하지 않도록 할지어다.
바가바드기타 3.10-26(힌두교)
프라자파티의 세 자손, 즉 신들, 인간, 악마들은 거룩한 지식을 구하는 학생으로서 그들의 아버지 프라자파티와 살았다. 거룩한 지식을 구하는 학생기를 마친 후, 신들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제하라’(단야타)고 말했습니다.”“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그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베풀어라’(닷타)고 말했습니다.” “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그러자 악마들이 그에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희에게 말해주소서.” 그는 그들에게 “다”라는 음절을 말해 주었다.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저희는 이해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자비심을 지녀라’(다야드왐)고 말했습니다.” “옴, 너희는 바르게 이해했다.” 그가 말했다.
여기서 신의 목소리로 똑같이 “다!다!다!” 즉 “자제하라, 베풀어라, 자비심을 지녀라”하고 천둥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즉 자제, 보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5.2.2(힌두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냐? 우주의 공법을 지닌 존재입니다. 우주의 공법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속성은 뭐냐?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지니는 것입니다.
(105.99,1979.09.30)
사랑은 자기를 백 퍼센트 투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사랑 때문에 모두, 백 퍼센트를 투입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위해서,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189.203,1989.04.06)
하나님이 사랑의 상대로 인간을 지으신 것은, 당신이 인간을 위하는 입장에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도 하나님을 본받아 위하여 존재하게 되어 있었는데, 타락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위해서 살라’는 철리(哲理)가 생겨난 것입니다.
(149.273.1986.11.27)
하나님이 백 만한 것을, 백 퍼센트 만한 것을 가지고 사랑하면 상대가 백 퍼센트밖에 안 나옵니다. 일대일입니다. 이것이 무한배수가 되니 백 퍼센트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이게 자꾸 높아집니다. 투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가지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우주 창조의 원칙, 존재하는 세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 데서 참사랑이 시작됩니다. 참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결속된 세계가 참사랑의 세계입니다.
(253.66,1994.01.07)
하나님의 창조의 원칙이 무엇인가? 창조는 하나님 자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 투입하는 데서만이 완전 결과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진실 되게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진실되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 되게 주는 데서만이 미래의 자기의 상대가 벌어지는 것이요, 자기의 발판이 형성되는 것이요, 나를 입증할 수있는 환경적 여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받는 데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 원칙에 없습니다.
(82.323,1976.02.01)
창조역사를 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합니다. 창조란 힘을 소모시키는 것입니다. 투입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어! 이래라’해서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한 것입니다.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른 것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하는 시대로 절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있다, 아들딸을 위해 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하나님은 상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완전 투입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이고 이상적인 완전형을 전개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는 아담 해와를 위해서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던 때에서 상대를 위하는 때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상적 존재라는 것은 자기를 위주하지 않습니다. 이상적 존재는 남을 위하는 데에, 대상을 위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우주의 근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69.82,197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