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인생의 여정
제13장 사랑
참사랑
참사랑은 최고의 사랑이다. 최고로 추앙받지만, 현실에서 체험하기는 매우 드문 사랑이다. 이번 장에서 이상적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다룬다. 다음 장에서 이상적 사랑의 다양한 속성에 대해 다룰 것이다.
참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다. 궁극적 실재의 핵심인 사랑과 연민은 자기중심적 집착과 욕망을 뛰어넘은 성인에게서 구현될 수 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위해 창조를 시작하셨듯이, 참사랑 역시 상대의 안위를 위한 헌신적 사랑이다. 하나님이 절대 불변 영원하시듯, 참사랑 역시 변하지 않고 운명의 장난에 굴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루의 부모이자 만물의 창조주이시듯, 참사람을 실천하는 인간 역시 공명정대하며 전체를 포용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사랑은 하나님과 진실로 하나되고 일생을 하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개인들에게서 구현될 수 있다.
자기중심적 욕망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는 참사랑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참사랑의 잠재력을 생리적으로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참사랑의 실현은 불가능하지 않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라면 이것을 체휼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자식이 태어나기 전에는 자신의 쾌락만 좇으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녀의 탄생은 부모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자기에서 타인으로, 받는 것으로부터 주는 것으로의 전환이 벌어진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참사랑과 가깝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사랑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중국 한자 어질 인(仁)자에도 표현되어 있다. ‘仁’을 보면 하늘 천(天)과 같이 두 이(二)자와 사람 인(人)자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재하시고우리는 또 하나님을 닮을 수 있다.
1. 참사랑의 본질
종교 경전
내가 사람의 방언과천사의 방언으로 말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고,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줄지라도, 자랑스러운 일을 하려고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 속에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 (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랑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게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형벌과 맞물려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7-12,18-20 (기독교)
브라흐만과의 접촉으로부터 오는 무한한 즐거운은 무거운 죄악의 짐을 벗어버리고 자기 자신 안에 확립되 자에 의해 쉽게 얻어진다. 그들은 모든 존재 안에서 자아를 보며 자아 안에서 모든 존재를 본다. 명상을 통해 전일된 의식으로써 그들은 동등한 눈으로 모든 것을 본다.
나는 모든 존재 속에서나를 실현한 자들 속에 항상 있다. 모든 생명을 나의 현현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나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존재의 가슴속에 있는 나를 숭배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들은 나에게로 온다. 그들이 어디에 살든 그들은 내 속에 거한다. 다른 사람들이 마치 자기자신인 것처럼 그들의 즐거움과 고통에 감응할 때, 그는 최상의 영적 합일의 상태에 도달한다.
바가바드기타 6.28-32 (힌두교)
말씀 선집
참사랑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참사랑은 공익성을 띤 무형의 질서요, 평화요, 행복의 근원입니다. 참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사랑이 아니고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먼저 베풀고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기쁨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기쁨과 사랑의 심정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효도하며 기쁨을 느끼는 그런 희생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인류 창조가 그랬듯이 아무것도 돌려받겠다는 기대나 조건없이 베푸는 절대 유일 불변 영원적 사랑의 창조입니다.
참사랑은 우주의 원천이요, 우주의 중심, 우주의 주인을 만들어 주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뿌리요,의지와 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참사랑으로 맺어지면 영원히 같이 있어도 좋기만 하고, 우주는 물론 하나님까지도 끌면 따라오는 사랑입니다. 타락의 후예 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경의 벽, 인종의 벽, 더 나아가서는 종교의 벽까지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이 참사랑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의 주류 속성은 절대 유일 불변 영원한 것이어서 누구나 이 참사랑을 실천궁행할 때, 하나님과 동거 동락하게 되며 동참권까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 들어가는 절대 필요조건이 바로 ‘위하는 삶’, 즉 참사랑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평화신경, 평화메시지 1.25-26,2005.09.12)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장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했습니다. 그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것이 무엇이냐? 생명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목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얘기입니다 전체를 투입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몽땅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들 누굴 그렇게 몽땅 사랑해 봤습니까? 아내 된 자가 남편 몽땅 사랑해 보고, 부모 된 자가 자식을 몽땅 사랑해 보고, 자식 된 자가 부모를 몽땅 사랑해 보고, 스승된 자가 제자를 몽땅 사랑해 보고, 제자된 자가 스승을 몽땅 사랑해 보고, 백성 된 자가 나라를 몽땅 사랑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못 했습니다. 그러니 그렇지 못한 인간에 대해서 하나의 타입, 금형(金型)을 만든 것입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금형에서 째까닥 째까닥 만드는데 타입, 모델을 만들어야 됩니다. 인간의 모델을 만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을 중심삼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델, 그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143.274,1986.03.20)
참사랑이 뭐냐?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이 가는 길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면 나는 참사랑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겁니다. 왜 그러냐? 사랑의 특징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조건이 되려면 영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그 사랑을 대하겠다고 해야만 그 참사랑이 나와 상관관계를 맺기 때문에 그게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불변하고 유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내용으로 백 퍼센트 다 되어 있으니 우리 자체가 참된 사랑을 대해서 영원히 하늘 앞에 마음을 갖는 데 있어서 사랑의 길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123.329,1983.01.09)
사랑의 주인은 하나입니다 참사랑의 ‘참’ 이라는 것은 둘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참은 절대적으로 오직 하나입니다. 참사랑은 누가 제일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랑입니까?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게 참사랑의 근본이요, 본질입니다. 하나님만이 참사랑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도 참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참생명도 참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참혈통도 참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참양심도 참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빼게 되면 참사랑은 없습니다. 개재하지 않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 것입니다.
(300.220,1999.03.14)
하나님이 창조주의 능력을 행사할 때 사랑을 중심하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를 맺은 후에 말입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참사랑이 연결되면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상향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다 허사라는 것입니다.
(147.116,1986.08.31)
사랑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절대불변의 원인적 주체로부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중심한 사랑의 가정이 인간사회 이상구현의 기본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가치의 이상실현을 위한 사랑의 가정으로부터 국가, 세계로 확대하여 사랑을 완성한 통일권의 세계, 그야말로 절대가치의 영원한 행복이 약속되는 이상세계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89.227,1976.11.27)
만일 어떤 부부 사이에 불구아이가 태어났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고! 다리병신 아기, 차버리자’그럽니까? 그게 참사랑입니까?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끝까지 차 버리게 안 돼있는 것입니다. 더 불쌍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틀립없이 그 사람은 영계 법도에 그냥 통과해 갑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귀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참된 남편이라 하는것입니다. 좋을 때 좋아하는 것이 참사랑이 아니고, 나쁠 때 더 좋아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사제지간도 그런 관계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대통령이나 백성들도 그러한 사랑의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117.292,1982.04.11)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10년이나 100년쯤 같이 지낸 후에 집어던지게끔 지었겠습니까,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겠습니까?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으면 그만이면 좋겠습니까, 영생해야 되겠습니까? 영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 절대자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할 수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나 이틀, 혹은 10년, 100년 좋아하다 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아내가 죽으면 그 아내의 손수건을 갖고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네루 같은 양반은 자기 아내가 젊어서 죽었는데, 그 아내가 장미를 좋아했다고 해서 일생 동안 장미꽃을 꽂고 다니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39.342-343,1971.01.16)
참사랑이라는 것은 뭐하는 것이냐?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봄에도 그 사랑, 여름에도 그 사랑, 가을에도 그 사랑, 겨울에도 그 사랑, 소년 시대에도 그 사랑, 노년 시대에도 그 사랑, 장년 시대에도 그 사랑, 그 다음에 영원한 영계에 가서도 그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194.303,1989.10.30)
2. 긍휼과 자비
종교 경전
‘인(仁)’은 ‘사람(人)’이란 뜻이므로 합하여여 말하면 ‘도(道)’가 된다.
맹자VII.B.16 (유교)
자비는 다만 연민과 사랑의 맛이 나는 마음이다.
나가르주나, 보의 화환 437(불교)
아나스와 압둘라가 하나님의 사도의 말씀을 전하기를, “모든(인간)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식이거늘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는 그 분의 자식들을 친절하게 돌보는 자이니라” 하였다.
바이하키 하디스 (이슬람)
신의 사랑에 빠진 자는 만유를 사랑한다.
아디 그란트, 와단스, M.1,p.557 (시크교)
널리 이로운 일에 능숙하고 고요한 마음상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그는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고 상냥하고 온유하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아서 다른 사람들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슬기로우며, 가족에 대하여 무모한 집착을 지니지 않아야 한다.
그는 항상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일체 존재가 행복하고 편안하며 그들의 마음이 건전할지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 약하거나 강하거나, 키가 크거나 억세거나 또는 중간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작은 것 또는 큰 것이나, 예외 없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거나 가까이 사는 것이거나, 이미 생겨난 것이거나 장차 생겨날 것이거나 일체 존재가 행복할지이다!
서로가 속이지도 말고 어느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 경멸하지 말게 하소서. 누구든지 분노나 증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마음을 내지 말게 하소서.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이, 모든 존재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이 돈독해지소서. 한량없는 사랑의 마음이 일체의 세게에 위오 아래로, 아무런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두루 퍼져 나가게 하소서. 서 있거나 가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깨어 있는 한 자애의 마음이 굳게 새겨지게 하소서.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청정한 삶이라고 합니다.
쿠다카 파타, 멧타 숫타 143-151 (불교)
이제 시샘하는 마음이 다하여 내가 성자들의 세계에 들었도다. 누구와도 수원하지 않으며, 누구와도 타인이 아니며, 진실로 모든 이가 나의 벗이라.
신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 이와 더불어 내가 즐거워하나니, 이것이 내가 성자들로 받은 지혜라. 오, 만유에 충만하신 신이시여! 당신을 바라봄에 내가 활짝 피어납니다.
아디 그란트,카나라.M.5.p.129 (시크교)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잘못을 사과하지만, 자기 형의 발을 밟았을 대는 애정 어린 가벼운 동작만으로 얼버무리면 되고, 크게 친한 어버이의 발을 밟았을 때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음과같이 말한다. “지극한 예(禮)는 자기와 남과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지극한 의(義)는 자기와 사물과의 구별을 하지 않으며, 지극한 지(智)는 모의하지 않고, 지극한 인(仁)은 각별한 친근함이 없으며, 지극한 신(信)은 금(과 같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는다.
장자 23 (도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를 통해 ‘사랑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자비도 사랑을 중심삼은 말입니다. 사랑을 빼놓으면 성립이 안 된는 것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의라는 것도 사랑을 빼놓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인(仁)이라는 말도 두 사람 아닙니까? 사람 인(人)자 앞에 두(二) 사람입니다.하늘(天)이라는 말도 두(二)사람(人)이라는 말입니다.
(256.205,1994.03.13)
참다운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평화, 참다운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75.318,1975.01.16)
타락한 인간이라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 중의 절대입니다. 그것은 존재의식을 넘어서 존재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 우주의 어떠한 원동력이나 어떠한 존재물의 주관권내에서 머물지 않고 초월합니다. 사랑은 이념을 초월합니다. 인격적인 가치를 초월합니다. 이 기준은 하나님의 가치까지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8.273,1960.02.07)
도대체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사랑인데 어떤 사랑을 참된 사랑이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참된 사랑이다 이런 말입니다. 백인끼리 사랑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인이 흑인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에 가까운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참된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째서 참된 사랑입니까? 그것은 아무도 비판할 수 없고 불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둥글고,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충 없이 운동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사랑은 나의 눈에 들어와도 좋고, 코에 들어와도 좋고, 입에 들어와도 좋습니다. 걸리는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왜 편합니까? 어디에 가든지 막히는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115.315-316,1981.11.29)
이 악한 세계를 무엇으로 소화할 것이냐? 군사력으로 경제력으로, 지식의 힘으로, 함금의 힘으로 이 악한 세계를 어떻게 소화해야 되느냐? 사랑의 힘으로 소화해야 됩니다. 능력이 많고 권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굴복 시킬 수 잇는 하나의 비법은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식 가지고도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역심을 볼 때, 하나님까지도 싸워서 이기고 싶은 것입니다.
‘왜’ 이런 사랑이 억 천만년 걸려 먹었소! 하나님까지도 내가 굴복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 까지도 내가 전부 빼앗아 가지고 하나님보다 높은, 하나님 이상이 되고 싶다‘ 하는 것이 힘 가지고 됩니까? 지식 가지고 됩니까? 돈 가지고 됩니까? 안 됩니다. 오직 참사랑 하나만 가지면 됩니다. 하나님도 그 사랑 앞에는, 하나님이 아무리 크더라도 참사랑에 걸리면 ’하나님도 내 독에 따라 들어가 있어요.‘ 하면 ’어, 그러자, 그러자!‘ 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나 중조할아버지, 이제 늙어 죽게 된 할아버지 상투 끝에 증손자가 올라가자마자 미끄러져 내리면서 오줌똥을 확 쌌다고 합시다. 그걸 용서할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얼굴로부터 오만 가지 볼장 다 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도 아이구, 형제들도 아이구 큰일 났다고 하지만 ‘그놈의 자식, 복수해라!’그럴 수 있습니까? 할아버지가 ‘이이구 원통해, 역사 이래.... 증조할아버지 간판 갖고 죽지를 못해! 하는 선포식이 통합니까?
이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위대한 힘, 위대한 능력, 위대한 조화단지, 얼마나 좋습니까? 조화가 데굴데굴 굴러서 얼마든지 들어가는 조화단지, 얼마나 좋습니까?
(139.209-210,1986.01.31)
3. 사랑의 원형운동
종교 경전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잠언 8.17 (기독교)
현세에서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보상이 있으리라.
꾸란 39.10(이슬람)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태복음 5.7(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1-12,16.19(기독교)
그날에 너희가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요한복음 14.20-21(기독교)
남자 신도들과 여자 신도들은 서로 상호 보호자이니라.
꾸란 9.71(이슬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이신 여러분 주님께 순종하는 것같이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에베소서 5.22(기독교)
말씀 선집
절대적 사랑은 강제가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196.134,1989.12.31)
사랑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남자를 만들때 위해서 살라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찾는 데는, 그 사랑을 맞이하는 데는 위하는 길에서만이 가능하지, 위하지 않고 위하라고 하는 길에서는 참된 사랑은 없습니다.
(143.54,1986.01.15)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자기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終極)지을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 짓게끔 태어났습니다. 남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은 나를 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세상이 되거들랑 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게 될 때, 서로 위해 주니까 돌아가는 것입니다. 위하면 위할수록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적입니다. 사각형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둥글둥글 한 것입니다. 위하는 것은 밀어 주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나를 위하여 밀고 나도 그쪽을 위하여 밀어 주니 빨리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원형을 닮아 있습니다. 얼굴도 둥글합니다. 여기에 둘이 있는데 이 둘이 합해 있는 것입니다. 눈도 동그랗습니다. 상부 하부가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 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됩니다. 정맥, 동맥이 주고받습니다. 주는 길은 있는데 받는 길이 없으면 병나는 것입니다. 깨진다는 말입니다. 존재물은 운동을 하는데, 그 존재의 근원에 있어서 위할 수 있는 작용의 원칙을 세우지 않고는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69.83-84,1973.10.20)
그렇기 때문에 운동을 하게 되면 반드시 점점 가운데가 불러 올라옵니다. 원형이 된다는 겁니다. 소용돌이치는 거기는 파고들어가기도 하지만, 파는 작용도 하지만 올라오는 작용도 합니다. 모래 같은 것을 보면 그런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것을 모은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주고 받는 힘의 작용에 의해서 이런 원형운동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내 안에 이쏘 예수님도 내 안에 있고 나도 예수님 안에 있다는 개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셋이 합해서 하나의 원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124.51,1983.01.23)
수직과 수평이 어디서 합하느냐? 이것은 운동하기 때문에, 구형의 운동이기 때문에 제일 중앙선에서 합해야 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이것을 중심삼고 저것을 딱 긋게 될 때 그 선에 딱 들어가면 전우주가 공명됩니다. 영계도 환히 알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되는 세계는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누가 지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자체가 나를 지배합니다. 하나님까지도 절대 복종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방향성이 틀리면 그 자체가 나를 바로잡아 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214.233,1991.02.01)
4. 신앙과 품성에서 비롯된 참사랑
종교경전
이른바 그 집을 가다듬는 것이 그 몸을 닦는 데 있다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그 친하고 사랑하는 데에서 편벽되며, 그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데에 서 편벽디며, 그 두렵고 공경하는 데에서 편벽되며, 그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데에서 편벽되며, 그 오만하고 게으른 데에서 편벽된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의 잘못을 살 필줄알고, 미워하면서도 그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그 자식의 악함을 알지 못하며, 그 곡식 싹 큰 줄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일러 몸을 닦지 않으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대학 8 (유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8 (기독교)
사랑하는 이여, 남편이 사랑스런 것은 남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아내가 사랑스런 것은 아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자식이 사랑스런 것은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2.4.4-5 (힌두교)
온유와 절재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23(기독교)
다른 이에게 전해질 수 있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나나크가 말하노니, 늘 사랑의 주께 몰입하는 이가 참으로 사랑하는 이로다. 호의와 악의를 구별하는 이는 참으로 사랑하는 이가아니며, 그는 오히려 셈에 사로잡힌 불쌍한 이로다.
아디 그란트, 아사 키 바르, M.2,p.474(시크교)
말씀 선집
우리 인간이 찾는 사랑은 횡적인 사랑, 횡적인 터전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종횡이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38.140,1992.11.22)
여러분의 몸과 마음 가우데는 누가 들어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하나님이 임재한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거기에 임재하느냐?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반드시 거기에는 사랑이 있습니다.하나되는 원칙이 사랑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적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일하는 곳입니까? 어떤 곳입니까? 성전 하게 되면 안식처라는 말고 통합니다. 그러면 쉬는 데는 무엇 가운데서 쉬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안식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그러한 사랑이 있는 최고의 내심적 기준입니다.그러한 마음의 사랑을 지닌 곳을 심정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솟는 샘터와 마찬가지여서 퍼내고 퍼내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므로 끝이 없다느 것입니다.
(91.77-78,1977.01.30)
이 경계선, 영점을 왕래할 수있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몸 마음이 이 점에서 하나됩니다. 빈자리가 생기면 메우고 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완전히 거기에서 스톱하는 것입니다. 영점을 통과하는 것은 참사람밖에 없습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영점, 여자 마음도 영, 남자 마음도 영, 거기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영점에서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딱 하나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나는 당신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영점입니다. 어디 가나 자유입니다. 돌아서나 엎어지나 자유입니다. 그게 영점입니다. 모든 구형의 중심이 영점입니다. 양쪽을 다 소유한 것이 영점이라는 말입니다. 참사랑이 그렇게 해서 영점에 오는 것입니다.
(230.103,1992.04.26)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22.97,1969.01.26)
사랑의 이상을 중심하고 볼 때, 동.식물세계에서는 그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하여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이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책임성은 다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사랑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수양, 자기 관장으로 자유로운 참사랑의 주체가 되는 책임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책임성은 법이나 이목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생명적 종적 관계 속에서 자아주관, 자기 결단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에 대한 책임성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상대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 나누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부간의 횡적인 사랑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종적인 사랑의 관계와 달이, 나누어지면 벌써 그 온전성이 파괴됩니다.이는 부부간에 절대적인 사랑의 일체를 이루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 때문입니다.사람은 가지 상대를 절대로 위해야 할 사랑의 책임성이 있습니다.셋째는 자녀에 대한 사랑의 책임성입니다. 자녀들의 자랑과 행복의 기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은 참사랑으로 화합 일체 된 부모를 통해 생명이 태어나고, 그러한 사랑 속에서 양육되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가장 귀한 책임은 외적인 양육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성을 온전하게 해 줄 참사랑의 생명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생활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참된 자식의 심정, 형제의 심정, 부부의 심정,부모의 심정은 참되 가정 이외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277.201-202,199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