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늘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태만하고 느긋한 삶은 용납되지 않는다. 매 순간 우리는 선악의 갈림길, 원칙과 위법의 갈림길에 선다. 그 길에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함정과 유혹이 있어 우리를 재앙으로 이끌 수도 있다. 따라서 영적 구도를 걸어감에 있어 우리는 늘 조심하고 경계하며 주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경전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죄를 짓거나 타락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우리가 늘 방심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성경의 “주는 밤에 도둑같이 임하신다!” 는 구절처럼 기독교에서는 현자와 우매한 자의 비유를 들어 살면서 끊임없이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가르친다.
이슬람에서는 항상 신(자카라)을 기억하며, 그의 계명과 자비를 기억하며, 매일의 기도생활을 통해 이것들을 되새기도록 독려하고 있다. 유대교 현인들은 어떠한 죄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위해 ‘밤의 태두리 안에서’ 모든 계명을 해석할 것을 주장한다. 동양 종교는 수도자들에게 항상 생각의 흐름을 경계하는 명상훈련을 장려한다. 문선명 선생님 늘 신중한 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순간의 부주의로 심각한 과오를 저질렀던 성경의 중심인물들의 예를 들어 이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신다.
종교경전
시경(詩經)에 이르길, “전전 긍긍하여, 깊은 연못을 지나듯 하고, 엷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 고 하였다. 논어8.3(유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빌립보서 2.12(기독교)
출가 수행자는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덫인 양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웃타리디야야나 수트라 4.7(자이나교)
학식이 많고 믿음이 굳으며 기꺼이 참아 견뎌내는 이라고 개을러 늘 삼가지 못하면 쉬이 타락하여 헤어나지 못하느니.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5.26 (불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로운 자는 자기 위치에 안심하고 있는 사람이고, 망하는 자는 언제까지나 존속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흐트러진 자는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위태롭지 않을 때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나라가 잘 존속되고 있을 때도 멸망을 잊지 않고, 잘 다스려지고 있을 때도 흐트러짐을 잊지 않는다. 그래야 몸이 위태롭지 않고 나라도 잘 보전할 수가 있다. 역경에서 ‘망한다, 망해, 나라를 튼튼한 뿌리줄기에 매어 두라’고 한 말이 이상을 경계한 것이다.” 역경, 계시전 2.5.9 (유교)
재앙은 복이 깃들어 있는 곳이요, 복은 재앙이 숨겨져 있는 곳이니, 누가 그 전환하는 극을 알 것인가? 도덕경 58 (도교)
정당한 것도 명백하고 부당한 것도 명백하도다. 그 사이는 모호하고 많은 사람이 무지하다. 그리하여 모호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는 그의 종교와 명예를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었음이라. 그러나 모호한 것을 범하는 자는 금하는 것을 범하게 되리니, 이는 마치 목동이 성역 주위에서 방목하다가 성역 경계 내에서 방목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모든 왕이 성역을 갖고 있음은 사실이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던 하나님의 성역이 아닌가? 일 나와위 하디스 40선 6 (이슬람)
람비 아키바는 말했다, “헤픈 웃음과 경망스러움이 인간을 부덕하게 한다. 전통은 토라를 지켜주는 울타리, 십일조는 부자를, 맹세는 숭고함을 지켜주는 울타리이다. 그리고 지혜를 지켜주는 울타리는 침묵이다.” 미수나, 아보스 3.17 (유대교)
많은 제물을 가진 상인이 동행이 적으면 위험한 길을 피하듯 더 살려고 하는 사람이 독을 피하듯 모든 악행을 피해야 한다. 밥구경 123 (불교)
그러므로 나는 선한 마음이신 당신과 하나됨을 구라며, 사악한 자들과는 아예 왕래를 끊겠습니다. 아베스타, 야스나 49.3 (조로아스터교)
사람은 하지 않는 것(가릴 바를 아는 지조)이 있은 이후에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 Ⅳ.B.8 (유교)
나타난 죄와 숨긴 죄도 피하라. 죄를 저지른 자는 반드시 자기가 저지른 만큼의 응보를 받느니라. 꾸란 6.120 (이슬람)
그와 같이 비난할 점이 없는 행위들을 하라. …만일 아무튼 바른 행위에 대해 의문이 있다면, 간특하지 않고 훌륭한 판단을 하며 진리에 헌신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실천을 따라야 한다.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1.11.2.4 (힌두교)
지각 있는 사람은 서 있을 때나 않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항상 하나님을 염원하는 자이다. 꾸란 3.190-191 (이슬람)
그대의 침대 덮개의 그늘 아래에, 그대가 혼자 있을 때 주의하라. 음즐문 (도교)
비구들이여! 만일 길 가는 중에, 멈춰 서 있는 중에, 앉아 있는 중에, 혹은 누워 있는 중에 색을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남을 증오하여 해치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 만일 이를 받아들인다면, 이를 버리지 못하고, 물리치지 못하고, 근절하여 버리지 못한다면, 비구들이여! 그는 힘써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게으르고 서둘러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만일 길 가는 중에, 멈춰 서 있는 중에, 않아 있는 중에, 누워 있는 중에 색을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남을 증오하여 해치려는 마음이 일어나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고, 근절하며, 태워 없애 버린다면, 비구들이여! 그는 힘써 정진하는 사람이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며, 항상 노력하고 단호한 결단력을 지닌 사람이라 불린다. 이티붓타카 110 (불교)
하늘나라는 그들의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갔던 열 처녀와 비교될 수 있다. 그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도 가지고 기름 담은 그릇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이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소리가 났다. “보라, 신랑이 온다. 나와 맞으라.” 그 때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각기 등잔을 손질했다.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나눠 주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했다. “안 되오. 그러면 우리에게나 그대들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가게에 가서 쓸 만큼 사오는 것이 좋겠소.”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왔다. 준비가 된 처녀들은 그와 함께 결혼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겼다. 그 후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청했으나 주인은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마태복음 25.1-13 (기독교)
말씀선집
우리 젊은이들, 여러분들은 선악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한 발자국 잘못 가게 되면 그것은 천야만야한 사망의 구렁텅이에 걸려들 수 있습니다. 힘들지만 한 발자국 딛고 올라서게 될 때는, 빛나는 내일의 소망의 산정을 넘어서 희망의 광야를 바라볼 수 있는 승리의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발자국을 주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59.214, 1972.07.16)
커지면 커질수록 자기 발밑을 보아야 하고,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하늘을 쳐다보아야 한다. (뜻길,p.21)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눈을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귀를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자기중심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자기 중심삼은 행동은 보지 말고,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고, 자기를 위한 변명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개일 방어책이라는 것입니다. (93.319, 1977.06.12)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가운데 공적인 것은 전체를 위한 것이요, 사적인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를 조용히 반성해보면 자기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틈바구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자기 위주로 나아가려는 몸을 제지시키고자 ‘금식하라. 고생하라. 온유 겸손하라’고 가르칩니다. (149.271, 1986.11.27)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여 행동하십시오. (93.320, 1977.06.12)
한 마디, 한 번 잘못 들음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행동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한 번 잘 못 가게 되면 역시 일생을 망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도 친구 한 사람을 잘 못 사귐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인생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자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조심하고, 듣는 걸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친구를 조심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혹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이 통하는 공식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이 생기는 반면 말 한마디를 잘함으로 말미암아 일생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듣는 것도 그렇고, 가는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난데없이 지나가는 젊은 사람한테 말 한마디 함으로 말미암아 인연이 되어 사귀다 보면 남편도 될 수도 있습니다. (91.29-30, 1977.01.02)
불행한 길의 출발이라는 것은 큰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을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했다가는 그 고개를 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하면 할수록 반드시 그러한 처지에 서지 않고는 일대의 비운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 번번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원수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93.298, 1977.06.12) 우리가 지내고 있는 하루의 생활 중 한 시간 한 시간도 무섭지만 한 시간 속에 똑딱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무서운 순간인가 하는 것을 느끼며 싸워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영원한 천국도 한 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도 일년이나 십 년, 혹은 수 십 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 순간에 초래되었으며, 한 순간의 실수가 억만 년 이어온 그 나라를 팔아먹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오랜 역사를 통하여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 뜻을 따라가지 않는 수 많은 민족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 제물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7.219, 1970.12.27)
노아가 40일 홍수 심판 이후에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으면 벌거벗고 그런 행동을 안 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그 놀음했겠습니까? 조금만 참았으면 술을 먹고 그랬겠습니까?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절대 그 놀음은 안 했을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릴 때 3대 제물을 놓고 참고 가만히 보고 생각했다면 실수했겠습니까? 3대 제물 가운데 둘은 쪼개고 왜 하나는 안 쪼겠느냐 말입니다. (99.39, 1978.08.27)
하늘의 시련을 받는 입장에 있었던 야곱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팔이 떨어지는 한이 잇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승리한 후에야 이스라엘이란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3.337, 1958.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