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확실 사람의 내적 의도는 행동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어떤 행동이 선한지 악한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부처가 담마파다에서 강하게 설교했듯이, 모든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음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내적 마음의 상태에 따라 행동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래의 어떤 경전 구절에서는 ‘신실’이란 모든 가식과 이기적 욕심이 배제된, 마음의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흐름이라고 정의한다. 또 다른 경전에서는 진실로 신실한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탐구와 자기 함양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문선명 선생은 스스로 ‘정성’이라고 부르시는, 이 신실한 마음을 고양시키는 것이 영적인 삶에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번 장에서는 정성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덕목으로 다루고 있다. 하나님꼐 다가가는 신실함과 관련된 주제는 제16장 ‘헌신’과 ‘순수한 의도’에 더욱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1. 성실은 심정에서 자동적으로 우러남 종교경전
어떤 이의 마음이 건실하다면, 그의 몸도 느긋할 것이며,… 어떤 이의 마음에 악의가 있다면, 그 몸도 악의를 가지리라. 하디스(이슬람)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으뜸이니, 마음으로부터 다 이루어진다. 악한 마음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마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으뜸이니, 마음으로부터 다 이루어진다. 선한 마음 가지고 말하거나 행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그 형체를 따르듯이. 법구경 1-2(불교) 아부 후라이라가 하나님의 사도의 말씀을 전하기를, “하나님은 네 외모와 소유물을 보지 않으시도다. 다만 네 마음과 행위를 보시도다.”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생각과 양심까지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디도서 1.15(기독교) 참된 자기 속을 밝혀 보지 않고 밖으로만 치달으려 한다면 그 매번의 행동들은 자연의 도에 맞지 않을 것이다. 장자 23(도교)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육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십시오. 로마서 12.9-10(기독교) 정성됨[절대적인 참됨]은 하늘의 도요, 정성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다. 정성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여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도에 맞으니 성인이라 할 것이다. 중용 20.18(유교)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중(中)의 상태라 한다.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의 상태라고 한다. ‘중’이란 천하의 큰 뿌리이고 ‘화’란 천하의 통용되는 도이다. ‘중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질서가 확립되고 만물이 자라고 번성하게 된다. 중용 1.4-5(유교) 참은 정성의 최고 경지이다. 정성이 없으면 남을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억지로 우는 사람은 슬픈 표정을 꾸밀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슬픈 정감이 없다. 억지로 성낸 척하는 사람은 표면으로 사나운 척해도 속에서 우러나오는 위압감이 없다. 억지로 친한 척하는 사람은 웃는 낯을 꾸며도 속으로부터 화목할 수가 없다. 참으로 슬퍼하면 소 리 없이 울어도 속에서 슬퍼하고, 참으로 노여워하면 밖에 나타나지 않아도 속의 위압감이 전달되고, 참으로 친하면 웃는 낯을 안 지어도 화목하게 된다. 속에 참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신이 밖으로 동하고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귀하게 친다. 장자 31(도교)
말씀선집
내 속사람인 마음과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더불어 공명되게 된다면 하나님과 관계 맺게 되고, 우주의 진리는 자동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102.34, 1978.11.19) 선한 사람은 자연을 보나, 사람을 만나나, 어디를 가나, 어느 때나 심정으로 덮어 줄 수 있는 자다. (뜻길, p.210) 하늘 앞에 지성을 드리는 것은 남으로부터 듣거나 배우거나 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자동적으로 심정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 효, 열은 가르쳐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뜻길, p.215) 내가 정성 들이고 사랑하는 것은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을 넘어서서 복 주고 싶은 마음이 저장되어 있으니, 복을 받을 수 있나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은 자동적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생활에 적용해서 움직여 보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나 손대게 되면, ‘이것 때문에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생겨나기를 이것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좋아서 하는 겁니다. 좋아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기쁨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사랑의 인연입니다. 자기가 싫은 것은 손을 안 대는 겁니다. 안 하는 겁니다. 좋아서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그 세계에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308.214, 1999.01.05) 경천(敬天), 인화(人和), 애지(愛地)의 내적인 심정기준이 흔들리지 않는 자가 복된 자이다. (뜻길, p.213-214) 정성들이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즉 일편단심을 지녀야 합니다. 두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통일된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은 누구에게 빌려 주었다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이나, 과정이나, 끝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되어서는 정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227-228, 1967.01.29) 무엇을 가지고 극복하느냐? 그것은 어떤 수단을 가진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무슨 재간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오직 정성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42.228, 1971.03.14)
2. 행동하기 이전에 정성을 들여라
종교 경전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 잠언4.23(기독교) 진실로 곧다는 것은 신께서 현시하신 성실함의 결과로서 그대의 지정한 내면의 자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행동의 가장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까지도 그대는 성실함을 다하도록 애써야 한다. 성실함과 정직함이 없는 예의나 제의는 잘못된 것이며 불충분한 것이다. 이는 마치 팔을 고정하지도 않고 활을 당겨 살을 쏘거나 노 없이 배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 히키타 모치마사, 신풍기(신도)
진실로 사람의 생각이 삼라사의 원인이다. 자신의 생각들을 청정하게 닦도록 하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 사람은 그것이 된다. 이것은 오랜 비밀이다. 자신의 생각을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는 선악의 모든 행위들을 잠재울 수 있다. 생각이 고요하게 머무는 자는 영원한 자아 속에서 불멸의 행복을 누린다. 만일 자신의 생각들이 이 세상 것들에 대한 것만큼 브라흐만에 오로지 할 수 있다면,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지 못할 자 누군가? 마음은 청정하고 부정한 두 얼굴을 지니나니, 욕망에 끌려 다녀 더러움에 물들며, 이를 떠나 있음이 곧 청정한 마음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방일하게 하지 말라. 연후에 흔들리지 않고 적정 속에 머무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심의 경지요 구극의 경지이다. 마이트리 우파니샤드 6.34.3-7(힌두교)
이른바 뜻을 정성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좋은 색상을 좋아함과 같으며, 스스로 정성스런 경지에 만족하고 있음을 말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 있는 경우에 신중하게 행동한다. 소인은 한가롭게 혼자 있으면 선하지 못한 짓을 하고, 그 한도가 끝이 없이 뺃는다. 군자의 언행을 본 후에야 슬쩍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불선을 가리고, 반대로 선함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나 남들이 그를 보기를 마치 폐나 간을 봄과 같이 할 것이니 숨겨도 소용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이른바 속에서 정성스럽게 하면 밖으로도 나타나 보인다고 함이니라. 고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는 경지에서 신중하게 하느니라. 증자가 말했다. “열 개의 눈이 보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얼마나 엄격해야 하느냐! ”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성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이 넓으면 몸이 편하게 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되게 한다. 대학 6.1-4(유교)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검사해야 하고, 무엇이 심정의 영향이고 목적인지 배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야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정직하게 배울 수 있다. 과학과 건강, 8(크리스천 사이언스)
비구니들이여! 만일 스스로 몸단장하기를 좋아하는 여인이나 젊은이, 혹은 어린 소년이 있어 밝고 깨끗한 거울이나 맑은 물이 담긴 항아리에 제 모습을 비춰 보고 그 속에서 어떤 얼룩이나 때가 묻은 것을 발견한다면, 그는 그 얼룩이나 때를 지우려 애쓸 것이며, 마침내 뜻을 이룬다면 그는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깨끗하게 된 것은 나에게 참 ㅈ호은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구의 내적 성찰은 그것이 잘 닦여질 때 그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된다. 이에 그는 이와 같이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평소에 혹 남의 것을 탐하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악의를 품고 말하거나 행한 적은 없는가? 내가 평소에 수행을 닦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마음이 들떠 평정심을 잃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의심이 들어 마음이 동요하며 혼란에 빠지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화를 잘 삭여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평소에 탁한 상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색을 탐하는 마음을 품지는 않는가? 내가 평소에 무기력하게 지내는가, 아니면 활기찬 모습으로 수행에 임하는가? 내가 평소에 나를 통어하며 사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만일 이와 같이 자신을 돌아보고 어떤 비구가 생각하기를, “나는 평소에 남의 것을 탐하고, 가슴에 악의를 품으며, 방일하고 지둔(遲鈍)하며, 마음에 평정심을 집지하지 못하며, 의심에 들어 마음이 동요하고 혼란에 빠지기 잘하며, 화내기 좋아하며, 색욕에 빠진 몸을 지니며, 굼뜨고 나를 통어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여기면, 그 비구는 자신을 책망하여 한층 더 수행에 전념해야 하리니, 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보다 더 높은 열망을 내며, 보다 더 많이 실천하고 마음을 흩트리지 않으며, 사악하고 우익하지 못한 것들을 멸쳐버림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5.66(불교)
말씀 선집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우리 한국의 격언이 있지만, 참 그건 천리(天理)를 통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 드린다’ 하는 그 정성 드리는 거기에는 안팎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또, 언행심사와 모든 실천, 안팎의 모든 우리 양심 생활권까지도 몽땅 합해 가지고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게 정성이라 이겁니다. ‘정(精)’은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誠)’은 말씀 언변에 이룰 성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안팎의 모든 것을 이루어 가지고 바친다는 뜻입니다. 거렇게 돼야 감천(感天)입니다. 하늘이 감동한다는 것입니다. (78.31-32, 1975.05.01)
평소에 느낌의 몇 퍼센트가 적중하느냐? 이것은 여러분이 생활과정을 분석해서 그 결과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의 몇 퍼센트는 맞는다, 몇 퍼센트는 틀림없다’ 하는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같이하고 계시는지, 악이 같이하고 있는지 분석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런 신앙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신앙태도를 키워 나가면 틀림없이 정확한 느낌이 체휼되어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나설 때 기도를 안 해도 괜찮습니다. 첫 걸음을 내디딜 때, 이 길이 어떤 길이냐, 좋은 길이냐, 가면 하나님에게 좋을 수 있는 길이야, 섭섭한 길이야, ‘아 이건 좋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쁘다’ 할 때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내적인 느낌과 관련된 체휼신앙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0.288, 1971.02.07)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힘들다! 선생님이 알아준다, 안 알아준다’ 하는데, 정성들인 것을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랑하는데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알아주면 사랑이 막혀 버립니다. 안 알아줌으로 말미암아 정성이 흘러갈 수 있고 사랑이 흘러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흘러가야 됩니다. 물도 흘러가고, 공기도 흘러가고, 사랑도 틈만 있으면 전부 채우는 것입니다. (308.205, 1999.01.05)
신앙생활에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폭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다면,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중심의 사랑과 자신의 가치를 자랑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이 이별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갈 길은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중심의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한계의 세계는 하나님의 뜻의 세계와는 다른 것입니다. (32.21-22, 1970.06.14)
준비 못 한 사람은 흘러가는 겁니다. 준비 못 한 사람은 상속자가 못 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나 자기가 하늘을 동정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시간이 어떠한 자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정성 들이고 또 들이려고 할 때이고, 위하려고 할 때이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려고 할 때라는 것입니다. (308.203, 1999.01.05)
아직도 타락권에 속해 있는 인류는 양심혁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즉 이 세상의 어떤 주권이나 이념 앞에서도 일점일획 가감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본심의 지향성을 따라 참생명 참혈통의 전통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하늘 앞에서나 만물 앞에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정오정착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일심 일체 일념 일핵의 경지에 도달하여 순결 순혈 순애성을 영원불변의 전통으로 안착시키고 일화통일시대를 꽃피울 때 비로소 양심혁명은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433.202, 2004.01.27)